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소군-185화 (185/250)

185

“편제의 가슴에 비도를 박아 넣었다지? 솔직히 좀 놀랐지.”

“당신들은 자신을 너무 과신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더군.”

강소군의 말에 천산신검, 천황성 검황의 눈썹이 꿈틀하였다.

“도황의 팔이 잘렸다는 이야기는 아직 듣지 못했소?”

이번에는 검황의 얼굴에 놀람의 빛이 스쳤다.

“네가 도황의 팔을 잘랐다는 건가?”

사람들은 잔뜩 호기심 어린 눈으로 비무대를 지켜보고 있었다. 몇몇은 두 사람의 말을 들으려 가까이 다가가려다 제지되기도 했다.

두 사람이 전음으로 대화를 나누는 것도 아닌데 비무대 밖에서는 들리지 않았다.

강소군이 무애검을 가볍게 흔들어 보였다.

검황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상한 일이군.”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오.”

“….”

“당신들이 천황성에 처박혀 천외천의 존재인 양 자아도취에 빠져 살았던 것뿐이지.”

“흐흐흐. 네가 어떻게 도황을 이겼는지는 모르지만 하늘 높은 줄 모르는군.”

검황의 전신에 은은한 기운이 어렸다.

도황이 태산 같다면 검황은 물과 같이 유연하였다. 산과 물은 서로 범하지 않는다.

두 사람이 이제껏 겨뤄 보지 않았던 이유를 강소군은 알 것 같았다.

‘도황보다 까다롭겠군.’

도황의 팔을 자를 수 있었던 건 요행이었다. 그가 방심을 했던 탓이 컸다.

그러나 딱 봐도 눈앞의 검황은 그런 자가 아니었다.

검황이 비무대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다고 해서 너를 죽이지 못할 것이라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무림맹주라는 자리에 어울리는 사람은 아니란 건 모두가 알 수 있을 거요.”

“하하하. 정말 재밌군, 영악한 놈이야.”

검황이 웃다가 정색을 하였다.

“네가 착각을 한 모양이구나. 나는 여기 있는 자들을 다 죽일 수도 있다. 무림맹이 아니더라도 무림을 지배할 수 있지.”

강소군이 희미하게 웃었다.

“내가 말하지 않았소? 당신들은 자아도취에 빠져 있다고.”

“….”

“당신들의 무공에는 치명적인 결함이 있지.”

검황이 눈살을 찌푸렸다.

“당신도 천주의 대법 덕분에 벽을 넘지 않았소?”

“….”

“벽이 왜 있는 것이겠소? 벽은 스스로 세운 것이고 스스로 넘어야 하는데 당신은 남의 도움으로 있지도 않은 벽을 넘은 것이오.”

검황은 강소군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었다.

“천주의 대법에 의해 천지자연과 곧바로 타통하였을 것이오. 그 덕에 막대한 기운을 얻었겠지. 하지만 그 기운을 쓸 수 있는 심력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으니 기형이 되고 말았소.”

“뭐라고?”

“당신들이 보낸 소위 군웅각 고수란 자들은 하나같이 결함을 안고 있더군.”

“하하하. 그들과 나를 비교하는 것이냐?”

강소군이 고개를 끄덕였다.

“성취가 다를 뿐 도황 또한 마찬가지였소. 누군가의 도움으로 훌쩍 넘은 벽은 사라지지 않았소. 아니, 애초에 없었으니 사라진 것도 아니군.”

검황의 얼굴이 심각하게 굳었다.

사실 그는 자신이 왜 천주를 뛰어넘지 못하는지 오랫동안 궁금해해 왔던 것이다.

그는 일찍이 검으로 절대지경에 들어 천산신검이라는 전설로 불리는 자였다.

그럼에도 더 높은 경지로 나아가지 못하고 벽에 부딪히자 천하를 떠돌며 해법을 구하려 했다.

그가 찾아간 곳은 무림 밖의 무림 천황성이었다.

천주에게 도전하여 절대지경 안의 벽을 깨려 했으나 그는 실패하고 말았다.

천주의 몇 수에 무릎을 꿇고 만 것이다.

그리고 대법을 받아들여 한 단계를 뛰어 넘었다.

그가 새로이 도달한 경지는 그야말로 신의 경지였다.

무형검을 이뤄내고 베지 못할 게 없었다.

다시 천주에게 도전했으나 이번에도 몇 수 만에 패했다.

‘생사경을 넘게. 그러면 비로소 나를 상대할 수 있을 게야.’

천주의 한마디에 이후 수십 년 천황성에서 고련을 하였으나 진척이 없었다.

무엇보다 벽이 나타나지 않았다. 생사경에서 미증유의 세계로 넘어가는 관문조차 만나지 못하고 있다.

검황은 강소군의 몇 마디에서 무엇이 문제인지 실마리를 잡은 듯했다.

“으흠. 다시 세상에 나오기를 잘한 것 같군.”

그는 역시 고수였다. 자신의 문제가 무엇인지 깨닫자 해결방법도 어렴풋이 떠오른 것이다.

“고맙군. 하지만 오늘의 결과가 달라질 것이라고는 생각지 마라.”

검황의 전신에서 기운이 스물스물 피어올랐다. 그의 등 뒤로 무형검이 모습을 드러냈다.

강소군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기왕에 공치사를 받았으니 당신에게 보여 줄 게 있소.”

검황이 강소군을 노려보았다.

강소군이 천천히 검을 세웠다.

“당신은 볼 수 있을 게요. 이걸 깰 자신이 있소?”

강소군의 검이 곧추세워진 채 흔들렸다.

순간적으로 천성육십사식 검로가 동시에 펼쳐졌다. 정확히 말하면 기운이 검로를 따라 흘렀다.

“…!”

검황의 눈꺼풀이 떨렸다.

그의 눈에는 강소군의 검이 사방으로 검로를 따라 펼쳐지다 끝내 하나의 구를 이루는 게 보였다.

기운으로 된 구가 완전해지자 하나의 존재가 되었다.

검황의 눈은 강소군이 펼쳐낸 구에 꽂혔다. 그는 석상처럼 굳은 채 구를 바라보았다.

“왜 저러는 거지?”

“그러게 말야?”

비무대 아래 있는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둘이서 몇 마디 하더니 강소군이 검을 세우고 검황이 우두커니 서서 바라만 보고 있을 뿐이다.

주빈석에 앉은 고수들 역시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다만 두 사람이 상승의 무리에 따라 검을 겨루고 있다는 것만 알 뿐이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검황의 이마에 땀방울이 맺혔다.

강소군의 구는 완벽하여 깨뜨릴 방법이 없었다.

어느 순간.

-팍!

검황의 무형검이 깨졌다.

“우욱!”

검황은 기혈이 뒤틀리는 걸 느끼고 대경실색하였다.

대법을 받고 경지에 오른 이후 기를 자유자재로 운용할 수 있었고 기혈의 흐름 같은 건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그런데 강소군의 구를 깨뜨리고자 심력을 쏟아붓는 바람에 자기도 모르게 내상을 입은 것이다.

내상은 깊지 않았다. 하지만 놀람은 컸다.

“그게 무슨 수법이냐?”

검황이 한참 망설이다 물었다.

“검을 버렸다고 했소?”

“….”

“초식을 완성해 보기는 했소?”

검황이 흠칫, 하더니 잠시 생각에 잠겼다.

잠시 후.

검황이 탄식을 하였다.

“그렇군.”

검황의 얼굴에는 허탈함이 가득했다.

“아주 간단한 거였어.”

검황이 잠시 강소군을 노려보더니 사라졌다.

지켜보던 사람들은 의아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어찌 된 일인지 알 수가 없었던 것이다.

강소군이 검을 내리는데 잡고 있는 손이 떨렸다. 거의 반시진가량 완성된 초식을 유지하느라 내력이 바닥이 난 것이다.

그로서는 도박을 한 셈이다.

강소군은 천성육십사식의 완성을 보여 줌으로써 검황을 초식의 싸움으로 끌어들였다.

검황이 이를 무시하고 무형검을 발출했다면 내상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강소군은 감당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아니, 내상이 완치된 상태였더라도 검황의 측량할 수 없는 내공에 의해 밀렸을 게 분명했다.

“와아!”

“혈마가 천산신검을 눌렀다!”

비무대 아래에서 어리둥절하던 사람들은 어느 순간 혈마를 연호하였다.

어찌 된 사정인지 알 수는 없었으나 검황이 손해를 보고 물러난 것은 사실이다.

“혈마가 무림맹주다!”

사람들의 연호에 강소군이 당황하였다.

연호하는 사람들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고 비무대를 내려갔다.

***

강소군이 머무는 별원에 한 무리의 젊은이들이 나타났다.

앞장선 이는 남궁령과 팽일소다.

남궁령은 그간 팽일소를 비롯하여 명문가 자제들과 어울려 다니기 바빴다.

“잠시 기다려. 내가 먼저 가서 허락을 받고 올 테니.”

남궁령이 의기양양한 얼굴로 젊은이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강소군이 천산신검을 물리치자 무한이 발칵 뒤집어졌다.

그간 무림맹주 후보로 꼽히던 고수들이 천산신검의 한 수에 나가떨어지고 그 천산신검을 강소군이 손도 쓰지 않고 물리쳤다.

노강호들은 시대가 바뀌었다고 탄식을 하고 젊은 무림인들은 열광하였다.

동시에 강소군은 단숨에 모든 젊은이들의 우상으로 떠올랐다.

남궁령은 자신들과 무리 지어 다니던 명문가 자제들에게 강소군을 만나게 해 주겠다고 장담하며 함께 몰려온 것이다.

“내가 같이 가겠소.”

팽일소가 나란히 걸어가려 했다.

“안 돼. 오라버니는 번거로운 걸 싫어한다고.”

“나도 강 공자와 안면이 있거든?”

“나는 안면 정도가 아니라 의남매지간이라고.”

남궁령이 일축하고 쑥, 별원으로 들어갔다.

그런 남궁령이 팽일소는 밉지 않은 듯 바라보았다.

남궁령은 쏜살같이 정원을 지나 강소군의 방으로 갔다.

“오라버니!”

남궁령이 문을 발칵, 열고는 흠칫, 놀랐다.

방 안에 여러 사람이 모여 있었던 것이다.

연화심과 중랑, 산동삼호, 조운룡, 그리고 노이칠과 제갈선, 팽일호와 자신의 친오라비인 남궁악까지.

푸른 도포를 입은 나이 지긋한 도사는 무당장문 청무진인이었다.

그런데 정작 강소군은 보이지 않았다.

“네가 웬일이냐?”

남궁악이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아니, 오라버니한테 할 말이 있어서… 그런데 다들 여기 모여서 뭘 하고 계시는 거예요?”

“그건 네가 물을 일이 아닌 것 같은데? 그보다 아무리 네가 강 아우와 허물없이 지낸다고 해도 그렇지. 이렇게 불쑥 문을 열어젖히고 제멋대로 굴다니. 대체 사람들이 보면 뭐라 하겠느냐?”

남궁악이 야단을 치자 남궁령이 입을 삐죽이며 말했다.

“뭐라고 할 건데요?”

“어서 문 닫고 가라.”

남궁악이 머리 아프다는 듯 손을 휘저었다.

“싫어요. 나도 이 자리에 있을 권한이 있다고요.”

남궁령이 막무가내로 비집고 들어와 연화심 옆에 앉았다.

“언니, 대체 무슨 일이에요?”

남궁령이 연화심에게 속삭였다.

연화심이 피식, 웃으며 안쪽을 보았다.

마침 강소군이 동약사와 함께 걸어 나왔다.

“걱정 끼쳐드린 것 같군요. 모두 모이셨는지요.”

강소군이 회복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연달아 부상을 입자 노이칠이 동약사를 끌고 와 상세를 돌보게 한 것이다.

“몸은?”

노이칠이 묻자 동약사가 헐헐, 웃으며 말했다.

“너보다 나으니까 걱정 마라.”

동약사는 자신이 제조한 영약을 복용시키기는 했으나 강소군 자체의 회복력이 워낙 뛰어나 놀라는 중이다.

‘이걸 말해 준다고 해도 믿을 놈도 없고.’

동약사는 그저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다.

강소군의 내공은 금단진공과 혈룡기가 근본을 이룬 금룡기다.

혈룡기의 회복력은 그야말로 상식을 뛰어넘는다. 거기에 초식의 완성을 이루며 강소군은 또다시 한 단계를 뛰어넘었다.

강소군은 자신이 생사경에 닿았음을 느끼고 있다.

강소군이 모여든 이를 둘러보았다. 그가 부른 것이다.

연화심 등은 이 자리에 무당장문인과 제갈선이 있는 이유가 궁금했다.

“이렇게 모이라고 한 것은 천황성 때문입니다.”

강소군이 말하자 좌중의 사람들은 역시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줄 알았네. 내게도 한 가지 놀라운 소식이 있네.”

노이칠이 좌중을 돌아보고는 강소군에게 말했다.

“흑천맹이 박살이 났네.”

모두의 시선이 노이칠에게 향했다.

“천황성에서 한 무리의 고수를 보내 싹 쓸어버렸지. 고장추는 중상을 입고 가까스로 도주했다고 하는군.”

제갈선이 뭔가 말하려다 말고 한숨을 쉬었다.

“새로이 흑천맹주가 들어섰는데 권의 고수라더군.”

“권황이라는 자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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