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소군-210화 (210/250)

210

“…!”

도제의 죽은 고를 보자 강소군의 머릿속에 있는 고가 요동쳤다. 머리가 깨어질 듯 아파 왔다.

강소군이 그 자리에 주저앉아 눈을 감았다.

기운을 끌어 고를 감쌌다.

-진정해.

그러자 요동치던 고가 점차 잠잠해졌다.

강소군은 몇 가지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새끼 고들도 서로 감응하는 게 분명하군.’

그가 대정무각으로 달려올 수 있었던 것도 머릿속 고가 반응을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보고 듣고 느끼는 걸 고도 그대로 똑같이 보고 듣는 게 아닐까?’

강소군은 천주가 단순히 고수들을 지배하기 위해 고를 심은 게 아니라고 추측했다.

강소군이 갑자기 운기조식에 들어가자 노이칠과 남궁령이 호법을 섰다.

동약사는 중랑을 살피고 다른 각주들과 대정무각 무인들은 주위를 수습하였다.

잠시 후 강소군이 눈을 떴다.

“괜찮아요?”

남궁령이 걱정스러운 듯 물었다.

강소군이 고개를 끄덕이다 말고 얼굴을 굳혔다.

다시 머릿속 고가 반응을 한 것이다.

‘의천맹!’

강소군이 벌떡 일어났다.

노이칠이 의아한 눈길로 강소군을 봤다. 아무래도 정상적이지 않아 보였던 것이다.

강소군은 자세한 이야기를 할 여유가 없었다.

“의천맹도 습격을 받은 것 같군요.”

-휙!

강소군의 신형이 사라졌다.

“정말 신출귀몰이라는 말밖에 나오지를 않는군.”

노이칠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저도 가 봐야겠어요!”

남궁령이 달려나갔다.

“같이 가세.”

노이칠도 뒤를 따랐다.

***

제갈선과 상관청유는 대정무각에 천황성 고수들이 쳐들어왔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남궁세가와 당종 등과 함께 무력대를 꾸려 떠났다.

제갈선의 지원군이 떠나고 이각 정도 지났을까?

-콰앙!

벼락 치듯 경기가 터지고 짓고 있던 대문이 박살이 났다.

“무슨 일이냐?”

주위에 있던 무인들이 튀어나왔다.

“크악!”

“적….”

검황과 검제, 도황, 그리고 권제 네 사람은 들이닥치마자 무차별 살상을 감행하였다.

네 사람의 신형은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빨랐다.

무인들은 영문도 모르고 쓰러졌다.

“적이다!”

수십 명이 죽고 나서야 사방에서 무인들이 몰려나왔다.

그러나 칼 한 번 휘두르지 못하고 죽는 이들이 부지기수였다.

무인들이 나오자 네 사람은 약속이라도 한 듯 사방으로 흩어졌다.

의천맹의 고수들도 황급히 달려 나왔다.

철권호는 자신에게 달려오는 권제를 보았다.

“철권호! 네놈의 권을 언젠가는 보고 싶었다. 마침 오늘이 그날인가 보구나!”

권제는 달려오다 말고 도망치는 무인들의 머리통을 터뜨렸다.

“이놈!”

철권호가 호통을 치며 마주쳐 갔다.

-콰쾅!

두 사람의 권이 격돌을 하였다.

도황은 대연무장 복판에 버티고 섰다.

의천맹 무인들이 포위하였으나 눈 하나 깜짝 않고 도를 휘둘렀다.

-쉬이이익!

섬뜩한 칼바람 소리가 날 때마다 서너 명이 쓰러졌다.

의천맹 무인들은 기가 질려 가까이 갈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멈춰라!”

도황의 앞에 조운룡이 내려섰다.

“네가 화룡도라는 애송이로구나.”

아직 내상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조운룡은 낯빛이 창백했다.

조운룡이 주위를 돌아봤다. 도에 잘려 나간 팔다리나 몸통이 끔찍했다.

도황은 강소군에게 팔이 잘렸다가 간신히 붙인 뒤 성격이 한층 포악해졌다.

“네놈도 쪼개 주마!”

-번쩍!

칼빛이 번뜩였다.

도황이 선 채로 도를 내리쳤으니 일 장 거리 조운룡에게 닿을 리가 없다.

그럼에도 서늘한 기운이 허공을 가르며 다가왔다.

조운룡이 한 발을 내디디며 온 힘을 다해 도를 후려쳤다.

-콰앙!

“크읍!”

조운룡의 입에서 대뜸 피보라가 뿜어져 나왔다.

그러잖아도 부상을 당했는데 도황의 막강한 공력에 단박에 내상을 입고 말았다.

“퉤, 산돼지 같은 놈이 힘 하나는 장사군.”

조운룡이 입안에 고인 피를 뱉어내며 말했다.

“그걸 막아?”

도황이 오히려 놀랐다.

“그렇다면 이것도 막아 봐라!”

도황이 도를 고쳐 잡는데 커다란 도가 날아와 조운룡의 앞에 꽂혔다.

“…!”

뒤이어 우문극이 전각 뒤에서 걸어 나왔다.

“도를 도답게 쓰지 못하는 놈은 백정이나 다를 바 없지.”

우문극이 주위의 참상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흐흐. 젊은 놈으로 안 되니 늙은 놈이 나서는 건가?”

우문극이 청석에 꽂힌 도를 뽑았다.

“생사경이라는 말을 들어 봤는데 오늘 견식을 할 수 있게 되었군.”

“사부님, 제가….”

조운룡의 말에 우문극이 돌아봤다.

“걱정 마라. 이 사부가 저놈에게 도라는 건 단순한 칼질이 아니라는 걸 알려 줘야겠다.”

우문극이 손짓을 하자 언제 나타났는지 석병도가 조운룡을 부축하고 뒤로 물러났다.

그 뒤로 곤륜파의 도사들도 나왔다.

우문극이 도를 겨눴다.

***

“어딨냐고? 검황! 이 개새끼야!”

구양수는 온몸이 흉터투성이였다. 형 구양조의 시신을 업고 검황의 손아귀에서 빠져나오다 입은 검상들이다.

구양수는 기력이 회복되자마자 복수에 매달렸다.

당종을 찾아가 납작 엎드려 사정 사정을 하고 엄청난 돈을 쓰고서 탈혼백침을 한 통 받았다.

구양수는 눈알을 희번덕거리며 검황의 종적을 쫓았다.

“가만있으면 내가 찾아가서 목을 따 줄 건데. 이렇게 왔으니 잘됐다! 어서 나와라!”

구양수가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으나 검황은 아랑곳하지 않고 사방을 들쑤시며 다녔다.

***

-쾅!

의천맹 본단 가장 깊숙한 곳.

공손 노야가 갇혀 있는 전각의 문이 박살났다.

탁자에 앉아 있는 공손 노야가 검제의 시선에 들어왔다.

“검제, 아니시오? 노부를 구하러 왔구려.”

-빠각!

검제가 멱살을 쥐고 있던 무인의 목을 부러뜨리며 말했다.

“흐흐. 한가하시군.”

검제가 성큼 안으로 들어갔다.

공손 노야가 자신의 양손을 보여주었다.

“이놈들이 단전을 폐하고 그것도 모자라서 이렇게 양손 양발을 묶어 두었다오.”

검제가 탁자를 끌어 공손 노야 앞에 앉았다.

“공손승, 내게 변명할 게 아직 남았나?”

공손 노야의 눈이 쫙 벌어졌다.

“천… 천주?”

공손 노야가 의자를 박차고 벌떡 일어나더니 그대로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천령대법을 완성하신 것을 감축드립니다.”

검제가 툭툭, 검 끝으로 바닥을 치며 말했다.

“진심인가?”

“여부가 있겠습니까?”

“그런가?”

검제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공손 노야는 등골이 오싹하였다.

지금 눈앞에 있는 이는 검제가 맞다. 하지만 정신은 어딘가에 있을 천주다.

“하긴 자네가 참 충직하기는 했지. 그런데 말야. 왜 고를 뺏지?”

“그, 그건… 강제로 당했습니다.”

“그럴 수 있지. 하지만 그런 지경을 당했으면 진작 자진을 해야 했어.”

공손 노야의 안색이 흙빛이 되었다.

“사실 네 능력은 별게 아니다. 그런데도 두고 본 건 그나마 충심이 있었기 때문이지.”

-끼이이이.

검제는 이번에는 검끝으로 바닥을 그었다.

“그런데 하는 일마다 실패하니 더 이상 두고 볼 수가 없지 않느냐?”

공손 노야가 엎드려 간청하였다.

“천… 천주….”

검제의 검이 휙, 허공을 그었다.

공손 노야의 머리가 허공으로 솟구치고 핏줄기가 벽면에 쫘악 뿌려졌다.

“네 스스로 죽었다면 내가 이렇게 수고할 필요가 없었잖나.”

검제가 바닥를 구르는 공손 노야의 머리를 보고는 혀를 찼다.

이어 밖으로 나가더니 휘릭, 크게 휘파람을 불었다.

그러더니 몰려오는 무인들을 무시하고 몸을 날렸다.

검제가 사라지자 검황과 권제도 몸을 뺐다.

그러나 도황은 남았다. 아니, 우문극이 놓아주지 않은 것이다.

-쾅!  콰광!

우문극의 도강이 도황을 연달아 두들겼다.

***

천황성 천해각.

“으음!”

천주가 깊은 선정에서 깨어났다.

그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어렸다.

드디어 천령대법을 완성한 것이다.

아직은 미약하나마 상대를 완전히 지배할 수 있었다.

“이런 걸 전화위복이라고 하나?”

수십 년간 각고의 노력을 해 왔으나 번번이 실패해 왔다.

그런데 이번에 삼황오제와 군웅각의 고수들을 내몬 뒤 영인고에 변화가 생겼다.

새끼 고들이 죽어 나가자 어미 고가 보호하려는 듯 자신의 영력을 강화한 것이다.

덕분에 천주는 검제를 완전히 지배할 수 있게 되었다.

검제가 바라보던 공손 노야의 마지막 모습까지 바로 눈앞에서 본 듯 생생하다.

아직은 약간의 부족함이 있긴 하다.

검제는 완전히 넘어왔는데 검황이나 권제, 도황은 여전히 거부를 하고 있다.

‘정신력의 차이겠지. 하지만 조만간 모두 굴복하리라.’

천주가 천해각 아래 운해를 바라보다 문득, 웃음을 터뜨렸다.

“흐하하하! 하하하!”

한바탕 웃음을 터뜨린 천주는 운기조식에 들어갔다.

머나먼 곳의 고에 자신의 정신을 싣느라 심력을 크게 썼다.

‘이제 심공을 키우는 일만 남았구나.’

좌정을 한 천주의 얼굴에 은은한 미소가 어렸다.

***

“이런!”

강소군은 전력을 다해 날아왔으나 검황 등은 이미 사라진 뒤였다.

아수라가 휩쓸고 간 듯했다. 피바다에 끊어진 팔다리가 나뒹굴었다.

강소군은 대연무장으로 들어서다 조운룡을 발견했다.

조운룡은 피바다 한가운데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그는 쓰러진 우문극을 부둥켜안고 있었다.

그의 옆에 역시 무릎을 꿇은 석병도가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크윽! 사부님!”

“울지 마라. 부끄럽구나. 평생 도를 수련하고도 그놈 팔 한 짝밖에 끊어내지 못하다니.”

우문극의 목소리가 점점 미약하게 잦아들었다.

“병도야! 운룡아!”

우문극이 두 제자를 불렀다.

“화룡문은 너희에게 달렸다. 저세상에서 네 사형과 함께 지켜보겠다.”

우문극이 머리를 떨구었다.

“으흐흐흑!”

조운룡이 눈물을 쏟다 말고 갑자기 일어나 화룡도를 집었다.

그러더니 핏속에 나뒹구는 팔을 내리쳤다.

아직까지 칼을 쥐고 있는 도황의 오른팔이었다. 강소군에게 당한 그대로 다시 떨어진 것이다.

-파파팍!

도황의 오른팔은 순식간에 고깃덩어리가 됐다.

조운룡의 눈에서 불길이 확, 일었다.

“기다려라! 네 몸통도 이렇게 만들어 주겠다!”

강소군은 착잡한 얼굴로 조운룡을 보다 안으로 들어갔다.

안쪽에도 수많은 시신이 구르고 있었다.

곳곳에서 신음성이 울려 나왔다.

철권호가 사력을 다해 권제를 막았으나 검황을 막을 자가 없었다.

대정무각으로 향하던 제갈선 일행이 중도에 다시 달려온 전령을 만나 황급히 돌아왔으나 이미 늦었다.

남궁천과 남궁악이 쫓았으나 검황은 교란이 목적이었던 듯 숨바꼭질하며 의천맹을 휘저었다.

검황 등이 나타나서 의천맹을 휘젓고 사라진 것은 불과 반시진에 불과했으나 피해는 엄청났다.

마침 철권호가 대정무각으로 보낼 이차지원군을 편성하느라 남아 있었던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뒤이어 소식을 듣고 대정무각이 들이닥쳤다.

“절대고수의 존재라는 게 정말 상상 밖이군.”

노이칠이 침중한 얼굴로 다가오며 말했다.

“군웅각 고수들을 해치운 게 정말 요행이었다는 생각이 드네. 단 네 사람에 의해 이렇게 되다니.”

강소군은 무표정한 얼굴로 장내를 돌아보는데 알 수 없는 분노가 치밀었다.

자신의 머릿속에 있는 고에게 말을 걸었다.

-대체 무슨 생각인 게냐.

그러자 고가 꿈틀거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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