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소군-200화 (200/250)

200

남궁천은 아무 말하지 않고 눈을 감았다. 몹시 괴로운 표정이었다.

남궁악이 대신 나섰다.

“사형! 왜 스스로를 괴롭히시는 겁니까? 교룡방의 몰락은 스스로 저지른 일에 대한 책임이었습니다.”

불취의 본래 이름은 사우평. 과거 남궁천이 동생 부부의 복수를 위해 궤멸시켰던 교룡방의 후손이다.

교룡방 본거지까지 진입했던 남궁천은 교룡방주의 어린 아들 사우평을 제자로 삼았다.

“그렇다고 어린아이와 힘없는 아낙네, 노인들까지 죽일 이유는 없었지.”

“그건 착오였다고 들었습니다. 최후의 반격이 있을 것이라 예상하고….”

“착오? 하하하. 산 사람에게는 착오겠지만 죽은 이들에게는 뭔가?”

남궁악이 다시 입을 열려 하자 남궁천이 가로 막았다.

“네 말이 맞다. 너는 나에게 복수를 할 권리가 있다.”

불취가 남궁천을 응시하다 말했다.

“내가 찾아가겠소. 지금은 더 보고 싶지 않소.”

보는 이들은 불취의 냉랭한 태도에 개탄하였다.

특히 남궁세가의 무인들은 분노하는 이도 있었다.

불취는 그러거나 말거나 몸을 돌려 공손 노야에게 말했다.

“노야, 항복할 터이니 길을 열어 주시오.”

공손 노야는 잠시 머리를 굴렸다. 지금 남궁세가를 치는 게 나은지 아니면 불취를 데리고 돌아가는 게 나은지 따져 보았다.

‘남궁세가는 언제든 처치할 수 있다. 하지만 이놈은 워낙 영악하여 한 번 놓치면 잡기 힘들다.’

공손 노야에게 영인고의 비밀을 푸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했다.

“좋다. 남궁세가를 손보는 건 차차 하기로 하지.”

공손 노야가 고개를 끄덕이는데 남궁천이 말했다.

“하하. 마치 세상의 주인이라도 된 듯하군. 그러나 남궁가는 너희를 그냥 가게 둘 수 없다.”

남궁천이 창천검을 뽑아 들었다.

“천황성에서 내 아들의 팔을 잘랐는데 그냥 보낸다면 세상에서 남궁가를 뭐라 하겠는가?”

“흐흐흐. 남궁 가주. 어찌 권주를 마다하고 벌주를 마시려하는가?”

남궁천은 공손 노야가 불취를 데리고 가는 걸 두고 볼 수가 없었다.

“그런가? 살다 보면 벌주를 마실 때도 있는 법이지.”

남궁천이 뚜벅뚜벅 걸어갔다.

“이게 무슨 짓입니까?”

불취가 버럭, 화를 냈다.

“너는 내게 복수를 한다고 하지 않았느냐? 나 역시 아비로서 팔을 잃은 아들의 복수를 하는 것이다. 비켜라.”

남궁천이 담담하게 말했다.

공손 노야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가 살심을 품었을 때 짓는 표정이다.

“정히 원한다면!”

공손 노야는 남궁천을 죽여 천황성의 무서움을 보여 줄 생각이었다.

“십대고수의 아비라지? 과연 그만한 자격이 있나 보자꾸나.”

공손 노야가 스르륵 앞으로 나아갔다.

남궁천은 말없이 검을 쳐들었다.

-파파팍!

창천검이 허공을 휘젓자 푸른 하늘에 검광이 피어올랐다.

순간 공손 노야가 흠칫, 하였다.

남궁천의 무위가 예상 외였던 것이다.

강소군은 남궁세가를 방문했을 때 남궁천의 무위를 상관무영에 필적할 것이라 보았다.

남궁악이 십대고수로 꼽히며 주목을 받아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다.

“용이 웅크리고 있었던 걸 몰랐구나!”

공손 노야가 크게 소리를 지르고 쌍장을 휘저었다.

마치 철판과도 같은 강기가 쏟아졌다.

-따다당!

남궁천의 검이 공손 노야의 강기를 두들겼다.

공손 노야의 안색이 더욱 굳었다. 한 번 부딪치자 남궁천의 무위를 확실히 알 수 있었던 것이다.

-쉬아아악!

창천검에서 창궁무애검법이 펼쳐졌다.

공손 노야가 경시하지 못하고 다시 쌍장을 휘저어 기의 공간을 만들었다.

검기와 검광이 공손 노야가 만든 공간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했다.

“흐음. 과연 천외천!”

남궁천이 크게 소리를 지르더니 기의 공간에 연달아 삼검을 찔렀다.

-쿠웅!

가볍게 찌른 검이었으나 공손 노야가 받은 충격은 그렇지 않았다.

‘이자가 생사경의 경지였다니!’

무림의 무공을 무시했던 공손 노야로서는 놀라울 따름이었다.

순간.

-파팍!

푸른 창공에 뇌전이 치는 듯 섬광이 번쩍 빛났다가 사라졌다. 그 외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

공손 노야가 황급히 가슴 앞에 합장하듯 쌍장을 모았다.

서로 부딪친 손바닥에서 흰빛이 터져 나왔다.

‘우욱!’

공손 노야는 살기가 전신을 스쳐감을 느꼈다. 호신강기를 일으켜 튕겨내려 했으나 전신이 서늘하였다.

‘심검?’

공손 노야의 안색이 급변하였다.

남궁천은 정말 예상치 못한 고수였던 것이다.

‘완성되었더라면 죽었을지도 모른다.’

공손 노야는 등골이 서늘하였다.

“으음!”

남궁천도 두어 걸음 뒤로 물러났다.

전력을 다해 펼친 심검이 깨어지자 남궁천 역시 충격을 받았다. 의지가 관철되지 않은 반작용의 타격은 적지 않다.

공손 노야가 남궁천의 상황을 눈치채고 황급히 뒤로 물러나며 외쳤다.

“저놈을 죽여라!”

그러자 군웅각의 고수들이 일제히 남궁천을 향해 달려들었다.

“이런 비겁한!”

남궁악과 남궁우, 그리고 남궁세가의 무인들이 달려나갔다.

남궁천은 달려드는 군웅각의 고수들을 향해 창천검을 휘둘렀다.

-콰콰쾅!

강기와 강기가 격돌하며 연달아 폭음성이 터졌다.

곧바로 남궁우와 팽일호 등이 뛰어들고 뒤이어 남궁가의 무인들이 달려들었다.

하지만 군웅각의 고수들은 집요하게 남궁천만을 노렸다.

그들 스스로도 자신들이 왜 그런지는 몰랐다.

그것은 영인고를 통해 받은 명이 남궁천을 죽이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공손 노야가 뒤로 물러나며 싸움을 보다가 갑자기 고개를 젖혔다.

-쉭!

머리를 젖혀 피했으나 비도는 심장을 노린 것이었다. 공손 노야는 억지로 신형을 비틀었다.

-콱!

아슬아슬하게 심장을 피했으나 비도가 왼쪽 어깨에 박히고 말았다.

소리를 먼저 보내 머리를 노리는 듯 착각을 일으키고 원하는 곳에 박아넣는 비도술.

불취의 수법이었다.

“이놈이?”

공손 노야의 눈에 불취가 실실, 웃는 모습이 들어왔다.

피투성이가 된 얼굴로 웃는 모습이 기괴했다.

“크크. 아쉽군. 늙은이가 정말 재빠르기도 하지.”

불취의 손에는 비도가 한 자루 더 있었다.

공손 노야가 비도를 뽑고 지혈을 하였다.

“봐주는 것도 한계가 있지. 이렇게 된 이상 너를 죽여 머리를 열어 봐야겠다.”

공손 노야가 손을 쓰려 하는데 불취가 들고 있던 비도를 흔들었다.

“생사경은 만독불침이라며? 그럼 일만일 번째 독도 막을 수 있을까?”

공손 노야가 흠칫 놀라 비도가 박혔던 곳을 봤다.

내력으로 봉인하였기에 외상으로 인한 고통만 미미하게 있을 뿐이다.

일만일 번째 독.

강호에서는 당가의 무형지독을 우스갯소리로 그렇게 부른다.

만독불침도 별수 없이 당하기에 일만일 번째 독이라고 한다.

“이게 무슨 독인지 아나?”

불취가 자신의 손에 든 비도를 비틀어 보여 주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흥! 네놈이 세 치 혓바닥을 잘 놀린다는 건 알지.”

공손 노야가 코웃음을 쳤다. 불취가 무형지독을 지녔을 리가 없지 않은가.

“당신은 천황성 계곡 밖에서 나를 기다리던 여인을 알지?”

“…?”

“그 여인이 당가의 전대가주 당종이 끔찍하게 여기는 손녀거든.”

공손 노야의 눈가가 가늘게 떨렸다.

무형지독의 명성은 강호를 울렸지만 한 번도 나타난 적이 없다.

그러니 중독되면 어떤 현상이 나타나는지도 알려진 바가 없다. 다만 반드시 죽는다고만 알려졌을 뿐이다.

공손 노야는 가슴이 서늘해졌다.

그는 원래 의심이 많은 인물이다. 당종의 손녀라면 무형지독을 지니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비도가 박혔던 어깨가 욱신거리는 듯했다.

-획!

공손 노야의 신형이 사라졌다.

“하하, 운기하지 말라고. 독이 더 빨리 퍼지니까!”

불취가 크게 웃으며 외치고는 몸을 돌려 군웅각 고수들과 남궁세가가 격돌하는 곳을 돌아봤다.

군웅각의 고수들이 집중적으로 남궁천을 공격하고 남궁악과 남궁세가, 팽일호가 그런 군웅각의 고수들을 저지하는 중이다.

“귀찮다! 비켜라!”

-쾅!

“크윽!”

서른 명이나 되는 절대고수들이다. 그중에 대여섯 명이 남궁천을 집중공격하고 있었다.

남궁악 등은 다른 군웅각의 고수들을 막기에 급급했다.

불취가 천천히 격전장으로 걸어갔다.

한 발 한 발 내딛는 그의 걸음걸이는 무척이나 무거웠다.

소리를 먼저 보내고 뒤늦게 비도를 맞추는 수법은 순간적으로 내력을 쏟아내서 비도의 궤적을 바꿔야 하기에 적잖은 내공을 필요로 했다.

평상시라면 아무렇지도 않았을 것이나 연이어 격전을 벌이고 부상까지 입은 몸으로 시전하기에는 무리가 따랐다.

불취는 호흡을 가다듬으며 격전장으로 걸어갔다.

“크윽!”

남궁세가의 무인 하나가 쓰러지며 장검이 튕겨 나왔다.

장검은 공교롭게도 불취의 앞에 꽂혔다.

검병에 새겨진 남궁이라는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불취가 손을 내밀어 검자루를 쥐었다.

이어 최후의 힘을 짜내 격전장으로 뛰어들었다.

-쾅!

-콰쾅!

불취의 검이 공간을 누비며 남궁천을 공격하는 군웅각의 고수들을 노렸다.

군웅각의 고수들을 잘 아는 불취였기에 효과적으로 공격하였고 덕분에 남궁천은 한숨 돌릴 수 있었다.

“물러서 있거라!”

남궁천이 불취를 보고 소리쳤으나 아랑곳하지 않았다.

“배반자!”

군웅각 고수 중 하나가 불취의 뒤에서 기습을 하였다.

쭉 뻗은 직도가 화노의 장력에 꺼멓게 그을린 불취의 등을 노렸다.

“위험해!”

남궁천이 자신을 노리는 두 자루의 검을 쳐내는 동시에 불취를 향해 몸을 날렸다.

“크윽!”

불취의 등을 노리던 자는 남궁천의 창천검에 목이 꿰였다.

그러나 남궁천을 노렸던 검 또한 끝까지 따라왔다.

검이 남궁천의 등에 박히려는 순간 불취가 몸을 던져 어깨를 들이 밀었다.

-콱!

검이 불취의 어깨를 관통하여 가슴으로 나왔다.

“우평아!”

남궁천이 고함을 지르며 뇌전 같은 검기를 뿌렸다.

생사경의 고수가 사력을 다해 검기를 뿌리자 마치 용권풍 같은 검기가 주위를 맴돌았다.

-쾅!

-콰앙!

군웅각의 고수들이 저마다 강기를 발출하여 용권풍 같은 검기의 소용돌이를 벗어났다.

“우평아!”

불취가 그대로 혼절하여 쓰러지자 남궁천이 재빨리 붙잡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군웅각의 고수들은 다시 짓쳐들었다.

-쉬익!

-슈슉!

검과 도가 남궁천과 불취를 향해 날아들었다.

그때.

금빛 기운이 번뜩였다.

-콰아아앙!

거대한 금빛 경기가 사방으로 퍼지고 반경 삼 장 둘레의 땅이 움푹 파였다.

“…!”

“….”

엄청난 기파가 사방으로 퍼져 나가자 곳곳에서 벌어지던 싸움도 멈췄다.

“강 형님!”

남궁우가 반색하여 외쳤다.

기절한 불취를 잡고 있는 남궁천 옆에 무애검을 든 강소군이 서 있었다.

“늦었습니다.”

강소군이 남궁천과 불취를 보다 말했다.

남궁천이 불취의 어깨를 지혈하고 맥을 잡아 살폈다.

고수들의 검이나 도는 외상만 남기는 게 아니다. 실려 있는 경력이 기혈을 찢고 내장을 파괴한다.

불취의 기식이 엄엄하였다.

군웅각의 고수들이 다시 삼삼오오 짝을 지어 남궁천을 향해 다가왔다.

강소군이 군웅각의 고수들을 훑어보고는 말했다.

“너희가 천령대법의 금제에 걸려 있다는 걸 알고 있나?”

군웅각의 고수들이 흠칫, 하여 서로를 보았다.

“….”

“무슨 헛소리를 하는 것이냐?”

어떤 이는 금제를 알고 있는 듯 입을 닫고 있었고 어떤 이는 헛소리로 일축하였다.

강소군이 품에서 영인고를 싼 헝겊을 꺼내 풀었다.

“이런 게 너희 머릿속에 있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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