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소군-202화 (202/250)

202

공손 노야는 장원으로 돌아와 진을 걸어 잠궜다.

그리고 황급히 조식을 한 다음에 미독을 발견하였다. 흔치 않은 독이기는 하나 그를 어찌할 수 있는 정도는 아니다.

공손 노야가 이를 바드득 갈았다. 불취의 수에 당한 것이다. 자신이 의심이 많아 넘어갔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불취, 네놈은 반드시 내가 죽여 주마.”

공손 노야는 독을 몰아낸 후에도 확인하고 또 확인을 한 다음에야 거처를 나왔다.

어느새 한밤중이다.

“싸움은 어찌 되었느냐?”

심복에게 싸움 결과부터 묻자 난처한 얼굴로 보고하였다.

공손 노야가 벌컥, 화를 냈다.

“뭐라고? 군웅각 고수들이 도주했다고?”

싸움을 지켜봤던 심복도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머리를 쥐어뜯고 몸부림치는 모습이 광인들 같았습니다.”

“그럼, 지금 아무도 없다는 말이냐?”

“그게….”

심복이 더 황당하다는 듯 말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모두 돌아왔습니다.”

“…?”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물었는데 전혀 기억을 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기억을 못 한다고?”

“네. 어떤 자는 아예 싸운 것조차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으음.”

공손 노야가 생각에 잠겼다가 물었다.

“강소군이라는 놈이 뭐라고 했느냐?”

“멀리 있어서 자세히 듣지는 못했습니다만 이게, 너희 머릿속에 있다라고 한 것 같습니다.”

“뭐가 머릿속에 있다고?”

“손에 뭔가를 들고 있었는데 너무 멀어서 보지는 못했습니다.”

“에잉, 쓸모없는 놈!”

공손 노야가 버럭, 화를 내면서도 내심 영인고였을 것이라고 추정하였다.

‘그놈은 또 어떻게 알았을까? 누구의 영인고였단 말인가?’

공손 노야가 생각에 잠겨 있는데 심복이 재차 입을 열었다.

그로서는 정말 보고하고 싶지 않은 내용이었다.

“권황이 대패했답니다. 군웅각 고수들도 전멸했습니다.”

“허!”

공손 노야가 허공에 대고 숨을 내뱉었다. 믿기지 않는 소식을 듣자 어이가 없었던 것이다.

권황과 검제, 그리고 서른이 넘는 군웅각 고수들 게다가 삼천 흑도까지.

도저히 질 수 없는 병력이다.

“어떻게 된 일인지 자세히 말해 봐라.”

“군웅각 고수들 절반은 매복에 걸려 뿔뿔이 흩어졌다가 당하고 나머지는 강소군과 철권호 등에게 죽었답니다.”

“권황은?”

“그게….”

심복이 망설이다 말했다.

“권황이 강소군에게 패해 돌아서려는데 검제가 갑자기 달려와 목을 벴답니다.”

심복의 말에 공손 노야의 얼굴이 침중하게 굳었다.

“검제가 권황을 죽였다고? 너 뭘 잘못 들은 거 아니냐?”

“저도 의심스러워서 몇 번이나 되물었는데 지켜봤던 이목이 자신의 눈으로 똑똑히 봤다고 합니다.”

“….”

공손 노야가 생각에 잠겼다.

군웅각 고수들은 천주의 명이 있지 않는 한 서로를 죽일 수 없다.

머릿속에 심어진 고들은 사실 형제나 마찬가지이니까 본능적으로 서로를 해치지 않는다.

하지만 삼황오제는 다르다. 숙주가 생사경에 이르면 고는 탈피를 위하여 길고긴 동면에 들어간다.

잠정적으로 활동을 하지 않으니 고에 구애받지 않고 군웅각 고수나 서로를 죽일 수 있다.

‘하지만 왜?’

공손 노야는 직감적으로 천주의 명이 떨어졌음을 알았다.

“검제는 어디 있느냐?”

“행방이 묘연합니다.”

“찾아봐라.”

공손 노야가 손짓을 하여 심복을 물렸다.

“….”

공손 노야가 생각에 잠겼다.

계획했던 일이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원래대로라면 권황이 의천맹을 박살내고 마지막 순간 자신이 나타나 권황을 물리쳤어야 했다.

‘바보같은 놈!’

공손 노야는 권황이 왜 자신에게 의천맹을 치는 시기를 알려 주지 않았는지 의아했다.

권황이 의천맹까지 무릎을 꿇려 무림을 일통하려 했다는 것까지는 생각지 못했다.

공손 노야가 곰곰 생각하다 벽면에 있는 비밀금고에서 목궤를 하나 꺼냈다.

그가 출정을 나오기 전날 천주가 불러서 준 것이다.

공손 노야가 목궤의 봉인을 뜯었다.

“…!”

목궤 안에는 작은 책자가 하나 놓여 있었다.

표지에는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았다.

공손 노야가 책자를 열어보았다.

무수한 이름들이 있었다.

“…!”

공손 노야는 그 이름들이 죽은 등 노사가 무림에 심어 두었던 각파의 명숙이라는 걸 알았다.

“….”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등 노사의 인맥은 철저히 점조직으로 이뤄져 있어 자신도 모른다.

그런데 이 책자에 빼곡한 명단은 뭔가?

‘삼태상이 천주에게 직접 보고해 왔다는 말인가?’

공손 노야는 등골이 서늘했다.

자신이 과연 일인지하 만인지상이 맞는지 자신할 수가 없었다.

그러자 더더욱 영인고의 존재에 대한 의심이 부풀어 올랐다.

지난 수십 년을 괴롭혀 온 의문이다.

머릿속에 고가 있지 않을까?

공손 노야가 한숨을 쉬고는 책자를 계속 넘겨보다 바깥에 있는 호위에게 일렀다.

“제갈후를 보자고 해라.”

***

강소군이 정원 석조의자에 앉아 무심히 연못을 바라보고 있었다.

연화심이 다가와 찻주전자를 가지고 왔다. 하인 하나가 숯불화로를 들고 따라왔다.

강소군은 불취를 당종에게 맡기고 연화심의 장원으로 돌아왔다.

대정무각의 이목이 보내온 소식에 의하면 공손 노야는 며칠째 장원에서 웅크리고 있었다.

“무슨 생각을 그리 하세요.”

연화심이 찻주전자를 숯불화로에 올려놓으며 물었다.

산동삼호도 떠나고 장원에는 연화심과 강소군 외에 일을 돌보는 하인 몇 명만 있을 뿐이다.

연화심은 강소군과 오붓하게 있는 요 며칠이 너무 행복하다.

담 밖에는 여전히 죽고 죽이는 싸움이 벌어지고 있을 것이다.

의천맹 본단에서 흑천맹 절반이 죽었다.

가까스로 도주한 흑천맹은 뿔뿔이 흩어졌다.

의천맹은 장강을 봉쇄하고 도강을 하려는 흑천맹 흑도들을 잡고 있다.

“예전 별원이 참 좋았소.”

삼도문 별원은 연성결이 아내를 위해 남경에서 통째로 뜯어와 지었다.

연화심은 뜬금없는 강소군의 말에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그 별원은 복건으로 간답니다.”

연화심은 장원을 의천맹에 넘기며 그 별원을 해체하여 복건으로 옮기기로 했다.

‘언제든 오셔서 머무를 수 있답니다.’

연화심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바람 같아서는 평생 머물렀으면 하는데 마음속으로도 그리 못하는 연화심이다.

가깝지만 알 수가 없는 사람. 연화심에게 강소군은 그렇다.

함께 있으면서도 강소군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길이 없다.

몸은 이 자리에 있으나 생각은 그 어딘가에 있는 듯했다.

찻물이 끓자 연화심이 차를 우려냈다.

“복건은 어떤 곳이오?”

강소군이 물었다.

초여름 싱그러운 아침이다. 이런 날 무림의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았다.

“바다가 있는 곳이에요. 따뜻하죠.”

두 사람이 복건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대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잠시 후 산동삼호가 나타났다.

심마백이 물주전자를 보고 반색하였다.

“아이고, 목 탄다. 물!”

심마백이 물주전자째 들고 마셨다.

“수고하셨습니다.”

강소군이 장무강의 표정을 보고 말했다. 묻지 않아도 일이 잘 풀린 걸 알 수 있었다.

“천황성이 아니라 만황성이라도 다 밟아 버릴 수 있을 걸세.”

장무강이 말하자 심마백이 못마땅하다는 듯 말했다.

“나는 온당한 방법이 아니라고 생각해. 싸움이라면 일대일로 붙어야지.”

“마백 형이 언제부터 무림인이었다고 그런 소리를 하는 거지?”

위응환이 되받았다. 그가 처음 군문에 들었을 때 병법과 전술을 가르친 이가 심마백이다.

“군에 있을 때라면 당연하겠지만 지금 상대는 무림인들이라고.”

강소군은 말이 없었다. 어쩌면 심마백의 말이 맞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천황성의 고수들은 상궤를 벗어난 자들이다.

서른 명에 불과하다지만 정면 대결하면 일만 군사로도 부족할 것이다.

장무강이 강소군에게 구룡금패를 돌려주며 말했다.

“도지휘사사가 자신이 용단을 내린 점을 기억해 달라더군.”

강소군이 구룡금패를 갈무리하는데 하인이 와서 고했다.

“왠 노인이 찾아오셨습니다.”

모두 돌아보는데 멀리서 당종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감히 나를 기다리게 해? 어서 나오라고 하라니까?”

강소군이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서신의께서 오셨군요.”

장무강과 심마백도 일어났다.

“그렇다면 우리도 인사를 드려야지.”

서신의를 알아두어서 나쁠 게 없다.

“나는 바삐 왔더니 피곤하네요. 좀 쉬겠습니다.”

위응환이 슬며시 빠졌다.

“별일이네? 서신의라면 당가의 전대가주라고. 혹시 알아? 네 암기술에 도움을 줄지?”

심마백이 말했으나 위응환은 말없이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강소군이 장무강과 심마백과 함께 대청으로 갔다.

당종이 불만이 가득한 얼굴로 기다리고 있었다.

“이 코딱지만 한 집에서 사람을 기다리게 하다니.”

“하인들이 무림에 대해서 아는 바가 없어 실례를 한 모양입니다.”

강소군이 말했다.

“자네가 아니었으면 벌써 돌아갔을 거야. 내가 각별하게 생각한다는 걸 꼭 알아 두게.”

당종이 말도 안되는 생색을 냈다.

당종의 시선이 장무강과 심마백에게 향했다.

“서신의를 뵙습니다. 장무강이라고 하고 강호의 형제들이 산동삼호라는 별호를 주었습니다.”

“산동삼호?”

당가에 처박혀 지내는 당종이 알 리가 없다.

당종의 시선이 강소군에게 향했다. 강소군이 웃으며 말했다.

“안심하셔도 됩니다.”

강소군이 믿을 만한 자라고 하니 당종은 더 따지지 않고 찾아온 용건을 이야기했다.

“천령고에 대해서 알아봤네. 생각보다 아주 지독한 요물이더군.”

장무강과 심마백은 궁금했으나 끼어들지 않았다.

그때 연화심이 다기와 차를 가지고 직접 나타났다.

“신의께서 오셨는데 마중을 나가지 못해 죄송합니다.”

연화심은 강소군을 살려 준 당종에게 극진하게 대했다.

연화심을 보는 당종의 표정이 미묘했다. 강소군과 번갈아 보다가 말했다.

“두 사람은 어떤 사이인가?”

당종은 속에 품은 말을 바로 하지 않고 못 배기는 사람이다.

손녀와 강소군을 맺어 주려고 하는데 옆에 연화심이 붙어 다니니 궁금한 것이다.

“예?”

강소군과 연화심은 느닷없는 질문에 대답을 못했다.

“두 사람은 생사를 같이 넘나든 사이지요. 그러니 죽고 못 사는 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심마백이 눈치채고 재빨리 대답했다.

연화심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아는 심마백이다.

연화심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당종의 표정이 묘했다.

‘아무리 그래도 삼도문과 당가를 비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우화가 정실이 되면 돼.’

못마땅했지만 자기 나름 양보를 했다.

당종의 속을 알 리가 없는 강소군이 물었다.

“불취는 깨어났습니까?”

“흥! 그놈은 명도 질기지. 왜 자꾸 내 앞에 나타나는지 모르겠군.”

당종이 코웃음을 쳤다.

“다행이군요.”

“쓸데없는 소리 말고. 천령고가 두어 마리 더 필요하다.”

“예?”

“그놈 머릿속에 있던 고는 환생단에 취해서 깨나지를 않아. 살아서 활동을 하는 놈이 필요해.”

당종은 한 가지에 꽂히면 매진하는 성격이다.

천령고에 대해 알 기회가 생기자 그것만 생각했다.

“그렇다면 천황성 고수를 생포해야겠군요.”

“그게 쉽지 않을 거다. 생포됐다는 걸 아는 순간 고의 주인이 죽으라고 명을 내릴 거야. 고가 죽으면 숙주도 죽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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