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소군-233화 (233/250)

233

“내가 상대해 주마!”

심마백이 크게 외치며 연달아 창을 휘저었다.

“흥!”

대호가 코웃음을 치며 자신의 도를 뽑아 들었다. 이제야 무기를 든 것이다.

두 사람이 재차 격돌하였다.

-파파팍!

-콰콰쾅!

강기가 터지는 기음이 연달아 터졌다.

“으음.”

심마백이 일 장이나 밀려났다.

대호의 내공이 그만큼 우월하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창을 다루는 기법만큼은 심마백이 한 수 위였다.

단기간에 내공만 높아졌지 가진 바 도법이 그리 뛰어난 게 아니었으니 대호 역시 심마백을 바로 제압할 수 없었다.

두 사람의 대결에 무림인들이 환호하였다. 평범한 무림인들이 보기 드문 싸움이었던 것이다.

“저 사람들은 누구지?”

“산동삼호라고 지금은 삼도상단의 봉공들이야.”

“아! 대호도 대단한데 저 사람들도 만만치 않군.”

사람들이 숨죽이고 싸움을 지켜봤다.

“끝내자!”

한순간 심마백이 창을 곧바로 찔러 나갔다.

“좋다!”

대호가 도를 쓸어 창을 쳐내며 앞으로 다가갔다.

창이 크게 튕겨 나가자 심마백이 끌어당겨 회수를 하였다.

그 사이 두 사람의 거리가 순식간에 좁혀졌다.

“위험해!”

간격이 가까워지면 도를 든 대호가 유리하다.

순간, 심마백의 장창이 둘로 나뉘었다.

-텅!

-푹!

단창 둘로 나뉜 장창 중 하나로 도를 막아내고 다른 하나로 대호의 허벅지를 찔렀다.

“크윽!”

대호가 비틀거리며 물러났다.

-퍽!

심마백이 창을 짚고 회전하며 발끝으로 대호의 턱을 갈겼다.

대호가 그대로 뒤로 나가떨어졌다.

“와!”

사람들이 환호하였다.

내공의 열세를 변초로 만회한 것이다.

심마백이 장무강과 위응환에게 둘로 나뉜 단창을 흔들어 보이며 말했다.

“어때, 새로운 수법이.”

장무강이 피식, 웃었다.

“기대하라고 하더니 꼼수였잖아? 창을 나누다니.”

얼마 전부터 심마백이 새로운 무공을 선보일 것이라고 했는데 알고 보니 단창술이었던 것이다.

“크으. 저놈을 데려와.”

당종이 부축한 의천맹의 무인들을 뿌리치며 소리쳤다.

화경의 고수에게 기습을 받았으나 그 역시 세가의 가주.

심마백이 싸우는 사이 요상환을 먹고 들끓는 기혈을 가라앉힌 상태였다.

당가의 무인들이 대호의 요혈을 제압하고 끌고 갔다.

당종이 다시 대호의 머릿속을 뒤져 보았으나 영인고는 없었다.

“이게 어찌 된 거지?”

당종이 검제를 노려보았다.

검제는 아쉬운 눈빛으로 당종을 바라보았다.

영인고에 대해 가장 많이 알고 있는 자가 당종이다.

모함했다는 걸 빌미로 죽이고자 했는데 바로 죽이는 건 실패하고 말았다.

“흥! 그래 봐야 살아나가지 못한다!”

검제가 당종을 노려보다 재야무림인들에게 향했다.

“무고하게 사람을 모함했으니 당가는 책임져야 할 것이다. 대호가 진 것은 아쉬운 일이나 본성의 은총을 입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도법이 허술했기 때문! 본성에 입성하면 공력은 물론이고 개세절학을 익힐 수 있을 것이다.”

재야무림인들이 술렁거렸다.

방금 대호와 심마백의 결전을 직접 봤기에 검제의 말이 설득력 있게 들렸다.

“나도 입성하겠소!”

한두 사람이 나서자 눈치 보던 사람들이 우르르 검제 쪽으로 몰려갔다.

제갈선이 철권호에게 다가가 말했다.

“천주가 이렇게 나올 줄은 몰랐습니다. 의천맹과 무림인 사이를 갈라놓다니.”

“저들이 천황성의 독함을 모르니 어쩌겠나. 어쨌든 오늘 일전을 벌여 천주를 잡아야 하네.”

제갈선이 천황성 쪽으로 넘어간 이들을 봤다.

먼저 보령호신환을 먹은 자들과 합해도 백여 명에 불과했다.

“천주가 왜 이렇게 번거로운 짓을 하는지 모르겠군요.”

검제가 이를 듣기라도 한 듯 이쪽을 보더니 흰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마지막으로 기회를 주지. 지금 본성에 들어오는 자는 새로운 무림의 주인이 될 것이다!”

그러자 재야무림인 중 한 사람이 나서서 외쳤다.

“새로운 무림이 무엇이오?”

“앞으로 모든 무림의 일은 천황성이 관장하여 해결할 것이다. 문파의 자유로운 활동은 보장하되 이권과 분규 조정은 천황성이 맡겠다.”

“하하하.”

고장추가 앞으로 나섰다.

“황당하구나! 네놈들이 무림의 황제라도 된다는 뜻이냐? 우리 흑도의 열혈남아들이 그걸 인정할 것 같으냐?”

검제가 고장추를 보고 피식, 웃었다.

“흐흐흐. 네가 까마득한 선배를 알아보지도 못하고 흑도를 자처하는 것이냐?”

“뭐라고? 네가 뭐라도 된다는 말이냐?”

“크흐흐.”

검제의 검이 저절로 나와 허공을 휘저었다.

검제의 등 뒤에서 여섯 개의 팔이 나와 검을 휘두르는 것 같았다.

“수라팔황검을 알아보지도 못하는 놈이 흑도라고 할 수 있겠느냐?”

“아!”

“수라마검!”

흑도들 사이에서 탄성이 일었다.

천산신검 검황이 정파 쪽으로 분류되었다면 수라마검은 흑도로 분류되는 전대고인이었다.

그는 과거 흑천맹을 칠 때 본신의 무공을 모두 드러내지 않았다. 아니, 드러낼 필요조차 없었다. 그러기에 흑도들은 그를 몰랐던 것이다.

고장추가 코웃음을 쳤다.

“흥! 흑도는 힘이 우선이다. 그러니 흑도 아닌가? 네놈은 오늘 내 손에 죽는다니까?”

“과연 그럴까?”

검제가 손을 치켜들었다.

-쿠오오오!

넓은 들판 사방에서 알 수 없는 기운들이 피어올랐다.

“뭐야?”

“뭐지, 저들은? 우리를 포위하겠다는 뜻인가?”

군웅각에 남아 있던 이십여 명의 고수들이 사방에 일정한 거리를 두고 포위하듯 섰다.

거의 오천에 이르는 무리를 고작 이십여 명이 포위하다니.

재야무림인들 사이에서 비웃음이 나왔다.

검제가 외쳤다.

“본성의 뜻을 따르지 않는 자들에게는 죽음뿐이다! 모두 죽여라!”

그러자 천황성 계곡에서 수백에 이르는 인영들이 뛰쳐나왔다.

그런데 그들의 모습과 차림이 이상했다.

모두 산발을 하였기에 얼굴을 알아볼 수가 없었다.

얼마나 오랫동안 옷을 갈아입지 않았는지 거의 헤지다시피 한 옷들에서 침침한 냄새가 풍겼다.

시신이 썩는 듯한 냄새였다.

피에 절은 듯 붉게 말라붙은 옷을 입고 있는 자들도 있었다.

그들은 무척이나 빨랐다.

계곡을 나오자마자 상대를 가리지 않고 덮쳤다.

“으아악!”

“커억! 이것들은 다 뭐냐?”

“조심해라!”

넓은 들판은 순식간에 난장판이 되었다.

“크윽! 요마들이다!”

몇몇이 검과 도로 괴인들을 베었으나 튕겨 나갔다. 엄청난 호신강기를 지닌 괴인들이었다.

“크크크!”

산발한 머리카락 사이로 안광이 파랗게 빛나는 모습이 실로 기괴하였다.

천황성 괴인들은 사람의 머리를 손으로 뽑거나 주먹으로 박살을 내고 뇌수를 마시려 들었다.

깬 머리를 들어 올려 흘러나오는 뇌수를 마시거나, 손으로 퍼마시는 괴인들은 악귀 그 자체였다.

“아악!”

들판은 순식간에 공포와 비명이 가득한 지옥으로 화했다.

***

황금빛 벽으로 둘러싸인 공간.

한가운데 황금으로 된 관이 놓여 있었다.

관 안에는 강소군이 누워 있었다. 관은 투명한 액체로 채워져 있었는데 강소군이 숨이 막혀 죽지 않은 게 특이하였다.

그의 가슴이 오르내리는 걸로보아 분명히 숨을 쉬고 있었다.

천주는 강소군의 머리맡에 정좌를 하고 앉아 있었다.

“정말 질긴 놈이군.”

벌써 칠주야째 강소군과 씨름하고 있었다.

천주로서는 천재일우의 기회나 마찬가지였다.

백수십 년을 살았으나 그의 육신은 중년의 모습을 하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탈태환골을 하고 미증유의 경지를 걷는다 해도 육신은 천지대도의 법칙에 따라 한계를 맞을 수밖에 없다.

그는 자신의 죽음이 가까워지고 있음을 알고 용단을 내려 천황성의 고수를 세상에 내보냈다.

지지부진했던 천령대법을 완성하기 위함이었고 그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그는 천령대법을 완성하였고 어미고를 자신의 뇌로 흡수하였다.

이어 모든 새끼고를 터뜨려 보유한 자의 정신과 일체를 이루게 함으로써 그들을 지배할 수 있게 됐다.

당종이 보령호신환을 복용한 대호의 머릿속에서 새끼고를 찾지 못한 것도 이 때문이다.

천주가 가장 욕심이 나는 육신이 강소군이었다.

“양의심공만 아니라면….”

벌써 강소군을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천주 역시 오랜 세월 천령대법을 행하며 양의심공과 비슷한 분심공을 익혔다.

양의심공이나 분심공은 수련이나 심득으로 얻을 수 있는 무공이 아니다.

오랜 세월 의식을 나눠 두뇌가 단련이 되어야 가능한 심공이다.

그러기에 강소군처럼 젊은 나이에 양의심공을 극성으로 익힌다는 건 사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그런 일이 일어났다.

천주는 강소군이 양의심공을 익혔음을 아는 순간 하늘이 자신에게 기회를 주었다고 여겼다.

그는 자신의 수명이 끝나는 순간 고를 통해 복종시킨 이들의 육신에 깃들어 살 생각이었다.

그러면 그는 누군가의 육신을 전전하며 영원히 살아갈 수 있었다.

그런데 천령대법이 완성되는 순간 뜻하지도 않게 완벽한 육신이 나타난 것이다.

완벽한 양의심공을 익힌 강소군이라면 천주는 곧바로 의식을 둘로 나눠 천황성의 고수를 지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랬기에 강소군의 머릿속에 있는 새끼고를 터뜨렸다.

고가 터지면서 숙주의 뇌와 동화되어 일체를 이루면 강소군이 고의 의식을 봉인하더라도 소용이 없다.

천주는 강소군의 의식에 들어가 지배할 수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애를 먹이고 있다.

“자의식도 아니고… 대체 이 기는 뭘까?”

새끼고가 터지며 두뇌와 합일을 한다 해도 변수가 있었다.

검제처럼 욕망이 넘치는 자의 두뇌는 쉽게 차지할 수 있었는데 검황이나 도황, 권제와 같은 생사경의 고수들은 여전히 거부하고 있다.

그들은 천주의 조종을 받기는 하나 자의식이 강해 실낱같은 자신의 의지를 가지고 저항하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강소군은 그들과 차원이 달랐다.

새끼고가 터지는 순간, 어쩐 일인지 강소군의 전신에서 알 수 없는 기가 솟구치더니 새끼고를 감싸 뇌와 합일하는 걸 막아 버렸다.

새끼고는 지금 강소군의 머릿속에 동그런 물집 같은 형태로 남아 있었다.

“으음.”

천주는 강소군의 전신을 지배하는 기의 정체를 아직 알아내지 못하자 초조해졌다.

“버러지 같은 놈들이, 하필이면 이때에.”

손쉽게 차지할 수 있을 것 같았던 강소군의 육신이 넘어오지 않는 바람에 일이 차질을 빚고 있다.

강소군과 씨름하는 사이 중양절이 다가오고 의천맹과 흑천맹이 몰려왔다.

천주는 분심공으로 의식을 나눠 검제의 육신을 차지하고 의천맹과 흑천맹을 상대하고 있다.

다른 하나의 의식은 강소군의 육신을 얻기 위해 전력을 기울이고 있는 중이다.

“으음. 이놈들이?”

천황성 아래 들판에서 벌어지는 일 때문에 천주는 강소군의 눈꺼풀이 살짝 흔들리는 걸 눈치채지 못했다.

***

천황성 앞 들판은 아수라장이었다.

천황성 괴인들은 천령대법의 부작용으로 이지를 상실한 이들이었다.

천주의 명을 듣기는 하지만 세세한 통제까지 받지는 않았다.

그러니 적을 죽이는 게 아니라 잡아먹는 데 치중하였다.

그럼에도 재앙인 것이 그들은 포만감을 몰랐다. 끊임없이 뇌를 갈구하였다.

의천맹과 흑천맹은 진을 갖춰 대응했기에 피해를 최소화하며 방어하고 있으나 재야무림인들은 그렇지 못했다.

천황성 괴인들은 상대를 가리지 않았다. 오히려 제압하기 쉬운 재야무림인들 쪽으로 몰렸다.

천황성을 상대하기 위해 온 의천맹과 흑천맹이 아니라 호기심에 관전하고자 왔던 무림인들이 오히려 죽어 나가고 있다.

“크윽, 힘을 합쳐 빠져나가자!”

“뒤로, 뒤로 후퇴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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