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소군-235화 (235/250)

235

“지금 수뇌부를 치자고 합니다.”

“천주는 아직 나오지도 않았는데?”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저기 검제라는 놈이 천주의 분신이랍니다.”

“뭐? 저놈이?”

고장추가 붉은 피로 범벅된 얼굴을 들어 검제를 노려보았다.

일전에 홍의발이 의천맹과 맺은 협약에 의하면 수뇌부를 공동으로 상대하자는 내용이 있었다.

고장추가 전황을 살폈다.

흑천맹도들도 독한 인간들이 많았다.

천황성 괴인에게 팔다리가 뜯겨 죽어 가면서도 끝끝내 붙들고 늘어지고 그 사이 다른 맹도들이 달려들어 온갖 병장기를 쑤셔 넣었다.

그야말로 악전고투였다.

고장추가 생각하니 이렇게 싸우다가는 한도 끝도 없을 것 같았다.

천주의 분신 검제를 죽이면 이 괴물들도 약해지지 않을까?

고장추가 맹도들에게 소리쳤다.

“뱀을 잡으려면 대가리부터 쳐야한다. 저놈을 잡아 죽이고 올 테니 조금만 버텨라!”

-쿵!

고장추가 발을 굴러 몸을 날렸다.

“수라마검, 목을 내놔라!”

고장추는 흑천맹도들의 사기를 북돋우기 위해 전력을 다해 고함을 질렀다.

고장추의 묵영신공은 극에 달했다.

홍의발이 흑천맹 맹도들을 동원하여 온갖 영약을 구해 복용시켰기에 내공만으로는 천하제일을 다툴 만했다.

고장추가 내공을 실어 고함을 지르자 들판이 울렁거릴 정도였다.

“와아! 맹주님께서 수괴를 처단하러 가신다!”

“오오, 대단한 내공이다! 맹주님이야말로 천하제일인이시다!”

흑천맹도들이 함성을 지르며 서로의 사기를 북돋았다.

***

의천맹 좌측 진영은 화룡문과 정무문, 그리고 의천맹 무인들이 맡고 있었다.

구대문파만큼은 아니지만 화룡문과 정무문만으로도 막강한 전력이었다.

화룡문과 정무문은 과거 천하사패였던 도룡회와 대정무각의 정예들이다.

특히 중랑을 비롯하여 과거 대정무각 각주들, 조운룡과 십이도객은 절정과 화경을 넘나드는 고수들이었다.

천황성 괴인들이 무지막지한 괴력을 보이고는 있지만 이지를 상실한 자들이었던 만큼 침착하게 대응하여 전열을 유지할 수 있었다.

조운룡의 화룡도가 붉은빛을 번뜩일 때마다 괴인의 목이 떨어져 나갔다.

중랑의 검이 허공을 찌를 때마다 무수한 별무리와 같은 빛이 괴인들을 난타하였다.

-퍼억!

조운룡이 산발한 괴인의 목을 치고 돌아서려는데 마침 고장추의 목소리가 들판을 울렸다.

그러자 조운룡이 퍼뜩, 정신을 차리고 검제 등이 있는 쪽을 보았다.

조운룡의 눈에 한 팔이 잘린 도황이 들어왔다. 더 생각지도 않고 몸을 날렸다.

“저놈은 내 차지다! 손대지 마라!”

조운룡이 박차고 날아오르자 대약무검 관중이 중랑을 향해 외쳤다.

“문주, 여기는 우리에게 맡기고 가게. 수뇌부 하나는 잡아야 백 대형의 영전에 설 수 있지 않겠나?”

중랑이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천황성과의 일전은 향후 무림의 향배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정무문이 황실로부터 벗어나는 시기이니만큼 지금 시기에 무림 문파로 거듭나야 한다.

무림에 서기 위해서는 그에 합당한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설령 그 역할이 목숨을 거는 일이라도.

관중의 말에는 그런 의도가 들어 있었고 중랑 역시 같은 생각이었다.

“그럼 여기를 부탁드립니다.”

중랑이 몸을 날려 검제가 있는 쪽으로 향했다.

***

고장추가 고함을 지르며 나서자 의천맹에서도 한 줄기 소성이 터져 나오며 남궁악이 높이 솟아올랐다.

“오!”

마치 하늘을 걷는 듯한 남궁가의 절학에 사람들이 감탄성을 내뱉었다.

무려 오 장 가까이 솟구친 남궁악이 허공에서 천천히 걸어 내려오는 듯하더니 순식간에 검제 앞에 내려섰다.

뒤이어 조운룡과 중랑도 당도하였다.

검제가 고장추 등을 훑어봤다.

고장추의 내력이 상당하나 남궁악이나 중랑, 조운룡은 자신들에 비해 확실히 한 수 아래로 짐작이 되었다.

특히 중랑과 조운룡은 그 나이로만 보자면 놀라운 성취를 지닌 수준이었다. 하지만 아직은 풋내 나는 후기지수에 불과했다.

“크핫! 고작 너희 네 명으로 우리를 상대할 수 있다고 보나?”

검제가 비웃고는 손을 들었다.

그러자 사방에서 난동을 부리던 괴인들이 일제히 돌아와 검제의 뒤편에 섰다.

검제가 들판의 무림인들을 향해 소리쳤다.

“이들이 너희가 내세운 고수들이냐? 너희가 얼마나 무력한 존재들인지 두 눈으로 똑똑히 보거라.”

검제는 무림인들의 저항이 의외로 만만치 않자 고장추 등을 단숨에 꺾어 사기를 죽이려 하였다.

남궁악이 한 발 앞으로 나섰다.

“사람을 괴물로 만들어 조종하다니 천황성이 마교와 다를 바가 없다! 내가 쓰러지면 또 다른 누군가 뒤를 이어 끝까지 천황성을 제거할 것이다. 무인의 의기가 살아 있는 한 천황성은 이 땅에 존재할 수 없다! 나는 단지 가장 앞에 나선 것뿐이다!”

“와아!”

“옳은 말이다! 천황성의 개들을 한 마리도 남기지 말자.”

남궁악의 단호한 외침에 의천맹 무인들이 일제히 병장기를 쳐들며 호응하였다.

고장추가 고함을 지르며 튀어나가더니 벼락같이 도를 그었다.

“이런 놈들과 말을 섞을 필요도 없다!”

-콰콰콰콱!

허공을 그었건만 마치 철판이라도 가르는 듯한 기음이 터졌다.

뒤따라 짙은 묵빛 강기가 칼의 궤적을 따라 일어나더니 검제를 향해 쏟아졌다.

“와!”

“역시 맹주님이야말로 흑도의 호걸이다! 말이 필요 없지.”

이번에는 흑천맹도들이 일제히 함성을 질렀다.

“흥!”

검제가 코웃음을 치며 양팔을 벌렸다. 그러자 등 뒤에서 무형의 팔들이 형성되었다.

검제가 자신의 독문무공인 수라팔황검을 펼치며 검황과 도황, 권제에게 소리쳤다.

“저놈들을 죽여라!”

그러자 이제까지 우두커니 서 있던 검황 등이 흠칫, 하더니 앞으로 튀어 나갔다.

남궁악이 검황을 향해 검을 뻗었고 조운룡은 도황을 향해 달려들었다.

중랑이 자연스레 권제를 맡게 되었다.

-쾅! 콰쾅!

벼락같은 굉음이 연달아 터지고, 검거나 붉거나 푸르거나 하얀 빛이 사방으로 비산하였다.

무림사에도 이런 싸움은 없었다.

절대지경과 생사경을 넘나드는 고수 여덟 명이 어울려 싸우자 그야말로 하늘이 놀라고 땅이 흔들렸다.

워낙 고수들이라 싸움터가 크게 넓어져 의천맹과 흑천맹 무인들이 뒤로 물러나야 할 정도였다.

남궁악 등 네 사람은 처음부터 전력을 다했다.

그들 역시 자신들이 한 수 아래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초반에 몰아붙여 치명적인 일격을 가할 기회를 찾았다.

그래야 자신들이 지더라도 뒤이어 그들을 상대할 자들이 있을 것이다.

남들은 몰라도 남궁악은 죽음을 각오하고 있었다.

검황을 상대한 것도 그가 가장 강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무인으로서 생사경을 넘어 미증유를 넘보는 절대고수와 겨룬다는 것 자체가 그에게는 의미 있는 일이었다.

고장추와 조운룡은 각기 부친과 사부의 원한을 갚겠다는 분노에 다른 생각이 없었다.

이 싸움판에서 가장 냉정한 자는 중랑이었다.

중랑은 권제를 상대하면서 어딘가 모르게 그가 부자연스럽다는 느낌을 받았다.

자신보다 분명 한 수 위이기는 하지만 전력을 다하는 것 같지가 않았다.

사실 검황과 도황, 권제는 자신들을 지배하는 천주의 목소리를 따르면서도 의식 한구석에서 일어나는 의혹과 찜찜함을 떨치지 못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완전한 정상이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인간의 영역을 넘어선 초인들이다. 내지르는 권 하나 하나에 실린 경력은 상상을 초월하였다.

‘이것이 진정한 생사경이란 말인가?’

중랑 역시 동약사가 심혈을 기울인 영약과 각주들이 돌아가며 시전한 벌모세수를 받지 않았다면 벌써 패하고 말았을 것이다.

따지고 보면 중랑은 관중을 비롯한 각주들이 전력이 합쳐진 분신이나 마찬가지다.

중랑은 침착하게 권제를 상대하며 허점을 찾았다.

***

-콰쾅!

조운룡과 도황의 도가 서로 정면으로 부딪치며 거대한 기파가 사방으로 터져 나갔다.

조운룡이 크게 밀리지 않는 건 의외였다.

우문극이 도황의 한 팔을 잘라낸 덕도 있었다.

생사경을 넘어 미증유를 바라보는 도황이지만 팔 하나의 부재가 아쉬울 따름이었다.

어지간한 화경의 고수라면 모르겠는데, 놀랍게도 조운룡은 만만치 않은 상대였다.

조운룡의 싸움을 지켜보는 석병우는 감개무량하였다.

‘사부님, 운룡이가 드디어 무림의 정상에 설 것 같습니다.’

조운룡은 사부 우문극이 곤륜파에 가서 얻은 심득을 이어받아 화룡도법의 진수를 얻었다.

곤륜파에서는 사문을 잊지 않고, 속가문파였던 화룡문을 재건한 우문극의 공로를 인정하여 곤륜의 영단 천실비환을 건넸다.

우문극은 천실비환을 복용하지 않고 조운룡에게 건넸다.

조운룡은 사부가 복용해야 한다고 주장하여 사부와 사제가 팽팽하게 맞섰다.

그러다 우문극의 돌연한 죽음으로 결국 조운룡이 복용하였다.

천실비환은 곤륜에서는 소림 대환단에 비견할 수 있다고 자부하는 영단이다.

원래부터 무재가 뛰어났던 조운룡은 천실비환을 통해 단숨에 절대를 넘보는 경지에 이른 것이다.

게다가 지금 조운룡을 지배하는 건 자신의 목숨을 도외시하고 도황을 반드시 죽이겠다는 분노와 집념이었다.

원래 스스로를 끔찍이 아끼는 도황은 자기도 모르게 몸을 사렸고 그로 인해 두 사람의 싸움은 팽팽하게 이어졌다.

***

-끼리리리릭!

만년설 아래서 캐낸 흑철로 만든 검황의 검과 남궁세가의 보검 창천검.

두 보검의 날이 부딪치며 서로를 끌어당기자 귀가 찢어질 것만 같은 기음이 터졌다.

뇌를 찌르는 기음에 삼십여 장 떨어진 곳에 있는 이들도 귀를 막고 뒤로 물러났다.

‘…!’

검황의 눈빛이 잠시 출렁거렸다.

수십 년 자신과 함께한 신검의 날이 약간 파인 듯했다.

검황의 눈이 남궁악의 손에 든 검을 주시하였다.

‘창천!’

천황성 중양대전에 앞서 불취는 자신의 창천검을 남궁악에게 건넸다.

창천검에서 남궁세가의 절학 창궁무애 검법의 진수가 흘러나왔다.

남궁악은 천하비무대회에서 강소군과 검황의 일전을 본 뒤 오늘에 이르기까지 불철주야 수련에 매달렸다.

강소군이 남궁세가를 찾아왔을 때 남궁악은 가로막고 있던 벽을 인식하고, 이를 넘어섰다.

그 뒤로도 수없이 벽이 나타났고 한 번 벽을 넘었던 남궁악은 어렵지 않게 벽을 깨뜨리며 나아갔다.

번번이 당대의 기재를 배출했던 남궁세가 수백 년 역사 가운데 가장 뛰어난 무재를 지녔다는 남궁악이다.

그의 손에 창천검이 쥐어지니 창궁무애검의 극의를 마음껏 펼칠 수가 있었다.

-쿠오오오!

창천검이 하늘을 긋는 순간 푸른 하늘이 무너지듯 검황을 덮쳤다.

왜 창천검을 남궁세가의 검이라고 하는지 그 이유를 사람들은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검황 역시 미증유를 넘나드는 고수. 그의 검에서 검은 하늘이 퍼져 가며 푸른 하늘과 격돌하였다.

그때마다 사람들은 지축이 흔들리는 경험을 하였다.

***

가장 시끄럽고 격렬한 싸움은 고장추와 검제의 격돌이었다.

고장추의 묵영신공이나 검제의 수라팔황검은 패도의 극을 추구하는 무공이었다.

고장추의 막강한 내공은 묵영신공의 극을 보여 주기에 충분했다.

게다가 고장추는 연신 내공을 담은 고함을 지르며 싸웠다.

“죽어라!”

고장추가 고함을 지르면 주위 대기가 울렁거렸다.

고장추는 상대가 천황성 천주의 분신이라는 말에 아버지와 조비연의 처참했던 죽음이 자기도 모르게 떠올렸다.

당연히 분노가 치밀어 올랐고, 연신 고함을 지르며 도를 내리 찍었다.

검제는 생사경의 끝에 섰으나 귀청은 물론이고 두뇌를 뒤흔드는 고장추의 외침에 정신이 분산되었다.

“네놈을 찢어 죽이겠다!”

고장추의 고함은 단순한 기합이 아니었다.

묵영신공의 극의가 담긴 것으로 보통 무인이라면 머리가 터져 버릴 수 있는 음공의 일종이었다.

홍의발은 영인고의 존재를 알고 천황성 고수의 약점을 간파하였다.

그래서 고장추에게 음공을 익히길 권유하였다.

‘정말 이게 먹히네?’

고장추는 덩치가 크고 성질이 급해서 패왕으로도 불리는데 한편으론 약은 구석도 있었다.

그래서 홍의발과 죽이 잘 맞는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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