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소군-225화 (225/250)

225

장선백이 강소군을 쳐다봤다.

그가 아는 강소군은 언행이나 행동이 무척 신중하다.

그런데 지금 안하무인으로 행동하고 있다.

장선백은 강소군이 일부러 상대를 자극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무슨 생각이지?’

장선백이 눈짓으로 물었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장선백도 궁금했다.

강소군은 안심하라는 듯 역시 눈짓으로 대답하고 방연소를 쳐다봤다.

장선백은 무장이자 어려서부터 전쟁터에서 살았다. 그러니 조정의 권모술수와는 거리가 멀다.

말 한 마디 꼬투리 잡아 물고 늘어지는 곳이 조정이다.

그렇기에 강소군이 먼저 나선 것이다.

하지만 강소군도 방연소가 와 있을 줄은 몰랐다.

방연소가 인상을 썼다.

“지금 상황에서 부인을 하려는 것이냐? 황상을 시해하려 한 자객을 비호한 죄는 죽음뿐이다.”

“그건 차차 따져 볼 일이고. 저자가 왜 이 자리에 있는 거지?”

강소군이 늙은 내관을 쏘아보았다.

늙은 내관, 증보가 강소군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방 대학사가 강 공자를 고발해 왔소. 살인죄이니 중히 다루지 않을 수 없지 않겠소?”

“….”

“조정 대신의 아들을 죽인 일이니 그냥 넘기기는 어렵소.”

방일옥의 죽음에 관한 사실을 방연소가 밝혀낸 모양이다.

강소군이 피식, 웃었다.

“그것 참 공교롭군. 내가 올 줄 어찌 알고 남경에 있는 대학사가 경성까지 왔을까?”

강소군은 왜 며칠을 기다려야 했는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증보가 방연소를 불러올릴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사흘이라는 시간은 전령이 가고 소식을 들은 방연소가 달려오기에는 부족한 시간이다.

아마도 강소군이 직접 온다는 소식을 들은 직후 곧바로 연락을 취했을 것이다.

이는 증보와 방연소가 긴밀히 소통하고 있었다는 뜻도 된다.

늙은 내관은 이어서 장선백을 향해 말했다.

“본관은 황상의 명을 받아 국법을 집행한다. 네가 황궁에 잠입한 사실을 인정하는가?”

“그건 사실이다.”

장선백이 순순히 인정했다.

“네가 대체 누구의 명으로, 무슨 의도로 황상의 침궁을 범하려 했는지 고하라.”

“네게는 들을 권한이 없다.”

장선백은 오기 전 강소군에게 들은 대로 대답했다.

증보가 어이가 없다는 듯 주위를 보며 중얼거렸다.

“어이가 없군. 저놈은 여기가 어딘지를 모르는 모양인가?”

그러더니 장선백을 향해 말했다.

“동창은 먼저 조치하고 나중에 보고를 한다. 너희 둘의 죄가 명백하니 순순히 무릎을 꿇으면 정식 심문을 받을 수 있으나 반항하면 즉시 참할 것이다.”

증보가 거만한 얼굴로 턱짓을 하였다.

화승총과 쇠뇌, 활을 든 이들이 일제히 시위를 당겼다.

방연소가 득의의 미소를 지었다.

강소군이 제아무리 고수라고 하더라도 수백 위사가 쏘아대는 화승총과 쇠뇌, 화살을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니 드디어 아들의 복수를 하는 셈이다.

반면 장선백의 얼굴은 침중하게 굳었다.

동창이 이렇게 막무가내로 나올 줄은 몰랐던 것이다. 자신 때문에 강소군까지 죽을 위기에 처했다고 생각하니 아찔하였다.

“자네는 피하게!”

장선백이 뒤로 돌아섰다. 하지만 그에게는 검이 없었다.

“아아….”

장선백의 입에서 절로 탄식성이 흘러나왔다.

“쏴라!”

증보의 옆에 있던 자가 소리쳤다.

-따따당!

-쉬익!

수많은 화살과 화승총탄이 두 사람을 향해 쏟아졌다.

장선백이 양손을 저어 막으려는 찰라.

강소군이 한 발을 내디뎠다.

-쿠웅!

지축이 흔들리는 것 같은 진동과 함께.

-파아아아!

기가 터져 나가는 굉음이 폭발하듯 울렸다. 그와 동시에 두 사람 주위로 금빛 원구가 퍼져 나갔다.

“헉!”

증보는 물론이고 방연소를 비롯해 모두가 숨을 들이켰다.

화살뿐만 아니라 화승총탄까지 금빛 원구에 막혀 튕겨 나가는 게 아닌가.

강소군과 장선백 주위로 화살들이 힘없이 떨어져 쌓였다.

“….”

“….”

모두 말을 잃고 강소군을 쳐다봤다.

듣지도 보지도 못한 무공이었다. 심지어 장선백까지 놀라 멍하니 강소군을 돌아봤다.

무공이 높을 것이라고 여기긴 했지만 이렇듯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경지일 줄은 몰랐던 것이다.

방연소의 얼굴은 사색이 되었다.

‘이, 이건 말이 안 돼.’

그는 눈앞의 현실을 부정하고 싶었다.

방연소는 남경에서 강소군의 무위를 본 적이 있다.

그때도 대단한 무위를 떨쳤다. 하지만 지금 보인 무공은 인간세의 것이라 할 수가 없었다.

방연소의 다리가 후들거렸다.

강소군이 천천히 계단을 올랐다.

“오, 오지 마라. 뭣들 하느냐? 막아라!”

증보가 놀라 소리쳤는데 어느새 강소군이 그의 앞에 있었다.

증보가 쌍장을 내밀었다. 양손에 어린 강기는 그가 절정을 넘어선 고수라는 걸 보여 주었다.

그러나.

-퍼억!

증보의 강기가 뻗어 나가기도 전에 강소군의 일권이 복부에 꽂혔다.

“커윽!”

증보가 그대로 주저앉았다.

강소군이 방연소를 바라보더니 손을 뻗었다.

방연소가 뒷걸음질 쳤으나 소용없었다.

방연소는 마치 무형의 손에 멱살이 잡힌 듯 저절로 끌려와 강소군의 손에 잡혔다.

“네 목은 나중에 가지러 갈 생각이었는데 알아서 와 주었군.”

강소군이 방연소의 눈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컥, 컥. 네가 조정대신을 함부로 해친다면….”

“그래? 그럴 수는 없겠지?”

강소군이 그의 목덜미를 가격하자 방연소가 그대로 기절하였다.

강소군은 증보와 방연소의 뒷덜미를 잡고는 질질 끌고 계단을 내려갔다.

“멈, 멈추시오….”

동창의 고수들이 앞을 가로막았다.

강소군이 발을 내디뎠다.

-쿠웅!

계단이 박살나며 동창의 고수들은 땅에서 솟는 기운에 휩쓸려 나가떨어졌다.

그 사이 강소군은 훌쩍 계단을 넘어 광장에 내려섰다.

그리고는 두 사람을 끌고 정문으로 향했다.

“이, 이럴 수가!”

애초에 차원이 다른 존재라는 걸 깨달은 동창의 고수들은 망연자실하여 그저 지켜만 볼 뿐이었다.

“쫓, 쫓아라!”

그래도 자신들의 수장이 질질 끌려가는 걸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길로 나온 강소군은 서두르지 않았다.

두 사람을 끌고 궁으로 향했다. 장선백이 한 발 뒤에 떨어져 따라갔다.

그 역시 지금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

대로를 지나는 사람들이 사람을 개처럼 끌고 가는 강소군을 보고 놀라 비켜섰다.

“저 사람이 누구지? 고관인 듯한데?”

사람들은 증보나 방연소의 얼굴을 몰랐지만 입은 행색을 보고 고관대작임을 알아보았다.

그런 이들을 강소군이 질질 끌고 가는데 뒤로 동창의 위사들이 따랐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그 자리에 엎드린 자까지 있었다.

황궁 정문에 이르자 수문 위사들이 몰려나와 창을 겨눴다.

“증 대인!”

수문 대장이 증보를 알아보았다.

“방 대인까지? 이게 무슨 일이오?”

수문 대장이 황망하게 소리치며 칼을 뽑았다.

강소군이 수문 대장에게 말했다.

“황상께 남경 강부 강휘가 왔다고 고하라.”

수문 대장도 남경 강부가 어떤 곳인지 안다.

수문 위사가 재빨리 튀어들어갔다.

한참 후 궁을 지키는 금의위들이 우르르 몰려나와 도열하였다.

“강휘는 들라 하신다!”

대장으로 보이는 자가 나와 소리쳤다.

강소군은 두 사람을 끌고 너른 광장을 지나 중문을 넘었다.

“으음.”

그 사이 정신을 차린 증보가 신음을 내뱉으며 버둥거렸다.

중문 광장 맞은편은 계단으로 이어지고, 높은 곳에 황제가 집무를 보는 대전이 있었다.

광장과 대전 양쪽에 장창을 든 군사들이 도열하였다.

강소군은 천천히 광장을 지나 계단을 올랐다.

“크윽!”

방연소도 정신을 차렸다.

증보와 방연소는 혼백이 나간 듯했다.

이런 수모를 당한 적이 없다. 모두가 지켜보는 데 개처럼 끌려오다니.

대전에 들어선 강소군이 두 사람을 팽개쳤다.

황제는 용상에 앉아 있었다.

“이게 무슨 짓인가? 짐의 신하를 욕보이다니.”

황제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역심을 품은 놈을 신하라 할 수 있겠습니까. 또 한 놈은 뒷구멍으로 딴짓을 일삼았으니 당연히 죄를 물어야 할 것입니다.”

강소군의 말에 증보와 방연소가 황급히 부복을 하며 머리를 찧었다.

“황상폐하를 뵙습니다. 저자가 무력으로 소신들을 억압하고 누명을 씌우고 있습니다. 저자를 처단하여 주시옵소서.”

“흐음.”

황제의 입이 호선을 그리며 휘어졌다.

세 사람을 잠시 내려다보던 황제가 말했다.

“대체 어찌 된 일인지 차근차근 말해 보라. 누가 먼저 말하겠는가?”

방연소가 기회라고 여기고 황급히 나섰다.

“남경 강부 강휘가 소신의 아들 방일옥을 죽였습니다. 아다시피 황실의 친인척은 동창에서 조사하기에 고하러 왔다가 마침 맞닥뜨려 죄를 물으니 다짜고짜 제압당하고 끌려온 것입니다.”

증보가 뒤이어 나섰다.

“황명을 받고 궁에 침입한 자객을 쫓던 중에 강휘가 구룡금패를 내세워 막았습니다. 그래서 전후 사정을 묻고자 불러들였는데 방 대학사의 말처럼 소신들을 제압하고 개처럼 끌고오며 수모를 주었습니다.”

늙은 내관은 당장이라도 눈물을 뚝뚝 흘릴 듯 처연한 목소리로 고했다.

황제의 얼굴에 불편한 기색이 떠올랐다.

‘강휘, 저놈이 무슨 속셈이지?’

증보는 황제가 신임하는 내관이다.

자신뿐만 아니라 선황을 보좌하기도 했다.

하지만 강소군이 이러는 데는 이유가 있을 것임을 알기에 잠자코 지켜보았다.

강소군이 방연소를 보고 말했다.

“제가 이자의 아들을 죽인 것은 맞습니다. 노산사흉이라는 흑도의 무리와 결탁하여 죄 없는 아이를 납치하고 저를 죽이려 했으니 정당한 행사였다고 봅니다.”

“거짓말하지 마라!”

방연소가 벌떡 일어나 외쳤다. 강소군은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당시 증인이 있으니 간단히 밝혀질 일입니다.”

강소군의 시선이 증보에게 향했다.

“방 대학사는 아들의 복수심에 눈이 멀어 누명을 씌우려 했으니 사정을 봐줄 수 있지만 이자는 좀 다릅니다.”

“….”

부복했던 증보가 머리를 쳐들어 강소군을 향해 소리쳤다.

“감히 내게 무슨 누명을 씌우려는 것이냐?”

강소군이 자신의 머릿속에 있는 새끼고를 봉인한 의식을 풀었다.

새끼고와 감응을 하자 반응이 왔다.

순간.

증보가 흠칫, 하였다.

강소군이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그랬군.”

강소군은 새끼고와 자신의 의식을 동화한 이후 거꾸로 새끼고를 통제할 수 있었다.

영인고는 같은 고끼리 감응을 한다.

강소군은 증보의 머릿속에 새끼고가 있음을 알아챘다.

강소군이 훌쩍 증보에게 다가가더니 머리를 잡아채 뒤로 당겼다.

“끄억! 이게 무슨 짓이냐?”

증보가 반항을 하였으나 소용없었다.

대전에 있던 호위무장들도 흠칫, 도에 손이 갔으나 황제의 명이 떨어지지 않으니 움직이지 않았다.

-퍼억!

강소군이 증보의 이마를 치자 코피가 주르륵 흘러나왔다.

그런데 핏속에 허연 물체가 꼬물거리는 게 눈에 들어왔다.

새끼고는 몸 밖으로 나오면 일각도 못 버틴다.

꿈틀거리는 새끼고를 보자 강소군의 머릿속에 있는 고가 요동을 쳤다.

강소군이 새끼고와 연결된 의식을 다시 봉인했다.

그러고는 새끼고를 집어 황제에게 보여 주었다.

“이게 영인고라는 것입니다. 천황성은 이걸 사람 머릿속에 넣어 조종을 하지요.”

황제의 안색이 침중하게 굳었다.

증보는 황제의 수족과 같은 자였다.

“이게 무슨 수작이냐? 대체 내게 무슨 사술을 부린 것이냐?”

증보는 자신의 머릿속에 고가 있다는 사실을 몰랐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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