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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약사 역시 영인고에 대해 안다.
“손녀사위가 영인고에 당한 적이 있다고 들었습니다만.”
“흥! 덜떨어진 놈이지.”
당종이 바깥을 향해 소리쳤다.
“그놈보고 오라고 해라.”
“알겠습니다.”
누구라고 지칭도 안 했건만 바깥에 있던 하인이 알아들었다.
“이건 어떻게 구했나?”
“오각주가 상단에 아는 사람이 좀 있지요. 이 환약이 상계의 대상들 사이에서도 인기랍니다.”
대정무각 오각주 상관청유는 상계에 또 다른 신분을 가지고 활동을 하고 있다.
최근 큰 거래를 했는데 상대가 답례로 보내왔다고 했다.
상관청유는 그렇게 좋은 약이라면 중랑에게 줘야 한다고 전해 왔고 마침 동약사가 있어 환약을 살펴보다 의심을 한 것이다.
“이게 영인고와 관련이 있다는 의심은 어떻게 한 거지?”
“환약을 불에 비춰 보시지요.”
당종이 초를 켜고 환약을 불빛에 비춰 보았다.
환약의 가운데 액체가 가득 차 있는데 가운데 뭔가 작은 쌀알 같은 게 보였다.
“으음.”
당종이 신음성을 흘렸다.
당장이라도 환약을 깨서 안을 살펴보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이거 정말 기묘한 수법이군. 환약 안에 액체라니.”
“그러니까 더 효험이 있는 약처럼 보여 복용을 하는 것이겠지요.”
“한심한 놈들.”
잠시 후 불취가 불려왔다. 당연히 당우화도 따라왔다.
단란한 두 사람을 보는 당종의 눈빛이 심통 맞았다.
“이게 뭔지 아느냐?”
당종이 보령호신환이 든 옥갑을 내밀었다.
불취는 대번 알아보았다. 인상을 쓰며 말했다.
“천령대법에 쓰는 환이로군요.”
당종과 동약사가 서로를 바라보았다.
동약사의 예상이 맞았다.
“대법에 들어가기 전 이 약을 복용합니다. 백 일 후 깨어나면 절대고수가 되어 있는 거죠.”
불취가 설명하였다.
“갈라 보자. 궁금해서 못참겠다.”
당종이 동약사에게 말했다.
은자 만 냥에 이르는 약이라니 주인의 허락을 구해야 했다.
“선배님이 아니면 누가 이 약을 가를 자격이 있겠습니까?”
동약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당종이 환약을 옥갑에 놓고 작은 칼을 꺼내 갈랐다.
-딱!
내력이 주입되자 환약이 딱 갈라졌고 액체가 흘러 옥갑에 담겼다. 점액질의 액체 안에 쌀알 같은 게 보였다.
“우웩!”
보고 있던 당우화가 징그러운지 토악질을 했다.
당종이 못마땅한 눈으로 그런 당우화를 쳐다봤다.
‘저것이? 독지네도 잘만 만지더니 남자가 생겼다고 내숭을 떨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았던 손녀가 점점 더 가증스러워지고 있다.
당종이 손녀를 심통 맞게 흘겨보고는 옥으로 만든 젓가락을 가져왔다.
그러더니 조심스럽게 쌀알을 품고 있는 점액질을 찔러 약간 덜어냈다.
“흐음, 달걀 흰자위와 정말 비슷하군.”
당종이 냄새를 맡아 보고 혀를 내밀어 맛을 봤다.
“뇌수 같기도 하고.”
“으허헉, 뇌수? 우웩!”
당우화가 꿱꿱, 거리다 밖으로 나갔다.
동약사가 그런 당우화를 보고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잠시 후 당종이 미간을 찌푸리다 말했다.
“이 액체는 뇌수가 분명해. 약재로 뇌수가 변질되는 걸 막은 거지.”
불취의 안색이 묘하게 변했다.
자신이 전에 먹은 환약에 사람의 뇌수가 있었다니 뱃속이 편할 리 없었다.
‘술, 술이 필요해!’
불취도 밖으로 나갔다.
당종의 안색이 침중하게 굳었다.
“이런 게 돌아다니고 있다는 거지?”
“정말 기가 막힌 수법이군요. 은자 만 냥이라면 권력자나 대부호 아니면 복용하지 못할 겁니다.”
“아니면 대파나 세가에서 고수를 키울 때 복용시키겠지.”
“이 알이 부화되어 뇌에 붙으면….”
“그놈은 천주의 수족이 되는 거고.”
“참으로 사악한 짓입니다. 이런 식으로 천하를 지배하려 들다니.”
“돈도 많이 들 텐데 뭐 하러 이렇게 번거롭게 할까? 황제에게 먹이면 될 텐데.”
당종이 퉁명스레 말하자 동약사의 안색이 굳었다.
동약사가 황급히 일어났다.
“가 봐야겠습니다. 알이 얼마 만에 부화하는지 알아내실 수 있겠습니까?”
“돼지 머리에 붙여 보면 알겠지.”
당종이 말했다.
동약사가 나가다 말고 돌아서더니 예를 취했다.
“참, 축하드립니다.”
“뭘?”
당종이 뜨악한 눈으로 동약사를 쳐다봤다.
“증손주를 보시게 된 것 말입니다.”
“증손주?”
“모르셨습니까? 거참 이상하군요. 저는 대번에 알겠던데.”
동약사가 고개를 갸웃거리는데 당종은 입을 딱 벌렸다.
‘뭐야? 그럼 우화 고것이?’
당종의 얼굴이 묘하게 일그러졌다. 웃는 건지 우는 건지 알 수 없었다.
***
“….”
우완청은 말이 없었다. 붉은 망사 로 가려 얼굴 표정을 알 수 없었지만 떨리는 어깨로 보아 눈물을 흘리고 있는 게 분명했다.
“….”
장선백 역시 자신을 찾아 수만 리를 헤맨 여인을 앞에 두고 뭐라 할 말이 없었다.
한참 서로를 보다 우완청이 입을 열었다.
“무사하셨군요.”
목메인 소리였으나 듣기 좋은 음성이었다.
장선백이 한숨을 내쉬었다.
“어쩌자고 이 먼 곳까지 온 것이오. 문주는 알고 계시오?”
“….”
“나를 몹쓸 사람으로 만드는구려.”
“누가 당신 탓을 한다 그래요?”
“어서 돌아가시오. 사람을 몇 붙여 드리리다.”
“싫어요!”
우완청이 대뜸 딱 잘라 말했다.
장선백이 길게 탄식을 하며 말했다.
“나는 살아가는 이유가 따로 있소. 누군가를 돌볼 처지가 아니오.”
“누가 돌봐 달라고 했나요?”
우완청의 목소리가 싸늘하게 굳었다.
“당신이 당신의 할 일을 하듯 나 역시 내 마음 가는 대로 하는 것뿐이에요.”
장선백은 우완청의 고집을 꺾을 수가 없었다.
강소군은 금의위 천호 시경안과 장사를 떠났다.
장선백은 번천맹 동지들이 모이는 걸 확인하고 뒤따를 예정이다.
금의위를 피해 사방으로 흩어졌던 번천맹 동지들이 속속 장사로 집결하고 있었다.
“귀찮게 하지 않을 테니 제게 신경 쓰지 마세요.”
우완청이 쏘아붙이고 가 버렸다.
장선백은 잠시 멍하니 서서 흘러가는 강물을 바라봤다.
그러다 쌍아의 큰 눈이 생각났다.
‘무사할까?’
아무래도 걱정이 되었다. 금의위는 자신들의 일을 처리할 때 목격자까지 없애기로 유명하다.
강소군이 막았다지만 뒤로 무슨 짓을 했을지 모른다.
장선백의 발걸음이 강가 쌍아의 집으로 향했다.
봉쌍아의 집은 비어 있었다.
“어디 갔나?”
텅빈 집을 둘러보는데 강쪽에서 삐걱, 삐걱 노를 젓는 소리가 들려왔다.
봉무량이 노를 젓고 앞에 쌍아가 앉아 있는 게 보였다.
나룻배가 닿고 봉무량이 짐을 들고 내렸다. 쌀과 고기를 사 온 모양이다.
봉쌍아가 장선백에게 다가왔다.
두려워하지는 않았지만 달가워하는 모습도 아니다.
봉쌍아는 무림인 자체를 싫어하였다.
“별일 없었니?”
“예. 무슨 일이신지요.”
봉쌍아가 마지못해 대답하였다.
“혹시 그놈들이 또 오지 않았나 걱정되서 와 봤다.”
“우리 집은 앞으로 조양문에서 보호한대요. 그러니 염려하지 않으셔도 돼요.”
봉쌍아가 말했다.
조양문이 보호해 준다는 사실도 마뜩잖은 듯했다.
“그렇구나. 그럼 안심하고 이만 가마.”
장선백이 돌아서는데 봉쌍아가 말했다.
“그때 나중에 나타난 사람하고는 어떤 사이에요?”
봉쌍아는 이제 열 살이 조금 넘었건만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또래보다 조숙한 면이 있었다.
“친구다.”
“그 친구분께 우리에게 신경 쓰지 마시라고 전해 주세요.”
장선백은 내심 씁쓸했다. 오늘 신경 쓰지 말라는 말을 두 번이나 연달아 들은 것이다.
“그렇게 전해 주마.”
장선백은 굳이 설명하려 들지 않았다.
마음이 굳어 있는데 아무리 설명해 봐야 변명으로밖에 들리지 않을 것이다.
장선백은 봉쌍아의 집을 나와 곧바로 번천맹 안가로 향했다.
***
시경안은 무척이나 과묵한 사내였다.
강소군 역시 마찬가지였기에 가는 내내 서로 말이 없었다.
시경안은 장선백을 함께 데려가지 못하는 것에 대해 불만이었다.
하지만 구룡금패를 지닌 강소군의 명을 거역할 수는 없었다.
가는 길은 편했다.
마을에 도착하면 객잔이 미리 예약되어 있었다. 금의위들이 암중에서 따르고 있었던 것이다.
“오늘은 저기서 묵기로 하죠.”
시경안이 앞에 보이는 마을을 보며 말했다.
마을 쪽으로 가는데 앞에 두 사람이 길가에 앉아 있었다.
“…!”
둘 다 나이가 지긋한 노인들이었는데 옷차림은 대조적이었다.
한 사람은 길가 땅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있었는데 마을 촌로가 일하다 말고 쉬는 듯 보였다.
다른 한 사람은 어디서 났는지 의자를 구해 앉아 있었는데 검은 장포를 입고 있었다.
“만만치 않은 것 같소.”
시경안은 꼭 할 말만 하는 사내였다.
강소군은 두 사람의 무위가 자신에 비해 떨어지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촌로는 호리병을 들고 있었는데 한 모금 마시고는 강소군을 바라보았다.
순간, 강소군은 머릿속 영인고가 꿈틀거리는 걸 느꼈다.
사실 영인고의 움직임은 제아무리 고수라고 하더라도 감지할 수가 없다.
뇌에 달라붙어 신체의 일부나 마찬가지다.
강소군이 금단진공으로 한쪽 의식을 영인고에 집중하고 있기에 느낌으로 알아내는 것뿐이다.
‘천황성이로군.’
강소군은 영인고가 움직이는 걸 느끼자 본능적으로 천황성의 고수라고 짐작했다.
“오래 기다렸다. 왜 이제 오나?”
장포의 노인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기다리느라 무척 지루했다는 표정이다.
강소군은 장포의 노인을 바라보다 문득 백정무의 말이 떠올랐다.
백정무가 말한 천황성 사자와 얼추 비슷했던 것이다.
‘삼황오제 위에 또 고수가 있었다는 건가?’
강소군은 천황성의 무력이 아직 모두 밝혀지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검황 등을 비롯해 군웅각 고수들만으로도 무림을 휘어잡을 수 있는데 다시 새로운 고수들이 등장하니 절로 탄식이 나왔다.
“어디서 온 누구냐? 신분을 밝혀라!”
시경안이 외쳤다.
장포의 노인이 시답지 않은 말을 들었다는 듯 앞으로 걸어 나오더니 말했다.
“네가 알 것 없다. 어서 오기나 해라.”
시경안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백 장 거리에서 수하들이 따르고 있을 것이다.
“흐흐, 수하들을 기다리나? 그들은 먼저 가서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저세상에 가서 마저 대장 노릇이나 하려무나.”
시경안의 안색이 굳었다.
강소군은 영인고의 움직임이 점점 더 강해지는 걸 느꼈다.
‘봉인을 풀어 볼까?’
아마도 어미고로부터 명을 받아 전달을 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강소군이 의식의 한쪽을 완전히 봉쇄했으니 소용이 없던 것이다.
강소군은 영인고를 탐색하조 싶은 충동을 털어 냈다. 강적을 앞에 두고 모험을 할 수는 없었다.
잠시 망설이는 사이 시경안이 먼저 몸을 날렸다.
수하들이 위험에 처했다니 속전속결로 끝내고자 한 것이다.
-쉬이익!
금의위 천호답게 허공을 가르는 도에 묵중한 기운이 실렸다.
무림에서도 이를 막을 만한 자는 일파의 대종사 정도일 것이다.
그러나 장포의 노인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시선을 강소군에게 주었다.
-샤샤샥!
장포의 노인 앞에 닥친 도가 갑자기 천변만화하였다.
허공에서 도기가 형성되어 장포 노인을 향해 짓쳐들었다.
“호오, 강아지 새끼인 줄 알았더니 범이었나?”
장포 노인이 중얼거리며 왼손을 휘저었다.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건만 시경안의 도기가 사라졌다.
-퍽!
“큽!”
시경안이 답답한 신음성을 흘리며 뒤로 삼 장이나 물러났다.
대체 무슨 수를 썼는지 제대로 보지도 못했다.
시경안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이런 고수가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던 것이다.
“비켜서시오. 당신 상대가 아니오.”
강소군이 천천히 말에서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