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소군-204화 (204/250)

204

-우우웅!

메뚜기 떼가 날아오르는 듯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뒤이어 하늘이 어두워졌다.

공손 노야가 보니 수천 발의 화살이 일제히 하늘을 덮으며 날아왔다.

군웅각의 고수들이 기겁하였다. 그들이 아무리 고수라지만 하늘을 덮은 수천 발의 화살에 가슴이 서늘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더구나 하나하나가 전장에서 쓰는 굵은 화살이었다.

“빠드득!”

공손 노야가 이를 갈았다.

함정에 빠진 사실을 알아차린 것이다.

사방이 화염에 휩싸여 있으니 마땅한 퇴로도 없었다.

더군다나 화마 뒤에서 우렁찬 함성들이 퍼지는 걸로 보아 대군이 밀집한 듯했다.

-파파파팍!

빗발치듯 화살이 꽂혔다.

“크윽!”

군웅각의 고수들이 일제히 강기를 쏟아냈으나 수천 발의 화살을 모두 막아 낼 수는 없었다.

순식간에 서너 명이 화살에 맞아 쓰러졌다.

“일단 빠져나간다!”

공손 노야가 강소군이 사라진 곳으로 몸을 날리며 외쳤다.

군웅각 고수들이 일제히 몸을 날려 화염이 약한 곳으로 향했다.

그러나 연이어 날아오는 화살에 제대로 길을 열 수가 없었다.

공손 노야와 군웅각의 고수들이 화살비에 가로막혀 고전하고 있을 때, 강소군은 이미 초화평을 벗어났다.

초화평 뒤편 숲.

산동삼호가 기다리고 있다가 강소군을 보자 무기를 내리고 다가왔다.

“벌써 사로잡았나?”

강소군은 오늘 작전을 대비해 여러 가지 계획을 세워 두었다.

그중 하나가 강소군이 군웅각의 고수 하나를 사로잡아 데려오는 것이다.

산동삼호는 제갈후를 군웅각 고수로 착각하고 물은 것이다.

“아닙니다. 제갈세가의 전대 가주인 듯합니다.”

강소군이 제갈후를 장무강 등에게 넘겨주었다.

“상세가 위중합니다. 세 분이 이 분을 의천맹 본단까지 데려다주셨으면 합니다. 서신의가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장무강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네. 그럼 자네는?”

“천령고를 잡으러 가야지요.”

강소군이 다시 숲을 빠져나갔다.

초화평에는 화염과 연기가 자욱했다.

사방에서 군웅각 고수들의 비명이 터졌다.

“….”

그로서는 천운이 따른 셈이었다.

원래 계획은 그가 장원으로 들어가 군웅각의 고수들을 초화평으로 유인하는 것이었다.

적이 순순히 따라올 리 없으니 격전을 치르다 부상을 입고 도주하는 것 같은 계책을 쓰려 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제갈후가 나타나는 덕분에 손쉽게 군웅각 고수들을 유인할 수 있었다.

초화평 주위를 호북군이 에워싸고 있었다.

강소군은 군웅각 고수들을 몰살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공손 노야까지 걸려들었다.

공손 노야는 천주의 바로 밑에 있는 자다. 쉽게 잡힐 리가 없으니 직접 나설 생각이었다.

-따다당!

수백 발의 화승총이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호북군이 쓰는 화승총은 천무방이 쓰는 것에 비할 바가 아니다.

위력이 크니 소리 또한 더욱 요란했다.

강소군이 몸을 날려 초화평으로 뛰어들었다.

강소군의 눈에 우왕좌왕하는 군웅각의 고수들이 보였다.

몇몇이 화염이 덜한 곳으로 뚫고 가려다 쏟아진 총탄에 쓰러졌다.

그 사이에도 화살이 비 오듯 쏟아졌다.

아비규환이었다.

군웅각의 고수들은 혼비백산하여 각자도생을 하려 하였다.

그때 공손 노야가 강소군을 보았다.

“저기다! 저놈만은 죽이고 가야 한다!”

공손 노야는 말을 마치기도 전에 강소군을 향해 날아왔다.

-텅! 터텅!

화살이 날아들었으나 공손 노야가 쌍장을 휘둘러 쳐냈다.

“서두를 것 없소. 나는 여기 있으니까.”

강소군은 여유로운 자세로 그 자리에 서서 기다렸다.

“이, 간악한 놈!”

이윽고 공손 노야가 강소군의 앞에 내려섰다.

뒤이어 군웅각 고수 몇몇이 공손 노야 옆으로 섰다.

“포위해라.”

공손 노야가 이르자 군웅각 고수들이 강소군의 사방을 점했다.

강소군은 공손 노야를 주시할 뿐이다.

“천황성의 이인자를 직접 보니 영광이군.”

“네놈 명이 생각보다 질기더군.”

“순서대로 가는 게 천리가 아니겠소?”

강소군이 검을 치켜들었다.

“쳐라!”

공손 노야는 여유가 없었다.

-화라락!

명이 떨어지자마자 강소군의 등 뒤로 화염이 몰려왔다.

강소군은 도주할 때 자신을 기습했던 자임을 알아보았다.

화염공은 익히기가 극히 까다롭다. 대신 연성하고 나면 이를 상대하는 이 또한 여간 힘든 게 아니다.

강소군이 검으로 강기의 벽을 형성하였다.

-퍼엉!

화염이 강기의 벽을 따라 번지며 후끈한 열기가 사방으로 퍼졌다.

-파팍!

도를 든 자가 허벅지를 베어 오고, 검을 든 자가 목을 노리고 달려들었다.

하나같이 절대고수인 자들이 합공을 펼치니 눈 깜짝할 여유조차 없었다.

상대 또한 극쾌에 이른 고수들이니 힘으로 막는 수밖에 없었다.

강소군이 춤을 추듯 검을 휘저었다.

그를 중심으로 검광이 번뜩이며 일장 가량의 원형 구체를 이뤘다.

공손 노야는 강소군이 이룬 경지를 보고 미간을 찌푸렸다.

‘저놈이 그동안 실력을 숨겨 왔구나.’

그동안 보냈던 고수들이 왜 번번이 실패하였는지 알 것 같았다.

지금 강소군이 펼쳐낸 초식의 완성 경지는 그로서도 뚫을 수 있을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우두둑!

공손 노야의 늙은 몸에서 뼈가 뒤틀리는 소리가 났다.

동시에 그렇지 않아도 큰 축에 드는 키가 한 자가량 더 늘어났다.

몸은 여전히 말랐기에 기형적으로 커 보였다.

강소군은 군웅각의 고수들을 막아 내면서도 공손 노야에 대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군웅각의 고수들이 쉴 새 없이 공격하자 원형의 구체도 흔들렸다. 이윽고 강소군의 옆쪽에 공간이 열렸다.

-퍼퍼펑!

화노의 화염공과 도강, 검강이 열린 공간으로 밀려들었다.

강소군이 좌장을 내밀어 그 모두를 동시에 받아냈다.

-콰앙!

무려 세 사람의 합공을 받아낸 강소군이 옆으로 밀렸다. 그러면서 원형의 구체도 깨어졌다.

-파파팟!

공손 노야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달려들었다.

강소군이 검을 접어 돌리며 막으려 하였으나 중간에 끼어든 검에 가로막혔다.

강소군의 오른 가슴이 활짝 열렸다.

“죽어랏!”

공손 노야가 외마디 고함을 지르며 양손을 쭉 내밀었다.

-번쩍!

그의 양손 장심에서 붉은빛이 번뜩였다.

그런데.

강소군의 신형이 그대로 뒤로 물러났다.

“어림없다!”

그 정도는 예상했다는 듯 공손 노야의 손이 뒤를 따랐다.

강소군이 좌장을 거두어들이며 공손 노야의 손을 마주쳐 갔다.

강소군의 손에는 홍옥비도가 들려 있었다.

“흥!”

공손 노야가 손목을 감아 홍옥비도를 쳐냈다.

“어엇?”

홍옥비도가 밀려나는 사이 강소군의 검이 밑에서부터 올라왔다.

한 손은 찌르고 다른 한 손은 밑에서부터 검을 그어오다니.

도저히 한 사람의 동작이라고 볼 수가 없었다.

공손 노야가 황급히 쌍장을 교차하여 올라오는 검을 향해 강기를 뿌리고는 뒤로 물러났다.

그와 동시에 주위에 있던 군웅각 고수들이 일제히 강소군을 향해 달려들었다.

-콰쾅!

-퍼엉!

화염과 강기가 한 점을 향해 몰아쳤다.

폭음과 함께 거센 기파가 회오리쳤다.

흙먼지가 비산하며 강소군의 신형을 에워쌌다.

화경의 고수들이 전력을 다해 쏟아낸 강기였다. 사람의 힘으로 감당할 수 있는 힘이 아니다.

공손 노야는 그래도 안심되지 않았는지 곧바로 장을 후려쳤다.

장심에서 붉은빛이 터져 나와 회오리치는 중심으로 쭉 뻗어 나갔다.

-번쩍!

흙먼지 속에서 눈부신 금빛이 뻗어 나오며 공손 노야의 장력을 맞받아쳤다.

공손 노야가 재빨리 손을 거두며 옆으로 돌았다. 최후의 순간에도 전력을 다하지 않은 것이다.

그 사이 다시 군웅각 고수들이 연달아 공격을 펼쳤다.

공손 노야는 가슴이 서늘하였다.

‘이럴 수가.’

자신과 군웅각 고수 네 명이 합공을 하는데 강소군이 버티고 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저놈이 천주에 버금가는 무공을 지녔다는 말일까?’

공손 노야는 강소군이 양의심공에서 파생된 금단진공을 익혔다는 사실은 몰랐다.

금단진공 역시 완성의 경지에 이른 강소군이다.

의식을 완전히 둘로 나누니 군웅각의 고수들과 공손 노야를 동시에 상대할 수 있었다.

강소군과 공손 노야 등이 접전을 벌이는 사이 우왕좌왕하던 군웅각 고수들이 속속 모여들고 있었다.

그 와중에도 공손 노야의 명을 거스르지 못하고 강소군을 잡기 위해 모여든 것이다.

어느새 화살비가 멈췄다. 화공이 극에 달하며 연기가 자욱하니 목표를 분간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크흐흐… 어리석은 놈들. 나라면 화공을 먼저 펼치고 그를 피해 나오는 놈을 집중 공략해서 죽였을 것이다.”

그 와중에 공손 노야가 비웃었다.

강소군이 옷에 묻은 흙먼지를 털며 말했다.

“그런가? 생각보다 많이 살아남긴 했군?”

그렇게 맹렬한 화살비와 화승총까지 동원하였건만 십여 명밖에 쓰러뜨리지 못했다.

공손 노야 옆으로 몰려드는 군웅각 고수는 열댓 명에 이르렀다.

공손 노야의 눈이 가늘어졌다.

‘저놈만 잡고 전력을 다해 빠져나가면 된다.’

갑작스런 기습에 당황했지만 정신을 차리고 퇴로를 찾는다면 이까짓 함정은 빠져나갈 수 있다.

그런데 덜컥, 의심이 들었다.

강소군이 여전히 여유로운 자세로 서 있는 것이다.

공손 노야가 주위를 돌아보았다.

사방이 맹렬한 불길이다. 자신들이 서 있는 이곳은 꽤 넓은 공터라서 불붙을 만한 초목이 없다.

“이상하지 않아? 왜 여기만 불이 오지 않는지?”

강소군이 주위를 돌아보며 말했다.

-끼이익!

땅이 흔들렸다. 무려 십여 장 넓이의 공터가 갈라지고 있었다.

강소군이 말했다.

“사람의 힘이란 참 놀랍더군. 천 명이 달려드니 하룻밤 만에 이런 함정도 만들 수 있고 말야.”

말을 마치자마자 강소군이 뒤로 풀쩍 물러났다.

동시에 공손 노야 등이 서 있는 땅이 쫙 갈라졌다.

“흥!”

공손 노야가 코웃음을 치고 몸을 날리려 하였다.

순간,

-촤아악!

불길 너머 거대한 그물이 퍼졌다.

거대한 쇠그물이 갈라지는 공터의 하늘을 덮었다.

“끊어낸다!”

검과 도를 든 군웅각의 고수들이 일제히 몸을 날리며 그물을 끊어내려 하였다.

-쉬쉬식!

다시 벌떼 같은 화살비가 쏟아졌다.

-텅! 터텅!

군웅각 고수들은 화살비를 쳐내기 급급했다.

그 사이 허공의 그물이 내려왔다.

군웅각의 고수들이 당황하였다.

땅이 갈라지고 위로 쇠그물이 드리워졌다.

옆으로는 맹렬한 불길이 타오르고 있다.

피할 곳이 없었다.

“어엇!”

“으으….”

그 사이 땅이 완전히 갈라졌다.

이제 보니 커다란 장방형 함정을 파고 목책으로 덮은 다음 흙으로 위장한 곳이었다.

“…!”

제아무리 고수라고 하더라도 허공을 둥둥 떠 있을 수는 없었다.

군웅각의 고수들이 속절없이 밑으로 떨어졌다.

다행히 함정은 깊지 않았다.

-끼리릭!

갈라졌던 천장이 서서히 닫히려 들었다.

군웅각 고수 몇몇이 다시 들리는 천정에 올라탔다.

-쉬쉬식!

무수한 화살이 쏟아졌다.

결국 군웅각 고수들도 포기하고 다시 함정으로 내려설 수밖에 없었다.

“이따위 조잡한 수로 우리를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하나?”

공손 노야가 천천히 닫히는 천장을 보며 이를 갈았다.

생각할수록 어이가 없었다. 무림인들 간의 싸움에서 이런 전술이 나오리라고는 생각지 못한 것이다.

-펑! 퍼펑!

어디선가 폭음이 일더니 뿌연 연기가 솟았다.

“독?”

“숨을 멈춰라!”

그러나 독이 아니었다.

함정 위에서 당종이 득의만면하여 웃음을 터뜨렸다.

“내가 특별히 만든 천일취는 내공이 얕고 깊은 것과는 상관없지. 사람이라면 반드시 잠이 들 거야.”

당종은 생각보다 많은 군웅각의 고수들을 사로잡자 흐믓해하였다.

“이 정도면 천령고를 해부해 볼 수도 있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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