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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소군-229화 (229/250)

229

눈부신 섬광과 함께 거대한 파공음이 단상에서 터져 나왔다.

“피. 피해라!”

“크윽!”

단상과 주위에 있던 이들이 황급히 몸을 빼냈으나 그중 몇몇은 내상을 입고 피를 토했다.

강소군과 천주는 삼장 거리에 떨어진 채 겨뤘다.

자청쌍검은 하늘을 날아다니고 무애검은 천주를 겨눈 채 가끔씩 허공을 그었다.

대부분의 군웅들은 두 사람이 어떤 무공을 펼치는지 알 수조차 없었다.

그저 손짓에 검이 날아다니고 엄청난 기파가 터지는 것만 볼 뿐이다.

그야말로 인외의 존재들이었다.

콰콰쾅!

연달아 폭음이 터졌으나 어느 한쪽도 우세를 점하지 못 했다.

‘완전하지가 않다.’

강소군은 전력을 다하지 않았다. 여지를 남기며 추일엽을 몰아붙여 동작을 살폈다.

그러다 천주가 추일엽의 몸을 완전히 통제하지 못 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추일엽의 두 눈이 그걸 말해주고 있었다.

기괴한 미소를 짓고 있는 얼굴 표정과 달리 두 눈에는 두려움과 충격, 황망함 같은 빛이 스쳐가곤 했던 것이다.

강소군은 그게 추일엽 본래의 의식임을 알아챘다.

‘추일엽과 같은 고수를 완전히 지배하려면 시간이 필요한 모양이구나.’

강소군이 계속해서 추일엽의 머릿속에 있는 영인고에 자신의 의지를 보내고 있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어쩌면 내가 직접 통제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지만 완전히 능력을 발휘하지 않는다 해도 추일엽 자체가 절대고수다. 길게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퍼엉!

천주의 손놀림이 갈수록 빨라졌다. 점차 추일엽의 몸에 적응하고 있는 것이다.

“…!”

강소군이 이제 싸움을 끝내야겠다고 마음을 먹는데 갑자기 강렬한 두통을 느꼈다.

동시에 사방에서 짓쳐들어오는 기운에 숨이 턱, 막혀왔다.

“엇! 저게 무슨 일이야?”

“무쌍비도가 왜?”

놀랍게도 단상에 있던 고수 중에 십여 명이 허공으로 몸을 솟구치더니 일제히 강소군을 향해 병장기와 권장을 내질렀다.

“아앗!”

“안 돼!”

곳곳에서 비명이 터졌으나 누가 말리고 자시고 할 틈이 없었다.

파파파팍!

쿠오오.

콰쾅!

허공이 찢기는 기파와 굉음이 연달아 터졌다.

십여 명의 절정 고수들이 단숨에 쏟아낸 공격은 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콰앙!

어느 순간 금빛 구체가 번쩍 피어올랐다.

그러자 천주를 비롯한 십여 명의 고수가 일제히 강기를 쳐냈다.

콰쾅!

엄청난 폭음이 광장을 뒤흔들고 정적이 찾아왔다.

“…….”

강소군이 피워냈던 금빛 구체는 사라지고 그가 섰던 자리도 통째로 사라졌다.

청석으로 쌓아올린 단상이 움푹 꺼졌는데 밑으로 거대한 구덩이가 파였다.

“강 공자!”

제갈선의 외침에 사람들이 정신을 차렸다. 하지만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연유를 알 수가 없었다.

정파의 명숙들이 한꺼번에 검신을 공격하다니.

너무나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니 막을 새도 없었다.

느닷없이 합공을 펼친 고수들이 구덩이 주위로 내려서더니 바닥을 살폈다.

무려 일 장이나 파인 구덩이에 강소군의 시신은 보이지 않았다. 깨진 청석과 돌무더기만 쌓여 있다.

사실, 그런 공격을 받고 육신이 남아날 리가 없다. 산산이 찢겨져 분해되고 말았을 것이다.

“크흐흐.”

추일엽의 정신을 장악한 천주가 괴소를 흘리며 군웅을 보다 제갈선과 시선이 마주쳤다.

“네놈들이 무슨 수작을 부리든 나를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닥쳐라! 사술로 무림을 지배할 수 있을 성 싶으냐?”

제갈선이 노기에 차 소리를 질렀으나 가슴은 한없는 절망으로 물들어갔다.

철권호가 중상을 입고 강소군 마저 죽고 말았다.

“흐흐. 가만있었으면 모두가 좋았을 것을. 꼭 죽음을 자초하는 놈들이 있기 마련이지.”

천주가 손짓을 하자 자청쌍검이 제갈선을 향해 날아들었다.

영인고의 존재가 아직 완전히 드러난 게 아니다. 그러니 이를 아는 이들을 먼저 제거할 생각이었다.

쉬이익!

제갈선이 날아드는 자검을 쳐내고 청검을 피하려는데 검에 눈이라도 달린 듯 검이 선회하여 등을 노렸다.

그때.

쌔애액!

검 하나가 빠르게 날아와 청검을 쳐냈다.

쾅!

폭음성이 터지는 동시에 한 사람이 장내에 나타났다.

왼팔이 헐렁한 남궁악이 제갈선의 옆에 내려서더니 오른손을 뻗었다.

허공을 선회하던 무룡검이 남궁악의 손으로 들어왔다.

“흥! 남궁악? 네놈도 있었군.”

남궁악은 중양절 일전을 앞두고 의천맹에서 마련해준 연무장에서 폐관 수련 중이었다.

그러다 연달은 폭음성을 듣고 달려온 것이다.

휘이익!

다시 한 사람이 허공에서 뚝 떨어졌다.

불취가 천천히 창천검을 뽑으며 말했다.

“천주, 오랜만이오.”

뒤이어 상황을 파악한 의천맹 장로와 무림 명숙들이 천주와 영인고에 당한 고수들을 둘러쌌다.

“네놈이 속 썩일 줄은 알았다.”

천주가 미간을 찌푸렸다. 천황성에서 유일하게 살아나간 배신자가 불취다.

“너무 과한 칭찬 같소. 내가 어찌 천주의 상대가 되겠소.”

짐짓 너스레를 떨었으나 불취의 표정은 심각했다.

그가 구덩이 쪽을 살피며 강소군을 찾았다.

“크크, 죽은 놈은 왜 찾는 것이냐?”

천주가 그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너희들끼리 싸우게 하는 것도 재밌겠군.”

천주의 말에 포위한 군웅들의 얼굴에 난처한 빛이 흘렀다.

지금 그들이 보는 모습은 천주가 아니라 추일엽이다. 그 외 다른 고수들 역시 방금 전까지 함께 담소를 나눴던 지기들이다.

이쪽이 수적으로 우세하기는 하나 상대 역시 고수들이니 죽이기는 쉬워도 생포하기는 어렵다.

그때.

우르르.

“아, 저게 뭐지?”

사람들의 시선이 구덩이로 향했다.

구덩이 한가운데 쌓였던 청석들이 천천히 허공으로 떠오른 것이다.

천주의 낯빛이 홱, 바뀌었다.

“정말 질긴 놈이구나!”

천주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강소군이 천천히 떠올랐다.

십여 명의 절세고수들이 합공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강소군의 옷은 말끔했다.

손에 무애검을 들고 허공으로 천천히 솟아오르는 모습은 달리 표현할 말이 없었다.

“검신!”

“검신 재림!”

군웅들은 강소군이 멀쩡히 살아 있다는 사실에 환호하였다.

강소군이 허공을 걸어 구덩이 가에 내려섰다.

쿠쿠쿵!

함께 떠올랐던 청석들이 다시 구덩이 속으로 떨어졌다.

“확실히 가릴 수 있게 해줘서 고맙소.”

강소군이 천주와 십여 명의 고수들을 둘러보더니 무애검으로 하늘을 찔렀다.

쿠웅!

금빛 구체가 확, 하고 퍼지더니 천주와 십여 명의 고수들을 감쌌다.

“크윽!”

천주, 아니 추일엽이 비틀거리더니 쓰러졌다. 뒤이어 다른 고수들도 일제히 짚단처럼 픽픽, 쓰러졌다.

금빛 구체에 갇히며 천주가 영인고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한 것이다.

그 사이 강소군의 새끼고가 의지를 발현하여 모두 잠재워 버렸다.

“…….”

잠시 침묵이 흘렀다.

추일엽이 철권호를 기습하고 강소군이 영인고에 당한 고수들을 잠재우기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일각.

그러니 군웅들은 자신들이 본 것이 실제 일어난 일인지 눈을 의심해야 했다.

“검신은 무적이다!”

누군가 중얼거렸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군웅들이 일제히 환호하였다.

“무적검신!”

모두가 무적검신을 연호하였다. 그 가운데 하조형과 소연호도 있었다.

***

콰아앙!

천해각의 기둥 하나가 박살이 났다.

“이 쳐 죽일 놈을!”

천주 자신의 몸이었다면 기필코 강소군을 죽였을 것이다.

영인고의 존재가 만천하에 드러나는 건 시간 문제다.

조용히 세상을 지배할 수 있는 기회를 잃어버린 것이다.

‘진작 죽이지 못한 게 천추의 한이 되겠구나.’

겉보기에는 사십대 중년인으로 보이지만 그는 백 년이 넘게 살았다.

스스로도 자신의 나이를 잊은 지 오래다.

그러기에 처음 공손승으로부터 강소군에 대해 보고 받았을 때 별반 신경을 쓰지 않았다.

이제 이십대 중반 애송이에 불과하였으니 그럴 만도 했다.

그런데 기이할 정도의 성취를 보이더니 자신을 맞상대할 수준까지 올라왔다.

‘대체 어떻게 된 거지?’

영약을 복용했다고 해서 이룰 성취가 아니다.

영인고가 뇌를 각성시키고 이를 통해 순식간에 전신 공력을 극대화 할 수 있다지만 지금 강소군의 수준은 그 이상이다.

‘무당! 무당에 뭐가 있더라?’

천주는 강소군이 무당산으로 갔었다는 사실을 기억해냈다.

‘하필 이럴 때 써먹지를 못 하다니.’

등 노사를 통해 무림을 통제할 때 무당산에도 간자를 심어 놓았다. 그런데 무림인명첩이 발각되며 제거되고 말았다.

“천곡!”

천주가 천곡을 불렀다.

쉬이이익!

천해각 아래서 천곡이 날아왔다.

“무당산으로 가라. 그놈이 거기서 무슨 기연을 얻었는지 알아봐야겠다.”

천주는 강소군이 자신을 위협할 존재가 되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

당종은 정신이 없었다.

철권호가 반쯤 죽어서 실려 왔고 영인고를 제거해야 할 고수들이 십여 명이나 되었다.

“손주 재롱을 볼 나이에 이게 무슨 생고생이냐? 네년만 아니었으면 당가타에서 편히 지내고 있을 텐데.”

당종이 자신을 거드는 당우화를 보며 연신 투덜거렸다.

당우화를 찾으러 나왔다가 의천맹에 발목을 잡혔다고 생각한 것이다.

자신이 영인고에 대한 호기심 때문에 남아 있다는 건 생각지 않는 당종이다.

“제가 재롱을 많이 부렸는데 그건 다 잊으셨어요? 걱정 마세요. 조만간 증손주도 보셔야 할 거니까.”

당우화는 이제 배가 조금 나왔다.

자신의 배를 어루만진 당우화가 생글생글 웃으며 대꾸하자 더욱 얄미웠다.

“동약사 그놈은 어디서 뭐 하는 거지? 이럴 때 좀 도와주지 않고.”

동약사가 떠난 지 꽤 됐다.

당종은 늘 동약사를 타박했으나 사실은 그 역시 새로운 즐거움을 느끼고 있었다.

늘그막에 자신과 의약에 대해 논할 상대를 만난 것이다.

동약사가 있을 때는 몰랐는데 없으니 아쉬웠다.

“어머, 모르셨어요? 대정무각이 해체되고 정무문(正武門)이 됐대요.”

대정무각은 중랑을 중심으로 새로운 무문으로 거듭났다.

천황성의 실체가 드러났으니 과거처럼 방대한 조직을 꾸릴 이유가 없었다.

애초에 백정무가 대정무각을 세울 당시 천황성을 상대하기 위한 한시 조직임을 분명히 한 바 있다.

중랑은 정예무인들 위주의 무문으로 재편하여 천황성과의 일전에 대비하였다.

당종이 바삐 손을 놀리며 무심코 물었다.

“그놈들 소식을 어떻게 그리 잘 알고 있는 거지?”

“비각의 남궁령이 얼마나 수다스러운지 모르죠?”

“음. 그 여우같은 계집? 조심해라. 자칫하다가 당가의 사정을 모두 털리는 수가 있으니까.”

“나는 이제 당가 사람도 아닌데요 뭐. 사씨 집안사람이죠.”

“뭐라고? 어림없는 소리! 당가의 여식과 혼인하면 당가타에 들어와 살아야지… 아차!”

당종은 말하자마자 자신이 또 당우화에게 넘어갔음을 알았다.

불취와 당우화 두 사람의 혼인을 승낙하기는 했어도 아직까지 당가타에 들어와 사는 것까지 허락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당우화의 수에 또 넘어가 불취를 당가타까지 끌어들이게 됐다.

당종이 입을 꾹 닫았다.

당우화와 말만하면 자꾸 손해를 본다.

그러다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은근히 화가 났던 것이다.

“에이, 이놈의 벌레들은 왜 이리 꾸역꾸역 나오는 거야? 대체 몇 마리나 심어 놓은 거지?”

당종은 애꿎은 영인고를 쿡쿡, 눌러 못살게 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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