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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상대가 된다고 생각하나?”
장포 노인이 가당치도 않다는 표정으로 강소군을 보았다.
옆의 촌로가 클클, 웃으며 말했다.
“조심하게. 검황이 저놈에게 물러나지 않았나.”
장포 노인이 강소군을 유심히 살폈다.
“특이한 놈이긴 하군. 저 나이에 저런 경지라니. 대체 무슨 수를 쓴 거지?”
강소군의 무공은 상궤를 벗어난 면이 있다.
장포 노인도 의아한 모양이다.
“손을 써보면 알겠지.”
툭, 내뱉으며 한 발을 내디뎠다. 오른손을 앞으로 내미는데 마치 강소군의 어깨를 잡을 듯한 자세였다.
두 사람 거리는 삼 장이나 떨어져 있었다.
강소군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깨를 짓누르는 중압감을 느꼈다. 마치 실제 손으로 어깨를 잡은 것만 같았다.
그러나 강소군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단전에서 금룡기가 솟아 전신을 보호하였다.
강소군의 전신에서 은은한 금빛이 흘러나왔다.
장포 노인의 눈에 이채가 흘렀다.
“제법이긴 하군. 무영수를 버텨내다니.”
순간 장포 노인이 양손을 휘저었다.
-파파팍!
뇌전 같은 기운이 번뜩였다.
동시에 사방에서 찌르는 듯한 기운이 다가왔다.
장포 노인의 손에는 아무것도 들려 있지 않았으나 강소군을 위협하는 건 분명 검세였다.
‘심검?’
강소군이 눈을 감고 금룡기를 사방으로 퍼뜨렸다.
양옆에서 짓쳐드는 검세는 허초였다.
진정한 검은 강소군의 가슴을 노리고 정면에서 다가오고 있었다.
강소군의 오른손이 허리춤에 맨 무애검을 잡았다. 허나 뽑지 않고 검자루에 손만 대었을 뿐이다.
강소군의 두 눈은 여전히 감겨 있었다.
마치 맹인검을 보는 듯했다.
-쏴아아!
강소군은 검이 허공을 가르는 소리를 들었다.
물론 실제로 일어난 소리가 아니다. 그렇기에 옆에 선 시경안에게는 이 싸움이 기묘하게 보일 수밖에 없었다.
두 사람이 마주하고 서 있을 뿐이다. 심지어 강소군은 눈을 감았다.
그럼에도 시경안은 본능적으로 위험을 감지하고 도를 고쳐 잡았다.
-쉬익!
강소군이 발검을 하며 그대로 검을 쳐 올렸다.
-쩌적!
강소군의 일 장 거리 앞에서 얼음이 갈라지는 소리가 들리더니 눈부신 섬광이 일었다.
시경안은 눈을 찌르는 섬광에 자기도 모르게 눈을 감고 일 장이나 물러났다.
-파팟!
섬광과 함께 사방으로 기파가 터졌다.
-쿠쿠쿵!
뒤이어 기와 기가 부딪친 충돌음이 들려 왔다.
거대한 배 두 척이 부딪친 듯 육중한 소리가 나더니 뒤이어 폭풍 같은 회오리가 일었다.
-휘이익!
돌개바람이 일자 흙먼지가 피어오르며 두 사람의 모습이 가려졌다.
시경안의 입이 딱 벌어졌다.
‘이게 인간의 무공이란 말인가?’
그 역시 강호에 십대고수가 있다는 말을 들은 바 있다.
그러나 자신이 그들 아래라고 생각지는 않았다.
그만큼 자신의 무공에 대해 자신을 해 왔다.
그런데 지금 눈앞의 두 사람이 펼친 한 수는 그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불가해의 경지다.
시경안은 절로 다리가 떨렸다.
인간의 무공이 저럴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한 놀람과 찬탄, 그리고 알 수 없는 격한 감동이 일었다.
-파파팟!
두 사람을 삼킨 흙먼지 속에서 섬광이 번뜩였다.
장포 노인은 양손을 쭉 뻗어 강소군을 향해 휘저었다.
손은 일 장이나 떨어져 있었지만 그때마다 무형의 검이 강소군을 향해 짓쳐들었다.
-파아아악!
강소군의 무애검에서 금룡기가 흘러나와 원형의 구체를 이뤘다.
-콰쾅!
장포 노인의 무형검과 금룡기로 이뤄진 구체가 부딪칠 때마다 눈부신 섬광과 폭음이 일었다.
두 사람의 격돌을 지켜보는 촌로의 눈빛에 이채가 흘렀다.
“과연 검황이 물러날 만했구나.”
그러더니 품에서 작은 호각을 꺼냈다.
마치 새처럼 생긴 호각이었다.
촌로가 호각을 불었다.
-호오오오~
호각에서 기묘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순간, 강소군은 이마가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영인고의 움직임이 확연히 느껴졌다. 이전과는 달리 꿈틀거리는 걸 감각으로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서둘러 금단진공을 운용하여 기운의 일부분을 영인고를 통제하는 의식으로 보내야 했다.
그러자 강소군을 에워싼 금빛 구체의 기운이 약해졌다.
“크흐흐. 예상이 맞았군. 이놈이 정말 양의심공을 익혔구나!”
장포 노인이 크게 외쳤다.
“…!”
시경안은 촌로의 호각에 비밀이 있음을 알았다.
지체하지 않고 촌로를 향해 달려들었다.
촌로는 호각에서 입을 떼지 않고 한 손을 저어 시경안을 막았다.
-퍼엉!
시경안은 철벽과도 같은 강기의 벽에 부딪혀 튕겨 나갔다. 그러나 그 역시 화경의 경지에 들어선 고수였다.
착지하는 동시에 몸을 회전하였다.
-파파팟!
그의 허리춤에서 십여 자루의 비도가 날았다.
“흥!”
촌로가 코웃음을 치며 다시 왼손을 휘저어 비도를 쳐냈다.
그런데 십여 자루의 비도가 마치 살아 있는 듯 출렁이며 위아래로 파도쳤다.
이제 보니 비도의 손잡이 끝에 가느다란 줄이 매여 있었다.
시경안이 채찍을 휘두르듯 줄을 휘젓자 비도가 위아래로 크게 흔들리며 촌로를 향해 쏘아져 갔다.
“이런 잔재주를!”
촌로가 호각을 입에 물고 양손으로 반원을 그렸다.
무형의 기운이 팍, 퍼지며 비도는 더 이상 다가가지 못했다.
촌로가 다시 손을 휘젓자 파파팍, 하는 소리와 함께 줄이 끊어지고 말았다. 자연히 비도가 튕겨 나갔다.
그러나 촌로가 시경안의 비도를 처리하는 잠시 동안 호각이 멈췄다.
그러자 강소군은 영인고의 준동이 그치는 걸 느꼈고 무애검에서 퍼져 나온 원형의 구체는 금빛이 더해졌다.
순간 장포 노인이 쌍장을 휘둘러 합검을 하여 금빛 구체를 내리쳤다.
-콰앙!
금빛 구체가 크게 흔들리며 폭음이 일었다.
그 사이 장포 노인이 뒤로 삼 장이나 물러났다.
“크흐흐. 네 밑천을 알아냈으니 됐다. 오늘은 이만하지. 다음에 만날 때는 네 머릿속을 열어 보겠다.”
장포 노인의 신형이 점차 스러졌다.
잔상을 남기고 이미 사라진 것이다.
강소군이 쫓으려 하는데 촌로의 호각소리가 들려 왔다.
-호오오오오~
그러자 다시 영인고가 맹렬하게 움직였고, 강소군은 전력을 다해 영인고를 제압해야 했다.
그 사이 촌로도 사라졌다.
장내는 한바탕 폭풍이 지나간 흔적만 남았다.
“대장님!”
멀리서 달려오는 시경안의 수하들이 보였다.
시경안은 망연자실하여 서 있었는데 입가에 핏물이 흘러내렸다.
촌로가 비도를 튕겨내며 암경을 보냈고 시경안은 전력을 다해 막았으나 내상을 입고 말았다.
시경안이 다가오는 수하들을 보며 퉤, 하고 핏물을 내뱉었다.
“너희는 무사하냐?”
다가오는 금의위들의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이 개 조가 전멸했습니다.”
시경안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가서 시신을 수습하라. 그리고 이제부터 백호 단위로 움직인다.”
시경안이 지시를 하고 강소군에게 다가갔다.
마침 강소군은 난동을 부리는 영인고를 제자리로 몰아넣고 눈을 떴다.
시경안이 굳은 얼굴로 물었다.
“저들이 천황성이오?”
강소군이 시경안을 유심히 보다 말했다.
“천황성을 알고 있나?”
“명색이 금의위요. 무림에서 일어나는 일을 모를 리 있소?”
“….”
“감히 황성을 사칭하는 무리가 있기에 금의위에서도 관심을 기울여 왔소. 아직 종적을 잡지 못했는데 최근 의천맹과의 싸움이 보고되었소.”
강소군은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시경안은 천황성의 진정한 정체를 모르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시경안의 윗선이 천황성 사람이 아니라는 걸 장담할 수 없었다.
“내상을 입은 것 같군. 경성에 먼저 가 있겠소.”
강소군이 말 위에 올라 고삐를 잡아챘다.
-두두두두.
강소군이 말을 달려가자 시경안이 멍하니 쳐다보았다.
방금 본 싸움도, 자신이 직접 겪은 촌로의 무공도 마치 한바탕 꿈을 꾼듯했다.
“저대로 보내는 겁니까? 경성으로 갈까요?”
수하들이 다가와 묻자 시경안이 말했다.
시경안이 탄식하며 말했다.
“그가 가지 않겠다고 하면 우리 모두가 덤벼도 잡아갈 수 없었을 것이다.”
***
강소군은 마을에서 말을 버리고 건량을 챙겨 산으로 올랐다.
장포 노인과 촌로가 찾아올 수 있었다는 건 천황성의 이목도 만만치 않다는 뜻이다.
어쩌면 천주가 자신이 머릿속에 있는 영인고를 추적했을지도 모른다.
‘영인고를 통제하는 천주의 능력이 생각했던 것 이상일 수도 있다.’
그러니 홀로 있는 시간이 필요했다.
장포 노인과 촌로가 온 이유는 알 것 같았다.
강소군이 영인고를 봉쇄하자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알아내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이제 사실을 눈치챘으니 나름 대처방안을 강구할 것이다.
강소군은 길을 버리고 산길을 타고 가며 영인고를 완전히 통제할 방법을 찾을 생각이었다.
***
중랑은 연화심의 얼굴이 부쩍 화사해졌다는 느낌을 받았다.
마치 꽃이 피어나는 것만 같이 눈이 부셨다.
그럴수록 마음 한구석이 아려 왔다.
죽은 누이의 얼굴은 이제 희미하다. 연화심처럼 어여뻤다는 기억만 남아 있다.
‘살아 있었다면 누이에게도 이런 시절이 있었을 텐데.’
수없이 많은 죽음을 보았고 그의 손에 의해 세상을 떠난 이도 한둘이 아니다.
하지만 그의 가슴에 남아 있는 죽음은 부모님과 누이뿐이다.
‘어쩌면 나도 괴물이 되어 가는지 모르지. 아니, 그 순간 이후 괴물이 되었던 것일지도.’
타인의 죽음에 무감각해진다는 게 문득 두려웠다.
마음속의 사부로 여기는 유문광은 그런 중랑에게 충고를 했다.
‘검을 쥔 자는 어차피 괴물이 된다. 그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여라. 그래야 살 수 있다.’
다정다감한 유문광은 의외로 냉정한 면이 있었다.
“무슨 생각을 그리 하세요?”
연화심이 싱그러운 목소리로 물어왔다.
“오랜만에 와서는 딴생각만 하기에요?”
“아… 갑자기 사부님 말씀이 생각나서.”
“무슨 말씀인데요?”
“별말 아닌데 갑자기 생각나는구나.”
중랑이 말을 끊고 찾아온 이유를 말했다.
“내일 본각으로 돌아가야 한다. 가기 전에 보려고 온 것뿐이다.”
“본각이 어디인데요?”
대정무각의 본각은 남경에 있다.
중랑도 아직 가 보지는 않았다.
이번에 천황성과의 싸움에서 적잖은 무인을 잃었다.
게다가 대정무각의 나머지 각주들도 신변을 정리할 의사를 밝혔다.
대정무각은 천황성의 정체를 밝히고 상대하기 위해 만들어진 조직이다.
천황성의 정체가 드러났으니 십각으로 된 체제를 바꿔 일전을 겨룰 준비를 할 계획이었다.
“….”
대정무각 본각의 위치는 극비로 하급 무인들도 모른다.
“어머, 서운해요. 저에게도 말해 줄 수 없는 건가요?”
연화심이 놀라는 척하면서도 웃으며 넘어갔다.
“소식만 끊기지 않으면 돼요. 저도 조만간 복건으로 가요. 유 총관이 돌아왔으니 무한 지부는 이제 저 없어도 될 것 같아요.”
삼도문의 이전을 위해 복건으로 떠났던 유상화가 일을 마치고 돌아왔다.
연화심은 유상화에게 삼도상단 무한 지부를 맡겼다.
유상화는 본래 고향이 무한이니 그편이 나았다.
“유 총관은 아직 나이가 어린데….”
“훗, 우리는 나이가 많은가요?”
연화심이 손으로 입을 가리고 웃었다.
중랑이 생각해 보니 그랬다.
그간 너무 많은 일들이 있어서 그랬지 그나 연화심이나 아직 한창나이다.
“오라버니가 그렇게 애늙은이처럼 굴면 장가도 가기 힘들걸요?”
연화심의 말에 중랑은 어이가 없었다.
“너, 어찌 된 거냐?”
강소군의 고백을 들은 이후로 연화심은 늘 방실방실이다.
“한창나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