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소군-232화 (232/250)

232

해가 중천에 떴다.

그런데도 천황성에서는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결전을 각오하고 뒤쪽에 모인 무림인들이 술렁거렸다.

“당연하지 않아? 흑백 양도가 모두 모였잖아. 아무리 천외천이라고 하더라도 감당할 수 없지.”

“싱겁게 끝나고 마는군. 역시 천외천이라는 건 허상이었어.”

“의천맹과 흑천맹이 세력을 결집하기 위해 술수를 쓴 게 분명해.”

천황성과 부딪혀 보지 못한 무림인들 사이에 의천맹과 흑천맹이 침소봉대한 것이 아니냐는 음모론까지 돌았다.

천황성 고수들을 직접 보고 겪은 이들과 말로만 전해 들은 이들의 차이는 꽤나 컸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사람들이 전하는 천황성 고수의 무공 수준은 하나같이 십대고수 반열에 오른 절대고수들이다.

그러니 듣는 이들은 대부분 과장되었다고 생각했다.

천황성에 대한 반감도 마찬가지였다. 동료를 잃은 대파나 세가 그들과 친분이 있는 무림인들은 천황성이라면 치를 떨었다.

그러나 겪어 보지 않은 이들에게는 천황성이나 의천맹이나 매한가지였다.

무림 문파 간의 분쟁은 늘 있어 왔다. 같은 정파도 이권을 두고 다투다 사상자가 나기도 한다.

대부분의 무림인들에게 천황성은 의천맹, 흑천맹과 서로 패권다툼을 하는 곳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저기가 천황성으로 가는 길이라며? 차라리 들어가 볼까?”

“절진이 가로막고 있다더라. 벌써 몇몇이 시험해 봤다더라고.”

“오! 그래서 저리 운무가 자욱한 걸까?”

“천황성에 들면 절세무공을 익힐 수 있다던데.”

시간이 지루하게 흐르자 사람들의 관심이 천황성에 대한 궁금증으로 이어졌다.

사람들의 호기심과 궁금증이 고조되었을 때 계곡의 운무가 걷혔다.

그리고 네 사람이 나타났다.

검황과 검제, 그리고 도황과 권제였다.

“저 사람이 천산신검이라며?”

사람들의 관심은 선두에 선 검황에게 꽂혔다. 역시 사람은 이름이 나고 봐야 한다.

그런데 입을 뗀 이는 검제였다.

검황이나 도황, 권제는 아직까지 천주에게 완전히 넘어가지를 않았다.

검제가 사람들을 둘러보고 소리쳤다.

“천황성 중양대전에 참가한 것을 환영하노라!”

검제의 목소리가 계곡 앞 너른 들판에 울려 퍼졌다.

마치 천자가 백성에게 이르는 듯 실로 광오한 말투였다.

검제가 의천맹과 흑천맹 쪽을 보고는 담담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무래도 이 가운데는 천황성의 뜻을 곡해한 이가 있는 모양이구나.”

고장추가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개소리 마라! 네놈부터 나와라. 그날의 원한을 갚겠다!”

검제는 지난날 권황과 함께 흑천맹을 친 주역이다.

고장추는 원한을 잊지 않았다.

홍의발이 슬며시 고장추의 소매를 잡아끌었다.

굳이 먼저 나서서 싸울 필요는 없었던 것이다.

“뭐라고 하는지 들어나 보시지요.”

고장추가 마지못해 노려보기만 하자 검제가 역시 담담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무림의 역사를 돌아보라. 무수한 피로 점철된 무림 아닌가? 은원이 끊이지 않고 되풀이되어 수많은 생명이 아까운 목숨을 잃는 어리석은 일이 반복되었다.”

검제의 목소리는 장엄하여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었다.

“대파와 세가는 서로 경쟁하며 군소문파를 억압하고 그 틈바귀 속에서 수많은 문파가 도태되고 말았다.”

이번에는 재야 무림인들 가운데 고개를 끄덕이는 이들까지 있었다.

“가깝게는 천하사패라는 패자들이 강호를 할거하고 패권다툼을 벌여 수많은 이들이 죽었다.”

“대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이오?”

검제가 장황하게 말을 늘어놓자 재야무림인 쪽에서 누군가 외쳤다.

“천황성은 무림이 의천맹과 흑천맹으로 갈라지며 큰 싸움이 벌어질 것을 우려하였다. 각자 명분을 내세우지만 결국 서로를 대적하기 위함이 아닌가? 그리되면 무림에 커다란 혼란이 일 것이다.”

“무슨 개소리냐? 네놈들이 암수로 무수한 흑도의 형제를 해친 걸 내 두 눈으로 똑똑히 봤거늘!”

고장추가 흥분하여 외쳤다.

그러자 흑천맹도들이 병장기를 들고 외쳤다.

“옳소!”

“맹주님의 말씀이 맞다! 내 형제도 천황성 저놈들이 죽였다!”

검제가 다시 외쳤다. 공력을 실어 소리치자 하늘에서 우레가 치는 듯 장엄하게 들렸다.

“천황성이 중양절을 맞아 중양대전을 연 것은 무림의 평화공존을 열고자 함이다! 뜻있는 자는 함께하면 홍복을 누릴 것이다.”

철권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배후에 숨어서 숱한 무림 인사를 해치고 천하를 조종하고자 했던 천황성이 무림의 평화공존을 주창하니 실로 어이가 없구려.”

철권호가 네 사람을 훑어보며 말했다.

“입신의 경지에 든 고수들이 고작 벌레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정신을 빼앗긴 채 꼭두각시 노릇을 하다니. 정말 안타까운 일이오.”

“하하하.”

검제가 크게 웃었다.

“단단히 오해를 하고 있구나.”

검제가 돌연 사람들을 돌아보며 외쳤다.

“본성의 뜻에 동조하는 자는 앞으로 나와라!”

그러자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튀어나왔다.

“나는 천황성에 입성하겠소!”

“나도 입성할 것이오!”

대부분 재야무림인들 사이에서 나왔으나 의천맹과 흑천맹에서도 몇몇이 앞으로 나갔다.

철권호의 안색이 침중하게 굳었다.

천황성에 입성하겠다고 나선 이들이 수십 명이나 되었다. 보령호신환을 먹은 이들이 생각보다 많았던 것이다.

방금 전까지 대화를 나누던 지인이 갑자기 천황성에 입성하겠다고 나가자 사람들이 술렁거렸다.

“이들은 이미 입성 의사를 밝히고 천주의 은총을 받은 이들이다.”

검제가 만족스러운 듯 그들을 보았다. 그러다 낭인 차림의 무인에게 말했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낭인 대호라고 하오.”

“네 무공의 경지가 어찌 되었지?”

“절정은 못 되어도 일류는 되었소.”

“지금은?”

“눈으로 보여 주겠소!”

대호가 옆에 있는 큰 바위를 향헤 권을 뻗었다.

-쾅!

커다란 바위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대호를 아는 이들은 그야말로 입이 딱 벌어졌다.

간신히 일류에 턱걸이할 정도였던 대호가 언제 저런 내공을 지니게 되었단 말인가.

“천황성의 은혜를 입으면 누구나 절정에 이를 수 있다.”

검제가 득의만면하여 외쳤다.

“더 없는가? 본성에 입성하면 곧바로 공력을 증진시켜 줄 것이다!”

공력을 증진시켜 준다는 말에 다시 한 번 사람들이 술렁거렸다.

무림인들의 공통된 염원이 고수가 되는 것이다.

고수가 되고자 하는 열망은 정사나 남녀노소를 떠나 무림에 몸담은 자들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다.

그러니 천황성의 제의가 파격적으로 들렸다. 특히 힘을 우선하는 흑천맹도들에게는 귀가 솔깃한 제의였다.

“간악한 놈!”

그때 서신의 당종이 앞으로 나와 소리쳤다.

“벌레를 머릿속에 심어 사람의 정신을 조종하는 곳이다! 헛소리에 넘어가지 마라!”

서신의가 품에서 옥갑을 열어 영인고를 들어 보이며 외쳤다.

“이게 천황성이 사람을 조종하는 천령고라는 것이다. 저놈들 머리통에는 이게 하나씩 들어 있지. 공력을 얻는 대신 영원히 천주의 명을 따라야 한단 말이다!”

“헛소리!”

검제가 한 발 앞으로 나서더니 검황을 가리키며 외쳤다.

“저런 게 있다면 우리부터 천황성을 따르지 않을 것이다. 강호에서 존경을 받는 천산신검이 고작 저런 벌레 따위에 놀아날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흥! 그렇게 자신이 있다면 이 자리에서 검사를 해 보자!”

“못할 게 없지. 낭인 대호!”

“예?”

“저 늙은이에게 검진을 받아 보아라.”

“알겠습니다.”

낭인 대호가 돌아서더니 중간지점까지 걸어와 당종에게 외쳤다.

“이리 와서 검진을 해 보시오.”

당종이 앞으로 나가려 하자 제갈선이 말렸다.

“서신의께서는 몸을 보중하셔야 합니다. 저놈들이 무슨 짓을 할지 모르니 제가 가겠습니다.”

“아닐세. 영인고는 내가 가장 잘 알아. 본가의 무인들이 있으니 걱정 말게.”

당종이 걸어가자 당가의 무인 열 명이 뒤를 따랐다.

당종이 다가가자 대호가 말했다.

“대체 누명을 씌우는 것이오? 어서 벌레가 있는지 보시오.”

당종이 대호의 콧속으로 자신이 개발한 기구를 밀어 넣었다.

“윽!”

대호는 짧은 신음을 질렀으나 움직이지 않았다.

당종의 안색이 침중하게 굳었다. 고가 느껴지지 않은 것이다.

‘이게 어찌 된 일이지?’

당종의 시선이 제갈선을 향했다.

제갈선과 당종은 천황성과의 결전에 앞서 천령고의 존재를 만천하에 밝히고 보령호신환을 복용한 자를 색출하고자 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대호에게서 고가 나오지 않았다.

당종이 의아한 눈으로 대호를 노려봤다.

“네놈을 보낸 이유가 있었군. 보령호신환을 복용하지 않은 게야. 너는 정말 순수한 의지로 천황성을 따른 것이란 말이냐?”

대호가 목소리를 높여 외쳤다. 지켜보는 무림인들에게 고하려는 것이다.

“무슨 소리요? 나는 얼마 전 산적과 싸우다 중상을 입고 죽을 지경에 처했소. 마침 천황성 사자가 건네준 보령호신환을 먹고 나았을 뿐만 아니라 이렇게 무공까지 늘었소.”

대호가 갑자기 손을 뻗어 당종의 가슴을 쳤다.

-펑!

“크윽!”

고를 찾지 못해 당황하던 차에 기습을 받은 당종이 그대로 가슴을 가격당하고 뒤로 나가떨어졌다.

내공이 심후했기에 즉사는 피했으나 중상을 입고 말았다.

“노가주님!”

당가에서 지원 나온 무인들이 황급히 대호를 에워쌌다.

“간적, 기습을 하다니!”

대호가 크게 외쳤다.

“함부로 사람을 의심하고 천황성과 무림을 이간질한 책임을 져야 하지 않겠소!”

“하하하!”

대호의 말에 검제가 크게 웃었다.

“맞다! 천황성을 모함한 죄는 죽어 마땅하다! 죽여라!”

명이 떨어지자 대호가 미친 황소처럼 당가의 무인들 속으로 뛰어들었다.

-파파팟!

-쉬쉬식!

당가의 무인들이 도와 암기를 쏟아냈으나 대호의 강기에 모두 튕겨 나가고 말았다.

“앗!”

느닷없는 상황에 의천맹 무인들이 몸을 날렸으나 대호가 더 빨랐다.

“노가주님을 모시고 가라!”

당가의 무인 하나가 앞을 가로막으며 외쳤다.

“흐흐. 나를 막을 수 있을 것 같으냐?”

대호가 풍차처럼 회전하며 권을 뿌렸다.

-콰콰쾅!

강기가 폭발하며 당가의 무인들이 일제히 나뒹굴었다.

그때.

-쉬쉬식!

마치 우박이 떨어지듯 엄청난 암기가 대호를 향해 쏟아졌다.

언제 왔는지 위응환이 자신의 가죽 주머니에 든 암기를 모두 쏟아낸 것이다.

“엉? 저 녀석이 왜 저기에 가 있지?”

장무강과 심마백은 방금 전까지 자신의 옆에 있던 위응환이 싸움에 뛰어들자 크게 놀랐다.

하지만 길게 생각할 상황이 아니었다.

대호의 무공은 확실히 화경의 고수가 맞았다.

-휙! 휙!

장무강과 심마백이 몸을 날렸다.

그 사이 의천맹 무인들이 먼저 당도하여 당종을 보호하며 뒤로 빠졌다.

위응환이 나서서 대호를 막지 않았다면 당종은 절명했을 것이다.

“흥! 잔재주로 나를 막을 수 있을 것 같으냐?”

대호가 다시 크게 소리를 지르고 위응환을 향해 주먹을 뻗었다.

그때는 장무강과 심마백도 당도한 상황이었다.

“갑자기 무슨 짓이냐?”

심마백이 위응환을 타박하면서도 장창을 쭉, 내밀었다.

장창의 끝이 파르르 떨리며 대호의 강기와 맞닥뜨렸다.

연화심은 산동삼호의 공력을 보강하기 위해 돈을 아끼지 않았다.

덕분에 산동삼호의 무공 또한 과거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쾅!

강기가 비산하며 주위에 흙먼지가 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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