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소군-231화 (231/250)

231

목소리를 직접 듣기는 처음이었으나 강소군은 바로 천주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머릿속 고의 움직임이 확연히 달랐다.

강소군은 재빨리 머릿속 고와 연결된 의식을 봉인했다.

천주가 알아챘으니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몰랐다.

“침입자다!”

군웅각에 불이 밝혀지고 서너 명이 뛰쳐나왔다.

강소군이 쓴웃음을 지었다.

낙서생은 며칠을 잠복했다던데 그는 들어서자마자 발각된 것이다.

군웅각 고수들이 강소군을 향해 날아왔다.

그중 몇몇은 어느새 병장기를 들고 강기를 운용하고 있었다.

강소군이 무애검을 뽑으려는데 천황성 성채 쪽에서 누군가 외쳤다.

“멈춰라!”

성벽을 넘어 한 줄기 빛이 폭사되어 다가왔다.

빛은 순식간에 강소군이 있는 곳에 이르렀다.

강소군은 그가 일전에 만났던 늙은 촌로 현가임을 알아보았다.

현가가 강소군 앞에 내려섰다.

“대담한 녀석이군. 천주께서 오라신다.”

“앞장서게.”

강소군이 대뜸 하대하니 현가의 눈에 노기가 스쳤다.

“애송이가 예의가 없군.”

강소군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남의 하인에게 존대를 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흥!”

현가가 먼저 몸을 날리자 강소군이 뒤따랐다.

현가는 중도에 양쪽 절벽을 잇는 다리에 내려섰다가 다시 박차고 날아올라 천황성 성채로 들어갔다.

강소군이 뒤따라 성채로 날아들었다.

그가 성벽에 서자 천황성 성채 안이 한눈에 들어왔다.

-화악!

곳곳에 놓여 있던 화로에 불이 솟고 수십 명의 하인이 나와 등을 걸었다.

순식간에 천황성 성안이 대낮처럼 밝아졌다.

“올라와라.”

성벽에서 이어진 천해각 쪽에서 천주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강소군이 도약을 하여 천해각으로 날아들었다.

널따란 누마루.

상석에 작은 단이 있고 천주는 비단보료를 괴고 비스듬히 앉아 있었다.

강소군이 잠시 멈칫하였다. 나이 지긋한 노인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실제 보니 중년이다.

모습은 중년이나 어딘가 모르게 나이를 알 수 없는 깊이가 배어 있었다.

두 사람의 시선이 잠시 얽혔다.

잠시 후 천주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대담하군. 홀로 여기까지 오다니.”

“그건 당신도 마찬가지인 듯하군.”

강소군이 주위를 훑어보며 말했다.

그를 호위하는 자가 없다.

천주가 강소군이 기를 흘려 주위를 탐색하는 걸 알고 미간을 찌푸렸다.

“자객이라도 숨겨둔 것이라 생각하나? 염려할 것 없다. 사실….”

천주가 강소군의 미간을 주시하며 말했다.

“네놈은 아주 훌륭한 실험체라 당장 죽일 생각도 없거든.”

“…?”

“양의심공이 아무리 대단하다 하더라도 결국 하나의 머리에서 비롯된 것일진대 어떻게 고를 이겨냈는지 궁금하거든.”

금단진공이 무당 양의심공에서 비롯되었으나 이를 강소군과 같이 극성으로 익힌 자는 없었다.

강소군은 무총에서 살아남기 위해 필사적으로 금단진공을 운용하였기에 완벽히 의식을 나눌 수 있었다.

“피차 마찬가지다. 나도 당신 머릿속이 궁금하거든?”

“하하하.”

강소군의 말에 천주가 크게 웃었다.

“천령고가 궁금해서 온 모양이군.”

천주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정좌를 하고 앉았다.

“네가 유일하게 천령고를 이해하는 놈이니 특별히 일러주지.”

천주는 무엇이 그리 좋은지 히죽거리며 말했다.

“천령고는 북해의 심연에서 사는 인면어의 머릿속에 사는 벌레다. 일종의 기생충이라고 할 수 있지.”

“….”

“수십 마리의 인면어를 잡고서야 겨우 아직 부화하지 않은 알을 하나 구할 수 있었지. 이미 부화하여 벌레가 된 고는 자신의 정체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합일을 할 수가 없거든.”

강소군은 가만 듣기만 하였다. 아주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천령고를 알면 천주를 대처할 수 있는 방법도 나올 것이다.

천주가 자랑스럽게 말했다.

“그 알을 머릿속에 넣고 천령고로 만들어 완전체가 되기까지 백 년이 걸렸다.”

“원래부터 천령고가 아니란 말인가?”

천주가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간단했다면 이미 세상은 천령고를 지닌 자가 지배했겠지.”

천주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자신의 지난날을 이야기하게 되자 감회가 이는 듯했다.

“백 년간 쉼 없이 고와 소통을 하고 공력을 키웠지.”

“대체 당신 나이가 몇인가?”

강소군이 어이가 없어 물었다.

“흐흐흐. 잊은 지 오래다.”

“세상을 지배하기 위해 머릿속에 벌레를 넣었다니 확실히 미친 자로군.”

“하하하.”

천주는 무엇이 그리 좋은지 크게 웃었다.

“네가 하늘의 뜻을 어찌 짐작이라도 하겠느냐?”

“하늘의 뜻은 모르지만 당신의 머릿속을 열어 확인은 해 보고 싶군.”

강소군의 말에 천주가 비웃듯이 말했다.

“네놈이 찾아온 이유를 모를 줄 아느냐? 어미고를 찾아온 게 아니냐?”

“….”

“어미고는 세상에 없다!”

천주가 기묘한 웃음을 지었다.

“나를 봐라!”

천주의 목소리가 회오리처럼 휘돌아 들려왔다.

“…!”

강소군은 천주의 눈에서 빛이 번쩍인 후 두 눈이 투명하게 물드는 것을 봤다.

순간,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 왔다.

***

천곡은 숲속에서 무당산 한 곳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현치자의 옥허동천이 있는 옥판봉이다.

그의 감이 그곳에 답이 있다는 듯 자꾸 눈길이 갔다.

“왔으면 올라오게.”

나직한 목소리였으나 그의 귀에 명확히 들려 왔다.

‘역시!’

천곡이 잠시 망설이다 몸을 날렸다.

세상에서 천주 외에 그를 위태롭게 할 사람은 강소군뿐이다.

상대가 무당의 고인일지라도 몸 하나 빼는 건 어렵지 않다고 자신했다.

천곡이 옥판봉으로 오르는 좁고 긴 길을 따라 올라가는데 옥허동천 앞 바위에 앉아 있는 사람이 보였다.

천곡은 순식간에 옥허동천에 이르렀다.

사람 좋아 보이는 늙은 도인이 비질을 하고 있었다.

“마물을 지니고 다니는군.”

현치자가 천곡을 흘깃 보고는 중얼거렸다.

“당신인가? 강소군에게 양의심공을 전수한 자가?”

현치자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가 무당의 제자도 아닌데 어찌 양의심공을 전수했다고 말하는 거지?”

천곡이 옥허동천을 살펴봤으나 늙은 도인 외에는 바위에 걸터앉아 있는 장한뿐이다.

천곡이 장한을 보다 흠칫, 하였다.

장한의 기를 읽어낼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는 장한이 그와 맞설 만한 상대라는 뜻이다.

상관무영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옷을 툭툭 털며 다가왔다.

“천황성 사람이군.”

천곡이 장한을 가만 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비천신검 상관무영! 네가 강소군을 키운 거였어.”

천곡이 상관무영을 알아보고는 오해를 하였다.

사실 무리한 억측은 아니었다. 강소군의 불가해한 무위를 키울 자라면 십대고수 수좌 정도는 되는 게 이치에 맞을 것이다.

상관무영이 고개를 저었다.

“오해를 하고 있군. 그는 스스로 그 경지에 올랐다.”

“흥! 상관없다. 오늘 십대고수의 수좌가 사라질 것이다.”

천곡이 서서히 공력을 끌어 올렸다.

-두둥!

상관무영의 등 뒤에 검이 솟았다.

***

중양절.

천황성으로 들어가는 계곡에 수많은 무인이 집결하였다.

의천맹과 흑천맹이 서로 대치하듯 진을 쳤고 뒤쪽으로 맹에 소속되지 않은 무림인들이 모였다.

대다수 무림인은 흑백 양도가 천황성과 결전을 벌이는 걸 보기 위해 왔다.

무림 사상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어마어마하군.”

심마백이 감탄하였다.

“강 공자님이 보이지 않네요?‘

연화심이 의천맹 쪽을 두리번거리며 강소군을 찾았으나 보이지 않았다.

의천맹 전면에는 아직 부상 중인 철권호가 의자에 앉아 있었다.

제갈선과 당종이 말렸으나 싸우다 죽는 한이 있더라도 자리를 지켜야 한다고 고집을 부려 나온 것이다.

그 뒤로 남궁악과 팽일소를 비롯한 세가와 구파일방의 장로들이 도열한 채 천황성 쪽 움직임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도 강소군은 모이지가 않았다. 연화심은 그가 왜 보이지 않는지 궁금해하였다.

“저기 중 오라버니가 있네요.”

연화심이 의천맹 옆을 보다 정무문이라 쓰인 깃발을 보고 반가워하였다.

대정무각이 정무문이라는 무림문파로 거듭났다는 소식은 들어 알고 있었다.

연화심과 산동삼호가 화천대와 함께 정무문 쪽으로 갔다.

“네가 왜 여기까지?”

중랑은 연화심이 이 자리에 온 게 탐탁지 않았다.

결전이 벌어지면 수많은 사람이 죽어나갈 것이다. 언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전쟁터다.

“오라버니와 강 공자가 싸우는데 저만 빠질 수 없잖아요.”

“걱정 마십시오. 문주님은 우리 화천대가 목숨을 걸고 지킬 것입니다.”

화천대주 초지항이 자신의 가슴을 치며 호언장담했다.

“누가 누구를 지킬지 그건 모르는 거죠.”

연화심이 말했다.

중랑의 시선이 산동삼호의 막내 위응환에게 향했다.

위응환은 흰색으로 된 가면으로 얼굴 윗부분을 가리고 있었다.

“사람이 많으니 부끄러운가 봐.”

심마백이 중랑이 위응환을 쳐다보자 대신 변명하듯 말했다.

“아니면 죄를 지은 게 있어 누군가 알아볼까 두려운 게 있든지.”

“마백 형! 강침을 한 대 맞고 싶어?”

위응환의 손이 가죽 주머니로 갔다.

“그러게 가면 같은 건 왜 쓰고 그래? 외려 주목받잖아.”

심마백이 슬쩍 장무강 뒤로 빠지며 핀잔을 주었다.

“왜요? 전 멋있기만 한데요.”

연화심이 위응환 편을 들었다.

두 사람이 티격태격하는 걸 보자 중랑은 긴장했던 마음이 풀어졌다.

“두 분은 여전하시군요.”

“하하하. 사람 성격이 어디 가겠나? 그런데 강 공자는 왜 안 보이지?”

“이상한 일입니다. 의천맹에서도 강 공자를 찾고 있습니다.”

장무강이 미간을 찌푸렸다.

“강 공자의 행방을 아는 사람이 없단 말인가? 오늘 결전에 빠질 사람이 아닌데?”

“혹 신변에 무슨 일이 생긴 게 아닐까요?”

연화심이 걱정을 하였다.

“무림에 그를 어찌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오. 심지어 천황성이라고 해도.”

장무강은 강소군이 입신의 경지에 올랐음을 알기에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다만 강소군이 빠질 경우 아군의 전력이 크게 손실을 보니 그게 염려되었을 뿐이다.

그때 한 무리의 도객이 열 지어 들어왔다.

머리에 흰 띠를 두른 이들은 화룡문 십이도객과 백대도수들이었다.

선두에 선 조운룡 역시 머리에 흰 띠를 두르고 있었다. 천황성 도황과의 결전에서 숨진 사부 우문극을 기리기 위함이었다.

“천무방은 보이지 않는군.”

장무강이 정파 쪽 진영을 살피다 말했다.

아무래도 천무방과는 껄끄러운 사이이니 없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 것이다.

한편, 철권호의 뒤에 서 있는 제갈선에게 남궁령이 다가왔다.

“검신의 종적이 보이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여기에도 없는 것 같습니다.”

남궁령은 비각의 인원을 모두 동원해 강소군의 행방을 알아보았으나 종적을 찾지 못했다.

“으음.”

제갈선이 침음성을 흘렸다.

강소군이 없으면 전력 손실이 크다.

‘천주를 상대하려면 그가 있어야 하는데.’

제갈선이 내심 탄식하며 남궁악을 바라보았다.

철권호도 부상을 입었으니 이제 천주를 상대할 이는 남궁악뿐이다.

제갈선이 흑천맹 쪽을 봤다.

삼천 흑도를 등지고 고장추가 운기조식이라도 하듯 정좌를 한 채 땅바닥에 앉아 있었다.

‘흑천맹주의 무공이 비약적으로 상승했다고 한다. 두 사람이라면 천주를 막을 수도 있지 않을까?’

제갈선으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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