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소군-201화 (201/250)

201

강소군이 영인고를 꺼내 군웅각 고수들에게 내보였다.

“이런 게 너희 머릿속에 있다는 말이다!”

강소군은 그저 영인고의 실체를 보여 주려 한 것뿐이었다.

그런데 죽은 영인고를 본 군웅각의 고수들이 갑자기 비명을 질렀다.

“…!”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영인고가 무엇인지 인지하는 순간.

“크아악!”

“컥!”

군웅각의 고수들은 병장기를 놓고 자신들의 머리를 쥐어뜯었다.

그러더니 어느 순간 일제히 몸을 날려 사라졌다.

사람들은 물론이고 당사자인 강소군도 당황하였다.

미처 생각지 못했던 반응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으으….”

잠깐 동안의 격전이었지만 남궁세가와 팽가 등이 입은 피해가 적지 않았다.

삽시간에 수십 명이 목숨을 잃었다.

***

강소군은 남궁세가와 함께 불취를 데리고 의천맹 본단으로 왔다.

불취의 목숨이 경각에 달하자 당우화가 할아버지 당종에게 매달렸다.

그런데 당종은 매몰차게 거절하였다.

애초부터 당우화가 불취와 어울리는 걸 반대했던 당종이다. 자기 손으로 죽이고 싶지만 손녀 때문에 참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 불취가 알아서 죽을 지경이 됐으니 오히려 다행이라고 여기고 있었다.

“싫다! 저놈은 왜 그리 약해 빠져 맨날 당하고만 다니는 것이냐?”

“할아버지! 너무하세요!”

당우화가 눈물을 흘리며 매달렸다.

동약사가 대정무각으로 합류하기 위해 떠났다. 그러니 불취를 살릴 사람은 당종뿐이다.

“우화야, 인명은 재천이란다. 하늘에서 내린 명을 내가 어찌하겠니.”

“거짓말하지 마세요! 지금 저 사람이 못마땅해서 그런 거잖아요!”

“흥! 할아버지 속을 그리 잘 알면서 왜 그리 고집을 피우는 것이냐?”

당우화가 입술을 깨물더니 말했다.

“저 사람만 살려 놓으면 이제 만나지 않을게요.”

“….”

당우화의 머릿속을 손바닥 보듯 들여다보는 당종이 그 말을 믿을 리 없다.

그때 바깥에서 인기척이 났다.

“당 선배, 남궁천이오.”

남궁천은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들어왔다.

“남궁세가의 가주가 무슨 일인가?”

당종이 의아한 눈길로 남궁천을 보았다.

당가는 세가연합에 이름을 올려놓기는 했지만 강호에서 거의 활동을 하지 않았다.

사천에 웅크리고 다른 세가와 교류도 거의 하지 않는다.

그랬기에 당종 역시 남궁천을 처음 본다.

남궁천이 포권을 하고 정중히 예를 갖췄다.

“우평은 불초의 제자입니다. 신의께서 손을 써 주시면 그 은혜를 남궁가는 잊지 않을 것입니다.”

“저놈이 제자라고?”

당종이 미간을 찌푸렸다.

“아니, 저놈은 천황성에 있던 놈이라고.”

“제가 직접 거둔 제자입니다. 가진 한이 많아 본가를 잠시 떠났지만 뼛속까지 남궁가의 무인입니다.”

“….”

당종이 망설이는데 강소군이 불쑥 들어왔다.

“오! 강 공자!”

당종이 반겨 주었다.

남궁천이 왔을 때도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는데 벌떡 일어나기까지 하였다.

“주위를 물려 주시지요.”

강소군이 당종과 남궁천, 당우화만 남기고 호위와 시비들을 모두 내보냈다.

강소군이 품에서 영인고를 꺼냈다.

남궁천이 보자마자 가까이 다가와 살펴보며 물었다.

이 벌레를 보자마자 군웅각 고수들이 도망쳤으니 궁금했던 것이다.

“대체 이게 뭔가?”

“고의 일종인 듯합니다.”

당종도 눈빛을 반짝이며 다가왔다.

“고라고? 그게 왜 자네 손에 있나?”

강소군이 천황성 천주의 천령대법과 금제, 그리고 고에 대해 이야기를 하였다.

당종이 이야기를 듣고는 황당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이럴 수가. 정말 천령고가 있었단 말인가?”

“이걸 천령고라고 합니까?”

“천령고라고도 하고 영인고라고도 하지. 나도 고서에서 봤는데 워낙 오래되어 기억이 가물가물하군.”

당종이 영인고를 유심히 살피며 말했다.

“이건 새끼고 같군.”

“….”

당종이 천령고에 대한 기억을 되살리려는 듯 미간을 찌푸리며 중얼중얼거렸다.

“새끼고가 어미고의 지배를 받는 걸 이용해서 이런 흉측한 짓을 했구만.”

당종의 말에 따르면 새끼고는 어미고의 뜻에 무조건 순응한다는 것이다.

“이 고가 불취에게도 있는 것 같습니다.”

“…!”

불취를 거론하자 당우화가 퍼뜩 놀라 다가왔다.

“뭐라고요?”

“불취도 천령대법을 받았다고 했소. 그러니 당연히 고를 심었을 거요.”

“아녜요. 그는 멀쩡하다고요.”

당우화가 우겼으나 당종은 벌써 흥미로운 눈길로 불취를 바라보았다.

“그래? 그럼 해부를 해 볼까?”

“뭐예요? 살려 주지는 못할망정 해부를 한다고요!”

당우화가 펄펄 뛰었다.

강소군이 당종에게 말했다.

“무슨 이유인지 모르지만 불취의 머릿속에 있는 고는 활동을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죽지는 않았을 겁니다.”

당종의 눈빛이 더욱 번뜩였다.

살아 있는 천령고를 보고 싶은 것이다.

“커흠.”

당종이 헛기침을 하더니 말했다.

“내가 저놈을 살려 주겠다. 남궁 가주가 직접 부탁하니 할 수 없구나.”

당우화가 의심스런 눈길로 당종을 보았다.

이제껏 나 몰라라 하다 갑자기 치료하겠다니 미심쩍었던 것이다.

“당 선배, 감사합니다!”

남궁천이 황급히 허리를 숙였다.

당우화가 생각하니 남궁세가 가주의 부탁을 받았는데 불취를 죽이지는 않을 것 같았다.

손을 쓰지 않으면 몰라도 일단 치료를 하면 최선을 다하는 당종의 성격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너도 약속을 지켜야 한다.”

“무슨 약속이요?”

당우화가 처음 듣는 이야기처럼 딴전을 피웠다.

“흥!”

당종은 잠시 그냥 치료를 하지 말까 생각했다. 불취가 죽고 나서 머리를 열어 고를 꺼내면 된다.

그런데 강소군이 그 속을 들여다보기라도 하듯 말했다.

“아마도 숙주로 삼은 사람이 죽으면 고도 죽는 모양입니다.”

그 말에 당종이 결심을 굳혔다.

“너는 나가 있어.”

불취를 살릴 생각을 하니 새삼 손녀가 얄미웠다.

당우화가 머뭇거리다 나가자 당종이 물었다.

“이 죽은 고가 바깥으로 나온 뒤 금방 굳었다고?”

“예.”

“흐음. 그자의 시신이 어디에 있지?”

강소군이 제갈선에게 사람을 보내 물었다.

의천맹 무인이 와서 고했다.

“장원 뒷산에 이미 묻었답니다. 파 올까요?”

당종은 성질이 급했다.

“냄새나는 시신을 가져올 것 없다. 어디냐?”

당종과 강소군, 남궁천이 의천맹 무인들과 시신이 매장된 곳으로 갔다.

“파 봐라.”

잠시 후 권황의 시신이 나왔다.

당종이 권황의 얼굴을 살펴보며 물었다.

“코로 나왔다고 그랬지?”

당종이 예리한 칼로 권황의 머리를 열었다.

“으흠. 역시, 여기에 있었군.”

강소군과 남궁천이 보니 이마 안쪽 부근에 있는 뇌가 살짝 파여 있었다.

당종이 강소군에게서 받은 영인고를 뇌에 대어 보니 크기가 딱 맞았다.

“인당 안쪽 자리이지. 그래서 영인고라고도 하지.”

당종이 영인고가 있던 자리를 잘 살피고는 일어났다.

“이 사람 머리를 잘라서 깨끗하게 보관해 둬라.”

“네?”

시신의 머리를 보관하라는 말에 의천맹 무인이 되물었다.

“아주 중요한 일이니까 조심스레 다뤄야 한다.”

당종이 단단히 주의를 주고는 산을 내려갔다.

강소군은 기세등등했던 권황이 죽어서도 머리를 잃으니 안됐다는 생각을 새삼 하였다.

당종이 다시 불취가 누워 있는 방으로 오더니 남궁천에게 일렀다.

“남궁가주, 돼지 한 마리 산 채로 가져올 수 있겠나?”

남궁천이 대기하고 있던 호위에게 일렀다.

잠시 후 돼지 한 마리가 산 채로 꽁꽁 묶여 왔다. 돼지는 연식 꾸웩, 거리며 난동을 피려 했다.

당종이 돼지를 거꾸로 매달더니 몇 군데 침을 놓았다. 그러자 이내 빳빳하게 몸이 굳었다.

당종이 칼로 돼지의 이마를 갈랐다. 내공이 실린 예리한 칼에 뼈까지 갈라졌다.

갈라진 뼈 사이로 허연 뇌가 보였는데 신기하게도 피가 나오지 않았다.

“됐다. 돼지를 들고 들어와라.”

당종이 돼지를 방 안으로 들였다.

그리고는 불취의 상세를 살폈다.

어깨 뒤편에서 가슴까지 나온 상세가 가장 컸다.

당종이 뼈를 붙이고 핏줄과 신경을 이었다. 마지막에 상처를 꿰매고는 말했다.

“다른 상처는 자잘하니까, 알아서 하라 하고….”

당종이 불취의 머리맡으로 갔다. 그의 손에는 기다랗게 구부러진 집게가 들려 있었다.

당우화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다 빽, 소리를 질렀다.

“뭐 하시는 거예요?”

당종이 집게를 불취의 콧속으로 찔러 넣은 것이다.

“잠시 기다려 보시오.”

강소군이 당우화가 발작하려는 걸 막았다.

“….”

천천히 집게를 움직이는데 당종도 긴장하여 이마에 땀이 배었다.

꽤 시간이 흐른 뒤, 당종이 조심스런 표정으로 집게를 빼냈다.

집게 끝에는 영인고가 잡혀 있었다.

당종은 영인고를 재빨리 갈라 놓은 돼지의 머릿속으로 집어넣었다.

영인고는 돼지의 허연 뇌에 달라붙었다. 여전히 꼼짝하지 않았다.

“이제 됐다. 이 돼지를 의방 옆 헛간으로 옮겨 놔라.”

남궁가의 호위들이 들어오더니 돼지를 들고 나갔다.

“고가 살아 있는 것 같은데 왜 활동을 하지 않는 걸까요?”

남궁천이 물었다.

“흐흐흐. 내가 만든 마비약, 아니 환생단에 저놈이 아직 취해 있는 모양이오.”

당종은 나름 자신의 추측을 말했다.

“어미고는 천주의 머릿속에 있는 겁니까?”

강소군이 묻자 당종이 고개를 저었다.

“알을 낳으려면 숙주의 바깥으로 나와야지.”

“그럼 그 고만 죽이면 새끼고를 지배할 수 없으니 금제가 풀리겠군요.”

“나도 모르네. 어쩌면 숙주까지 다 죽을지도 모르지.”

당종이 천령고에 대한 자신의 기억을 다시 한 번 더듬어 봤으나 가물가물했다.

“오라버니는 무사하신 거죠?”

당우화가 할아버지를 무서운 눈으로 노려보았다.

“아이고. 금이야 옥이야 키워 놨더니… 쯧쯧.”

당종이 마음에 안 든다는 듯 혀를 차고는 나가 버렸다.

남궁천이 불취를 진맥하였다.

“역시 신의시로군. 기혈 순환이 제대로 돌아왔네.”

당우화가 남궁천에게 다소곳이 절을 하였다.

“오라버니를 살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남궁천이 어리둥절해하였다.

“우평과는 어떤 관계인가?”

“우평이 오라버니의 이름인가요?”

남궁천이 내심, 혀를 찼다.

‘요즘 아이들이란.’

이름도 모르고 정부터 주다니.

“그는 사우평이라고 한다.”

“아, 그렇군요. 이름도 아주 멋있어요.”

당우화가 중얼거리다 다시 절을 하였다.

“당가의 당우화가 사부님을 뵙습니다.”

남궁천이 당황하였다.

“그게 무슨 소리인가? 내가 왜….”

“모르셨나 보군요.”

당우화가 배시시 웃었다.

“이분과 저는 장래를 약속한 사이랍니다. 사부님.”

남궁천이 어리둥절해하였다.

당가는 폐쇄적인 가문이다. 가문의 여식을 밖으로 내보내지 않는다.

특히 직계 혈족은 데릴사위를 맞지 않는 한 혼인을 하지 않기로 악명(?) 높다.

남궁천이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그런데 왜 당 선배가 우평이를 치료 않으려 했지?”

당우화가 한숨을 푹 쉬었다.

“저는 이분이 남궁세가의 제자라는 걸 오늘 알았어요. 집안에서는 출신도 모르는데 무슨 혼인이냐며 반대가 심하죠. 남궁세가 사람이라는 걸 진작 알았다면 아무 문제가 없을 텐데.”

당우화가 하소연을 늘어놓았다.

“아! 그런가? 우평은 남궁세가의 대제자 맞네.”

“남궁세가의 이름으로 혼인첩이 온다면 아버님도 좋아하실 거예요.”

“혼인첩?”

“어렵지 않다면 지금 쓰셔도 되는데요.”

두 사람의 대화를 듣던 강소군은 조용히 웃으며 방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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