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
도황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였다.
강소군의 신랄한 말에 분기탱천하였으나 지금은 상세를 돌보는 중이니 꼼짝할 수가 없었다.
자칫하다간 팔을 영영 잃고 말 것이다.
강소군은 금단진공을 운용하여 금룡기로 내상을 치유하는 중이다.
무리하게 도황과 싸운 이유는 초식의 완성을 확인하고자 함이다.
실제로 초식이 완성되는 순간 도황의 팔을 자를 수 있었다. 그러나 도황은 역시 놀라운 존재였다.
팔이 잘리는 그 순간에도 왼팔로 대응해 강소군의 복부에 권을 꽂았다.
사실 도황은 자신의 팔이 잘릴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도를 휘감아 강소군의 검을 막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무애검이 이상하게 움직이더니 팔이 잘렸다.
그러지 않았다면 도황의 일권에 전력이 담겼을 것이고 강소군은 내장이 박살나서 절명하고 말았을 것이다.
도황은 내력으로 팔을 붙이면서 어금니를 깨물었다.
전력을 다하지는 못했지만 자신이 쏟아낸 경력만으로도 강소군은 이미 죽었어야 했다.
그런데도 쓰러지기는커녕 말을 이어 가고 있다.
“당신을 보니 내가 왜 천황성을 상대해야 하는지 이유를 알 것 같더군.”
“….”
“황제라면 당연히 해야 할 일이 있지. 그런데 당신은 할 일은 하지 않고 황제의 권위만 누리려 한 자요. 그런 자는 황제의 위에 오를 자격이 없지.”
“네놈이 나를 충동질하려 해도 소용없다. 팔을 붙이고 나면 네 목을 잘라 줄 것이니 기다리고 있어라.”
도황은 강소군이 자신을 격동시켜 팔을 치료하는 걸 늦추려 한다고 여겼다.
도황은 아예 눈을 감아 버렸다.
강소군도 선 채로 눈을 감았다. 금룡기로 뒤틀린 기와 혈의 자리를 잡아갔다.
마지막 수에 전력을 다했기에 남아 있는 금룡기는 미약했다.
그때.
낯익은 기운이 다가왔다.
강소군이 고개를 돌리려 하자 다가온 이가 나직하게 말했다.
“움직이지 말게.”
목소리의 주인은 철권호였다.
그 역시 마지막에 강적이 다가오고 있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내자의 안전이 우선이었기에 발걸음을 옮겼던 것이다.
철권호는 봉연청을 안전한 곳에 감추고 돌아왔다. 차마 자신의 적을 강소군에게 떠넘기고 갈 수 없었다.
부랴부랴 되돌아왔는데 이미 상황은 끝나고 말았다.
두 사람이 어떤 형편인지 알아챈 철권호는 강소군에게 기를 불어넣었다.
철권호 역시 내상을 입기는 했으나 그 또한 절대지경의 고수.
막대한 기가 명문혈로 흘러들었다.
미약했던 금룡기가 철권호의 기를 받아들이며 점차 힘을 더해 갔다.
강소군의 금룡기가 제대로 운용되자 철권호가 명문혈에서 손을 뗐다.
철권호는 주저앉아 팔을 붙이고 있는 도황을 보다 한숨을 쉬고는 몸을 돌렸다.
부상을 입은 적을 죽일 수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봉연청을 홀로 두고 왔으니 안심할 수가 없었다.
“먼저 가겠네.”
철권호가 사라졌다.
도황은 철권호가 나타나 강소군에게 기를 불어넣어 주는 걸 알고 있었다.
그의 이마에 땀방울이 맺혔다.
강소군이 먼저 회복을 하면 자신은 죽은 목숨이리라.
아니나 다를까.
강소군이 눈을 떴다. 안광이 빛을 찾은 걸로 보아 내력을 약간이나마 회복한 듯했다.
“…!”
도황의 눈썹이 꿈틀하였다.
아무리 기운을 받았다지만 예상보다 빠른 회복력이었다.
‘결국 팔을 버려야 하는가?’
도황에게는 무척 중요한 순간이었다.
뼈를 붙이고 혈관과 신경을 잇는 중이다.
강소군이 손을 쓴다면 중단하고 상대를 해야 한다.
방금 전에는 잘린 순간 바로 붙였기에 붙일 수 있었지만 강소군과 싸우느라 시간을 보내면 잘린 단면이 점차 죽어 갈 것이다.
도황이 갈등하는 사이 강소군이 무애검을 검집에 꽂았다.
“오늘은 비겼소.”
강소군이 말했다.
만일 그 스스로 먼저 회복을 했다면 도황을 목을 쳤을 것이다. 두 사람이 겨뤄 동시에 부상을 입었다.
먼저 회복하는 것도 싸움의 일환이니 목을 취할 수 있었다. 그러나 철권호의 도움을 받은 이상 그러고 싶지 않았다.
“당신 말대로 검황과 겨뤄 보지. 대신….”
강소군이 도황을 향해 말했다.
“천주에게 이르시오. 검황을 꺾고 나면 다음은 천주 차례라고.”
***
천하비무대회는 사흘에 걸쳐 열기로 했다.
첫날 여섯 후보가 각기 상대를 정해 겨뤄 승자를 가리면 세 사람이 남는다.
부전승이 없이 세 사람이 돌아가며 겨뤄 최종 승자를 정하기로 했다.
여섯 사람이 제비뽑기를 하여 상대를 정했다.
첫 비무는 모용백과 화룡도 조운룡이었다.
두 사람이 비무대에 섰다.
수많은 사람들이 주위를 에워싸고 지켜보았다.
“모용 선배께 한 수 가르침을 청하겠습니다.”
조운룡이 먼저 포권을 하며 예를 갖췄다.
모용백이 마주 예를 취하며 말했다.
“젊은 고수와 비무를 해 보는 것도 오랜만이군. 기대가 되네.”
모용백은 장년의 나이다. 이십 대 중반의 조운룡과 손속을 겨루는 것이 자존심이 상할 법도 한데 그런 내색을 하지 않았다.
무림에서는 왕왕 젊은 고수들이 나타나 파란을 일으킨다. 곤륜파에서 갈라져 나온 화룡문의 무공 또한 경시할 수는 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는 자리다.
모용백으로서는 방심할 수 없는 대회였다. 가문의 명예까지 달린 일이 되어 버렸다. 새파란 젊은이에게 진다면 모용세가의 체면이 말이 아닐 것이다.
조운룡이 먼저 도를 뽑았다. 새하얀 화룡도의 도신이 드러나자 사람들이 탄성을 질렀다.
모용백도 천천히 검을 뽑았다. 그의 검은 보통 검보다 길고 폭도 넓었다.
“후배가 선공을 하겠습니다.”
조운룡은 평소와 달리 아주 정중하게 예를 갖췄다.
기대에 찬 사람들은 작은 움직임 하나에도 탄성을 지르고 말을 덧붙였다.
“화룡문의 젊은 문주가 아주 예의가 바르군.”
“화룡도가 패기 넘친다고 들었는데 인품 또한 뛰어나군.”
사람들의 말에 조운룡은 내심 흐뭇했다.
그는 무림맹주의 자리를 차지하고자 천하비무대회에 참가한 것이 아니다.
천하비무대회를 통해 화룡문이 다시 세상에 나왔음을 알리고자 함이 컸다.
과거 화룡문은 정파의 대파로 추앙을 받았다. 그 맥이 부활했음을 알리는 자리로 천하비무대회를 택한 것이다.
“갑니다!”
조운룡이 크게 외치고 화룡도를 크게 휘둘렀다. 무척 큰 동작이었다.
-부웅!
모용백의 대검 또한 벼락같이 조운룡에게 파고들었다.
모용백의 별호가 뇌운검이다. 커다란 대검에는 강맹한 기운이 실려 있었다.
대개 도는 무겁고 두껍다. 그래서 검수들은 도와 정면으로 부딪치기를 피한다.
그러나 모용백은 개의치 않고 화룡도를 맞받아쳤다.
-카캉!
쇠와 쇠가 부딪쳤다가 긁히는 소리가 났다.
두 사람 모두 전력을 싣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다.
-카강! 챙!
조운룡의 화룡도는 쉼 없이 모용백을 향해 짓쳐들었다. 모용백은 침착하게 대검으로 쳐냈다.
화룡도에 붉은 기운이 어리더니 점차 짙어져 갔다.
모용백의 대검에도 파르스름한 기운이 어렸다.
-쾅! 콰쾅!
두 사람의 싸움이 점차 격렬해지며 폭음성이 연달아 터졌다.
“아! 과연 화룡문이다. 모용 대협을 상대로 저렇게 싸울 수 있다니.”
“후기지수쟁패지연에 나오지 않은 이유를 알겠군. 확실히 몇 수 위야.”
“하지만 모용 대협에 비해 손색이 있는걸. 아무래도 내공에서 밀리는 것 같지 않아?”
두 사람의 비무는 격렬했으나 살기가 없었다. 비무란 이렇게 하는 것이다, 라는 걸 보여 주기라도 하는 듯했다.
두 사람의 신형이 더욱 빨라졌다. 비무대에는 사람 그림자와 칼빛만 어지러이 난무하였다.
이윽고.
-쾅!
커다란 폭음과 함께 두 사람이 떨어졌다.
조운룡이 즉시 포권을 하였다.
“과연 모용세가입니다. 사정을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조운룡이 자신이 졌음을 시인하였다.
“와아!”
“모용 대협이 첫승을 거뒀다!”
사람들이 환호하였다.
“자네가 선배 대접을 해 준 것을 아네. 좋은 비무였네.”
모용백이 담담하게 말했다. 그는 조운룡 또한 전력을 다하지 않을 것을 알고 있었다.
설사 조운룡이 전력을 다했다고 하더라도 내력이 우위에 있으니 질 것이라고 생각지는 않았다.
다만 조운룡이 깍듯하게 후배의 예를 취하니 오히려 감탄하였다.
“화룡문의 앞날이 기대되는군.”
“선배님께서도 좋은 결과를 거두시기 바랍니다.”
조운룡은 덕담까지 하고 비무대를 내려갔다.
그는 애초에 모용백과 생사결단을 낼 생각이 없었다.
무림맹주의 자리를 놓고 끝장을 보려 한다면 모용세가와 척을 질 것이고, 이는 모든 세가를 적으로 돌리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그가 의도한 바와는 정반대의 상황이 펼쳐지는 셈이다.
모용백과 백 초를 겨루고도 당당히 비무대를 걸어 내려가는 걸 보면 눈이 있는 자는 알 것이다.
화룡문이 부활한 것을.
조운룡이 내려가자 곤륜파의 도인들이 모여들었다.
“수고했다.”
곤륜파의 장로 관해가 조운룡을 토닥였다.
“네 사부가 자랑스러워할 것이다. 비무대회를 마치는 대로 네 사부를 뵈러 가야지?”
조운룡의 사부 우문극은 곤륜에 머물고 있다.
관해는 조운룡에게 곤륜으로 가자고 하였다.
조운룡이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아직은 화룡문이 자리를 잡지 못했습니다. 사부님께는 조만간 찾아뵐 것이라 전해 주십시오.”
조운룡이 관해에게 예를 취하고 자신의 자리로 갔다.
두 번째 비무는 천무공자 구양조와 해남일검 이정과 두 사람의 대결이다.
‘크흐흐.’
구양수는 비무대로 올라가는 자신의 형을 보며 내심 득의만면하였다.
‘세상이 놀랄 것이다. 천무방의 진정한 주인이 누구인가를 알게 되겠지.’
해남일검 이정과 역시 오십이 넘었다. 머리가 희어 나이보다 더 들어 보였으나 피부는 팽팽하여 주름 한 점 없었다.
구양조 역시 먼저 포권을 하며 예를 취했다.
정중하면서도 기품을 잃지 않아 일문의 수장다웠다.
해남일검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는 해남파의 장문인이었다. 해남파는 중원 대파 못지않은 거대한 문파로 오랫동안 해남도 일대를 지배해 왔다.
그랬기에 그에게선 패자의 기풍이 절로 흘러나왔다. 살짝 고개를 쳐들고 눈을 내리깔고 상대를 보는 모습은 오만해 보이는 감도 있었다.
“중원 무학을 견식하러 왔는데 많이 실망스럽더군. 자네는 나를 실망시키지 말게.”
이정과는 검도 뽑지 않고 손짓을 하였다. 선수를 양보하겠다는 뜻이다.
구양조는 정중하게 허리를 굽힌 후 기수식을 취했다.
“실례를 범하겠소.”
말을 마치자마자 구양조의 검이 쭉 뻗어 나갔다.
-쉬이익! 파파팍!
곧장 찔러 가던 검이 어느 순간 허공에서 요동쳤다. 수십 가닥의 검기가 이정과의 전신 요혈을 노리고 파고들었다.
“흥!”
이정과가 가소롭다는 듯 코웃음을 치더니 뒤늦게 검을 뽑았다.
-샤아아악!
예리한 검풍과 함께 마치 거대한 파도가 일어나듯 강력한 검기가 피어올랐다.
-파파팟!
두 사람의 검기가 얽히며 불꽃 튀는 듯한 소리가 사방으로 퍼졌다.
조운룡과 모용백은 초식을 우선하여 비무를 치렀다. 그런데 구양조와 이정과는 처음부터 내공을 쏟아냈다.
‘형, 저자는 자신의 공력을 믿고 있어. 그러니 내공대결로 가다가 반격을 취하면 이길 수 있어.’
구양수가 일러준 전략을 떠올린 구양조가 내심 피식, 웃었다.
그가 검기를 뿌리지 않았다 해도 이정과가 먼저 내공으로 그를 짓누르려 했을 것이다.
이정과는 구양조가 서른 중반이므로 자신보다 내력이 뒤처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있는 대로 검기를 흘려 구양조를 제압하려 들었다. 이대로라면 최후에 강기를 쓸 게 분명했다.
‘양수 녀석은 알고 있었나?’
얼마 전이라면 내공을 겨뤄 싸우는 게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그런데 구양수가 대환단 못지않은 영약이라며 내공증진에 좋은 약을 계속 복용시켰다. 지금 구양조의 내력은 일 갑자가 넘었다.
한 사람이 육십 년 꼬박 수련을 해야 얻을 수 있다는 공력이 일 갑자다.
서른 중반의 구양조가 이를 지니고 있다는 걸 알면 상대가 이리 쉽게 내공 싸움을 겨루려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파파팟!
이정과는 오만한 낯빛으로 검을 채찍 휘두르듯 마구 휘둘렀다. 그에 따라 검기가 해일처럼 밀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