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소군-191화 (191/250)

191

“이해할 수가 없군. 그런 고수들이 왜 남의 명에 따르는 걸까?”

강소군이 상황을 설명하자 심마백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절대고수가 수십 명이라니. 그렇다면 의천맹이 절대적으로 불리하지. 수적으로도 열세잖아?”

심마백이 연화심을 보며 말했다.

“연 문주가 선견지명이 있었군. 무한이 전쟁터가 될 줄이야.”

장무강이 강소군에게 말했다.

“이렇듯 우리에게 상황을 일러주는 건 이유가 있을 법한데.”

장무강이 상황을 짐작하듯 말하자, 강소군이 원하는 바를 말했다.

“도지휘사사를 만나 주셨으면 합니다.”

장무강의 안색이 침중하게 굳었다.

“군을 동원할 생각인가?”

강소군이 대답하기도 전에 심마백이 고개를 저었다.

“그건 옳지 않아. 무림의 일에 군이 개입할 명분을 준다는 건 반대일세.”

“흑백 양도의 싸움에 끼어들고자 하는 게 아닙니다.”

“그러면?”

“무한에 또 다른 천황성의 무리가 있습니다. 이들을 잡을 생각입니다.”

장무강이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우리 말을 들어 줄까? 자네가 아무리 황실의 인척이라지만 군을 동원할 권한은 없는 걸로 아네.”

심마백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러자 강소군이 황제에게서 받은 구룡금패를 꺼냈다.

“이걸 보여 주면 들을 겁니다.”

***

“자네들이 먼저 가서 예봉을 꺾어 주게.”

권황이 천황성의 고수들에게 말했다.

“이런 귀찮은 싸움까지 해야 하다니.”

“천주의 명이라잖아.”

천황성의 고수들이 툴툴거리면서도 앞으로 나섰다.

권황은 개의치 않고 뒤에 도열한 흑천맹 흑도들을 돌아보았다.

대략 삼천.

권황의 옆에 있던 심복이 깃발을 올리며 소리쳤다.

“모두 배 위에 올라라!”

장강 남쪽에는 수십 척의 크고 작은 배가 매여 있었다.

흑천맹 흑도들이 배 위에 올라타다 말고 감탄성을 터뜨렸다.

“오!”

“와아!”

천황성의 고수들은 배를 타지 않고 그대로 몸을 날렸다.

수십 명이 일제히 강으로 뛰어드는 광경은 장관이었다.

강에는 나룻배들이 십여 척 늘어서 있었다.

천황성의 고수들은 그 나룻배를 징검다리 삼아 그대로 강을 건넜다.

한 번 도약에 십여 장씩 날아오르니 너른 강도 금방이었다. 그들은 강을 단숨에 날아 넘었다.

이를 본 흑천맹 흑도들의 사기가 충천하였다.

-둥! 둥!

북소리가 울리고 수십 척의 배가 강으로 나왔다.

강을 건너는 건 순식간이었다. 항구와 나루마다 흑천맹 흑도들이 쏟아져 내렸다.

“이상하군.”

권황의 옆에 있던 검제가 중얼거렸다.

“뭐가 이상하다는 건가?”

“내가 적이라면 강을 건널 때 노렸을 텐데.”

“하하. 그래 봐야 계란으로 바위 치기이지. 나는 모두 도주한 게 아닐까 그게 걱정이네.”

“하기는 수적으로도 열세이니 그럴 가능성도 있겠소.”

권황이 발을 굴렀다.

“가서 보면 알겠지.”

-쿠웅!

권황이 발을 구르자 엄청난 기파가 터졌다.

-휘이이익!

권황은 강을 넘으면서 딱 한 번 중간 도약을 했다. 그것도 강물을 치고 다시 올랐다.

“와아! 맹주님은 천신이시다!”

전설적인 등평도수의 수법을 본 흑천맹 흑도들이 다시 함성을 질렀다.

검제는 무위를 드러낼 생각이 없는지 두어 번 나룻배를 타고 넘었다.

천황성의 고수들은 이미 보이지 않았다.

흑천맹 흑도들이 무리 지어 의천맹 본단으로 향했다.

검제는 점점 더 불안한 느낌이 들었다.

무한 거리에 넘치던 무림인들이 보이지 않았다.

마침 미리 보냈던 이목이 달려와 보고했다.

“의천맹 본단으로 들어간 뒤 문을 닫아걸었습니다.”

“흠. 수성 전략으로 나오겠다고? 하하. 어리석군.”

권황이 코웃음 쳤다.

의천맹 본단이라지만 얼마 전까지 삼도문 장원이었던 곳이다.

장원 담벼락이 높아 봐야 얼마나 높겠는가.

천황성 고수들이 먼저 들어가 휘젓고 대문을 깨부수면 점령하는 건 순식간이다.

“적이 얼마나 되나?”

검제가 물었다.

“대략 일천여 명 정도로 추정합니다.”

“그것도 못 알아냈나?”

“그게, 워낙 경계가 심해 가까이 다가가기가 어렵습니다. 다만 이번에 모인 대파와 세가의 무인들이 오백여 명가량 되고 정파 무인들 또한 오백여 명 정도 되는 걸로 보입니다.”

“정파 무림인들이 모두 모였다는데 겨우 일천 명이라고?”

“본맹이 강을 건넌다는 소식에 정파 나부랭이라는 놈들이 겁을 집어먹고 도주하였습니다.”

“이거 정말 손쉬운 싸움이 되겠군. 차라리 흑천맹으로 강호일통하는 게 낫겠는데.”

권황이 흡족해하였다.

공손 노야는 적당히 싸우다 물러나 달라고 했는데 상황이 이러니 생각이 바뀐 것이다.

“가서 휩쓸어버리자고.”

기세등등한 권황이 앞장섰다.

***

천황성 고수들은 삼삼오오 짝지어 갔다.

서두르는 기색도 없었다. 어차피 싸움의 결과는 나왔다고 자신하였다.

서생과 기녀, 그리고 화공과 점쟁이 노인은 중간쯤에서 무리 지어 가고 있었다.

“우리는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자고.”

점쟁이 노인이 산통을 흔들며 말했다.

“나보고 오늘은 싸우지 말라더라고.”

“그놈의 엉터리 점 이야기 좀 그만하지?”

화공이 타박을 주었다.

그때 앞쪽에서 잠시 소란이 일었다.

-쉬이익!

화살이 몇 대 날아왔다.

“흥! 기습인가?”

화공이 앞쪽을 보며 중얼거렸다.

몇몇 천황성의 고수가 날아오는 화살을 쳐내는 게 보였다.

그리고는 화살이 날아온 곳으로 네다섯 명이 달려가는 모습이 보였다.

“되도 않는 짓을 하는군.”

“우리가 누군지 모르니까 그렇죠.”

서생과 기녀가 주고받았다.

그런데 조금 더 가자 비슷한 일이 또 벌어졌다.

-쉬쉭!

화살이 날아오고 역시 서너 명이 매복이 있을 곳을 덮쳐 갔다.

서생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조금 더 가자 또다시 매복이 나왔다.

“이놈들이?”

짜증이 난 화공이 쫓아가려 하자 서생이 말렸다.

“왜 말리는 건가?”

“자네가 아니더라도 갈 사람이 있으니까.”

서생이 화살이 날아온 곳으로 달려가는 이들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왜 그러는가?”

“아무래도 좀 이상한데?”

서생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서른 명가량이 왔는데 어느새 절반 정도밖에 안 남았다.

앞서 쫓아간 이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서생이 모두에게 외쳤다.

“아무래도 적이 우리를 분산시키려 하는 것 같소. 이제부터는 무시하고 바로 본거지로 갑시다!”

서생의 말이 끝나자마자 오른편 야산 쪽에서 누군가 소리쳤다.

“야! 거기 기생오라비 같은 놈! 네놈도 천황성의 개냐?”

서생이 인상을 쓰고 소리가 들려 온 곳을 보았다.

구양수가 능글맞게 웃으며 소리쳤다.

“네가 절대고수라며? 혹시 침상에서만 절대고수인 건 아니겠지? 네 옆에 있는 창기가 짝이냐?”

서생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저 새끼가!”

서생이 모두에게 함께 가자고 했던 말도 잊고 몸을 날렸다.

“같이 가요!”

창기라고 불렸던 기녀, 청기도 금을 들고 몸을 날렸다.

“저 녀석, 자기가 흩어지지 말자고 하고는… 쯧쯧.”

화공이 혀를 찼다.

“우리는 갈 길 가자고.”

뭔가 느낌이 좋지 않았는지 점쟁이 노인이 산통을 흔들어 점괘를 뽑더니 말했다.

“흩어지지 말라는 점괘야. 적의 계책에 넘어가지 말라고.”

***

-쾅!

-파라라락!

나무가 뽑히고 땅이 파였다.

천황성의 고수는 넷뿐이었으나 좀처럼 승기를 잡을 수가 없었다.

대정무각 이각주 관중이 도를 쓰는 자를 상대하였다.

유문광과 반여월이 함께 검을 쓰는 자를 협공하고 있었고, 사각주 일도붕산 고대웅이 구각주 형운천과 함께 권을 쓰는 자를 막았다.

중랑은 혈적산판 염가와 쌍검을 쓰는 자와 겨루는 중이다.

“괴물 같은 놈들!”

노이칠의 안색이 침중하였다.

싸움에 끼어들기도 어려웠다. 사방으로 강기가 비산하고 있어 어지간한 고수가 아니라면 도움이 안 될 터였다.

노이칠은 만일을 대비해서 대정무각 무인 백여 명을 이끌고 외곽에 포위망을 구축한 뒤 대기 중이었다.

-쾅!

싸움은 갈수록 격렬해졌다.

***

강소군은 제갈선과 함께 의천맹 본단 대문 문루에 서 있었다.

천황성 고수들이 나타나자 경계하던 무인이 다가와 보고했다.

“모두 열세 명입니다.”

“유인책이 성공한 것 같소.”

제갈선이 강소군에게 말했다.

철권호는 강소군의 의견을 받아들여 대정무각과 연합을 하기로 했다.

제갈선은 대정무각과 화룡문, 대파와 세가의 고수, 그리고 천무방 등 네 패로 나누어 천황성의 고수들을 유인하는 계책을 냈다.

“속전속결로 끝내야 합니다.”

강소군이 문루에서 훌쩍 뛰어내렸다.

장검을 들고 서서히 내려서는 강소군을 보자 점쟁이 노인이 인상을 썼다.

“어쩐지 점괘가 좋지 않더라니.”

“저놈이 왜 저리 멀쩡하지?”

화공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데 그때.

“어어?”

“저놈이 미쳤나?‘

점쟁이 노인과 화공이 동시에 뒤로 두어 걸음 물러났다.

강소군은 땅에 내려서자마자 그대로 도약하였다.

순식간에 강소군이 들이닥치자 두 사람이 놀라 물러난 것이다.

그들은 초화평에서 강소군과 잠시 맞선 적이 있었다. 그때 참혹했던 기억이 떠오르자 자기도 모르게 몸이 반응하고 말았다.

“흥! 저런 어린놈이 두려워 물러나다니!”

뒤에 있던 천황성의 고수 하나가 비웃으며 강소군을 향해 몸을 날렸다.

-쉬이익!

눈 깜짝할 사이 두 사람이 부딪쳤다.

-샤샤샥!

-서거거걱!

눈부신 검광이 두 사람 주위로 퍼졌다.

-채채챙!

연달아 검이 부딪치더니 한 사람이 뒤로 물러났다.

“네놈은 누구냐!”

검을 든 자가 소리쳐 물었다. 그의 얼굴에는 놀람의 기색이 가득했다.

은근히 검황과 검제의 뒤를 이을 자신을 하고 있던 자였다.

그런데 강소군의 검에 밀린 것이다.

‘무슨 검법이기에 이리 현란하다는 말인가?’

검을 든 자가 눈알을 굴렸다. 막판에 내력을 쏟아 밀어내지 않았다면 그대로 목이 베였을 것이다.

강소군은 대답을 하지 않고 곧바로 짓쳐들었다.

이미 피를 보기로 결심한 이상 굳이 대답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강소군은 오늘 싸움이 길어질 것을 대비하여 우선은 초식으로 승부를 끝내고자 하였다.

-파아앙!

강소군이 한 발 내디디며 검을 휘두르자 은빛 검광이 구체를 이뤄 검을 든 자를 덮쳤다.

“흥!”

검을 든 자는 구체에 실린 검기가 그리 강하지 않음을 알고 코웃음을 쳤다.

곧바로 구체에 검을 찔러 넣었다. 내공을 쏟아 단번에 깨뜨릴 생각이었다.

“조심하게. 그가 강소군이라는 놈이라고.”

점쟁이 노인이 황급히 일러주었으나 이미 늦었다.

-쉬시시식, 서거거걱!

검을 든 자가 내력을 터뜨렸으나 놀랍게도 검세가 내력을 봉쇄하고는 곧바로 몸을 덮쳤다.

“크어억!”

검을 든 팔을 비롯해 전신이 난자당한 듯 순식간에 혈인으로 화했다.

그는 선 채로 죽음을 맞았다.

“…!”

모두가 침묵하였다.

강소군이 문루에서 뛰어내리고 두어 번 도약을 한 뒤 두 차례 접전이 있었다.

그리고 한 사람의 화경에 든 고수가 말도 남기지 못하고 저세상으로 가 버렸다.

천황성의 고수들은 경악하였다. 방금 죽은 자는 그들 가운데 가장 강한 자였다.

서로 겨뤄 보지는 않았지만 암묵적으로 그리 여기고 있었다.

그런데 그가 순식간에 죽자 가슴이 서늘했다.

그런데, 놀라고 있을 틈도 없었다.

강소군이 다시 움직인 것이다!

강소군의 신형이 사라졌다 싶은 순간 옆에서 검광이 이룬 구체가 천황성의 고수들을 덮쳤다.

-쉬쉬식!

“저놈이 미쳤다!”

천황성이 고수들이 일제히 흩어졌다.

그러나 한 사람은 강소군의 검을 피하지 못했다.

도를 든 자였는데 그는 기겁을 하며 전력을 다해 도를 휘둘렀다.

-콰쾅!

“이 새끼가, 죽으려고 날뛰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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