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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소군-220화 (220/250)

220

두 사람은 밤이 깊어서야 산을 내려왔다.

장선백은 운기요상을 하여 어느 정도 부상을 추슬렀으나 완전히 회복하려면 시간이 필요했다.

“안가로 갈 건가?”

강소군이 묻자 장선백이 고개를 저었다.

“금의위들이 여기까지 추적해 왔다면 안가가 노출될 수도 있어. 그럼 동지들이 위험해지지. 차라리 객잔에 드는 게 나을 것 같아.”

그러나 객잔 역시 위험하기는 마찬가지다.

강소군이 곰곰 생각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묵을 만한 곳이 있을 것 같아.”

한밤중 조양문 대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앞에 문을 지키는 무인이 넷이나 있었다.

흑천맹주가 와 있으니 경계를 늘린 것이다.

“누구냐?”

그때, 무인 하나가 횃불을 들어 어둠 속에서 오는 이를 확인하고는 화들짝 놀랐다.

“검신 대협, 아니십니까?”

무인이 안으로 보고하고 조왕천이 나오기까지 그리 많은 시간은 걸리지 않았다.

“이 밤중에 무슨 일이십니까?”

조왕천이 뜨악한 눈길로 강소군을 보고 물었다.

“안으로 들어가서 이야기하지.”

강소군이 마치 제집처럼 말하자 조왕천은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한 번 기가 꺾인 뒤부터는 이상하게 아랫사람처럼 따를 수밖에 없었다.

“여기가 조양문이라고 장사제일의 방파라네. 아무나 드나들 수 없는 곳이지.”

강소군이 장선백에게 말했다.

조왕천이 객청으로 가려 하자 강소군이 말했다.

“밤이 깊었으니 자세한 이야기는 내일 하기로 하고 오늘 쉴 곳을 내주었으면 하오.”

“아, 그러지요.”

조왕천은 강소군의 의도를 몰라 찜찜해하였으나 고장추가 있는데 무슨 짓을 하지는 않을 거라 여겼다.

조왕천은 결국 두 사람을 자신이 애지중지하는 별원까지 직접 안내하였다.

***

홍의발은 장선백에 대해 은밀히 알아보고 금의위와 대적하고 있음을 알자 고장추에게 서둘러 복귀할 것을 건의하였다.

“왜 갑자기 가자는 것이냐? 기왕 나온 김에 인근 소속 문파를 둘러보자.”

고장추는 홍의발이 갑자기 복귀를 서두르는 게 못마땅했다.

“중양절까지 본맹의 무력을 최대한 키워야 합니다.”

홍의발의 말을 들은 고장추가 결국 수용하였고, 두 사람은 다음 날 서둘러 떠났다.

떠나기 전 조왕천에게 주의할 것을 일렀다.

“아무래도 금의위가 쫓고 있는 자 같소. 여기에 두면 위험하오. 어서 내보내는 게 좋을 것이오.”

조왕천도 눈치가 없는 자가 아니었다.

온종일 고심하다 강소군을 찾아 말했다.

“제가 의천맹에 사절로 가게 되었습니다. 제가 없으면 아무래도 계시는 게 불편하실 겁니다만….”

“….”

강소군은 별말이 없었다.

‘그러니까 이제 가 달라고.’

조왕천은 강소군을 자신의 본거지에 두고 떠나는 게 꺼림칙했다.

“우린 괜찮소. 잘 다녀오시오.”

강소군은 조양문을 떠날 생각이 없었다.

지금 장선백에게 가장 안전한 곳이 조양문이다.

장선백이 회복을 하는 동안 눌러앉아 있을 셈이다.

“다녀오는 동안 잘 부탁드립니다.”

조왕천이 하는 수 없이 물러났다.

조왕천은 아들 조고와 조원에게 단단히 일렀다.

“검신이 우리 문에 머물고 있다는 건 나중에 큰 힘이 될 것이다. 비록 정파 쪽 사람이지만 누구나 두려워하는 자와 친분이 있다는 걸 보여 주는 셈 아니냐? 각별히 대우해야 할 것이다.”

조고와 조원은 내심 불만스러웠으나 토를 달 수 없었다.

강소군이 감히 넘볼 수 없는 고수이지만 당한 입장에서는 감정이 좋지 않았다.

조왕천이 한숨을 쉬며 조고에게 말했다.

“너는 그간 소문주로 역할을 잘 해 왔다. 그런데 이번에 하마터면 큰 화를 불러올 뻔했지. 한 번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다. 검신에게 수모를 당했지만 그건 허물이 되지 않는다. 그저 자중하고 힘을 길러야 할 것이야.”

조왕천이 신신당부를 하고 불안한 마음으로 길을 떠났다.

***

장선백은 일주일 정도 지나자 회복이 되었다.

“몸 좀 풀고 싶은데 연무장이 있나?”

조양문에는 당연히 연무장이 여럿이다.

장선백은 장창을 잡고 몸을 풀기 시작했다.

-쉭! 쉬쉭!

창이 바람을 갈랐다.

강소군은 장선백이 창을 휘두르는 걸 보다 문득 영인고가 꿈틀하는 걸 느꼈다.

그동안 강소군은 끊임없이 금단진공을 운용하여 영인고에 대한 통제 능력을 키웠다.

새끼고가 살아 있으니 천주는 그의 머릿속을 들여다볼 수 있을 것이다.

단지 강소군이 금단진공으로 의식을 나눴기에 아무 생각 없는 백지와 같은 의식만 들여다볼 수 있을 뿐이다.

강소군은 머릿속에 영인고가 있다는 사실을 천주도 알고 있다고 가정하고 통제력을 잃지 않기 위해 늘 주의를 기울이고 있었다.

어찌 된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천주는 새끼고를 통제하려 들지 않고 있다.

덕분에 강소군은 영인고를 쉽게 통제할 수 있었다.

이제는 영인고의 움직임뿐만 아니라 감정을 느낄 수도 있을 정도가 됐다.

그러나 그게 진짜 영인고가 느끼는 감정인지 아니면 자신이 그리 생각한 것뿐인지 확신을 할 수는 없었다.

방금의 경우도 새끼고가 장선백의 창술에 반응한 것 같았다.

강소군의 머릿속에 문득 스치는 생각이

‘새끼고를 통해 어미고와도 감응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된다면 역으로 천주의 내면도 살필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천주가 새끼고를 통제하지 않는 것도 그런 우려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영인고에 대해 워낙 아는 바가 없으니 그저 추측만 할 따름이었다.

“무슨 생각을 그리 하는가?”

장선백이 장창을 들고 서서 손짓을 했다.

“오랜만에 한번 겨뤄 볼까?”

“좋지. 이제는 창으로도 내 상대가 안 될걸?”

“흐흐. 무림에서 검신이라고 추앙을 받더니 오만해졌군.”

“그럴 자격이 있다는 걸 보여 주지.”

장선백을 만난 이후 강소군은 지난날로 돌아간 듯했다. 스스로도 바뀌어 가는 걸 보며 내심 다행으로 여기는 중이다.

-챙!

-채챙!

-퍼퍼퍽!

두 사람이 창술을 겨루니 연무장에 날카로운 창기가 번뜩였다.

얼마나 지났을까?

-챙!

장선백이 강소군의 창을 쳐내며 뒤로 물러났다.

“이러다 끝이 없겠군. 결판은 나중에 내자고.”

장선백의 창술도 화경에 들어선 듯했다.

그가 얼마나 노력했는지 강소군은 알 것 같았다. 기연이나 영약의 도움 없이 젊은 나이에 화경에 든다는 건 극히 드문 일이다.

“칠독문의 도움을 좀 받았지.”

장선백이 순순히 실토하였다.

“하지만 너야말로 불가사의로군. 대체 어떻게 된 거야?”

강소군은 대답하지 않았다.

사람들과의 관계가 회복이 되며 무총에서의 기억은 점차 희미해지고 있었다.

그래도 장선백이 묻자 잠시 썩은 피 냄새가 가득했던 무총의 기억이 스쳤다.

결코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 기억이다.

“그보다 그 부녀는 어떻게 만났지?”

강소군은 봉무량 부녀가 내심 마음에 걸렸다.

“우연히. 배를 얻어 탄 거지. 무사히 돌아갔어야 할 텐데.”

장선백이 강가 마을 어귀에서 그들 부녀가 살고 있었노라고 말했다.

“아무튼 놀라운 솜씨였어. 정신이 온전하지 않은 자가 그런 고수였다니. 주화입마를 입은 게 아닐까? 너야말로 어떻게 그들을 알지?”

“그와 겨룬 적이 있어서. 권각의 고수였지.”

“그렇군.”

장선백은 더 묻지 않았다. 강소군의 표정이 좋지 않은 걸 보고 사연이 있음을 짐작한 것이다.

강소군은 굳이 봉무량을 정체를 밝히지 않았다.

그때 조고가 연무장으로 찾아왔다.

“여기 계셨군요. 손님이 오셨습니다.”

강소군이 조고를 따라 객청으로 가니 못 보던 이가 기다리고 있었다.

훤칠한 키에 잘 단련된 몸이 고수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서른 중반은 되어 보였는데 눈매가 무척 날카로웠다.

무인이 강소군을 보더니 포권을 하였다.

“강부 강휘 공자십니까?”

“그렇소만.”

강소군이 의아한 시선으로 보자 무인이 영패를 꺼내 보여 줬다.

금의위 신분을 증명하는 패였다.

“천호 시경안입니다.”

금의위 천호라면 결코 낮은 신분이 아니다.

강소군이 황실의 인척이 아니었다면 이렇듯 공손하게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무슨 일로 찾아오셨소?”

“구룡금패를 지니고 계시다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저희가 받은 명 또한 황제페하께서 내리신 것입니다. 두 명령이 충돌하니 난처하군요.”

시경안은 장선백 때문에 찾아온 것이다.

“그 사안이라면 내가 직접 황제폐하를 만나 이야기하겠다고 했을 텐데.”

“황실과 조정의 법도를 아실 겁니다. 황명을 받은 입장을 감안해 주시지요.”

시경안은 정중하지만 분명한 자였다.

금의위 천호는 무공만으로 올라갈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함께 경성으로 가는 게 어떻겠습니까?”

강소군이 무림에서 어떤 위치인지 이미 조사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당당하게 나올 수 있는 건 황제가 뒤에 있기 때문이다.

강소군이 잠시 생각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같이 가도록 하지.”

강소군은 그렇지 않아도 황제를 만날 생각이었다.

강소군은 조정에서 암약하는 세력의 수장 위 태사를 죽였다.

하지만 천황성의 행보로 보아 그 자리를 누군가 대신하고 있을 것이다.

중양절까지는 아직 시간이 있다. 그사이 조정에 숨은 천황성 세력을 뿌리 뽑을 생각이다.

***

의천맹 당종의 거처.

당종이 옥갑 안의 영인고를 보며 궁리를 하고 있는데 바깥에서 인기척 들렸다.

“동약사 어른이 오셨습니다.”

“들어오라 해라.”

당종이 옥갑을 닫아 비밀금고에 넣고 동약사를 맞았다.

“잘 지내셨습니까?”

“못 지낼 이유가 없지. 무슨 일인가?”

동약사가 품에서 옥갑을 꺼냈다.

“그게 뭔가?”

“요즘 은밀하게 거래되는 환약입니다.”

동약사가 옥갑을 열어 보여 주었다.

회백색의 환약이었다.

“보령호신환이라고 하더군요.”

“보령호신환?”

“이걸 먹으면 정신이 맑아지고 육체가 강건해진답니다. 수명을 수십 년은 늘려줄 수 있다는 거죠.”

“흥! 이게 대환단이라도 된다는 말인가?”

당종이 코웃음을 쳤으나 옥갑을 들어 환약의 냄새를 맡아 보았다.

“이거 싸구려 약 아닌가?”

당종이 인상을 찌푸렸다.

“싸구려 약은 아니죠. 들어간 약재가 만만치 않잖습니까?”

동약사가 말했다.

당종에게는 하찮아 보이지만 일반 사람들은 구하기 힘든 고가의 약재가 들어갔다.

“하긴, 별 약이 다 있으니까. 허약한 몸에 도움은 되겠군. 역시 약사들은 허풍이 세단 말이야. 수명을 수십 년 연장시켜 준다니.”

“그게 무려 은 만 냥에 거래되고 있습니다.”

“뭐라고?”

당종은 기가 막혔다.

“완전 사기꾼들이잖아? 은 천 냥도 과한데.”

“그래도 고관대작이나 대부호, 지방의 토호들은 암암리에 이를 구하려고 혈안이랍니다.”

“어떤 놈이 이런 짓거리를 하는 거지?”

당종이 인상을 썼다.

가짜 약을 파는 놈들은 많다. 대개 시장통에서 만병통치약 운운하는 돌팔이들이다.

하지만 권력과 부를 지닌 자들에게 가짜 약을 팔았다가 잘못되면 곱게 죽지 못하니 이런 짓을 할 자가 없다.

게다가 들어간 약재도 시중에서 제법 고가에 거래되는 것들이다. 그중에는 쉽게 구하기 어려운 약재도 섞여 있다.

“환약을 들어 살펴보시죠.”

동약사가 말했다.

당종이 이상하다는 듯 쳐다봤다. 환약은 먹기 직전이 아니면 손으로 만지지 않는다. 천이나 유지 등에 싸서 다루는 게 보통이다.

당종이 환약을 들어 살펴보다 미간을 찌푸렸다.

“안에 액체가 들어있는 것 같은데?”

“그게 보령보신환의 정수랍니다.”

“공청석유라도 들었단 말인가?”

당종이 환약을 흔들며 물어보았다.

“아무래도 영인고와 관련이 있는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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