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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소군-224화 (224/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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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제가 눈을 떴다.

어둠 속에 한 사람이 서 있다.

황제가 천천히 일어나 불을 밝혔다.

침입자가 누군지 몰라도 자신을 해할 생각이 아니라는 걸 알았는지 여유가 있었다.

서 있는 자는 강소군이었다.

“이제야 왔군. 기다렸다.”

황제가 강소군에게 말하며 문밖을 쳐다봤다.

호위와 내관들이 지키고 있을 텐데 어떻게 들어왔는지 궁금했던 것이다.

“잠시 재웠습니다.”

“무공이 더 높아진 것 같군. 앉아라.”

두 사람이 마주 앉았다.

“그때 죽은 자는 위양청이었던 것 같다. 그와 연관이 있는 자들을 은밀히 지켜보는 중이다.”

강소군은 쫓다가 녹아내린 시신만 발견한 뒤 대정무각을 통해 황제에게 조정 주위 인물 동정을 알아봐달라고 한 바 있다.

위양청은 선황이 태자 시절 잠시 학문을 가르쳤던 자였다.

“학자로만 알고 있었는데 천황성의 수괴였을 줄이야.”

“수괴라고 볼 수는 없지요. 그 또한 하수인에 불과합니다. 그의 빈 자리는 이미 다른 이로 채워졌을 겁니다.”

“으음.”

황제가 침음성을 흘렸다.

한왕을 처단한 뒤 황제의 권력은 공고해졌다. 하지만 천황성이 있는 한 두 다리를 뻗고 잘 수가 없다.

“그간 조정 대신과 무관, 심지어 내관까지 샅샅이 조사를 했지만 의심을 할 만한 자들이 없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모르겠군.”

황제가 탄식했다.

“아마도 대부분은 자신들이 천황성의 주구라는 사실조차 모를 겁니다. 무림에 스며든 천황성 세력도 마찬가지였지요.”

“처리해야 할 국사가 한둘이 아닌데 그놈들 색출에만 매달릴 수 있는 노릇도 아니고.”

황제가 분통을 터뜨렸다.

“장선백을 만났습니다.”

“선백이를?”

황제가 놀라 되물었다.

그 역시 장선백을 잘 안다.

“모르셨습니까?”

강소군은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선백은 황제를 직접 보고자 침궁으로 잠입했다고 했다. 그런데 침궁이 비었기에 허탕을 치고 오히려 금의위에 쫓기는 중이다.

그런데 황제가 그 사실을 모른다니 의아했다.

황제 역시 강소군의 말을 듣고 미간을 찌푸렸다.

“누군가 침궁에 들었다가 발각됐다는 보고는 받았다. 그게 선백이었을 줄은 몰랐구나.”

“금의위가 움직였습니다.”

“조사를 하라는 명을 내리긴 했지.”

강소군은 황제가 거짓을 말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금의위 천호 시경안은 쫓는 자가 장선백이라는 걸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 신상을 보고하지 않은 게 이상하군요.”

“….”

“하명을 받은 자가 누구입니까?”

“증보에게 알아서 하라 했지.”

증보는 선황 때부터 황제를 보좌한 내관이다.

한왕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 공을 세워 황제가 신임하는 늙은 내관이다.

“지금은 동창을 맡고 있다.”

강소군이 미간을 찌푸렸다.

금의위는 장선백을 죽이려 했다. 보는 즉시 처단하라는 명이 내려왔을 것이다.

‘황제는 누군지도 몰랐는데 증보가 알아서 죽이라고 했다?’

뭔가 수상했다.

황제는 문득 생각이 들었는지 중얼거렸다.

“장선백이 짐에게 복수를 할 생각이었나 보군.”

“그게 아니라 당시 역모를 고했던 자를 알아보고자 했다더군요.”

황제가 미간을 찌푸렸다.

“당시 나는 경성에 있었다. 소식을 듣고 갔을 때는 이미 모든 처리가 끝난 뒤였지.”

“….”

“나 역시 알아보려 했으나 정확한 내용을 아는 이가 없었다.”

강소군은 황제가 뭔가 숨기고 있다는 걸 알았지만 묻지 않았다.

‘선황이었겠군.’

당시 태자였던 선황은 변방 정벌에 대해 반대를 해왔다.

계속된 전란으로 국고 손실이 크고 백성들의 삶 또한 피폐해지고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반면 장연보 노장군을 따르는 많은 장수들은 북방 이민족을 정벌을 지지하였다.

강소군은 내색하지 않고 말했다.

“지금이라도 누명을 벗겨 주셨으면 합니다.”

“그래야지.”

황제가 시원하게 대답했다.

장 장군부의 일은 그에게도 짐이었던 것이다.

“당장 내일이라도 명을 내리겠다.”

“아닙니다. 좀 더 알아볼 게 있으니 시기를 따로 청하겠습니다.”

“그래? 뭘 더 알아본다는 말이지?”

“잘하면 천황성 간자를 잡아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어떻게?”

“계획이 서면 말씀드리지요.”

황제는 궁금했으나 더 묻지 않았다.

“연 낭자와는 무슨 사이냐?”

황제가 느닷없이 연화심 이야기를 꺼냈다.

황제는 연화심을 잊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사람을 보내 수소문을 했는데 연화심과 강소군이 같이 있다는 소식을 들었던 것이다.

강소군이 황제를 보았다.

뜬금없이 연화심에 대해 물어볼 줄은 몰랐던 것이다.

황제가 머쓱했는지 말을 돌렸다.

“너도 혼인을 해야 할 게 아니냐. 고모의 유일한 혈육인데 내가 모른 척할 수는 없지.”

“나중 일입니다.”

강소군이 부인하지 않자 황제의 얼굴에 아쉬운 빛이 스쳤다.

하지만 그는 일국의 황제로 해야 할 일이 많았다. 황제로서 사사로운 정을 포기할 줄도 알았다.

“네 혼사는 내가 직접 주관하마.”

***

강소군은 경성 자신의 저택으로 들었다.

며칠 후 시경안이 찾아왔다.

“북진무사께서 직접 뵙고자 합니다.”

금의위 수장이 보자는 것이다.

“알았다. 며칠 내로 내가 가겠다.”

강소군은 장선백을 기다렸다.

그러면서 영인고와의 감응 능력을 키워 나갔다.

그가 생각한 대로 영인고를 통제하려는 시도였다.

영인고 역시 자신을 강소군으로 여겼기에 감응이 어렵지 않았다.

다만 천주가 다시 영인고를 통제하려 들 때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여전히 금단진공으로 의식을 봉인해두었다.

***

며칠이 지나자 장선백이 찾아왔다.

우완청과 두 명의 호위도 함께였다.

결국 장선백은 우완청을 떨쳐내지 못한 것이다.

우완청과 시녀들은 한족의 복장을 하고 있어 낯설어 보였다.

강소군은 장선백과 북진무사를 찾아갔다.

“남경 강부에서 왔다고 하게.”

정문 경비병에게 이르자 곧바로 북진무사의 집무실로 안내하였다.

강소군과 장선백이 들어서자 북진무사 곽등이 일어나 맞았다.

서로 간의 예가 오간 뒤 곽등이 앉기를 청했다.

“시 천호가 사람을 잘못 보지는 않은 듯하군요.”

곽등은 장년에 이른 무인이었다. 수염이 단정하고 눈매가 무척이나 날카로웠다.

“구룡금패를 보여 주시겠습니까?”

강소군이 품에서 구룡금패를 꺼내 보여 주었다.

“틀림없군요. 하지만 장선백은 불순한 의도를 품고 황상폐하의 침궁에 잠입한 자입니다. 그를 잡아들이란 명이 떨어진 이상 황상폐하께 보고를 하고 처리를 할 것입니다.”

“한 가지 물어볼 게 있소. 명이 내려온 곳이 어디요?”

“동창입니다.”

“금의위는 황제폐하의 명을 직접 받는 친위군인데 어찌 동창의 명에 따른다는 말이오?”

“두 기관이 서로 협력하라는 명이 있었소.”

동창과 금의위는 하는 일이 비슷했다. 황제를 직접 보좌하며 반역이나 기타 비리를 감찰하고 주모자를 처단해 왔다.

그러다 보니 서로 은근히 경쟁을 하는 처지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힘의 추가 동창으로 넘어갔다.

아무래도 내관이 중심이 된 동창이 황제의 내밀한 뜻을 헤아리는데 유리했던 것이다.

동창은 따로 무력이 없어 금의위 위사들을 파견받아 지휘하였다.

그러다 보니 점차 금의위가 동창의 명을 받는 처지로 바뀌어 가는 중이다.

“동창이라면 병필태감의 명이오?”

“그렇게 알고 있소.”

곽등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당신이 황제께 고한다는 건 실제로는 병필태감에게 보고한다는 뜻이겠군.”

“….”

곽등이 침묵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 역시 병필태감의 지휘를 받는 게 마뜩잖기는 했다.

“그럼 가서 고하시오. 어떤 명이 내려오는지 봅시다.”

강소군의 말이 약간 이상했으나 곽등이 수하를 불러 명을 내렸다.

“처분이 내려올 때까지 두 분을 연금해야겠소.”

“좋도록 하시오.”

“스스로 찾아온 뜻을 봐서 족쇄를 채우지 않겠소만 탈출할 생각은 하지 마시오.”

곽등이 손짓을 하자 금의위 몇이 들어왔다.

“객사로 모셔라.”

두 사람은 금의위 객사로 들었다.

“무척이나 무미건조한 사람이군. 융통성도 없고.”

장선백이 곽등에 대해 평했다.

“자네까지 가둘 필요는 없는데 말이지.”

“그러니 저 자리에 있는 거겠지.”

당장이라도 명이 떨어질 듯했는데 무슨 일인지 사흘이 지나도록 아무 소식이 없었다.

나흘째 되는 날 드디어 곽등이 찾아왔다.

“갑시다.”

“어디로 가는 건가?”

“동창 제독부로 이관되었소.”

곽등이 예의 무미건조한 어투로 말했다.

곽등은 두 사람을 호송하여 동창 제독부로 갔다.

제독부는 서문 근처에 있었다.

제독부 정문에 이르자 곽등이 말을 멈추고 수문 위사에게 일렀다.

“죄인을 압송해 왔다고 고해라.”

잠시 후 정문이 열렸다.

곽등이 수하들에게 대기하라 이르고 강소군과 장선백과 함께 들어섰다.

“…!”

정문 안쪽은 너른 광장이었는데 양편에 수백 명의 무인이 도열해 있었다. 그런데 모두 활과 화승총, 쇠뇌를 겨누고 있어 무척이나 살벌한 분위기였다.

곽등이나 장선백 모두 전장을 누빈 장수들이었으나 이런 광경은 처음이었다.

명이 떨어지면 즉시 벌집이 될 판이다.

“대접 한 번 요란하군.”

장선백이 혀를 내둘렀다.

강소군의 시선은 멀리 계단 위 전각으로 향했다.

계단 위에 의자가 놓여 있고 두 사람이 앉아 있었다.

양옆으로 동창의 고수들이 호위하듯 도열하고 있었다.

“…!”

그런데 그중 하나가 낯익은 얼굴이다.

‘남경에 있어야 할 방연소가 무슨 일로 동창 제독부에 있는 걸까?’

왼편에 있는 이는 바로 방연소였다.

그 옆에 앉아 있는 이는 나이가 지긋한 내관이었다.

강소군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활과 쇠뇌, 화승총의 사선이 그를 따라 움직였으나 개의치 않았다.

“멈춰라!”

계단 위에 있던 동창의 고수가 소리쳤다.

곽등이 한 발 앞으로 나서서 말했다.

“죄인을 넘길 터이니 인수증을 주시오.”

내관 하나가 달려와 곽등에게 문서를 건넸다.

“이만 가겠소.”

곽등이 문서를 살펴보고는 예를 갖춰 인사를 하고 돌아갔다.

“죄인은 무릎을 꿇어라!”

계단 위에 있던 동창의 고수가 소리쳤다.

강소군이 주위를 둘러보다 계단 위 상석에 앉아 있는 늙은 내관을 향해 말했다.

“당신이 증보인가?”

강소군의 물음에 좌우에 도열했던 동창 고수들의 얼굴에 분기가 어렸다.

“죄인 주제에 감히 뉘 앞이라고….”

무릎을 꿇으라고 했던 동창 고수가 도의 손잡이를 움켜쥐고는 당장이라도 달려 나올 듯한 기세로 호통을 쳤다.

“죽고 싶지 않으면 가만있는 게 좋을 거다.”

강소군이 동창의 고수를 노려봤다.

폐부를 찌르는 눈빛이 동창의 고수는 그만 주춤하고 말았다.

“이런 방자한!”

방연소가 의자를 박차고 일어났다.

“강휘! 이 자리가 무슨 자리인지 모르느냐? 감히 국법을 거역할 셈이냐?”

강소군이 피식, 웃었다.

“남경부에 있어야 할 대학사께서 동창 제독부에는 무슨 일로 오셨소?”

“네놈의 죄가 한둘이 아니다. 황실의 인척이라는 지위를 내세워 국법을 농단했으니 조정의 녹을 먹는 신하로 어찌 방관할 수 있다는 말인가?”

“하하. 별소리를 다 듣겠군.”

강소군이 크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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