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소군-226화 (226/250)

226

강소군이 영인고를 살펴봤다. 이제까지 봤던 영인고보다 작고 가냘팠다.

알에서 부화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게 분명했다.

고의 움직임이 빠르게 잦아들었다.

강소군은 다시 영인고를 증보의 콧속으로 밀어 넣었다.

그리고 내력으로 끌어 머릿속에 다시 넣었다.

“크윽, 컥! 무슨 짓이냐?”

증보가 버둥거렸으나 막을 수가 없었다.

강소군이 증보에게 물었다.

“언제부터 천황성의 명을 받았지?”

“그게 무슨 개소리냐?”

증보가 독기 어린 눈으로 발악하듯 외쳤다.

“증보!”

황제가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선황과 내가 너의 충성을 믿어 의심치 않았거늘!”

증보가 황급히 엎드렸다.

어려서 입궁한 그는 뼛속까지 내관이었다.

“오해입니다. 황상에 대한 이 노신의 충심을 의심하시는 겁니까?”

너무나 절절한 표정에 황제도 헷갈렸다.

그때, 강소군이 증보에게 물었다.

“공손 승을 언제 만났지?”

이번에는 새끼고와 연결된 의식을 이용하여 물었다.

그러자 놀랍게도 증보가 순순히 답했다.

“봄에 만났다.”

증보의 대답에 황제는 물론이고 장선백 등 주위 호위들까지 놀라 쳐다보았다.

심지어 증보 자신까지 놀랐다.

강소군이 또 물었다.

“무슨 말을 했지?”

증보의 두 눈은 공포에 질려 있었다. 그러나 입은 그 스스로도 통제가 안 되는 듯 절로 움직였다.

“위양청이 죽었으니 대신 조정의 일을 맡아 달라고 했다. 그러면서 보령호신환을 주며 먹으면 무병장수하고 무공이 늘어날 것이라고 했다.”

“조정에서 암약하는 인물들 명단도 주지 않았나?”

“받았다.”

증보가 기가 막혀 자신의 혀를 깨물려 하자 강소군이 재빨리 혈도를 짚어 막았다.

강소군이 새끼고로 감응을 일으켜 통제하기는 했지만 영향력이 미약해 증보의 의식이 반발한 것이다.

하지만 이미 모두가 똑똑히 들었다.

황제가 분노하였다.

“당장 저놈을 심문장으로 끌고 가라. 내가 직접 심문할 것이다!”

황제의 두 눈에서 흉흉한 빛이 흘러나왔다.

천황성에 대한 황제의 적대감은 무척이나 깊다.

“저놈도 한통속이니 같이 끌고 가라.”

방연소가 철퍼덕 엎드려 죄를 청했다.

“소신은 그저 억울하게 죽은 아들의 원한을 갚을 생각에….”

“시끄럽다! 저놈의 입을 당장 찢어라!”

황제는 자신의 측근이 천황성의 조종을 받는 자였다는 사실에 분노하여 엄한 방연소에게까지 화를 냈다.

호위 무장이 난처한 얼굴로 방연소에게 다가갔다.

강소군이 앞으로 나가 예를 취하며 말했다.

“방연소에게도 들을 게 있습니다. 말은 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차분한 강소군의 말에 황제가 정신을 차렸다.

아직 젊어서 다혈질적이긴 하지만 애초에 영민한 황제였다. 화를 누르고 말했다.

“알았다. 저놈도 심문장으로 데려가서 대기하라.”

그때 증보가 갑자기 일어났다. 강소군은 황제와 이야기하느라 마침 등지고 있었다.

증보가 벼락같이 주먹을 내질렀다. 하얀 강기가 쑥 뻗어 나왔다.

“조심해!”

장선백이 놀라 몸을 날려 증보를 붙잡고 뒹굴었다.

-펑!

강기가 강소군을 비켜나가 옆으로 떨어졌다.

강소군이 천천히 돌아봤다.

-퍽!

증보가 장선백을 쳐내며 다시 일어났다.

강소군이 미간을 찌푸렸다.

“천주로구나!”

증보가 입가의 피를 닦으며 기괴한 웃음을 지었다.

“흐흐흐. 영인고를 통제하다니. 생각했던 이상이군. 하지만 본 주인을 당해낼 수 있을 것 같으냐?”

증보가 황제를 쳐다보며 말했다.

“내가 분명히 경고를 했을 텐데? 아비처럼 고집이 세군.”

분명 증보였으나 분위기와 말투는 확연히 달랐다.

황제가 증보를 노려보며 말했다.

“네놈이 천주라는 놈이냐? 사술로 세상을 어지럽히고 짐을 겁박하려 들다니! 어서 정체를 밝혀라!”

“크크크. 어리석은 황제로구나. 이 땅의 원래 주인이 누군지 가르쳐 주마.”

증보가 말을 마치자마자 손을 뻗었다.

이번에는 강기가 황제를 노렸다.

“황상을 보호하라.”

호위 무장들이 몸을 날려 황제를 에워쌌다.

그런데 그 전에 금빛 구체가 먼저 증보를 에워쌌다.

금빛 구체는 초식의 완성을 이루며 깨달은 일종의 기막이다. 금룡기로 이뤄진 기막이 둘러싸자 증보가 비틀거렸다.

천주의 통제력이 끊어진 것이다.

강소군이 재빨리 다가가 증보의 머리통을 내리쳤다.

-퍽!

영인고가 다시 밖으로 빠져나왔다.

증보는 그대로 기절하였다.

황제가 증보를 보다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밖을 향해 외쳤다.

“고승을 들어오라 해라!”

강소군은 고승의 이름이 낯익었다. 과거 진운초에게 들은 바 있다.

진운초는 고승이 동창의 독주로 있었을 때 장 대장군부 일가를 집요하게 노렸다고 했다.

황제는 이제 누구도 믿을 수가 없었다.

증보가 천황성의 주구라는 걸 알자 그와 함께 선황을 보좌했던 내관 고승이 떠오른 것이다.

고승은 나이 들어 은퇴하였다.

은퇴한 내관은 궁 밖으로 나가는데, 황제는 각별히 신임했던 고승에게 따로 거처를 내주고 궁에서 거처하게 하였다.

그런데.

명을 받고 갔던 무장이 돌아와 고했다.

“고 내관이 사라졌습니다.”

황제가 털썩, 용상에 주저앉았다.

“언제든 나를 죽일 수 있다고 한 말이 사실이었구나.”

***

황제의 집무실.

황제가 상석에 앉고 두 사람이 양옆에 앉았다.

한바탕 소동을 겪은 황제의 안색이 침중했다.

“천주라는 놈의 능력이 상상 이상이군.”

자신의 바로 곁에 간자를 두었다는 생각을 떠올리니 소름이 끼쳤다.

“그 역시 인간일 뿐입니다.”

강소군이 대답했다.

“그렇지. 어디 있는지만 알면 백만대군을 동원해서라도 잡을 것이다.”

강소군은 천황성의 위치를 알고 있었으나 말하지 않았다.

황제의 성정으로 봐서 당장이라도 군을 동원할 것이다. 허나 천주는 백만대군이 간다 해도 잡힐 자가 아니다.

황제가 장선백에게 말했다.

“황궁에 뛰어든 일은 해명해야 할 것이다.”

장선백이 예를 갖추고 말했다.

“본가가 억울한 누명을 썼다는 건 황상께서도 알고 계실 겁니다. 당시 누가 거짓 발고를 했는지 여쭤보고자 했습니다.”

황제가 잠시 생각하더니 한숨을 쉬었다.

“장 대장군부의 일은 참으로 안타까웠지. 하지만 나도 아는 바가 없다.”

황제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한 일이다. 그러니 치부를 스스로 드러낼 수가 없었다.

장선백은 물러서지 않았다.

“당시 누가 발고했는지 밝혀내는 건 황실에도 중요한 일입니다.”

“그건 무슨 소리지?”

황제가 눈살을 찌푸렸다.

장선백이 품에서 책자를 꺼냈다.

“이건 대정비각의 명단입니다.”

장선백의 말에 황제와 강소군 둘 다 놀라 쳐다봤다.

대정비각의 각주는 강소군의 아버지 강 국공이다.

그런데 대정비각의 명단이 장선백의 수중에 있다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본가가 누명을 쓴 이유가 이 명부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게 왜 네게 있는 것이냐?”

황제가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장선백을 노려보았다.

“선친께서 돌아가시기 직전 말씀하셨습니다. 강 국공께서 돌아가시기 직전 사람을 시켜 전한 것이라 하셨습니다.”

“….”

강소군이 책자를 받아 살펴봤다.

대정비각.

책자의 겉면에 쓰인 글귀는 아버지의 친필이었다.

아버지의 친필을 보자 강소군은 북받쳐 오르는 감정에 지그시 눈을 감았다.

잠시 후 눈을 뜬 강소군이 책자를 황제에게 건네며 말했다.

“선친의 친필이 맞습니다.”

황제가 책자를 받는데 장선백이 말을 이었다.

“선친은 강 국공의 돌연한 죽음이 이 명부와 관련이 있다고 보고 은밀히 조사를 하셨습니다. 그러다 거꾸로 누명을 쓰신 것이지요.”

황제가 책자를 받아 명단을 살폈다.

놀랍게도 그동안 동창과 금의위에 의해 죽임을 당한 수많은 관리들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어허!”

황제가 크게 소리를 치며 벌떡 일어서 책자를 들어 탁자를 내리쳤다.

“이런… 간악한 놈들을!”

황제가 부들부들 떨었다.

장선백이 울분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어찌하여 충신들을 죽이고 역도를 중용하신 것입니까? 그러고도 나라가 성하기를 바라신 것입니까?”

황제는 말문이 막혀 입을 열지 못했다.

***

조정에 한바탕 피바람이 불었다.

황제는 곽등을 시켜 증보를 심문하였다. 금의위 북진무사 곽등의 손속은 매웠다.

증보는 모진 고문을 이겨내지 못하고 자신이 관리하던 조정 인사의 명부를 건넸다.

명부에 오른 자들 대부분은 천황성의 존재를 몰랐다.

혼맥이나 친분 등의 이유로 가까이 지냈을 뿐이라고 항변했으나 황제는 가차 없이 처단했다.

장 대장군부의 역모 사건도 위 태사와 증보, 고승과 방연소가 꾸민 것으로 밝혀졌다.

증보와 고승이 선황을 보좌하는 내관이라는 신분을 교묘하게 이용하였기에 당금 황제가 아버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강소군 부모의 죽음에 얽힌 음모도 드러났다.

역시 천황성에서 대정비각을 제거하기 위해 꾸민 일이었는데 방연소가 자기도 모르게 주구 역할을 하였다.

진운초의 죽음 역시 방연소의 짓이었다.

방연소는 증보가 화혈고를 보내와 진운초를 죽이라는 부탁을 하였기에 자객을 썼노라고 실토하였다.

***

어두운 지하실.

강소군이 들어서자 의자에 묶여 있던 방연소가 고개를 쳐들었다.

연이은 고문에도 불구하고 눈에 독기가 어려 있었다.

“천황성에 놀아난 기분이 어떤가?”

“흐흐. 권불십년이라 하지 않았나? 지난 십 년간 원 없이 권력을 누렸으니 후회는 없다.”

방연소가 말하다 말고 이를 으드득 갈았다.

“그때 네놈도 죽였어야 했는데. 그게 한스러울 뿐이다. 조금만 더 독했더라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인데.”

“….”

강소군은 물끄러미 방연소를 바라보았다.

무심한 눈빛에 방연소는 절로 소름이 끼쳤다.

방연소의 시선이 강소군의 왼손에 들린 가죽 주머니로 향했다.

방연소는 자신의 죽음을 직감하고 황급히 외쳤다.

“나는 국법에 의해 처형될 것이다. 네게 죽을 수는 없다.”

말은 후회 없다면서도 며칠이라도 더 목숨을 붙이고자 하는 욕망이 처절하였다.

“아니.”

강소군이 고개를 저었다.

“너는 오늘이 마지막이다.”

강소군이 손을 그었다.

강기가 뻗어 나가며 방연소의 목을 잘랐다.

방연소의 머리가 바닥에 떨어졌다. 두 눈은 부릅뜬 상태였다.

강소군이 나뒹구는 머리를 가죽 주머니에 담았다.

***

남경.

방연소의 대역죄가 밝혀지며 남경의 권문세가들은 숨을 죽였다.

혹시라도 불똥이 튀지 않을까 염려하여 대문 밖 출입도 삼갔다.

방씨 일족은 모두 처단되었고 양채완은 아들과 함께 자결하였다.

강소군이 돌아오자 총관 모상은 연신 웃음을 터뜨렸고, 강하 강란 남매도 장선백의 소식을 듣고 기뻐하였다.

강소군은 선산 앞에 제단을 마련하고 방연소의 머리를 올려놓았다.

무릎을 꿇은 강소군 뒤로 총관 모상과 강하, 강란, 장오와 진운초의 미망인 예씨. 그리고 진연, 진운 형제가 섰다.

향을 피운 모상이 절을 하며 고했다.

“결국 공자님께서 모든 사실을 밝혀내셨습니다. 두 분께서는 편히 쉬시지요.”

예씨 부인도 눈물을 글썽거리며 진연, 진운 형제를 붙들고 말했다.

“공자께서 아버지 복수를 해 주셨다. 반드시 보답을 해야 할 것이다.”

강소군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아직 원흉은 잡지 못했습니다. 인사는 그때 받기로 하지요.”

강소군이 강하, 강란 남매에게 말했다.

“장선백이 오면 무한에서 기다리겠다고 전해라.”

장선백은 산동에 있는 장영영을 만나고 강부로 오기로 했다.

강소군은 원래 장선백과 함께 무한으로 갈 생각이었는데 하오문 낙서생으로부터 전갈이 왔다.

한시라도 빨리 무한에서 보자는 내용이었다.

“이번에는 저희도 함께하겠습니다. 따지고 보면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도 결국 천황성의 음모 때문입니다.”

강소군이 고개를 끄덕였다.

“선백과 함께 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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