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소군-205화 (205/250)

205

흑천맹 흑도를 물리친 의천맹의 사기는 높았다.

수많은 무림인들이 의천맹에 의탁하고자 찾아왔다.

이번 싸움에 참여했던 천무방과 화룡문을 비롯해 수많은 방파가 의천맹에 이름을 올렸다.

의천맹은 명실공히 무림맹으로 떠올랐다.

***

강소군은 공손 노야를 바라보았다.

단전에 금제가 걸린 공손 노야는 십 년은 늙어 보였다.

“이제 당신이 할 수 있는 건 없소.”

공손 노야는 눈을 감은 채 말이 없었다.

강소군이 한숨을 쉬더니 손에 든 목갑을 열어 탁자 위에 놓았다.

“이게 당신의 몸에서 나온 영인고요.”

공손 노야의 눈썹이 미세하게 떨렸다.

“서신의 말이, 고의 상태로 보아 당신이 가장 먼저 당했다고 하더군.”

공손 노야가 눈을 떴다.

목갑에 놓인 고가 눈에 들어왔다.

“흥! 그 말을 믿으란 말이냐?”

공손 노야 등은 함정에 빠진 뒤 당종의 천일취에 당해 모두 사로잡혔다.

당종은 그들이 깨어나기 전에 고를 모두 수거하였다.

“당신도 의심하고 있지 않았소? 그랬기에 그토록 불취를 사로잡으려 했겠지.”

“….”

“알고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천령대법은 고를 통해 유지되는 것이었소.”

당종이 고를 제거하자 군웅각의 고수들은 순식간에 무공이 퇴보하였다.

애초에 무공이 높았던 자들은 그나마 유지되는 경우도 있었지만 원래 평범했던 이들은 기운을 잃었다.

사람마다 차이가 있으니 당종은 영인고의 영향력을 알아내느라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강소군은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놀랍지 않소? 당신 역시 그럴 것 같은데?”

“흥!”

공손 노야가 코웃음을 쳤다.

“자신이 있다면 단전의 금제를 풀어봐라.”

강소군이 피식, 웃었다.

“당신들이 무림에 심어놓은 세력들은 이미 밝혀졌소.”

제갈후는 의천맹 본단에 당도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숨을 거뒀다.

그나마 마지막으로 아들 제갈선에게 유언을 남겼기에 평온한 얼굴로 세상을 떴다.

제갈후가 가져온 인명첩으로 의천맹이 발칵 뒤집어졌다.

등 노사의 인명첩에 있는 인사는 대파와 세가에 골고루 퍼져 있었다. 심지어 의천맹에 와 있는 이도 명단에 있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대부분이 천황성이나 등 노사의 실체에 대해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다.

대파와 세가의 주요 인사들에 대한 내사가 대대적으로 진행되는 중이다.

공손 노야가 다시 눈을 감았다.

“일이 왜 이렇게 되었는지 알고 싶지 않소?”

“….”

“고가 지배하면 두뇌와 신체적 능력이 극대화된다는 건 당신도 알고 있을 거요. 하지만 폐해도 있지.”

“….”

“서신의 말이 고에 지배를 당하면 외골수와 같은 성향이 나타날 거라고 하더군.”

공손 노야는 가만히 듣기만 하였다. 그러나 그가 집중해서 듣고 있다는 걸 강소군은 느낄 수 있었다.

“당신의 경우는 권력에 집착하는 성격이 강화된 것으로 보이는데? 어떻소? 맞는 것 같소?”

“….”

공손 노야가 끝내 대답이 없자 강소군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천천히 생각해 보시오. 시간은 많으니까.”

강소군이 공손 노야의 거처를 나왔다.

군웅각의 고수들은 옥에 갇혀 있는데 공손 노야는 따로 거처를 주고 감시하고 있었다.

강소군이 나오자 지키고 있던 무인이 말했다.

“맹주께서 뵙자는 전갈이 왔습니다.”

의천맹 본단은 공사가 한창이었다.

장원 외곽을 확장하여 성벽을 쌓고 곳곳에 전각이 새로이 들어서는 중이다.

철권호는 제갈선과 함께 기다리고 있었다.

“아직도 입을 열지 않는가?”

“쉽게 열 것 같지 않더군요.”

철권호가 잠시 생각하다 말했다.

“천황성의 무력은 이제 거의 해체되었다고 보네. 그에게 들을 말도 별로 없을 것이야.”

“그래도 아직은 무시 못 할 전력이지요. 검황과 도황이 살아 있고 제왕전의 고수들도 건재합니다. 군웅각 고수들도 이십여 명이 남았다고 들었습니다.”

제갈선이 말했다.

제갈선은 이 기회에 천황성을 완전히 제거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아버지 제갈후의 유언이기도 했다.

반면 철권호는 의천맹의 기틀부터 다지는 게 급선무라고 보았다.

“그들이 이전처럼 은둔한다면 굳이 뿌리를 뽑을 필요가 있을까? 자네 말대로 고수들이 건재하지. 지금 정면으로 부딪치면 피해가 적지 않을 걸세.”

“그들은 언제고 다시 무림에 나올 것입니다. 어쩌면 세력이 약화된 지금이 가장 적기입니다. 강 공자, 그렇지 않습니까?”

제갈선이 강소군을 보며 동조를 구하듯 말했다.

강소군은 제갈선의 의도를 알 것 같았다. 호북군을 이용하고 싶은 것이다.

강소군이 담담하게 말했다.

“이번에는 운이 좋았습니다. 공손 노야가 방심하여 함정에 뛰어들었기에 잡을 수 있었지요. 호북군으로 천황성을 공략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무려 만 명에 이르는 호북군이 포위를 했음에도 두어 명이 도주하였다.

제갈선의 표정에 실망한 기색이 어렸다.

강소군이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그들을 그대로 둘 수는 없지요. 이런 방법은 어떻습니까?”

***

“쳇!”

구양수가 첩지를 보고 투덜거렸다.

“무력대를 일백이나 내주었는데 고작 물자나 관리하라고? 그것도 부당주라니.”

첩지는 구양수를 만재당 부당주로 임명한다는 내용이었다.

천무방은 의천맹에 가입하며 무인 일백 명을 내주어 천무대를 편성하였다.

그럼에도 천무방을 견제하는 대파와 세가에 의해 요직에서 밀려난 것이다.

“두고 보자고. 십 년만 기다려라.”

구양수가 내심 이를 갈았다.

형 구양조를 무림맹주에 올리는 일은 검황 때문에 실패하고 말았다.

정작 구양조는 그리 마음에 두지 않았는데 구양수는 그렇지 않았다.

‘권토중래가 뭔가를 보여 주지.’

구양수가 앞으로 일을 궁리하는데 전서구가 날아들었다.

“…?”

구양조로부터 온 것이다.

하루 전 구양조는 무인들을 데리고 천무방으로 떠났다.

“간 지 얼마나 됐다고….”

구양수가 전서지를 펼쳐 보자마자 벌떡 일어나 뛰쳐나갔다.

“천무대! 천무대!”

마침 대청에서 나오던 제갈선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구 공자, 무슨 일이오?”

구양수의 눈에서 흉흉한 빛이 흘러나왔다.

“검황이라는 놈이 형을 습격하였다고!”

반각 후 구양수와 천무대가 쏜살같이 의천맹 본단을 빠져나갔다.

-두두두두!

구양수는 조급한 마음에 연신 말채찍을 휘둘렀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무렵.

구양수가 손을 들었다.

앞에 수없이 많은 시신이 널려 있었다.

“이공자님!”

길가 숲에 은신하고 있던 천무방 무인들이 구양수를 불렀다.

하나같이 부상이 심했다.

“어찌 된 일이냐?”

구양수의 목소리가 떨렸다.

“검황이 나타나 살수를 펼쳤습니다.”

“한 사람에게 당했단 말이냐?”

구양수는 천하비무대회에서 본 검황의 무위를 떠올리며 물었다. 사실 대답을 들을 필요도 없었다.

“형님은?”

“대공자님은 부상을 입으셨는데 주 대주께서 모시고 피신을 하였습니다.”

천무방 무인이 계곡을 가리켰다.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구양수가 계곡으로 몸을 날렸다. 천무대가 뒤를 이어 달렸다.

계곡 길을 따라 천무방 무인들의 시신이 널렸다.

“검황! 이 늙은이야!”

구양수가 버럭, 소리를 지르며 달렸다.

계곡 좁은 길이 이어지다 갑자기 제법 너른 터가 나왔다.

한가운데 구양조가 앉아 있었고 그 앞에 주태가 장검을 딛고 서 있었다. 주위에 수십 명에 이르는 천무방도들의 시신이 널렸다.

“형님! 주 대주?”

구양수가 달려갔다.

주태는 선 채로 죽어 있었다. 아마도 운기조식하는 구양조를 보호하기 위해 마지막까지 싸우다 죽은 듯했다.

구양수가 재빨리 구양조의 명문혈에 손을 대었다.

“…!”

구양조가 눈을 떴다.

“왔느냐?”

“형님, 이게 어찌 된 일입니까?”

“검황이 찾아왔다.”

“그 한 놈에 당했다고요?”

구양수는 믿을 수 없었다. 무려 이백여 정예무인이 있었다. 게다가 구양조 또한 절대의 문턱을 두드리는 고수가 아닌가?

“생사경의 경지는 차원이 다르더군. 비무에서는 우리를 일부러 살려 준 것이다.”

구양조가 쓸쓸히 말했다.

“어쨌든 형님이라도 살았으니 다행입니다.”

구양조가 고개를 저었다.

“나는 이미 늦었다.”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의천맹으로 가면 서신의가 있습니다. 괜찮을 겁니다.”

구양조가 고개를 저었다.

“천무방의 앞날은 네게 달렸다.”

“형님….”

“앉아라!”

구양조의 명에는 거역할 수 없는 힘이 실려 있었다.

구양수가 앞에 앉자 구양조가 정수리에 손을 얹었다.

“…!”

“요천루주의 사술을 이렇게 쓸 줄 몰랐군.”

구양조는 과거 요천루의 잔존세력을 병탄하다가 요천루주가 남긴 비급을 얻었다.

“개정대법의 일종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운기를 해라!”

구양조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막강한 공력이 흘러들어 왔다.

구양수가 꿈틀하고, 거부하려 하자 구양조의 전음이 귀에 들어왔다.

-검황이 아직 있다. 너를 불러 죽이려고 나를 살려 둔 것이다.

구양수의 눈썹이 꿈틀하였다.

무슨 상황인지 알아챘다.

“….”

구양수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나왔다.

‘형!’

어려서 어머니를 잃은 형제였다. 의붓어머니의 교묘한 암수에서 그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형 구양조 덕분이었다.

그 형이 죽기 전에 자신의 내공을 넘겨주고 있는 것이다.

천무대가 형제의 주위에 포진하여 호위하였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구양수가 눈을 떴다. 흘러들어오던 내공이 끊긴 것이다.

구양조가 희미하게 웃었다.

“천무방주는 나보다 네가 더 어울릴 것이다.”

마지막 말을 끝으로 구양조의 눈이 감겼다.

“형님!”

구양수가 구양조를 안고 울부짖었다. 그러다 눈을 희번덕거리며 주위를 향해 소리쳤다.

“검황! 이 개 같은 늙은이야. 어서 나와라!”

그러자 허공에서 노쇠한 음성이 울려 퍼졌다.

“그놈, 입 한번 험하군.”

검황이 숲에서 천천히 걸어 나왔다.

구양수의 눈에서 불이 번쩍하였다.

“찢어 죽일 늙은이야. 대체 왜! 왜?”

구양수가 흥분하여 말을 잇지 못했다.

검황이 비웃었다.

“흐흐. 의천맹이라고 했나? 어차피 한 놈 한 놈 다 죽여 줄 것이다. 순서가 빨랐다고 생각해라.”

“미친놈!”

검황의 안색이 굳었다.

“먼저 네놈 입부터 찢어 놔야겠군.”

“머릿속에 고를 박고 사는 주제에 자존심은 있나 보구나!”

구양수도 영인고에 대해 들어 알고 있다.

검황의 눈썹이 꿈틀하였다.

“천주가 시키더냐?”

“무슨 개소리냐?”

검황의 얼굴에 분노와 의혹이 빛이 어렸다. 그는 영인고를 지웠다고 자신해 왔다.

그러나 구양수의 말을 들으니 새로이 의혹이 일었다.

“네 머릿속에 있는 고가 시켰으니 이런 짓을 하지!”

검황이 손을 뻗었다. 놀랍게도 구양수가 천천히 끌려갔다.

“이공자!”

천무대 무인들이 구양수를 붙잡았다.

두 사람이 양쪽에서 잡았으나 구양수가 여전히 끌려갔다.

“모두 붙어라!”

십여 명이 구양수를 에워쌌다.

-따다당!

갑자기 화승총 소리가 터졌다.

구양수는 검황에게 당했다는 전서지를 보고 화승총 십여 자루를 챙겨왔다.

공터에 들어오기 전 주위에 매복하라 일렀는데 구양수가 위험하자 일제히 쏘아댄 것이다.

“흥!”

검황이 손을 휘저었다.

-퍼퍼퍽!

놀랍게도 화승총 총탄이 검황의 손에 잡혔다.

“네놈들 하는 수작을 모를 줄 알았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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