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소군-193화 (193/250)

193

화룡도가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허공에 붉은빛이 선명하게 그어졌다.

-쾅!

엄청난 폭음이 터졌다.

맞붙어 있던 두 사람의 신형이 갈라섰다.

“크흡!”

조운룡은 내장이 뒤틀리는 고통에 자기도 모르게 신음을 내뱉었다.

‘베었다!’

그러나 고통보다 상대를 베었다는 생각이 먼저였다.

조운룡은 피범벅이 된 얼굴을 쓸었다.

가슴이 베인 자가 뿌린 피다.

확인해 보니 상대는 가슴 부위가 길게 베어져 비틀거리고 있었다.

거의 반토막이 나다시피 했는데도 아직 의식이 있는 모양이었다.

뭐라고 중얼거리다 그대로 뒤로 넘어갔다. 그의 뒤로 두 사람의 시신이 나뒹굴고 있었다.

조운룡과 함께 상대하다 먼저 죽은 과거 도룡회의 장로들이었다.

“우욱!”

“크아악!”

그제야 사방에서 들려 오는 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조운룡이 퍼뜩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돌아보았다.

“…!”

화룡문은 천무방보다 더 상황이 처참했다.

천무방을 따라 서생과 청기 둘이 갔지만 화룡문에는 다섯이나 되는 고수가 쫓아왔다.

조운룡의 눈에 고죽문주가 피를 뿌리며 쓰러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천황성의 고수가 최후의 일격을 가하려고 손을 치켜들었다.

“이야야압!”

조운룡이 전력을 다해 돌진하였다.

고죽문은 도룡회 시절부터 화룡문과 합을 잘 맞춰 왔던 동맹이다.

그대로 죽게 놔둘 수 없었다.

조운룡은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내공을 모두 도에 쏟아부었다. 붉은 도강이 먼저 쏘아져 나갔다.

천황성의 고수도 경시하지 못하고 고죽문주를 버려두고 몸을 돌려 쌍장을 휘저었다.

-쉬이이익!

싸늘한 경기가 손의 움직임을 따라 허공을 가르며 도강을 쳐냈다.

-콰앙!

조운룡은 장세가 펼친 거대한 경기를 뚫고 들어갔다.

옷이 갈기갈기 찢기고 피부가 터져 나갔으나 조운룡은 상관하지 않았다.

그러나 조운룡의 도는 상대와 한자 거리에서 멈추고 말았다.

“우욱!”

조운룡이 더욱 힘을 주어 진원지기까지 폭발시켰으나 장세는 벽처럼 단단하여 더 이상 밀리지 않았다.

화룡도를 쥔 조운룡의 팔뚝에 혈관이 불끈 돋아났는데 그대로 터질 것만 같았다.

조운룡이 최후의 힘을 다해 도를 밀어내려는데.

“헉!”

숨을 들이켜는 소리와 함께 거대한 장세의 벽이 사라졌다.

-푸욱!

조운룡의 도가 상대의 가슴에 박혀 심장을 쪼갰다.

정신차리고 보니 상대의 복부에 검이 삐죽 나와 있었다.

“으으으.”

상대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뒤를 돌아보려 했으나 등을 찌른 검과 조운룡의 도에 꼬치처럼 꿰어 꼼짝도 하지 못했다.

천황성 고수의 복부를 뚫고 나온 것은 고죽문주의 검이었다.

“장 문주!”

조운룡이 황급히 고죽문주를 불렀다.

다 죽은 줄 알았던 고죽문주가 몸을 반쯤 일으켜 마지막 남은 힘을 다해 상대의 등을 찌른 것이다.

-쿨럭!

고죽문주가 다시 뒤로 벌렁 쓰러졌다.

바튼 기침을 하며 피를 토하는 모양새를 보아하니 최후의 진력마저 다 쓴 게 분명했다.

고죽문주는 쓰러진 채로 고개를 위로 들고자 했다.

조운룡이 재빨리 가서 고죽문주를 부축하였다.

“아, 아니오. 나는 됐소. 조 문주, 저, 저 녀석만은 꼭 살려 주시오. 저놈만 산다면 고죽문을 이어 갈 수 있소.”

고죽문주가 다 죽어 가는 목소리로 누군가를 보았다.

고죽문의 후계자 장복하였다. 장복하는 고죽문을 비롯한 과거 도룡회 문파들과 함께 진을 펼쳐 한 사람을 상대하고 있었다.

조운룡과는 형 동생 하는 사이다.

“걱정 마십시오. 후배가 목숨을 걸고 복하를 지킬 것입니다.”

“고, 고맙소….”

고죽문주가 고개를 떨궜다. 그 옆에는 고죽문의 장로를 비롯한 과거 도룡회의 고수들의 시신이 나뒹굴고 있었다.

-챙! 채앵!

“크윽!”

비명성은 끊이지 않았다.

천황성의 고수 둘을 상대하는 화룡문 십이도객과 백대도수는 거의 절반이나 쓰러져 있었다.

나머지 한 명의 고수가 고죽문 장복하 등을 주살하고 있었다.

도룡회 소속이었던 문파들은 과거 황군의 고수들을 상대하기 위해 연합진을 익힌 바 있다. 그 덕분에 간신히 버티고 있는 중이다.

“우와와앗!”

조운룡은 수많은 동지들이 처참하게 쓰러진 걸 보자 정신이 나갔다.

“죽어랏!”

조운룡의 몸이 허공을 날았다. 진원지기를 머금은 화룡도가 핏빛으로 붉게 타올랐다.

마치 한 마리 화룡처럼 조운룡이 장복하를 향해 검을 찌르는 천황성의 고수를 덮쳤다.

천황성의 고수가 주춤, 하더니 공세를 끊고 곧바로 몸을 회전하며 조운룡의 기세를 흘려내려 하였다.

그러나 장복하 등의 무인들이 펼친 연합진을 일시에 벗어날 수가 없었다.

“칫!”

중년으로 보이는 천황성의 고수가 못마땅하다는 듯 검을 아래위로 휘저었다.

검기가 파도치듯 일렁거렸다. 층층이 쌓인 검기가 장강대하처럼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번쩍!

붉은빛이 다시 한 번 허공을 갈랐다.

-쿠앙!

“푸흡!”

충격에 의해 튕겨 나가는 조운룡의 입에서 붉은 피가 쫙 뿜어져 나왔다.

천황성의 고수도 충격이 적지 않았는지 비틀하였다.

“파천!”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장복하가 크게 외쳤다.

그러자 진을 이루고 있던 무인들이 일제히 밀고 들어갔다.

여기서 상대를 죽이지 못하면 몰살당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죽음을 무릅쓰고 달려든 것이다.

그들 하나하나가 각파의 일류고수들이다. 죽음을 도외시하고 달려들자 천황성의 고수도 좌시할 수 없었다.

천황성의 고수는 허공으로 도약하려 하였다.

그러나 이미 허공에는 장복하가 먼저 도약하여 검을 내려치고 있었다.

“흥!”

천황성의 고수가 코웃음을 치며 그대로 도약을 하였다.

장복하 정도는 그대로 튕겨내고 달아날 자신이 있었던 것이다.

순간,

-번쩍!

하얀빛이 허공을 갈랐다.

천황성의 고수는 그대로 반동강이 났다.

사람들이 빛이 날아온 곳을 보았다.

“회주님!”

장복하 등 몇몇이 소리쳤다.

억지로 일어나던 조운룡의 눈에 사부 우문극이 보였다.

그리고.

“사제!”

조운룡은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사형 석병도를 보면서 혼절하고 말았다.

***

-쾅! 콰쾅!

“아!”

팽일호가 경탄성을 흘렸다.

남궁악과 천황성의 고수 간의 싸움이 막바지에 이르렀다.

상대 역시 검을 썼는데 남궁악의 검세에 밀리는 감이 있었다.

남궁악은 봉황수와 싸운 이후 계속하여 정진하여 현경에 근접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적도 만만치 않았다.

‘아! 고수 하나가 있고 없음이 이렇게 차이가 나는구나!’

팽일호는 부끄러움을 느꼈다. 천하비무대회에 나가 실력을 보이고 맹주의 자리를 노릴 생각을 했다는 것이 얼마나 헛된 망상이었는지 절실히 느꼈다.

그는 벽을 지나고 있었고 조만간 넘어설 수 있다고, 그러면 절대지경에 들 것이라 자만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건 그의 착각이었다.

팽일호가 주위를 돌아봤다. 남궁악이 한 사람을 맡아 싸우는 동안 자신과 팽가의 고수들이 다른 하나를 상대했는데 피해가 적잖았다.

팽가의 장로와 고수를 둘이나 잃고서야 간신히 그를 처치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무시무시한 상대를 남궁악은 홀로 상대하고 있었다.

-파아악!

푸른빛이 터져 오르더니 천황성의 고수가 쓰러졌다.

남궁악이 표표히 서서 납검을 하였다.

기어이 적을 쓰러뜨린 것이다.

***

-푸욱!

화공은 기어이 자신의 가슴에 박힌 검을 보고야 말았다.

그의 주위에는 천황성의 고수들이 싸늘한 시신으로 변해 쓰러져 있었다.

그가 가장 최후까지 버틸 수 있었던 것은 교묘히 뒤로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동료들을 믿었다. 적어도 의천맹 고수들과 동귀어진하거나 최소한 중상을 입힐 것이라 여겼다.

그러나 그건 혼자만의 헛된 착각이었다.

“지독한 놈!”

화공이 검자루를 쥐고 있는 강소군을 보며 이를 갈았다. 그의 눈에 비치는 강소군은 악귀나 다를 바 없었다.

상대가 이를 갈거나 말거나 강소군은 무심한 얼굴로 검을 뽑았다.

-파악!

마침내 화공의 심장이 터졌다.

화공이 쓰러지자 정적이 찾아왔다.

의천맹 본단 대문 망루에는 제갈선을 비롯하여 의천맹 간부들이 모여 있었으나 아무도 환호를 지르지 않았다.

그저 침묵만이 흘렀다.

강소군이 주위를 돌아보았다.

그는 혈인이나 다를 바 없었다. 피에 젖은 무애검을 들고 피바다 위에 서 있는 모습이 괴기스럽기까지 하였다.

천황성 고수들을 주살하기는 했으나 의천맹도 피해가 컸다.

소림 장경각주 무오대사가 죽고 해남일검 이정과 또한 목이 잘린 시신으로 나뒹굴었다.

태악진권 양우종도 양팔을 잃었으니 폐인이 된 셈이다. 그 외 여럿이 죽거나 부상을 당했다.

비교적 온전한 이는 철권호와 무당장문 청무진인, 당종이었다.

한마디로 동귀어진이었다. 아마도 강소군이 없었다면 다른 이들도 모두 죽었으리라.

철권호가 손을 들자 대문이 열리고 의천맹 무인들이 달려 나왔다.

“정중히 모셔라!”

철권호가 쓰러진 정파의 대협들을 보며 침중하게 말했다.

강소군은 여전히 검을 짚고 서 있었다.

“일단 들어가세. 적이 다시 올 터이니.”

철권호가 강소군에게 말했다.

그러나 강소군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뭔가를 생각하는 눈치였다.

철권호는 더 권하지 않았다. 그는 부상자를 수습하고 뒷일을 논의하기 위해 맹으로 돌아갔다.

“왜 그러는가?”

청무진인이 강소군에게 다가왔다.

“잠시 생각할 게 있어서 그럽니다. 먼저 들어가십시오.”

강소군이 말에 청무진인도 맹으로 들어갔다.

적의 선봉은 막았으나 진짜 싸움은 이제부터였다.

강소군은 검을 짚고 서서 길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공손 노야가 어떻게 나올 것인가 생각하는 중이었다.

적의 공격이 생각보다 빨랐다.

산동삼호가 곧바로 떠나기는 했으나 군은 움직이려면 시일이 필요하다.

아무리 서둘러도 본대가 오려면 열흘은 걸릴 것이다.

적의 선봉은 막았지만 삼천여 흑천맹 흑도들이 몰려오고 있다.

강소군은 공손 노야의 수를 알아야 했다. 그 실마리를 알려 줄 이를 기다리는 중이다.

“오라버니는 왜 저러고 있는 거지?”

남궁령과 팽일소 등 후기지수들은 감히 싸움에 끼어들 수가 없었다.

의천맹 대문 망루에서 발을 구르며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생전 처음 고수들이 전력을 다한 생사결을 본 후기지수들은 넋이 나갔다.

남궁령은 은근히 불안했다.

다른 이들은 다 들어왔는데 강소군은 홀로 피바다 속에 서 있다.

그 모습이 마치 천하를 딛고 서있는 듯했다.

후기지수들을 비롯해 의천맹 모든 무인들의 뇌리에 강소군에 대한 인상이 확실히 박히는 순간이었다.

***

“어째 너무 조용한 것 같군.”

권황이 커다란 팔인교 위에 앉아 중얼거렸다.

검제 역시 진작부터 뭔가 좋지 않은 느낌을 받았다.

두 사람의 팔인교는 나란히 가고 있었다. 햇볕 가리개까지 드리워진 팔인교는 화려하여 황제의 행차가 부럽지 않았다.

‘그러게 서둘렀어야지.’

검제가 속으로 중얼거렸다. 적을 칠 때는 전광석화처럼 해치워야 하는데 권황은 너무 모양새에 집착하였다.

권황은 흑천맹의 위세를 보여 준다는 명목으로 모두가 집결한 뒤 대오를 맞춰 가도록 하였다.

그러다 보니 출발이 생각보다 늦었다.

대신 효과는 컸다. 감히 그들을 막아설 이가 없었다.

그들은 호호탕탕 의천맹 본단을 향해 진군하였다.

“벌써 함락한 게 아닐까 모르겠소.”

“철권호도 만만치 않은 자인데 방비를 했겠지.”

권황이 자신의 콧수염을 비틀며 말했다.

“도황이 그를 쫓았는데 실패했다지 않은가.”

권황의 말에 검제가 고개를 끄덕였다.

“천령대법을 받지 않고 화경을 넘었으니 깨친 바가 더 컸을지도 모르오.”

권황이나 검제는 천령대법의 한계를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그 한계 또한 넘었다고 자부하고 있다.

“흥! 그래 봐야 한참 멀었지.”

권황이 잠시 생각하다 물었다.

“이번에 천주가 우리를 내보낸 이유를 생각해 봤나?”

“그거야 공손 노야가 청한 것 아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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