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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아앙!
도를 든 자의 전신에서 기파가 터졌다.
그는 일도에 갈라 버리겠다는 기세로 도를 내리쳤다. 전광석화와도 같았다.
“헛!”
도는 허공을 베었다. 강소군의 신형이 사라졌다. 하지만 그 역시 고수였다.
-쿠웅!
앞발로 땅을 힘차게 찍어누르며 도를 옆으로 쓸었다.
도 끝이 번쩍하더니 도강이 쏟아져 나왔다.
-치이이익!
“이크! 조심하게!”
천황성의 고수들이 사방으로 산개하였다.
도를 든 자는 무림 출신이었다. 게다가 싸움 경험도 풍부해 보였다.
자기보다 고수로 짐작되는 이가 순식간에 죽자 최선을 다했다.
남자가 사방으로 도강을 뿌리며 방어에 치중하자 강소군도 일시에 뚫기가 어려웠다.
그 사이 점쟁이 노인이 산통에서 점치는 대나무 괘를 뽑았다.
작은 죽간(竹簡) 같은 대나무 괘는 손바닥만한 길이인데다 납작하여 암기로 쓸 수 있을까 의문이었다.
점쟁이 노인은 음흉하였다. 그가 손을 휘젓자 죽괘(竹卦)가 강소군의 요혈을 노리고 날았다.
죽괘는 소리조차 없이 날아들었다.
강소군은 사방으로 의식을 열어두고 있었다.
점쟁이 노인이 수작을 부리는 걸 알았으나 눈앞의 상대 역시 이를 알아채고 강소군이 빠져나갈 틈을 미리 차단하였다.
강소군의 왼손이 호선을 그리며 부드럽게 허공을 저었다.
“흐흐흐. 걸렸군.”
점쟁이 노인이 쾌재를 불렀다.
죽괘에 실려 보낸 암경은 그가 전력을 다한 것이다.
강기도 뚫을 수 있으니 맨손으로 막을 수는 없었다.
게다가 그와 기운줄로 연결되어 있어 조정을 할 수 있다.
점쟁이 노인이 손을 휘저어 죽괘를 조정하려다 말고 인상을 썼다.
기운이 끊긴 것이다.
“헉!”
강소군의 왼손이 원을 그리자 죽괘가 날아가던 방향을 꺾어 도를 든 자에게 향했다.
“어찌 저럴 수가!”
점쟁이 노인은 물론이고 도를 든 자도 놀라고 말았다.
자신과 상대하면서 다른 손으로 죽괘의 방향을 비틀다니. 믿을 수 없는 실력이었다.
강소군은 금단진공을 운용하고 있었다.
금단진공은 현치자가 양의심공을 바탕으로 하여 만들어 낸 절학이다. 의식을 둘로 나누는 건 강소군에게 익숙했다.
몸은 하나인데 양손의 동작은 각기 다른 사람과도 같이 움직였다.
“으헛!”
도를 든 자가 황급히 날아드는 죽괘를 쳐냈다.
“조심하게!”
-콰콰쾅!
죽괘에 실려 있던 암경이 폭발하였다. 놀랍게도 죽괘가 수백 가닥으로 가늘게 갈라지며 사방으로 비산하였다.
“엇!”
바늘처럼 가느다랗게 갈라진 대나무 조각 몇 개가 도를 든 자의 팔뚝에 꽂혔다.
도를 든 자의 안색이 삽시간에 굳었다.
대나무 살 그 자체는 큰 위협이 아니었다.
하지만 바늘 같은 대나무 살이 꽂히자마자 칙칙하면서도 싸늘한 기운이 팔뚝에서 어깨를 타고 올라왔다.
도를 든 자가 재빨리 뒤로 물러나며 도를 든 손으로 대나무 살을 뽑아내려 하였다.
그 순간!
-번쩍!
하얀 별과 같은 섬광이 유성처럼 날아들었다.
“크윽!”
도를 든 자가 팔뚝 대신 목덜미를 잡았다.
섬광이 목을 관통한 것이다.
“이, 이런 비겁한….”
도를 든 자는 얼마나 눈을 크게 부릅떴는지 눈알이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그는 억울했다.
통성명도 없는 갑작스런 공격과 상궤를 벗어난 강소군의 수법에 놀랐다가 순식간에 당하고 말았다.
게다가 아군의 암수가 그 계기가 되었으니 상황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하지만 죽음은 엄정하게 찾아왔다.
“꺼어억.”
도를 든 자는 목을 부여잡은 채 눈을 부릅뜨고 그대로 뒤로 쓰러졌다.
강소군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곧바로 점쟁이 노인을 향해 검강을 뿌렸다.
점쟁이 노인이 산통을 흔들자 죽괘들이 날아올랐다.
-콰콰쾅!
강소군의 검강이 죽괘와 부딪치며 경력이 터지는 폭발음이 연달아 일었다.
점쟁이 노인은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모두 합공하세.”
점쟁이 노인의 말에 천황성의 고수들이 퍼뜩, 정신을 차렸다.
강소군이 나타나자마자 두 사람이 쓰러졌다. 아무리 느닷없는 공격이었다지만 말이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천황성의 고수들이 거리를 벌리며 강소군을 에워쌌다.
강소군을 가운데 두고 십여 명이 포위한 형국이었다.
그때.
의천맹 대문이 열리며 몇 사람이 나왔다.
당종과 철권호가 선두에 섰고 무당파 장문인 청무진인과 곤륜파 관해도인, 그리고 소림 장경각주 무오대사가 뒤를 따랐다.
천하비무대회에 참가했던 태악진권 양우종과 해남일검 이정과도 모습을 드러냈다.
천하비무대회에 참관하고자 온 대파와 세가의 고수들 가운데 천황성 고수들을 감당할 자들만 나온 것이다.
당종이 점쟁이 노인을 향해 손짓을 하였다.
“흐흐흐. 거기 점쟁이! 죽괘 던지는 솜씨가 제법이던데. 이리 와 봐라.”
당종이 누군지 모르는 점쟁이 노인이 인상을 썼다.
“저 미친 늙은이가?”
강소군의 기세에 잠시 눌리긴 했지만 그 역시 화경에 든 고수다. 당종이 자신을 애 취급하니 부아가 치밀었다.
화공이 점쟁이 노인에게 주의를 줬다.
“흥분하지 말라고.”
화공이 뒤를 돌아봤다.
오다가 매복을 쫓아간 이들은 아직 오지 않고 있다.
하지만 화공은 의천맹에서 나온 이들이 얼추 자신들과 수가 비슷한 걸 보고 마음을 놓았다.
강소군만 아니라면 일대일 승부에서 질 것이란 생각 자체를 하지 않았다.
의천맹 고수들은 나오자마자 천황성 고수들을 공격하였다.
중간에 유인됐던 자들이 돌아오기 전에 승부를 봐야 했다.
-챙!
-쉬쉬쉭!
가타부타 말없이 격전이 벌어졌다.
점쟁이 노인도 당종을 향해 달려들었다.
껄끄러운 강소군보다 비쩍 마른 늙은이를 상대하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한 것이다.
허나 그건 그의 오산이었다.
당종은 이미 화경에 든 지 오래인 고수다. 게다가 아무리 그가 독과 의술에 푹 빠져 살았다지만 당가의 가주였던 자다.
“그까짓 암기술로 나를 대적하려고? 진짜를 보여 주마!”
당종이 양손을 가슴 앞으로 모았다가 동시에 내뻗었다.
-파아아악!
“헉!”
점쟁이 노인은 눈이 튀어나올 뻔했다.
무려 일 장 반경을 에워싸고 무수한 암기가 날아왔다.
비도나 수리검, 쇠질려는 물론이고 우모침과 쇄혼사까지 포함된 다채로운 암기였다.
당종도 상황이 위급하니 첫수에 최고의 절기 만천화우를 뿌려댄 것이다.
점쟁이 노인이 재빨리 산통의 죽괘를 뿌리고 양손에 강기를 끌어 올려 휘저었다.
-파파파팍!
점쟁이 노인이 펼쳐낸 강기막에 대부분의 암기들이 막혔다.
허나 만천화우는 그렇게 간단한 암기술이 아니다.
오죽하면 천하에 막을 자가 없다고 했을까.
강기를 뚫는 우모침과 쇄혼사가 날아들었다.
“흐억!”
점쟁이 노인은 목덜미와 허벅지, 등짝이 따끔한 것을 느꼈다. 동시에 싸늘한 기운과 함께 마비가 왔다.
“독!”
점쟁이 노인이 황급히 뒤로 물러나며 내공을 일으켜 독을 방비하려 하였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강소군이 있던 곳이었다.
-서걱!
등 뒤에서 검광이 번뜩이며 점쟁이 노인의 목이 떨어졌다.
“이런 비겁한 놈! 뒤에서 암습을 하다니! 네가 그러고도 정파냐?”
화공이 친하게 지냈던 점쟁이 노인이 단박에 죽자 분기탱천하여 소리쳤다.
강소군은 아무런 흔들림 없이 다음 상대를 향해 검을 날렸다.
무표정하게 검을 휘두르는 강소군의 모습에 정파의 사람들도 가슴이 서늘하였다.
‘혈마라더니 과연 그렇구나!’
어려서 군문에 들었던 강소군은 화공의 분노가 이해되지 않았다.
전쟁터에서는 통성명을 할 여유도 없고 기회가 왔을 때 주저할 이유도 없다.
당종만 속으로 좋아하였다.
‘어린놈이 독하기도 하지. 손녀 사윗감으로 딱이구나.’
점쟁이 노인까지 죽자 천황성의 고수들은 사기가 떨어졌다.
철권호가 앞에 있는 천황성의 고수를 향해 섰다.
천황성의 고수가 철권호를 노려보며 말했다.
“네놈이 천주의 은혜를 입고 배반을 하다니.”
“뭔가 잘못 알고 있군. 나는 천령대법을 받지 않았다.”
“그래? 그럼 이 칼을 받아 봐라.”
천황성의 고수가 대뜸 도를 휘둘렀다.
강기가 사방으로 비산하였다. 역시 절대고수였다.
두 사람이 격돌하는 순간 화공이 소리쳤다.
“다 죽여 버립시다!”
천황성의 고수들이 일제히 달려들었다.
강소군에게는 세 명이 붙어 동시에 협공하였다.
-콰콰쾅!
이십여 명의 고수들이 목숨을 걸고 일대 격전을 벌이자 연달아 폭음성이 터졌다.
***
“크어억!”
서생이 붓을 휘저을 때마다 천무방 무인들이 속절없이 쓰러졌다.
-디리링!
청기가 금을 튕길 때마다 귀를 막고 쓰러지는 자가 한둘이 아니었다.
주위에는 쓰러진 시신이 즐비했다.
단 두 사람이었건만 천무방 무인들은 감당하지 못했다.
오십여 무인이 달려들었으나 순식간에 절반 이상이 죽고 말았다.
천무방 무인들은 정예 중의 정예였으나 서생의 붓 한 자루를 감당하지 못했다.
“으으….”
구양수는 내심 후회했다.
서생과 청기 둘만 쫓아오기에 내심 어렵지 않게 잡을 것이라 여겼다가 낭패를 보는 중이다.
유인 작전에 대해 들었을 때 천무방은 단독으로 나서겠다고 했다.
그리고 신무와 참룡 이백 무인을 끌고 왔다.
아무리 절대고수라지만 신무와 참룡은 천무방 최고의 전력이다. 구양수는 자신했다.
그런데 상대가 이런 괴물들이었을 줄은 생각지 못했다.
‘이건 사기야!’
천황성에 대해 들은 바는 있었으나 과장이 섞였을 것이라 생각했다. 소문이란 으레 그런 식이니까. 이런 괴물들이 있을 줄은 몰랐다.
“이러다 대원들 다 잃겠소.”
참룡대주 평엽이 도를 고쳐 쥐고 튀어 나가려 했다.
구양수는 참룡대 오십 명을 내보내 두 사람의 실력을 알아보려 했는데 도무지 상대가 되지 않았다.
“잠깐!”
구양수가 평엽을 잡았다.
“왜 막는 거요!”
돌아보는 팽엽의 두 눈이 시뻘겋다. 수하들의 죽음에 광분하기 일보 직전이었다.
“구 공자, 저들은 인간이 아니오. 모두 합공해야 하오!”
옆에 있던 신무대주 주태도 검을 뽑았다.
“너희도 준비해라!”
주태가 뒤에 있던 신무대 일백 무인을 돌아보며 말했다.
‘…!’
주태가 흠칫, 하였다. 신무대원들의 눈에 두려움이 어려 있음을 본 것이다.
주태의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처음부터 모두 달려들었어야 했다.
압도적인 적의 무위를 본 대원들 사이에 공포심이 퍼진 것이다. 이래서는 싸움이 되지 않는다.
“정신차려라!”
주태가 고함을 질렀다.
그제야 신무대원이 흠칫, 놀라 일제히 검을 뽑았다.
그런데.
“에이, 썅!”
구양수가 이를 부드득 갈며 소리쳤다.
“그냥 쏴라!”
순간,
-따다다당
-따당
양쪽 숲에서 연달아 화승총이 터지는 소리가 들려 왔다.
“큭!”
“크어억!”
서생과 청기는 물론이고 그 주위에 있던 참룡대원들까지 화승총에 맞아 비명을 지르고 쓰러졌다.
“무슨 짓이오!”
평엽이 버럭, 소리를 지르며 구양수의 멱을 쥐었다.
당장이라도 구양수의 목을 칠 기세다.
하지만 구양수의 시선은 앞만 노려보고 있었다.
“그렇지! 그래야지!”
평엽이 돌아보니 서생과 청기가 비틀거리고 있었다.
“계속 쏴! 죽을 때까지 쏘라고!”
-따다당, 따다당.
연달아 화승총이 터졌다.
수십 발의 화승총탄이 쏟아졌다.
“컥!”
서생과 청기는 생각지도 못한 총격에 당하고 말았다.
“서랑!”
청기가 비틀거리며 그의 품에 안겨 왔다.
그녀의 몸 곳곳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서생 역시 전신이 피투성이다. 수십 발의 총탄 앞에는 호신강기도 소용이 없었다.
“크흡!”
서생이 내공을 폭발시켜 자세를 곧추세웠다. 품에 안긴 청기가 서생을 올려다보았다.
‘…!’
청기의 눈에는 두려움도 독기도 없었다. 오히려 편안한 눈빛이었다.
-띵!
서생은 그 순간 머릿속에 팽팽하게 매여 있던 줄 같은 게 끊어짐을 느꼈다.
동시에 천령대법을 받기 전 그 어느 날로 돌아간 듯 전신이 무겁게 느껴졌다.
-쿨럭!
청기의 붉은 입술이 피를 토했다.
‘….’
서생은 뭐라도 한마디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따다당!
화승총이 또다시 터지는 소리가 들리며 서생의 의식이 끊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