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소군-184화 (184/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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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쾅!

구양조는 정면으로 검기를 받아쳤다.

“…!”

이정과의 눈에 놀람의 빛이 역력했다.

구양조가 한 걸음도 물러나지 않은 것이다. 이는 그의 공력이 자신과 비등하다는 뜻이다.

-파파팍!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구양조는 곧바로 반격에 나섰다.

“엇!”

검은 물론이고 검광조차 사라졌다. 그러나 이정과는 사방에서 검이 들어오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구양조의 검법은 아버지 구연강으로부터 전수받은 것이다.

구연강의 별호가 천수무흔(千手無痕). 일천의 검이 찔러 오는데 종적을 잡기 어렵기 때문에 붙은 별호다.

이정과가 황급히 검을 내쳐 짓쳐들어오는 검세를 막으려 했다.

-사사삭!

“헉!”

이정과의 입에서 바람 빠지는 소리가 났다.

언제 붙었는지 그의 목젖에 구양조의 검이 닿았다.

이정과의 안색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내공으로도 우위를 점하지 못하고 초식에서도 뒤진 것이다.

아니, 애초에 그가 경시하는 마음을 버렸다면 이렇듯 짧은 시간에 패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크음!”

모두가 지켜보는 자리다. 이미 패배가 명확하여 더 하면 구차해질 뿐이다.

“천무방이 천하사패의 자리를 차지한 이유를 알겠군.”

이정과가 검을 내렸다.

제아무리 오만한 그였지만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다시 겨루자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이정과가 몸을 돌려 비무대를 내려갔다.

뒤이어 자청신검 추일엽과 태악진권 양우종의 비무가 이어졌다.

추일엽은 화산에서는 보기 드물게 쌍검을 썼다. 자검과 청검 두 자루를 사용해 일백 합 정도 끌다가 가볍게 양우종을 제압했다.

그렇게 첫날 비무가 끝났다.

둘째 날.

오시가 되자 수많은 인파가 비무대로 모여들었다.

추일엽과 모용백, 구양조가 비무대에 등장하자 사람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제갈선이 나와서 외쳤다.

“여기 세 분이 서로 돌아가면서 비무를 할 것입니다. 순서는 제비 뽑기로 결정하겠습니다.”

그때 한 사람이 천천히 비무대로 걸어 올라왔다.

청수한 풍모의 사내는 중년으로 보였으나 자세히 보면 제법 나이가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제갈선은 대번 천황성의 고수라는 걸 알았으나 모른 척 말했다.

“뉘신지는 모르나 여기는 함부로 올라오셔서는 안 되오.”

중년으로 보이는 사내 검황, 아니 천산신검이 피식, 웃었다.

“이 자리가 무림맹주를 선출하는 비무대가 아닌가?”

“맞소. 어찌 진행을 방해하려는 것이오.”

“짝이 맞지 않아 번거롭게 돌아가며 싸우는 것 같아 거들어 주러 왔네.”

천산신검의 목소리는 나직했으나 모여든 수천 군중 모두에게 똑똑히 들렸다.

사람들이 크게 놀랐다. 수천 명 사람을 대상으로 귓전에 대고 말하듯 하다니. 내공을 측량하기가 어려운 고수였다.

“뉘신지 여쭤봐도 되겠소?”

“노부는 한때 천산의 검이라 불렸지. 아는 이가 있을지 모르겠군.”

천산신검이 대파와 세가의 고수들이 모여 있는 주빈석을 쳐다봤다.

“아!”

지켜보던 무당장문 청무의 입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대파와 세가의 원로들 역시 크게 경악했다.

“천산신검이라면 강호를 떠난 지 수십 년이 됐는데… 어찌 저리 젊다는 건가?”

“설마 반노환동?”

“후인이 아닐까?”

의견들이 분분했다.

비무대 주위에 모여든 무림인들 사이에도 천산신검이라는 별호가 빠르게 퍼졌다.

“천산에서 검으로 등선했다는 분 아닌가?”

“저렇게 젊을 수가! 정말 신선이 되신 게 아닐까?”

“은거기인까지 나오다니. 정말 흥미진진하구나. 내 생애에 천산신검을 볼 줄이야.”

비무대 주위가 점차 시끄러워졌다.

제갈선이 당황하여 포권을 하며 말했다.

천황성에서 누군가 보내리라는 건 알았지만 정파에서 전설로 남은 검객이 올 줄은 몰랐다.

“천산신검 노 선배셨군요. 연세가 적지 않으신데 중년으로 보여 몰라뵈었습니다.”

“이해하네. 자네가 강보에 싸여 있을 때 무림을 떠났으니.”

천산신검이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만 보면 정말 탈속한 신선 같기도 했다.

사람들이 흥미진진한 시선으로 비무대를 지켜보았다.

“하지만….”

제갈선이 정중하게 포권을 하며 말했다.

“이미 후보는 정해졌습니다. 뒤늦게 참가신청을 하신다 한들 받아들일 수는 없습니다.”

“하하하.”

천산신검이 크게 웃었다. 그러자 사람들은 귀를 막아야 했다.

천산신검이 웃음을 그치고 말했다.

“그걸 누가 정했다는 말인가?”

“명문대파와 강호 명숙이 공동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누구 한 사람의 결정이 아닙니다.”

“무림맹주는 무림의 상징과 같은 존재 아닌가? 당연히 무공으로 선출해야지.”

“그 말은 잘못됐습니다. 무공만이 아니라 수많은 정파인을 이끌어 갈 덕과 인품을 갖춰야 할 것입니다.”

“그 말은 마치 내가 그만한 자격을 못 갖췄다는 걸로 들리는군.”

“그런 뜻은 아닙니다만 이렇게 갑자기 나타나서 비무에 참가하겠다는 건 도리가 아닌 듯합니다.”

“과연 그런지 여기 모여 있는 이들에게 물어볼까?”

천산신검이 비무대 주위 사람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와아!”

“천산신검도 참가하게 해라!”

비무를 보는 군중 입장에서는 고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좋았다.

사람들의 목소리는 갈수록 커져 제갈선으로서도 외면하기 어려웠다.

제갈선이 대파와 세가의 고수들이 모여 있는 주빈석으로 가서 상의를 하였다.

잠시 격론이 벌어진 뒤 제갈선이 다시 비무대로 올라왔다.

제갈선이 추일엽과 모용백, 구양조를 가리키며 말해다.

“여기 세 분은 처음부터 정식으로 참여 절차를 밟고 일차 비무를 치렀습니다. 천산신검 노 선배의 참가 여부는 이분들의 뜻에 맡기고자 합니다.”

사람들의 시선이 비무대에 선 세 고수에게 향했다.

추일엽이 나서서 말했다.

“검객으로서 천산에 전설로 남은 검과 겨뤄 보고 싶소.”

추일엽이 호쾌하게 받아들이자 모용백과 구양조도 고개를 끄덕였다.

군웅들이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있으니 회피할 수는 없었다.

“하하하. 좋군. 역시 젊은 후배들이 시원시원해.”

추일엽이나 모용백은 오십이 넘은 장년의 나이였으나 천산신검은 젊디젊은 모습을 하고 있으니 어색하기만 했다.

천산신검이 군웅을 향해 서서 말했다.

“노부가 뒤늦게 참가했으니 그 벌로 이들 모두를 상대할까 하오.”

무척이나 광오한 말이었으나 군웅들은 그저 환호하였다.

추일엽이 굳은 얼굴로 나섰다.

“선배의 무공이 화신의 경지에 달했다는 말은 들었습니다만 후배들 또한 염치가 있는데 어찌 합공을 하겠습니까?”

추일엽이 모용백과 구양조에게 시선을 보내 동의를 구하고 말을 이었다.

“제가 먼저 겨뤄 보지요. 그런데 검을 가지고 오시지 않으셨군요?”

천산신검은 검을 차고 있지 않았다.

“검을 버린 지 오래라네.”

“과연 천산신검이 맞기는 합니까?”

“후후. 그거야 겨뤄 보면 알 것 아닌가?”

천산신검이 서서히 몸을 돌렸다.

-파악!

무형의 기운이 천산신검의 전신에서 피어올랐다.

“…!”

추일엽의 눈이 크게 벌어졌다.

천산신검의 등 뒤로 검의 환영이 나타난 것이다.

“무형검!”

추일엽이 자기도 모르게 외쳤다.

“흐흐흐. 눈은 제대로 박혀 있구나.”

천산신검이 추일엽에게 말했다.

“너 혼자서는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더니 뒤에 있는 모용백과 구양조에게 말했다.

“너희도 한꺼번에 오거라. 기회는 한 번뿐이다.”

모용백과 구양조가 서로를 마주 봤다.

아무리 강호의 원로이지만 너무나 광오하였다.

구양조가 포권을 하고 사양하려는데 구양수의 전음이 꽂혔다.

-형, 내려와! 위험해!

구양조는 눈살을 찌푸렸으나 담담하게 말했다.

“여기는 무공을 논하는 비무의 자리입니다. 서로 간에 몇 수 겨뤄 고하를 가리면 되는 것이니 굳이 합공을 할 이유는 없습니다.”

“그래? 무림이 참 나약해졌군. 진정한 검객이란….”

천산신검의 등 뒤에 늘어선 검의 형상이 더욱 짙어져 갔다.

“언제 어디서든 상대가 나타나면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하는 법이다!”

-파악!

천산신검의 등 뒤에 있던 무형검에서 세 줄기 빛무리가 추일엽과 모용백, 구양조를 향해 날아갔다.

빛무리는 검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조심하시오!”

추일엽이 모용백과 구양조에게 경고를 하고 허공으로 몸을 솟구쳤다.

추일엽은 천산신검이 단순히 무공의 고하를 가리려는 게 아님을 알고 처음부터 전력을 펼쳤다.

-파아앙!

추일엽이 등 뒤에 엇갈려 매여 있던 자청신검이 동시에 뽑혀 나와 천산신검의 무형검을 마주하였다.

“우아! 이기어검이다!”

비무대 아래에서 탄성이 터졌다.

지켜보는 군웅들의 눈에는 천산신검의 무형검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니 화려한 곡선을 그리며 날아가는 자청신검에 환호를 보낸 것이다.

군웅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모용백과 구양조에게는 날아드는 무형검이 똑똑히 보였다.

추일엽이 경고를 하지 않더라도 전력을 다해야 함을 직감하였다.

-콰앙!

허공에서 뇌성이 터지며 모용백의 검이 무형검과 마주쳐 갔다.

-쉬이이익!

구양조의 검도 자취를 감추고 일천에 이르는 검세를 형성하여 무형검을 상대하였다.

“오!”

사람들은 탄성을 지르다 갑작스레 터진 눈부신 빛의 폭발에 자기도 모르게 눈을 감아야 했다.

-끼이익!

-쾅!

-파파파파팍!

엄청난 빛이 폭발하더니 각기 다른 기음이 동시에 터졌다.

비무대에는 정적이 흘렀다.

“어찌 된 거지?”

사람들이 어리둥절해하며 비무대를 보았다.

“헉! 자청신검이?”

추일엽은 비무대 뒤쪽으로 나가떨어졌는데 억지로 몸을 일으키려 하였다.

모용백은 자신의 뇌기를 감당하지 못하고 새까맣게 그을린 채 한쪽 무릎을 꿇고 검으로 짚으며 버티고 있었다.

구양조 역시 어깨를 부여잡고 비틀거렸다.

비무장에 정적이 흘렀다.

천산신검의 놀라운 무위에 모두 말을 잃었다.

일수(一手)로 절대지경을 바라보는 고수들을 제압한 것이다.

비무를 논하기도 무의미한 격차였다.

천산신검이 추일엽 등을 보며 말했다.

“어서 가서 몸조리하는 게 좋을 것이다.”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화산파와 모용세가, 천무방 사람들이 황급히 비무대에 올라왔다.

제갈선이 참담한 시선으로 세 고수를 데려가는 사람들을 보았다.

‘하늘 밖의 하늘이라더니….’

천산신검이 제갈선을 향해 말했다.

“이제 비무도 끝났으니 다음 순서를 진행하도록 하지?”

그때, 한 사람이 비무대로 걸어 올랐다.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

“혈마다!”

“강 대협?”

“오라버니?”

사람들이 외치는 목소리 사이로 연화심과 남궁령의 목소리가 들렸다.

강소군은 도황과 싸운 뒤 곧장 무한으로 돌아왔다.

도황과의 비무에서 내상을 입기는 했으나 철권호가 공력을 불어넣어 주었고, 오는 내내 금단진공으로 금룡기를 운용하여 거의 회복을 한 상태다.

천천히 비무대에 오른 강소군이 천산신검 앞에 섰다.

천산신검이 강소군을 물끄러미 보다 말했다.

“무슨 일이냐?”

“비무대에 올라올 이유가 뭐겠소.”

천산신검의 시선이 제갈선에게 향했다.

“이렇게 아무나 올라와도 되나?”

강소군이 먼저 대답을 했다.

“느닷없이 먼저 오른 사람도 있는데 한 사람 더 오른다고 문제될 게 있소?”

“뭐라? 하하하.”

천산신검이 크게 웃었다.

“재밌구나. 너에 대해 들은 바 있지.”

천산신검이 고개를 끄덕이며 제갈선에게 손짓을 했다.

강소군의 도전을 받아들일 테니 내려가 있으라는 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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