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소군-206화 (206/250)

206

연화심의 장원에 손님이 끊이지 않았다.

모두 강소군을 먼발치에서라도 보고자 하는 무림인들이었다.

초화평 싸움은 무림에는 알려지지 않았다.

호북군은 민심의 동요를 우려하여 밤을 이용하여 왔다가 다시 한밤중에 철수하였다.

하지만 삼도문 앞에서 벌어진 싸움은 많은 이들이 봤다.

다만 사람들에게는 천황성이라는 세력이 아니라 흑천맹과 의천맹의 결전으로 비춰졌다.

아무튼 많은 이들이 천황성 군웅각 고수들과의 결전을 보았고 강소군의 명성은 철권호보다 높아졌다.

혈마라는 다소 무시무시했던 별호도 슬그머니 바뀌었다.

검신.

단 두 글자였으나 검을 든 자로서 받을 수 있는 궁극의 별호였다.

“강 공자, 덕분에 무사를 선발하기가 수월할 것 같네.”

장무강이 대청으로 들어오며 말했다.

강소군이 의아한 눈길로 보니 뒤따라오던 심마백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수월하기는! 어중이떠중이 다 몰려드니 옥석을 가리는 데 한참 걸릴 판인데.”

연화심은 삼도상단을 열고 무인을 선발하는 일을 산동삼호에게 맡겼다.

삼도상단에 강소군이 머물고 있다는 걸 아는 무인들이 너도나도 지원하고 있었다.

연화심이 장무강을 보며 말했다.

“세 분 봉공의 시험을 통과하는 자가 얼마나 있을지 모르겠군요.”

“꽤 실력 있는 자들도 지원하고 있소. 아마도 다른 꿍꿍이들이 있는 모양이오.”

“우리 산동삼호가 봉공으로 있기 때문이겠지.”

심마백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마백 형, 얼굴에 철판을 깔았소?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 거요?”

위응환이 뻔뻔스런 심마백을 타박하였다.

연화심이 웃으며 강소군에게 말했다.

“가끔 나가서 손이라도 흔들어 주셔야 할 것 같은데요?”

대문 밖에서 진을 치고 있는 무림인들 때문에 장원 사람들은 오가기도 어려웠다.

“이래서 고수가 되면 산속에 은거하는 건가.”

다섯 사람이 오랜만에 한가한 이야기를 나누는데 대문 쪽에서 소란이 일었다.

이어 하인 하나가 달려왔다.

“무슨 일인가?”

“웬 무인이 찾아와서….”

하인이 강소군을 보며 주저하였다.

“검신께 비무를 신청한다고….”

“뭐?”

“어떤 미친놈이?”

장무강과 심마백이 동시에 대꾸하였다.

하인이 손에 든 비무첩을 만지작거렸다. 이런 경우 어찌해야 하는지 몰라 난감해하였다.

“이리 줘 보게.”

강소군이 손짓을 하자 재빨리 다가와 비무첩을 건넸다.

불초 소생이… 어쩌고저쩌고 시작한 비무첩은 꽤나 서설이 길었다.

“서호일검? 들어 본 적 있어?”

심마백이 비무첩을 들여다보고는 위응환에게 물었다. 그나마 위응환이 무림에 대해 아는 바가 있다.

“모르겠는데?”

그때 하인이 다시 왔다. 이번에는 비무첩을 세 장이나 들고 있다.

“이리 줘 봐.”

심마백이 빼앗다시피 비무첩을 받아 들고는 명의를 보았다.

“독보추혼? 뇌천신검? 팔황일도?”

심마백이 어이없다는 듯 뇌까렸다.

“별호만 보면 정말 무시무시한데 왜 들어 본 적이 없을까?”

위응환이 실실, 웃으며 말했다.

“명성을 노리고 도전하는 거지. 설마 강 공자가 삼도상단에서 피를 보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하나 보군.”

강소군이 씁쓸하게 웃었다. 생각지도 못한 일이 벌어졌다.

심마백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고는 옆에 세워 둔 창을 집어 들었다.

“이것들이 정말… 검신에게 도전하려면 마창부터 거쳐야 한다는 걸 똑똑히 알려 주지.”

그때 다시 하인이 종종걸음으로 달려왔다.

“또야?”

심마백이 황당해하는데 하인의 뒤로 무인 한 사람이 따라왔다.

의천맹 무인이었다.

“의천맹에서….”

하인이 숨을 헐떡이며 말하려는데 의천맹 무인이 나서서 포권을 하였다.

“제갈 장로께서 보내셨습니다.”

의천맹 무인이 가져온 서찰을 전하는데 다시 한 사람이 날아들었다.

“오늘따라 왜 이리 찾는 이가 많은 거야?”

심마백이 투덜거렸다.

“대정무각에서 왔습니다.”

나타난 무인도 서찰을 건넸다.

강소군이 두 서찰을 펼쳐 읽는데 안색이 굳었다.

“무슨 일인데 그러나?”

장무강이 묻자 강소군이 말없이 서찰을 건네주었다.

“뭐라고? 팽일호가 죽었다고?”

“천무방 대공자와 무인들도 당했다니?”

제갈선이 보내 온 서찰과 대정무각에서 전달해 온 소식은 대동소이했다.

본가로 돌아가던 팽가 일행이 누군가에 당해 궤멸되었다고 했다.

천무방 또한 검황에게 구양조가 죽고 무력대 태반을 잃었다는 소식이었다.

이공자 구양수만 중상을 입고 간신히 목숨을 부지하여 돌아왔다고 적혀 있었다.

대정무각의 소식은 좀 더 자세하여 천하비무대회를 마치고 문파로 돌아가던 각파의 고수들이 여럿 당했다고 한다.

“이런 식으로 나올 줄은 몰랐군.”

장무강이 개탄하였다. 심마백이 침중한 어조로 대꾸하였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절대고수이니 가능하겠지.”

강소군이 장무강에게 말했다.

“아무래도 의천맹에 가 봐야겠군요.”

***

“안 된다고 하지 않았나?”

당종이 인상을 찡그리고 단호하게 말을 잘랐다.

철권호와 제갈선, 강소군과 함께 있는 자리다.

“자네들은 말려야 할 사람들이 왜 동조하고 나서는 건가? 강 공자가 자칫 저쪽으로 넘어가면 어쩌려고.”

일전에 강소군이 낸 방법은 자신의 머리에 고를 심는 것이었다.

영인고들이 서로 감응을 하는 걸 이용하겠다는 고육지책이었다.

물론 철권호와 제갈선이 극구 반대하여 다른 방법을 찾기로 했는데 상황이 급해졌다.

“저도 내키지는 않는데 강 공자가 대응할 수 있다고 하니….”

“그럼 자네 머리에도 심을까?”

당종이 퉁명스럽게 말하자 철권호가 난색을 표하고 물러났다.

“권황은 자신의 내력으로 고를 밀어냈습니다. 그렇다면 저도 가능할 겁니다.”

“허, 거 참!”

제갈선이 나섰다.

“강 공자도 복안이 있겠지요. 이대로 있다가는 피해가 더욱 커질 겁니다.”

강소군이 강력하게 나오니 당종도 더 이상 만류할 수가 없었다.

“잘못돼도 내 탓은 하지 말게.”

당종은 공손 노야와 군웅각 고수들에게서 영인고를 빼냈는데 대부분의 고는 바깥으로 나오자마자 죽었다.

간신히 산 채로 얻은 고는 두 마리뿐이다.

“에잉….”

당종이 안으로 들어갔다가 작은 옥합을 들고 나왔다.

옥합에는 회백색 액체가 담겨 있었는데, 고는 그 안에서 꿈틀거리고 있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고가 들어오면 어떤 현상이 일어나는지 자세하게 이야기해 주게.”

“알겠습니다.”

“자네들은 나가 있게. 보기 좋은 광경은 아니니까.”

철권호와 제갈선이 밖으로 나갔다.

당종이 기다란 강침을 강소군의 코에 넣어 구멍을 뚫고는 집게로 고를 집어넣었다.

그리고는 막대에 금창약을 묻혀 구멍을 막았다.

“민감한 부분이니까 운기를 해서 치료부터 하게.”

강소군이 정좌를 하고 앉아 금단진공을 운용하였다. 금룡기가 돌자 뚫렸던 구멍이 막혔다.

“…?”

그리고 감각을 곤두세웠다. 고가 들어왔는데 아무런 이물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강소군이 금단진공을 운용하여 의식을 둘로 나눴다.

하나의 의식은 깊은 내면으로 들어가고 다른 의식은 이를 지켜보았다.

어느 순간, 심연에 머물던 의식이 꿈틀거리더니 맹렬한 살의가 일었다.

“…!”

다른 의식은 여전히 깨어 살의를 느낀 의식을 관조하였다.

다시 시간이 흘렀다.

강소군이 운기하는 걸 지켜보던 당종의 얼굴에 초조한 빛이 어렸다.

‘잘못된 게 아닐까?’

당종이 다시 고를 빼내야 할까 심각하게 고려할 때 강소군이 눈을 떴다.

“오! 어떤가?”

강소군이 담담하게 웃었다.

“고를 통제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정말인가?”

당종이 크게 놀란 얼굴로 강소군을 살폈다.

“그들이 어디 있는지도 알 것 같군요.”

강소군이 검황을 떠올리자 어디론가 가고자 하는 마음이 일었다.

마음 가는 대로 가면 검황이 있을 것이다.

***

천황성 천해각.

대청마루에 앉아 멀리 흐르는 운해를 보던 천주의 눈이 잠시 흔들렸다.

천주가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눈을 감고 조식에 들어갔다.

잠시 후, 천주가 미소를 지었다.

“맹랑한 놈이구나.”

천주는 군웅각 고수의 고 하나가 다시 활동하는 걸 느꼈다. 그런데 이전의 숙주와는 다른 반응이 왔다.

무척이나 강력한 영력을 지닌 숙주였다. 대충 누군지도 짐작이 갔다.

“죽여 달라고 자기 무덤을 팠군.”

천주가 중얼거리며 잠시 생각을 하였다.

이런 경우는 없었기에 그도 관심이 생긴 것이다.

‘뭘 하는지 지켜볼까?’

언제든 고를 터뜨려 죽일 수 있으니 서두를 게 없었다. 게다가 지금은 너무 멀리 있다.

천주의 머릿속에 있는 어미고가 지배하는 영역이 확장된 것은 근래의 일이다.

이전까지는 천황성 영역 안에서만 조종이 가능했다.

물론 한 번 명을 내려놓으면 바깥으로 나가도 명을 따르기는 한다. 하지만 명을 바꿀 수는 없었다.

그러던 것이 어미고의 공력이 깊어지며 천 리 밖까지 감응이 확장된 것이다.

천주가 공손 노야와 삼황오제, 군웅각 고수들을 모두 내보낸 것은 일종의 실험이었다.

그리고 그 실험은 무척 만족스러웠다.

숙주의 능력에 따라 좌우되기는 했지만 대부분의 새끼고들이 감응을 해 왔다.

그래도 숙주를 죽이고 스스로 죽으라는 명까지 실행할지는 의문이었다.

“뭘 하고 싶은 거지?”

천주가 가만 자신의 심연을 들여다보았다. 강소군의 정신을 읽어내려는 것이었다.

그런데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운기조식 중인 모양이군.’

천주가 피식, 웃었다.

뜻하지 않게 생사경의 고수를 얻었으니 대성을 이룰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

강소군은 삼도상단에 있는 자신의 거처로 돌아왔다.

“당분간 운기조식을 해야 합니다. 호법을 서 주시겠습니까?”

강소군이 산동삼호에게 부탁을 하고는 운기조식에 들어갔다.

권황이 고를 밀어낼 수 있었던 것은 고의 실체를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일단 고가 지배하는 의식을 금단진공으로 묶어 두기는 했으나 언제든 제거하려면 실체를 감지할 수 있어야 했다.

주야로 운기조식에 몰입하자 강소군의 숨은 점점 더 가늘고 길어졌다.

그럼에도 강소군은 자신의 숨 쉬는 소리가 폭풍처럼 들렸다.

사흘째 되던 날부터는 숨을 쉬는 둥 마는 둥 하더니 어느 순간 전신 모공이 열리고 태식으로 넘어갔다.

다시 사흘이 흘렀다.

의식의 심연은 더욱 깊어지고 내관반청의 경지는 이제 솜털 하나하나 흔들리는 감촉이 느껴질 정도에 이르렀다.

금단진공에 의해 깨어 있던 의식이 어느 순간 단전을 관조하였다.

‘…!’

어느 순간 단전 속에 무한한 공간이 열렸다. 그리고 그 공간 속에 정좌를 하고 운기조식을 하는 자신이 있었다.

모습은 강소군 자신과 꼭 닮았으나 온몸이 금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강소군은 의식을 거두지 않고 계속하여 관조하였다.

다시 사흘이 지나 운기조식에 들어간 지 아흐레가 되던 날.

단전 속 무한한 공간에 있던 금빛 인영이 눈을 뜨더니 정좌한 자세 그대로 서서히 위로 솟구쳤다.

공간에서 공간으로 올라온 것뿐이었으나 강소군은 인당이 꽉 차오른 느낌이 들었다.

동시에 무언가 꿈틀거리는 게 느껴졌다.

‘…!’

아흐레 동안 무심하게 굳었던 강소군의 얼굴에 담담한 미소가 어렸다.

고가 느껴진 것이다.

이윽고 심안이 뜨이며 고가 보였다. 그의 머릿속 뇌에 붙어 있는 고는 투명하였다.

심안을 움직이자 고의 작은 눈을 마주할 수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