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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소군-227화 (227/250)

227

강소군은 서둘러 무한으로 돌아왔다.

삼도상단 장원은 총관 유상화가 지키고 있었다.

“문주님께서는 세 분 봉공과 함께 복건으로 가셨습니다.”

강소군의 거처는 언제나 쓸 수 있도록 잘 정돈되어 있었다.

강소군이 돌아오자마자 누군가 대문을 두드렸다.

하인이 나가더니 서찰을 가지고 왔다.

“사람은 없고 서찰만 있었습니다.”

강소군이 서찰을 폈는데 암어로 적혀 있었다.

강소군은 초연에게서 하오문의 암어를 받아둔 게 있었다.

암어를 풀자 한 장소가 나왔다.

강소군은 밤이 되기를 기다렸다가 서찰에 적힌 곳으로 갔다.

낙서생이 보낸 장소는 무한 한복판 주택가에 있는 집이었다. 겉에서 보기에는 평범하니 몸을 숨기기에 딱 좋았다.

강소군이 대문 앞에 서자 바로 문이 열렸다.

초연이 서 있다가 예를 취했다.

“들어오시죠.”

초연은 안채로 강소군을 안내하였다.

방으로 들어서자 약 냄새가 은은히 풍겼다.

낙서생은 침상에 누워 있었는데 안색이 창백하였다.

“몸이 이러니 누워서 손님을 맞아야겠네. 양해해 주게.”

강소군이 침상 옆 의자에 앉았다.

“어찌 된 일입니까?”

“나도 이제 한물 간 거지.”

낙서생은 경공만은 누구보다 자신해 왔다.

“천황성 고수들은 정말 괴물 같더군.”

낙서생은 천황성 본거지를 알아내고 잠입을 하였다.

“진법이 펼쳐져 있다고 들었습니다만.”

“절벽에다 펼칠 수 있는 진은 아직 들어 보지 못했지.”

낙서생은 천황성 뒤편 절벽을 사흘에 걸쳐 기어올랐다고 한다.

“만장절벽을 타고 올라올 사람이 없다고 자신했는지 지키는 이도 없었네. 하긴 지킬 필요도 없지. 괴물들이 득실거리는 곳에 누가 침입하겠나.”

“….”

“크하하. 하지만 내게도 비장의 한 수가 있었지.”

낙서생은 귀식대법을 응용한 호흡법으로 기를 감추고 천황성 본거지로 들어갔다.

“마치 천상 신선이 사는 곳 같더군. 그런데 실상을 알고 보면 그런 지옥도 없다네.”

낙서생이 말하다 말고 쿨럭, 기침을 하였다.

초연이 재빨리 하얀 천을 입에 대 주었는데 빨간 핏물이 배어 나왔다.

“밤이 기니 천천히 말씀하셔도 됩니다.”

강소군이 말하자 낙서생이 고개를 저었다.

“아닐세. 한시라도 빨리 의뢰받은 일을 정리하고 쉬고 싶네.”

낙서생의 말에 초연이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그런 얼굴 하지 마라. 내일부터는 네가 하오문주다.”

낙서생이 말하자 초연이 가만 고개를 숙였다.

“천주가 있는 성 아래 거대한 동공이 있었네. 거기서 천령대법을 펼치는 모양이더군.”

“….”

“그런데 그 아래 더 끔찍한 비밀이 있었네.”

낙서생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천주의 천령대법이 완성된 것은 근래 일인 듯하네. 그동안 천주는 무수한 실험을 했던 모양이더군.”

“….”

“처음엔 짐승인 줄 알았네. 그런데 알고 보니 영인고를 심은 사람들이었지. 이지를 상실한 그들이 어둠 속에서 유령처럼 배회하는 모습이란….”

낙서생의 말에 강소군은 불현듯 잊으려 했던 무총의 기억이 떠올랐다.

어둠 속에서 불쑥 튀어나오던 혈인들.

“그들은 천령대법의 부작용으로 그리 되었다네.”

“부작용이라면….”

“그동안 천령대법은 고를 심은 환약을 먹이고 백 일 동안 천주가 수시로 영인고를 유도하여 머릿속 원하는 부위에 안착을 시키는 방식이었다네.”

강소군도 불취로부터 들은 바 있는 천령대법이다.

“그런데 무슨 사유로 고가 제자리에 안착하지 못하고 엉뚱한 데 붙어 버리면 그만 이지를 상실하고 만다더군. 깊은 지하에 있는 짐승 같은 이들이 바로 그들이었네.”

“….”

“그럼에도 무서운 것은 그들 역시 무공이 측량할 수 없을 정도로 높다는 것이네. 게다가 천주의 명에 절대복종하네.”

강소군의 안색이 굳었다.

천주와 지금 남아 있는 고수만으로도 상대하기 버거운데 이지를 상실한 고수들까지 있다니 마음이 무겁지 않을 수 없었다.

“대략 몇 명이나 됩니까?”

“모두 돌아보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수십 명은 넘을 걸세.”

“….”

“한 가지 더 중요한 사실이 있네. 보령호신환이라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있나?”

강소군이 고개를 끄덕였다.

증보로부터 보령호신환에 대해 들은 바 있다.

그렇지 않아도 서신의 당종을 찾아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할 참이었다.

“그게 천령대법을 완성한 결과라네. 누구든 먹기만 하면 천주가 직접 손을 쓰지 않아도 영인고가 정신을 통제할 수 있는 곳에 안착을 하는 거지.”

초연이 끼어들었다.

“지금 강호 부호와 고수들 사이에 은밀하게 그 환약이 퍼지고 있답니다.”

들으면 들을수록 강소군의 안색이 굳어만 갔다.

“천령대법의 상극은 없습니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물어봤으나 낙서생이 의약에 정통한 자는 아니니 답을 하지 못했다.

대신 천주에 대해 이야기하였다.

“천주라는 자의 능력은 정말 놀랍더군. 절대고수도 감지하지 못할 나의 존재를 알아차렸네.”

강소군이 낙서생의 하반신 쪽을 보았다. 다리가 있어야 할 자리가 움푹 꺼져 있다.

강소군의 눈길을 본 낙서생이 씁쓸하게 웃었다.

“절벽 위에 다리를 놓고 왔지.”

낙서생은 천주에 의해 발각되자 올라온 절벽 쪽으로 도주하였다. 올라오며 퇴로를 만들어 놓았던 것이다.

“그런데 천주는 쫓아오지도 않았네. 그저 멀리서 손짓을 하기만 했지. 그런데 다리가 잘리고 말았네.”

낙서생은 기어서 절벽에서 뛰어내렸다.

중턱 즈음에 그가 미리 걸어 둔 줄을 간신히 잡고 탈출한 것이다.

“제가 의뢰한 일로 이리되니 마음이 편치 않군요.”

“하하. 무림에서 팔다리 잃는 일이 대수인가? 이제 그만 떠돌아다니고 편히 살라는 하늘의 뜻이겠지.”

낙서생이 희미하게 웃었다.

초연이 기어이 눈물을 떨어뜨렸다.

“이제 이 아이가 하오문주라네. 자네가 가끔 연락이라도 해 줬으면 좋겠군.”

강소군에게 하오문의 뒷배가 되어 달라는 뜻이었다.

“신세진 바가 있으면 갚아야지요.”

강소군이 고개를 끄덕였다.

“됐네. 나는 이제 좀 쉬어야겠군. 초연에게 천황성에서 내가 보고 들은 걸 정리해서 맡겼으니 검토해 보게.”

낙서생이 피곤한지 눈을 감았다.

***

다음 날 아침 일찍 강소군은 의천맹을 찾았다.

철권호는 중양절 일전을 앞두고 맹주전에서 폐관수련 중이라고 했다.

낙서생이 가져온 정보를 들은 제갈선은 탄식을 하였다.

“그동안 세운 계획이 물거품이 되고 말았구나.”

제갈선은 중양절에 천황성과의 일전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하고 준비를 해 왔다.

각파의 고수는 물론이고 은거한 고수들을 초빙하여 천황성 고수를 대적할 진용을 짜 왔다.

천황성 고수 한 사람 한 사람이 절대지경에 든 고수들이니만큼 두세 명의 고수들이 합공하는 전략을 세운 것이다.

그런데 이지를 상실한 괴물들이 수십 명에 이른다니 난감해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골치 아프군. 보령호신환의 유통을 막는 일도 급한데.”

“그게 막는다고 막아지나? 공개하라고 공개!”

제갈선이 말하기 무섭게 서신의 당종이 들이닥쳤다.

강소군이 왔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온 것이다.

“먹으면 무병장수하고 무공이 높아진다는데 안 먹을 놈이 어딨어? 천황성의 농간이라고 공개를 하란 말이다.”

당종이 역성을 냈다. 이 문제로 제갈선과 의견이 갈려 맞서는 중이다.

“누가 복용했는지 파악하는 게 우선입니다. 워낙 고가이니 복용한 자가 아직은 많지 않을 겁니다.”

제갈선은 만일 내막을 공개하면 복용자들이 복용 사실을 은폐하려 들 것이라고 우려하였다.

지금은 그저 무병장수와 무공증진의 신약(神藥)으로 알려진 상황이다. 그렇기에 복용 여부를 타진하면 시인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사실을 공개하면 대혼란이 일 것이다.

영인고를 제거하는 건 서신의나 동약사, 그리고 강소군이나 가능한 일이다.

보통 사람들은 고를 감지할 수도 없고 또 있다는 사실을 안다 해도 제거할 자가 없다.

게다가 사실이 공개되면 천주가 어떻게 나올지 알 수가 없다.

어쩌면 서둘러 정신을 제압하려 들 것이다.

‘골치 아픈 문제구나.’

두 사람의 주장 모두 일리가 있었다.

당종이 강소군에게 시선을 주며 물었다.

“뭔가 다른 조짐은 없나?”

머릿속 고에 대한 물음이다.

“고와 감응을 하여 어느 정도 통제가 가능합니다.”

“그래? 그 느낌을 좀 더 자세하게 말해 보게.”

당종이 눈빛을 번뜩이며 채근하였다.

“….”

강소군이 잠시 생각해 봤으나 그 느낌을 표현할 방법이 없었다.

한숨을 내쉬고는 화제를 돌렸다.

“차차 말씀드리지요. 그런데 보령호신단이 그렇게 널리 퍼져 있습니까?”

“대파나 세가, 거상, 고관과 호족 가릴 것 없이 구입을 하려고 혈안이라네.”

“….”

강소군이 침중한 얼굴로 말했다.

“정말 큰일이군요. 천주의 의도를 알 것 같습니다.”

“의도? 그거야 뻔하지 않은가? 주요 인사들의 정신을 지배하려는 게 아닌가?”

“그 이상인 듯합니다.”

강소군은 증보의 경우를 말해 주었다.

마치 신이 들린 듯 증보의 육신을 천주가 지배하고 심지어 무공까지 시전하였다.

“그게 가능하다는 말인가?”

제갈선이 입을 딱 벌렸다.

정신을 지배하는 차원을 넘어 상대의 몸을 차지한다면?

천주는 수많은 분신을 세상 도처에 둔 셈이다.

그것도 대부분 권력자나 무공의 고수들이니 세상을 지배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당종의 안색도 심각해졌다.

“결국, 그게 목적이었군.”

당종도 어느 정도 눈치를 채고 있었던 듯했다.

“미친놈이야. 완전히 미쳤어.”

당종이 중얼거렸다.

강소군과 제갈선이 당종을 쳐다보았다.

당종이 침중한 얼굴로 말했다.

“천주 그놈 말이야. 아무래도 자신의 머릿속에 어미고를 심은 듯해.”

“예?”

제갈선이 놀라 되물었다.

제갈선은 여러 갈래의 계획을 세웠는데 그중 하나가 어미고를 찾아 제거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천주가 천황성 고수를 직접 통제하지 못할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그런데 어미고가 천주의 머릿속에 있다면 곤란해진다.

천주를 잡기 전에는 어미고를 제거할 수 없다는 뜻이다.

“머릿속에 있지 않고는 그렇게 완전히 다른 사람의 정신에 들어갈 수 없을 거야. 결국 천주를 죽여야 끝나는 일이야.”

당종이 말하면서 은근히 강소군을 살펴보았다.

“어쩌면 자네가 고를 통제하는 게 아니라 천주가 그렇게 느끼도록 수작을 부리는 게 아닐까?”

“그게 무슨 뜻입니까? 강 공자도 그럼 천주의 지배하에 있다는 겁니까?”

제갈선이 흠칫, 놀라 물었다. 그렇다면 상황은 재앙 수준이 될 것이다.

강소군이 담담히 고개를 저었다.

“그렇지는 않은 듯합니다. 증보의 몸에 현신한 천주와 직접 겨뤄 보기도 했는데 아무 이상 없었습니다.”

“장담할 수 없지. 이참에 제거하는 게 어떻겠나?”

당종의 말에 강소군이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저는 왠지 이 고가 저를 천주에게 데려다줄 것 같습니다.”

“그건 또 무슨 소리지?”

“확실치는 않지만 고를 지배하는 건 어미고의 능력이기도 하지만 지닌 사람의 정신력과도 상관이 있는 듯합니다.”

강소군도 자신할 수 없어 자세하게 설명하지는 못했다.

“다른 유용한 점도 있더군요.”

강소군이 제갈선을 향해 말했다.

“이 고는 저와 동화되어 있는데 제가 마음만 먹으면 누가 고를 지니고 있는지 알 수가 있습니다.”

강소군이 증보를 잡을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했다.

강소군은 증보를 보는 순간 새끼고가 반응을 하는 걸 느꼈고 그랬기에 처음부터 확신을 가지고 강하게 나갔던 것이다.

강소군의 말에 제갈선이 반색하였다.

“정말인가? 그렇다면 좋은 수가 있네. 그렇지 않아도 중양절 일전을 앞두고 각파와 재야 고수들의 회합을 추진하고 있네. 그 자리에서 누가 보령호신환을 먹었는지 알 수 있지 않을까?”

“가능할 겁니다.”

당종은 그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는지 신신당부했다.

“아무튼 조금이라도 이상이 있으면 바로 제거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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