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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소군-214화 (214/250)

214

“저년이 맞습니다. 형님, 저년의 암기에 원이가 당했습니다.”

청색 장삼 청년 뒤에서 한 사내가 나와 붉은 망사의 여인을 가리켰다.

“호들갑 떨지 마라.”

청색 장삼의 청년은 조원의 형 조고였다.

조고가 붉은 망사의 여인에게 다가가자 여호위 둘이 일어나 경계를 하였다.

조고는 일 장 거리에 서서 포권을 하였다.

“조양문방의 조고라고 하오. 내 동생이 귀하와 시비가 벌어졌다고 들었소.”

붉은 망사의 여인이 조고를 바라보았다.

“방명을 여쭤봐도 되겠소?”

여인은 대답하지 않았다.

조고가 다시 말했다.

“사소한 시비에 독수를 쓰다니. 과하다고 생각지 않소? 해독약을 준다면 순순히 돌아가겠소.”

붉은 망사의 여인은 들은 척 만 척하였다.

조고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못난 아우가 낭자에게 무례를 범한 것은 내가 대신 사과하겠소. 하지만 사람 목숨까지 거둘 일은 아니잖소.”

조고는 진중하였다.

“여기서 백 리까지 조양문의 영역이오. 서로 피를 보는 일은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오. 해독약만 준다면 무사할 것을 보장하겠소.”

그러자 붉은 망사의 여인이 입을 열었다.

“해독약은 필요 없다. 열흘 후에 깨어날 것이다.”

붉은 망사의 여인은 한어를 할 줄 알았다. 억양이나 말투가 약간 이상했으나 충분히 알아들을 수 있었다.

조고가 미간을 찌푸리더니 말했다.

“낭자를 본문으로 모시고자 하는데 어떻소? 열흘 후 아우가 깨어나면 보내드리리다.”

“싫다.”

여인이 딱 잘라 거절하였다.

조고는 아우가 당한 독이 극독이 아니라는 걸 알자 분위기가 바뀌었다.

“늘 이렇게 예를 갖춰 주는 게 아니오.”

조고의 태도가 바뀌자 여호위들이 긴장하였다. 절로 허리에 찬 만도(彎刀)에 손이 갔다.

조고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직 이른 저녁이라 객잔에 강소군과 소걸아밖에 없었다.

조고가 옆에 있던 무인에게 눈짓을 보냈다. 그러자 무인이 소걸아에게 소리쳤다.

“너희는 나가라!”

소걸아가 젓가락으로 음식을 집어 먹으며 중얼거렸다.

“부끄러운 짓을 하는 건 아나 보군.”

조고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자 무인이 팔을 걷고 다가갔다.

“어른이 말씀하시는데 어린놈이 뭐라고 구시렁대는 거냐?”

워낙 작은 목소리로 소곤거리듯 말해서 무인은 듣지 못한 모양이다.

소걸아가 화들짝 놀라 말했다.

“아, 저 말입니까? 제게 하는 말인지 몰랐습니다. 뭐라 하셨습니까?”

“여기에 너밖에 누가 더 있단 말이냐? 어서 썩 꺼져라!”

“예? 여기에 왜 저밖에 없단 말입니까? 저 말고 나머지는 사람이 아닌가 보군요.”

“이 자식이? 뭐라는 거야?”

무인이 다가가서 소걸아의 뒤통수를 갈기려 하였다.

“어? 젓가락이 떨어져 있네?”

소걸아가 갑자기 허리를 숙이자 무인의 손이 빗나갔다.

소걸아는 바닥에 떨어진 젓가락을 주워 들더니 계산대에서 잔뜩 긴장하여 이쪽을 보고 있는 춘삼을 향해 외쳤다.

“춘삼아! 청소를 제대로 해야지. 젓가락이 굴러 다니잖냐?”

“이놈이?”

무인이 얼굴이 뻘게져서 소걸아의 머리통을 내려쳤다.

“어이구야!”

소걸아가 놀라 손을 저었다. 손에 젓가락이 들려 있음은 물론이다.

-푹!

공교롭게도 무인의 주먹이 소걸아가 내민 젓가락을 내리쳤다.

“크윽!”

무인이 젓가락에 찔린 자신의 손을 잡고 비명을 질렀다.

조고가 험악한 눈으로 이쪽을 보았다.

그의 눈이 소걸아를 지나 가만히 앉아 있는 강소군의 등으로 향했다.

소동이 벌어졌는데도 꿈쩍 않는 걸 보고 만만치 않은 상대라고 생각한 듯 무인에게 일렀다.

“물러나라.”

조고가 소걸아를 향해 말했다.

“어린 친구가 제법이군. 하지만 여기가 조양문의 관할이라는 걸 모르나?”

“헉! 그 흉악한 조양문의 영역이라고요?”

소걸아가 두렵다는 듯 주위를 둘러보았다.

조고의 얼굴이 싸늘하게 굳었다.

“일부러 시비를 거는 거로군. 데려와 무릎 꿇려라!”

조고의 명이 떨어지자 무인들이 우르르 몰려가는데 소걸아가 몸을 훌쩍 날려 붉은 망사의 여인에게 다가갔다.

붉은 망사의 여인이 흠칫 놀라 소걸아를 쳐다봤다.

소걸아가 젓가락을 내밀었다.

“여기에다 독 좀 묻혀 주시죠? 아주 독한 걸로.”

붉은 망사의 여인이 고개를 끄덕이자 여호위 중 하나가 품에서 약병을 꺼냈다.

그러고는 소걸아에게서 젓가락을 받아 약병에 넣었다 빼더니 돌려주었다.

젓가락 끝이 새파랗게 물들었다.

“이야, 역시 칠독문은 대단하군. 이건 찔리면 즉사하겠는데?”

소걸아의 말에 조고는 물론이고 붉은 망사의 여인도 흠칫, 놀랐다.

조고는 붉은 망사의 여인 일행이 칠독문이라는 사실에 놀랐고 여인들은 자신들의 출신을 소걸아가 알아보니 놀랐다.

소걸아가 젓가락을 내밀었다.

“누구 시험해 보실 분?”

소걸아가 젓가락을 휘젓자 무인들이 피했다.

조고는 눈살을 찌푸렸다.

붉은 망사의 여인이 칠독문 출신이라는 걸 알자 내심 조원을 욕했다.

‘미친놈! 아무리 여색을 밝혀도 사람을 가려야지.’

조고는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었다.

칠독문은 당가와 쌍벽을 이루는 독문이다. 함부로 공격했다가 몰살을 당할 수도 있다는 걸 잘 안다.

조고의 태도가 다시 바뀌었다. 정중하게 포권을 하고 말했다.

“칠독문의 고수셨군요. 아우가 몰라보았으니 죽어도 쌉니다.”

“자기도 몰라봤으면서….”

소걸아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내가 오지랖이 넓어 여러 사람 살렸지. 이 깊은 뜻을 알기나 할는지….”

소걸아는 마치 나 아니었으면 너희는 모두 중독되어 죽었을 것이란 표정이었다.

조고는 입맛이 썼다.

“실례했소.”

조고가 몸을 돌려 나갔다. 기세등등하게 올 때와는 사뭇 달랐다.

“조양문이 급성장을 했다더니 이유가 있었군요.”

소걸아가 곧바로 물러나는 조고를 보면서 중얼거렸다.

“독에 대한 방비를 하고 다시 올 겁니다.”

소걸아가 붉은 망사의 여인이 들으라는 듯 크게 소리 내어 말했다.

붉은 망사의 여인이 고맙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소걸아가 어깨를 으쓱하고는 술잔을 들어 벌컥 마셨다.

***

강소군은 지붕에서 나는 소리에 잠에서 깨었다.

객잔은 삼 층이었는데 공교롭게도 강소군이 묵는 방이 삼 층에 있었다.

소걸아는 부두에 자신이 묵는 처소가 따로 있노라며 갔다.

-투툭!

조심스레 기왓장을 밟는 소리가 들렸다.

강소군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따지고 보면 화근은 조원이었다. 그런데도 조양문은 체면을 구겼다고 생각했는지 집요하게 보복을 하려 든다.

“…!”

어느 순간 강소군의 안색이 굳었다.

역겨운 기름 냄새가 풍겼다.

강소군이 재빨리 창문으로 나가 지붕으로 올랐다.

흑의 인영 네 명이 나무통을 들고 지붕에 기름을 뿌리고 있었다.

강소군이 올라오자 흑의인 하나가 쏜살같이 다가와 칼을 휘둘렀다.

-퍽!

강소군의 주먹에 흑의인은 그대로 쓰러지더니 떼굴떼굴 굴러 지붕에서 떨어졌다.

그러자 다른 흑의인들이 나무통을 버리고 지붕에서 뛰어 내렸다.

-화라락!

뒤이어 불화살이 날아왔다.

강소군이 날아올라 불화살을 쳐냈다.

사방에서 날아온 불화살이 튕겨 나갔다.

강소군이 지붕에 내려서며 아래쪽을 보았다.

골목 끝에 조고가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우당탕!

붉은 망사 여인 일행도 상황을 알아챘는지 뛰쳐나오는 소리가 들렸다.

강소군은 그대로 몸을 날렸다. 밤하늘을 유유히 날아 단숨에 골목 끝에 내렸다.

“헉!”

조고의 안색이 해쓱해졌다. 객잔과 자신이 있는 곳까지 무려 십여 장 거리인데 상대는 단숨에 날아왔다.

‘진짜 고수를 알아보지 못했구나!’

후회해도 이미 늦었다.

강소군의 목소리는 냉랭했다.

“객잔을 통째로 불태울 셈이었나?”

조고가 칼을 빼 들며 외쳤다.

“쳐라!”

조양문의 무인들이 일제히 강소군을 향해 달려들었다.

순간, 조고는 몸을 빼내 달아났다. 수하들이 강소군을 막는 사이 도주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강소군이 더 빨랐다. 어느새 조고의 멱살을 잡았다.

무인들은 조고가 잡히자 감히 다가오지 못했다.

-쨍강!

조고는 강소군이 엄청난 고수라는 걸 알자 칼을 버렸다.

“죽이시오.”

조고가 눈을 감았다.

강소군이 조고를 끌고 객잔 반점으로 들어갔다.

소동이 벌어지자 춘삼과 주방 숙수, 객잔 주인도 뛰쳐나와 있었다.

그들은 지붕에서 기름이 흘러내리자 사색이 되었다.

“너희는 기름을 모두 닦아라. 안 그러면 이자는 죽는다.”

강소군이 조양문 무인들에게 일렀다.

“시키는 대로 해라.”

강소군이 당장 죽일 것 같지 않자 조고가 망설이는 수하들에게 명령했다.

반점으로 들어간 강소군이 조고의 무릎을 찼다.

-퍽!

조고가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강소군이 그 앞에 의자를 가져와 앉았다.

“조양문의 후계자라고 들었다. 네가 잡혔으니 문주가 오겠군.”

조고의 얼굴이 흙빛이 되었다.

잠깐 본 강소군의 무위로 보아 조양문이 모두 몰려온다 해도 상대가 되지 않을 것이다.

“살려 주신다면 다시는 오지 않겠습니다.”

“그럴 이유가 있나? 사소한 일로 멀쩡한 객잔을 불태우려는 걸 보면 두고두고 후환이 될 것 같군.”

“나, 조고는 한 번 한 말은 지키는 사람이오.”

“그건 나도 그렇지.”

조고가 잠시 머리를 굴리다 말했다.

“조양문은 장사제일문파요. 게다가 뒤에는 흑천맹이 있소. 당신이 아무리 고수라고 해도 흑천맹을 감당할 수는 없을 것이오.”

“내가 누군지 아나?”

“….”

조고는 원래 무모한 자가 아니었다. 다만 강소군의 무위가 보통 사람의 상상을 뛰어넘은 것뿐이다.

조고의 머릿속에 이럴 만한 젊은 고수는 많지 않다.

‘혹시, 혈마?’

하지만 입 밖에 낼 수가 없었다.

혈마는 사람 목숨을 파리 잡듯 한다고 했다.

조고는 속으로 제발 강소군이 혈마가 아니기를 빌었다.

“대협의 존성대명을 듣고 싶습니다만.”

“….”

강소군은 대꾸하지 않고 뭔가 생각하더니 말했다.

“조양문도 흑천맹 소속인가?”

“아버님이 흑천맹 장로요. 장로 문파가 당했다면 가만있지 않을 것이오.”

“흠. 잘됐군.”

강소군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멀찌감치서 지켜보는 춘삼에게 일렀다.

“술하고 간단한 안주 좀 가져오게.”

춘삼이 부리나케 주방으로 가서 술과 말린 고기를 가져왔다.

강소군은 조고를 무릎 꿇린 채 술을 따라 마셨다.

조고는 강소군이 자신의 아버지를 기다리고 있음을 알았다.

할 수만 있다면 소리쳐서 오지 말라고 하고 싶었다.

“오늘 일은 칠독문 분들게 백 배 사죄하고 금전을 배상하겠소. 다시는 귀찮게 하지 않을 것이오.”

조고가 다시 말했으나 강소군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 사이 붉은 망사 여인이 다가오더니 강소군 맞은편에 앉았다.

“중원 사람들은 참 독하군요. 우리만 있는 것도 아닌데 불을 질러 다른 사람까지 죽이려 하다니.”

“그런 사람만 있는 건 아니오. 이자가 독한 것이지.”

조고가 변명하듯 말했다.

“그러고 싶어 그런 건 아니오. 문파를 꾸려 나가려면 어쩔 수 없이 하고 싶지 않아도 해야 되는 일이 있소.”

조양문 입장에서는 직계가 바깥에서 당하고 왔는데 복수를 하지 않으면 면이 서지 않는다.

힘으로 유지되는 흑도 방파는 되로 받으면 말로 갚아 줘야 한다는 철칙이 있다.

그때 소걸아가 뛰어 들어왔다.

“조양문이….”

소걸아가 무릎을 꿇고 있는 조고를 보고는 말을 멈췄다.

소걸아는 자신의 거처에 있다가 조양문 움직임이 수상하자 알리러 달려온 것이다.

“죄다 몰려오고 있네요. 자기들 소문주가 무릎 꿇고 있는 걸 보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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