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소군-234화 (234/250)

234

재야무림인들은 뒤쪽으로 도주하려 했으나 보이지 않는 벽에 가로막혔다.

군웅각 고수들이 막고 길을 내주지 않았다.

불과 몇 명밖에 되지 않았지만 명색이 절대지경의 고수들이다.

그들은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며 도주하려는 재야무림인들을 그 자리에서 쳐 죽였다.

보령호신환을 복용한 자들도 그쪽에 가세하니 재야무림인들은 기가 막혔다.

방금 전까지 자신들의 옆에 있던 자들이 무시무시한 고수가 되어 악귀처럼 날뛰니 전의를 상실하고 말았다.

도주하려던 재야무림인들이 다시 괴인들 쪽으로 밀려났다.

“크윽!”

“컥! 왜 우리를? 우리는 천황성의 적이 아니다.”

“천황성에 입성, 입성하겠습니다!”

아비규환이었다.

검제가 비웃었다.

“이미 늦었다. 기회를 충분히 주었다고 생각하는데? 너희 생각은 어떠냐?”

검제가 입성하겠다고 왔던 무리 쪽을 봤다.

모두가 겁에 질려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이 끔찍한 광경을 보고 누가 감히 토를 달 수 있을까.

살아남을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였다.

“과하다고 생각하느냐?”

“아닙니다. 어리석은 것들입니다. 죽어 마땅합니다.”

누군가 재빠르게 대답했다.

검제가 흡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맞다! 새로운 무림은 새로운 사람들이 필요하다. 낡은 생각에 물들어 있는 자들은 오히려 장애만 될 것이다. 장애물은 치워야지.”

“옳습니다!”

검제가 자신이 옆에 선 검황과 도황, 그리고 권제를 보았다.

그들의 얼굴은 무표정했으나 의식은 치열한 싸움을 하고 있는 중이다.

‘흥! 그래 봐야 소용없다. 이미 합일을 이룬 천령고를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으냐?’

검제가… 아니, 검제를 지배하고 있는 천주가 코웃음을 치고 이번에는 의천맹과 흑천맹 쪽을 보았다.

오합지졸인 재야무림인들보다는 버티는 중이다. 쉽게 무너지지 않고 있다.

무력대가 촘촘히 진을 짜고 괴인들의 접근을 막고 있다.

고수들이 중간중간 괴인들을 공격하니 좀처럼 다가가지 못한다.

“크흐흐. 결국은 모두 죽을 것이다.”

괴인들은 지치지도 않는다. 팔다리가 잘려 나가도 욕망을 위해 끈질기게 나아가는 존재들이다.

결국 사람이 지쳐 나가떨어질 것이다.

***

“크윽!”

개방의 태상장로 오개가 피를 뿌리며 뒤로 물러났다.

양쪽에서 달려든 괴인 중 하나를 쳐냈으나 다른 하나가 오개의 옆구리를 물어뜯은 것이다.

-퍽!

오개가 자신의 옆구리를 물고 있는 괴인의 머리통을 내리쳤으나 마치 돌을 친 듯했다.

“사부님!”

소걸아가 황급히 달려와 단검으로 괴인의 목을 찔렀다.

피맛에 취했던 괴인이 그제야 떨어져 나갔다.

“어서 장로님을 진안으로 모셔라!”

소걸아가 오개를 부축하고 타구봉진 안으로 들어갔다.

“진을 흐트러뜨리지 마라. 무너지면 모두 죽는다!”

오개가 피를 흘리며 소걸아에게 말했다.

개방은 의천맹에서 가장 약한 축에 들었다.

수십 명의 젊은 거지들이 타구봉진을 형성하고 천황성 괴인들을 상대하고 있으나 역부족이었다.

개개인의 무공이 괴인들과 너무나 차이가 났다.

개방은 원래 싸움이 아니라 전령의 역할을 위해 왔기에 고수가 턱없이 부족했다.

괴인들은 본능적으로 약한 고리부터 치고 들어왔다.

태상장로 오개가 진의 중심을 맡고 상대하였으나 거지들이 연달아 쓰러져 나가자 자신도 모르게 선두에 나서고 말았다. 그러다 괴인들의 합공에 당해 버린 것이다.

“이, 쳐 죽일 괴물들이!”

소걸아가 흥분하여 타구봉을 쥐고 일어서는데 오개가 소매를 잡았다.

“소걸아, 너는 살아야 한다! 방주가 너를 후개로 삼겠다고 했다. 개방의 앞날이 네게 달려 있으니 너라도 빠져나가라!”

“그럴 수 없습니다. 형제들을 두고 도주한 자가 어찌 후개가 되겠습니까? 방주님께서 지원군을 끌고 오시고 있을 것이니 잠시만 버티세요!”

오개의 손에는 힘이 실려 있지 않았다.

소걸아가 분루를 흘리며 일어섰다.

“개방의 형제들아! 우리는 죽어도 개방의 협의는 지켜야 한다! 물러서지 마라!”

“우리는 여기서 죽는다!”

젊은 거지들이 일제히 소리치며 사력을 다해 타구봉을 휘둘렀다.

소걸아 역시 무너지려는 진의 한 축을 향해 달려갔다.

-퍼퍼퍽!

타구봉들이 얽혀 달려드는 괴인을 막았으나.

“크아아아!”

-퍼억!

괴인이 괴성을 지르며 양손을 휘두르자 타구봉들이 꺾여 날아갔다.

소걸아가 그 사이 괴인의 가슴팍에 타구봉을 찔러넣었다.

-퍼억!

괴인이 잠시 비틀하는 사이.

-쉬이익!

중원에서는 보기 드문 휘어진 비도가 날아와 괴인의 미간에 박혔다.

“크르르르.”

비도가 박혔음에도 괴인은 쓰러지지 않고 눈알을 부라리며 비도가 날아온 쪽을 봤다.

-쉬익!

두 여인이 괴인의 양쪽에 내려서더니 괴인의 목을 뭔가로 감아 당겼다.

-파아악!

보일 듯 말 듯 가느다란 실을 괴인의 목에 감고 당기자 놀랍게도 돌처럼 단단했던 괴인의 목이 잘려 나갔다.

“칠독문?”

소걸아가 뒤를 돌아봤다.

장사에서 안면이 있었던 붉은 면사의 여인 우완청이 괴인들을 향해 뭔가를 뿌리고 있었다.

-치이익!

액체가 닿는 순간 괴인들의 몸이 부식되며 연기가 피어올랐다.

우완청의 옆에서 창을 휘두르는 이는 장선백이었다.

그 뒤로 역시 창과 도를 휘두르는 이들이 괴인들을 밀어내며 개방과 합류하고 있었다.

그중에는 강하, 강란 남매도 있었다.

“소형제, 합세하여 상대하자고.”

강하가 소걸아에게 외쳤다.

진연의 일로 개방에 대해 호감을 가지고 있는 강하다.

장선백과 함께 무한으로 갔으나 강소군을 찾지 못하고 따로 천황성으로 왔다.

번천맹은 무림 문파와는 교류가 없었기에 뒤편에 처져 있었는데 싸움이 벌어지고 개방이 위기에 처하자 강하가 합공하자고 한 것이다.

장선백과 강하 등 번천맹이 더해지자 타구봉진도 살아났다.

번천맹 대부분이 군 출신이라 창을 잘 다뤘기에 타구봉과 궁합이 맞았다.

소걸아는 잠시 여유가 생기자 재빨리 사부 오개를 찾았다.

“사부님! 흑!”

소걸아는 오개를 보자 생사의 마지막 순간이 왔음을 직감했다.

“가서 서신의를 모시고 오겠습니다.”

오개가 손을 저었다.

“아니다. 나는 살 만큼 살았다. 그가 손을 쓴다면 앞날이 창창한 놈들부터 살려야지.”

“사부님….”

“네 말 명심해라. 너는 꼭 살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죽어서 방주를 볼 면목이 없을 것이다.”

오개가 신신당부를 하고 숨을 거뒀다.

소걸아가 벌떡 일어났다. 두 눈에서 뜨거운 눈물과 함께 흉흉한 빛이 쏟아졌다.

“그럴 겁니다. 저놈들을 다 죽일 때까지는 죽을 수 없습니다!”

***

번천맹이 가세하며 개방 쪽이 맡은 약한 고리가 채워졌다.

제갈선은 본진에서 전황을 둘러보았다.

그의 뒤에는 철권호가 정좌를 하고 운기를 하는 중이다.

검제 등의 고수들이 나설 때를 대비하고 있는 것이다.

제갈선은 개방 쪽으로 보내려던 지원군을 세가연합 쪽으로 돌렸다.

구대문파는 진의 전면을 맡고 있는데 대부분이 고수들이고 사형제지간으로 구성되어 있어 진형이 강했다.

그랬기에 오히려 괴인들이 몰리지 않으니 여유가 있는 편이었다.

세가연합은 팽일소 등이 분전을 하고 있는데 이상하게도 괴인들이 가장 많이 몰리고 있다.

제갈선은 백대고수 가운데 절반을 세가연합이 맡고 있는 우측에 투입하며 남궁령에게 말했다.

“언제까지 괴물들과 싸울 수는 없다. 머리를 쳐야 할 것이다. 고장추에게 전령을 보내겠다. 네 오라버니에게 고장추와 손을 맞춰 검제를 제압해 달라고 해라.”

제갈선이 남궁령을 보내고 다시 고장추에게 전령을 보냈다.

남궁령이 의천맹 본진을 가로질러 달려가는데 마침 괴인 하나가 진을 뚫고 본진 안으로 난입하였다.

본진에서 대기하고 있던 무인들이 일제히 달려들었으나 괴인은 피하지 않고 그중 하나를 낚아채고 머리를 깨뜨렸다.

-퍽!

머리가 깨지고 흐르는 뇌수를 우걱, 우걱 먹는 모습에 남궁령은 토할 것만 같았다.

무인들이 주춤하는데 괴인의 시선이 남궁령에게 향했다.

“크르르르.”

마치 맛있는 먹잇감을 봤다는 듯 괴인이 남궁령을 향해 달려들었다.

무인들이 일제히 검을 내질렀으나 괴인이 사라진 허공만 찔렀다.

“아앗!”

남궁령이 눈을 질끈 감고 검을 뽑아 휘둘렀다.

그때.

-쉬이이익!

허공에서 검이 떨어지더니 괴인의 목이 그대로 잘렸다.

불취가 내려서며 외쳤다.

“어서 가!”

불취는 괴인들과 일대일로 겨룰 수 있는 몇 안 되는 자다.

진을 뚫고 들어오는 괴인들을 처치하는 임무를 맡고 있었다.

남궁령이 땅을 박차고 몸을 날렸다.

남궁령이 세가연합이 형성한 진으로 오자 선두에서 싸우던 팽일소가 뒤로 물러나며 외쳤다.

“여기는 위험해! 본진으로 돌아가!”

“나도 무인이야! 명을 받고 왔다고!”

남궁령도 악에 받쳐 소리치고는 오라버니를 찾았다.

-퍼펑!

“끼아악!”

요란한 기파와 굉음이 터지는 곳에 남궁악이 있었다.

하나뿐인 팔로 괴인들을 처치하고 있는 남궁악은 마치 천신과도 같았다.

괴인들도 본능적으로 남궁악을 두려워하여 피하니 쫓아다니며 척살하고 있는 중이었다.

괴인들과의 싸움은 그렇게 죽고 죽이며 서로를 쫓는 형국이었다.

-휙, 휘익!

제갈선이 보낸 지원군이 속속 투입되었다.

천황성과의 일전을 위해 선발한 일백의 무인 가운데 절반이나 왔다.

다소 열세였던 전세가 뒤바뀌었다.

“오라버니!”

여유가 생긴 남궁악이 전황을 돌아보는데 남궁령이 달려왔다.

“제갈 장로께서 적의 수뇌부 먼저 치자고 하셨어요.”

남궁악도 같은 생각이었다.

검제는 괴물만 보내놓고 자신들은 물론이고 군웅각의 고수들도 대기시키고 있다.

괴물과의 싸움에 전력을 모두 소진할 수는 없었다.

“백대고수 절반을 지원하신다고 했어요. 흑천맹으로도 전령을 보내셨고요.”

“알았다. 너도 몸조심하거라.”

남궁악이 다시 몸을 날려 진영의 선두로 나섰다.

***

흑천맹도 사정은 좋지 않았다. 다만 인원이 많았기에 버텨내는 중이다.

괴인들이 싸움보다는 잡아먹기를 원하는데 흑천맹은 인원이 많았다.

개개인의 무공 또한 의천맹에 비해 떨어지기에 괴인들에게는 쉽게 먹이를 찾을 수 있는 곳이었다.

그러니 괴인들도 가장 많이 몰려왔다.

“이 개새끼야! 너 죽고 나 죽자!”

흑천맹도들은 두려움과 분노에 미쳐 버릴 것만 같았다. 마치 닭을 잡듯 잡아채듯 잡아 동료의 뇌수를 먹고 있는 괴인들을 수십 명이 달려들어 난도질하여 죽여 가는 중이다.

“물러나도 죽는다! 합공만이 살길이다!”

홍의발이 사방으로 전령을 보내 독전을 하였다.

굳이 외치지 않아도 흑천맹도들도 안다.

뒤에도 군웅각의 고수들이 있으니 도주할 수가 없었다.

그러니 악에 받쳐 고함을 꽥, 꽥 지르며 괴인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죽어랏! 죽으라고! 이 괴물아!”

칼도 들어가지 않는 괴인들에게 십여 명의 흑천맹도들이 난도질하고 있는데 우렁찬 고함과 함께 고장추가 날아왔다.

“비켜라!”

-펑! 퍼엉!

고장추는 맹도들이 무더기로 죽어 나가자 눈이 회까닥 뒤집어져 날뛰었다.

“크아아악!”

그의 묵영신공이 터질 때마다 괴인들이 박살 나서 죽었다.

고장추가 미친 듯이 전장을 휘젓고 다니는데 전령이 달려왔다.

“맹주님! 의천맹에서 온 전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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