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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소군-236화 (236/250)

236

옥판봉 아래 옥허동천이 페허가 됐다.

-쿠웅!

무당 장문인 청무진인을 비롯한 고수들이 침중한 얼굴로 연달아 기음이 터져 나오는 옥허동천을 올려다보았다.

갑자기 옥판봉에서 절벽이 무너지는 듯한 굉음이 들려 오는 현상이 벌어지는 바람에 모두가 몰려나온 것이다.

-콰콰쾅!

곧이라도 옥판봉이 무너질 것 같은 굉음이 연달아 터지더니 어느 순간 잠잠해졌다.

‘싸움이 끝났구나!’

청무진인이 먼저 몸을 날렸다. 뒤따라 무당의 고수들이 솟아오르고, 무당 제자들이 경공을 펼쳐 따라왔다.

“올라올 것 없다!”

현치자의 낭랑한 목소리가 옥판봉에 울려 퍼졌다.

청무진인이 멈춰 서더니 제자들에게 일렀다.

“너희는 대기하고 있거라.”

청무진인이 홀로 절벽길을 따라 올라 옥허동천에 이르렀다.

고적한 운치가 있던 옥허동천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이, 어찌 이런 일이….”

청무진인이 침음성을 흘렸다.

“그러게 말이다. 가진 것 없는 불쌍한 도인의 하나뿐인 거처가 박살이 나 버리다니. 하늘도 무심하지.”

무너진 도관을 현치자가 뒤적거리며 중얼거렸다.

그의 손에 아끼던 찻잔의 파편이 들려 있었다.

현치자가 찻잔을 흔들며 바위에 기대어 간신히 숨을 내쉬는 상관무영에게 윽박지르듯 말했다.

“나쁜 놈. 내 찻잔을 물어내야 할 거야. 그대로 죽으면 도인의 찻잔을 박살낸 업보로 환생하지 못할 것이다.”

상관무영이 희미하게 웃었다.

“도를 얻었는데 환생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상관무영이 말하다 말고 쿨럭, 핏물을 토했다.

그의 시선이 절벽에 박혀 있는 천곡을 향했다.

천산신검을 상대하기 위해 평생을 받쳐 왔는데 천황성의 사자 하나 죽이는 데도 이렇게 힘들 줄 몰랐다.

사실 천곡이 천산신검 검황과 어금지금한 경지의 고수라는 건 몰랐다.

현치자가 상관무영의 시선을 따라 천곡의 시신을 보다 인상을 썼다.

“곱게 죽도록 놔둘 줄 것 같으냐?”

그러더니 청무진인에게 말했다.

“약 좀 있지? 가져와라.”

청무진인이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보아하니 그동안 옥판봉을 찾았던 비천신검 같은데 상세가 여간 위중해 보이는 게 아니다.

‘태청단 하나가 사라지겠구나.’

***

‘으음!’

천주가 내심 침중한 신음을 흘렸다.

무당산으로 보낸 천곡과의 연결이 끊긴 것이다.

‘설마 그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천주의 분심공은 양의심공과 비슷한 무공이다. 그렇기에 의식을 나눠 검제를 지배하는 한편 강소군을 공격하고 있다.

그랬기에 천곡이나 기타 군웅각 고수들에게는 행해야 할 명만 내려둔 상태였다.

그런데 돌연 천곡과의 영연(靈緣)이 사라진 것이다.

강소군의 머릿속에 있는 고를 터뜨렸을 때 천주는 엄청난 기의 진동을 느꼈다.

고가 터지자마자 강소군이 그 자리에 주저앉아 정좌를 하였는데 놀랍게도 천주도 그를 건들일 수가 없었다.

직접 공격을 하면 강소군의 전신을 채운 기가 터져 천황성이 날아갈 듯한 같은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마치 상처 입은 용이 건들면 곧바로 반응하여 집어삼킬 것만 같은 기운이었다.

그게 아니더라도 그로서는 놓치기 아까운 육신이기에 바로 처치할 수는 없었다.

‘대체 이놈의 기운은 무엇이지?’

백수십 년을 살며 천지간의 이치는 물론이고 세상의 모든 기운을 깨쳤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강소군의 육신에 있는 기만큼은 그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고심 끝에 허공섭물의 기공을 이용하여 강소군을 금관에 넣고 지화중약수(地火重藥水)를 채웠다.

마치 수은처럼 무거운 지화중약수는 천황성 지하 깊숙한 곳에서 솟는 영약으로 육신을 벌모세수하는 효과가 있다.

무인이 몸을 담그면 묘약의 기운이 칠공과 전신모공으로 스며들어 육신을 정화하고 기를 한층 순화시켜 준다.

천주는 지화중약수로 강소군의 전신에 집약된 기를 중화시키고자 하였다.

그런데 강소군의 전신을 채운 기와 물과 기름처럼 팽팽하게 맞서고 있을 뿐이다.

천주는 결국 금관 머리맡에 앉아 자신의 무형검으로 강소군의 머리를 가르고자 하였다.

그런데 놀랍게도 무형검으로도 강소군의 육신을 가를 수가 없었다.

‘저걸 깨뜨려야 하는데!’

천주는 초조하였다.

그렇다고 강소군의 육신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무형검으로도 가르지 못하는 육신이다. 이를 얻을 수 있는 기회는 다시없을 것이다. 그가 입신하는 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육신이었다.

다시 일백 년을 수련하여야만 얻을 수 있는 육신이 목전에 있다.

‘으음.’

천주는 분심공으로 나눈 의식이 한쪽으로 몰려가는 걸 느꼈다.

나눈 의식으로 검제로 현신하여 싸우고 있는데 의외로 고장추의 내공이 막강하다.

‘이미 실전된 묵영신공을 익혔다니.’

천주는 고장추의 무공을 알아보았다.

패도의 극성을 추구하는 무공이다.

그러니 같은 패도를 추구하는 검제의 수라팔황검과 부딪쳤을 때 내공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런데 고장추의 내공이 상상 이상이다. 게다가 어이없게도 싸우면서 음공을 펼치고 있다.

천주가 검제의 육신을 차지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은 일이다.

그러니 음공이 두뇌를 흔들 때마다 의식이 끊기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었다.

천주는 생각지도 않게 고전을 하고 있는 셈이다.

‘차라리 검황이었다면 상대하기 쉬웠을 텐데.’

검황 역시 무형검을 이뤘다. 그의 육신으로 현신한다면 완벽한 무형검을 펼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검황은 완전히 의식을 내주지 않고 있다.

검황 역시 미증유의 길에 들어서 입신을 바라보는 경지이기에 본능적으로 고에 저항하고 있는 것이다.

평소라면 명을 따르는 것만으로도 충분했으나 지금 상황은 엄중하다.

천주는 검제로 현신하는 동시에 검황과 도황, 권제에게 지속적으로 명을 내려야 하기에 분심공의 대부분을 소진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강소군을 제압하는 일은 더욱 지지부진했다.

‘안 되겠다. 우선 저놈들부터 처리하고 이놈을 제압해야겠다.’

천주가 결단을 내렸다.

그가 손을 뻗자 금관의 뚜껑이 날아와 닫혔다.

천주가 금관과 관뚜껑에 달린 여덟 개의 고리에 빗장을 걸어 단단하게 봉인하였다.

금관은 겉만 금으로 칠했을 뿐 실제로는 만년한철로 만든 것이다.

세상 누구라도 빠져나올 수 없을 것이다.

천주가 금관을 보고는 밖으로 나갔다.

천주전에 설치된 진법도 있으니 그 누구도 들어올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천주는 천주전을 나서며 기관을 작동시켰다.

-쿠쿵!

-우르르르르!

천주전이 땅속으로 꺼지더니 그 위로 거대한 석벽이 내려와 덮었다.

천주전 자체를 아예 지하에 봉인한 것이다.

그제야 안심한 천주가 몸을 날렸다.

***

강소군은 의식을 잃지 않았다.

고가 터지는 순간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 왔다. 그리고 전신에서 엄청난 기가 폭발할 듯 생성되었다.

마치 무총에서 처음 핏빛 독무에 중독되었을 때와 같은 느낌이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기운이 폭주하지 않고 계속해서 부풀어 오르기만 한다는 것이었다.

머릿속에 있던 고는 터졌으나 폭발적으로 일어나는 기에 눌려 퍼지지 못했다.

강소군은 기운으로 고를 감싸는 한편 자신의 몸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지켜보았다.

천주가 금관에 그를 넣고 지화중약수를 채운 건 천만다행이었다.

강소군의 육신을 얻기 위함이었던 것이기는 하지만 적절한 조치였다.

영인고가 터졌을 때, 그동안 영인고와 감응하였던 뇌가 이를 받아들이려는 순간 금룡기가 폭주하였다.

금룡기는 무총에서 핏빛 독무로부터 얻은 혈기, 강소군이 혈룡기라고 지칭하는 기운과 금단진공의 기운이 어우러진 것이다.

혈기는 마기에 속했고 금단진공으로 연성한 기는 선기였다.

극성인 두 기운이 태극의 원리로 어우러지며 선마일체의 기를 이룬 것이 바로 금룡기다.

선마일체의 기는 이제까지 세상에 나온 적이 없었다.

그랬기에 천주도 강소군의 기운을 정확하게 읽어낼 수가 없었던 것이다.

금룡기는 강소군이 초식의 완성을 이루며 육신과 완전히 화합하여 신기정의 일체를 이룬 상태였다.

그런데 강소군의 뇌가 아무리 동화가 되었다고 해도 이질적인 존재인 영인고와 화합을 하려 하자 이에 감응하여 폭발을 한 것이다.

존재는 하나의 우주다.

영인고 역시 실체가 있는 존재로 하나의 우주를 이루고 있었다.

따라서 두 존재가 하나로 합쳐지는 건 두 우주가 합해지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금룡기, 즉 선마일체의 기는 완전한 기였는데 다른 우주와의 합일이 이뤄지려니 스스로 폭발하여 이를 밀어내려는 것이다.

새끼고에 쌓인 영력이 강했기에 금룡기 또한 극성으로 폭발하였다.

적절한 조치를 하지 않았다면 종국에는 강소군의 몸이 먼지로 화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천주가 강소군의 기를 제어하고자 지화중약수에 담그는 바람에 밖으로 터져 나가려는 금룡기와, 안으로 스며드는 지화중약수의 기운이 평형을 이루는 의외의 결과를 낳았다.

그러나 천주가 예기치 못한 결과도 있었다.

강소군의 금룡기가 분출을 하지 못하자 체내에서 압력이 높아지며 이질적인 존재인 영인고를 압축하고 있었던 것이다.

영인고가 터졌을 때 존재는 두뇌로 스며들 수 있는 영액(靈液)의 상태였다.

그런데 금룡기의 압력에 점차 응고되어 단단한 환으로 응축되고 있는 중이다.

동시에 영액으로서 감응하던 능력 또한 점차 봉인되어 가고 있었다.

‘…!’

천주가 사라지자 강소군의 눈꺼풀이 잠시 흔들렸다.

강소군은 금단진공으로 의식을 나눠 영액의 응축을 유도하는 한편 천주의 무형검을 막아야 했다.

그렇기에 천주가 금관에 봉인하고 사라진 것은 강소군에게 천재일우의 기회를 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강소군은 금단진공으로 나눈 의식을 통합하여 영액의 응축에 전념하였다.

***

-쿠쿠쿵!

멀리 천황성이 있는 높은 봉우리에서 기관음이 들려 오자 제갈선이 천리경을 꺼내 살펴보았다.

천황성 성채 가운데 있던 전각이 가라앉고 있었다. 그리고 한 사람이 날아오르는 게 보였다.

‘천주!’

제갈선은 가슴이 철렁하였다.

천주가 직접 나서려는 게 분명했다.

검제로 화한 상태로도 아직 제압을 못하고 있는데 천주가 나타나면 어찌될지 알 수가 없었다.

-콰콰쾅!

-쿠우우우웅!

천주가 날아오며 분심공을 강화하자 검제를 비롯한 검황, 도황, 권제의 공세가 달라졌다.

일제히 전신공력을 개방하자 병장기의 의미가 사라졌다.

남궁악 등의 안색이 침중하게 굳었다.

-콰콰쾅!

-퍼어엉!

검고 푸르고 붉고 하얀 빛들이 연달아 번쩍번쩍하더니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콰아아앙!

굉음이 천지를 진동시켰다. 땅이 흔들려 제대로 설 수가 없을 정도였다.

“앗!”

“저런!”

의천맹과 흑천맹, 재야무림인 누구 할 것 없이 비명과 탄식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거대한 폭발과 함께, 놀랍게도 남궁악 등 네 사람이 일시에 튕겨 나갔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했다.

마치 이제까지는 봐주었다는 듯 검제 등이 일시에 절기를 폭발시킨 것이다.

사람들의 가슴에 서늘한 절망이 피어올랐다.

그 사이 천주가 착지하였다.

사람들은 고아한 용모의 사십 대 중년인이 나타나자 의아해하였다.

“저 사람은 누구지?”

“설마 천주가 저렇게 젊은 사람인가?”

“반노환동의 경지가 실제로 있단 말인가?”

천황성 천주는 입신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그래서 백발수염이 가득한 옥황상제를 연상한 사람도 많았다.

그러기에 천주의 진면목을 보고 놀라 술렁거렸다.

천주가 나타나자 어느새 옆으로 현가가 섰다.

천주가 중인을 둘러보더니 입을 열었다.

목소리는 나직했으나 들판에 있는 모든 이들에게 바로 옆에서 말하듯 분명하게 들렸다.

“모두 자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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