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소군-182화 (182/250)

182

-쾅!

“크흑!”

고장추가 피를 토하며 십여 걸음 뒤로 물러났다.

묵영신공이 십성에 달하며 적수가 없을 거라 여겼다.

그러나 하늘 밖의 하늘은 존재했다.

눈앞에 있는 자는 사람이 아니었다.

일권을 내지를 때마다 태산이 덮치는 것만 같았다.

보이지도 않는 거대한 기운에 고장추는 숨을 쉬기도 어려웠다. 묵영신공을 익히 않았다면 벌써 죽었을 것이다.

“고작 그런 재주로 흑도를 일통하려 했다는 말이냐?”

거대한 체구의 장년 사내가 담담하게 말했다.

권황이라고 했던가. 그렇게 불릴 만한 자였다.

고장추는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것만 같았다.

아버지의 평생 숙원이자 자신의 인생 목표였던 흑도일통.

흑도맹 개파대전을 앞두고 거꾸러지는 상황이다.

“컥!”

“크흑!”

흑도맹 본산에 수천의 흑도인들이 모여 있었다.

정파보다 먼저 흑도맹의 출범을 세상에 알리기 위한 개파대전을 하루 앞둔 날이다.

적이 쳐들어왔다.

많지도 않았다. 권황과 함께 각양각색의 고수 서른 명.

그럼에도 그들을 막을 자가 없었다.

흑도의 고수라고 자부하던 이들도 몇 초를 버티지 못하고 피를 뿌리며 나가떨어졌다.

권황이 주위를 돌아보다 소리쳤다.

“무릎을 꿇어라! 그러면 살려 준다!”

한바탕 살육이 흑도맹 본산을 휩쓸고 갔을 때 남아 있는 이는 많지 않았다.

사방에 시신이 나뒹굴었다. 대부분 필사적으로 탈출하여 도주하였다.

남은 이는 고작 백여 명.

그들은 전의를 상실하고 그 자리에 무릎을 꿇었다.

권황이 고장추를 향해 말했다.

“네 재주가 쓸만하니 죽이기 아깝구나. 무릎을 꿇고 충성을 맹세하면 살려 주겠다.”

고장추가 핏덩이를 퉤, 하고 내뱉었다.

“개처럼 살란다고 들을 것 같으냐?

“하하. 네가 호랑이라도 된다는 듯 말하는구나. 어리석은 놈.”

권황은 겉으로는 고장추를 비웃었지만 내심, 놀라고 있었다.

자신이 전력을 기울였건만 아직도 쓰러지지 않고 있다.

고장추가 도를 뿌리고 권을 지를 때마다 뿜어내는 묵빛 강기는 그로서도 주의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권황은 천주 외에 자신의 상대는 검황과 도황뿐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고작 애송이 하나를 간단히 처치하지 못하고 있으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파천신권.

하늘도 깨뜨린다는 자신의 권이 고작 애송이 하나 쓰러뜨리지 못하니 자존심이 상했다.

하지만 그는 권황이라는 이름을 지닌 지배자.

천황성에서 황과 제의 칭호를 받는 이들은 자신들의 가신을 둘 수 있다.

권황은 고장추를 자신의 밑으로 둘 생각을 했다.

“네가 너를 호랑이로 만들어 줄 수도 있다.”

권황이 파격적인 제안을 하였다.

“흑도맹주의 자리도 지켜줄 수 있지.”

“크흐흐. 네놈의 조종을 받는 흑도맹주?”

고장추가 자조 섞인 웃음을 흘렸다.

의식이라는 게 생겼을 때부터 오로지 흑도 천하를 꿈꿔 왔다. 그렇게 고대하던 자리에 올라 남에게 조종을 받는다?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여겼다.

“하는 수 없군.”

권황이 서서히 기운을 끌어 올렸다.

이번에야말로 단단히 마음을 먹고 고장추의 묵영강기를 깨뜨릴 생각이었다.

고장추의 전신에서 묵빛 기운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처음보다는 옅었다.

기운이 끊어지는 것이다.

“나는….”

고장추가 어금니를 꽉, 깨물며 신음을 내뱉듯 말했다.

“흑도… 맹주다!”

-번쩍!

묵빛 기운이 허공을 갈랐다.

권황도 가볍게 여기지 않고 전력을 쏟아부었다.

-쾅!

기운과 기운이 부딪치며 삼 장여 바닥의 청석이 산산이 깨어져 나갔다.

벼락이라도 떨어진 듯 주위가 초토화되었다.

“크윽!”

고장추는 이번에도 권기에 밀려 주르륵 삼 장이나 밀려났다.

엄청난 권기에 내기가 끊어져 버렸다. 고장추는 한쪽 무릎을 꿇고 도를 세워 바닥을 짚고 버텼다.

고장추가 눈을 부릅뜨고 권황을 노려보았지만 실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입에서는 핏덩이가 연신 쏟아져 나왔다.

권황은 고장추가 이미 끝났음을 알았다.

“아깝긴 하다만… 가라!”

권황이 일권을 가볍게 쳐냈다. 이미 저항할 수 없는 상대이니 딱 그만큼 손을 쓴 것이다.

그런데.

한줄기 붉은빛이 번뜩이더니 고장추를 안고 날아올랐다.

“감히 내 앞에서 도주를?‘

권황이 재빨리 다시 일권을 쳐냈다.

-쿠웅!

거대한 권기가 붉은 그림자를 덮어갔다.

-퍼억!

붉은 그림자의 등에 권기가 꽂혔다.

그때.

-타앙!

기묘한 폭음성이 터졌다.

“엇!”

권황이 재빨리 강기를 일으키며 권을 장으로 변환시켜 허공을 휘감았다.

-타앙!

재차 폭음성이 울렸다.

“화승총?”

권황이 다시 날아오는 화탄을 잡아챘다.

그사이 붉은 그림자는 담장을 넘어 사라졌다.

권황은 자신의 손바닥을 보았다. 까만 화탄이 손바닥에 박혀 있었다.

강기를 최대한 끌어올렸건만 손바닥 뼈 두어 군데가 부러진 듯했다.

“이, 이….”

권황은 부상을 당하자 기가 막혔다.

천외천의 존재로 인간세에 자신을 상대할 이가 없다고 여겼는데 고작 화승총에 당하다니.

그러나 그런 내색을 할 수가 없었다.

“부상을 당하셨소?”

권황과 함께 군웅각의 고수를 끌고 온 검제가 다가와 물었다.

삼황과 오제는 미묘한 관계다. 삼황이 서로를 견제하지만 오제와 상대할 때는 연합을 한다.

오제 역시 마찬가지. 그들의 실력이 삼황에게 미치지 못한다지만 사실 종이 한 장 차이에 불과하다.

“그놈을 왜 놔주셨소?”

검제가 상황을 뻔히 알면서도 권황을 체면을 생각해 준다는 듯 일부러 물었다.

“죽이기는… 아깝더군.”

권황이 담담하게 말하며 뒷짐을 지는 척 손을 감췄다. 부상을 입었다는 걸 보일 수는 없었다.

***

좁은 길을 질주하는 마차.

마차를 모는 이는 홍의발이었다.

그의 옆에는 화승총 두 자루가 놓여 있었다. 급히 도주하느라 안에 챙기지도 못하고 있다.

홍의발은 연신 뒤를 돌아보았다.

십이지대가 뒤를 따르고 있을 것이다.

전력을 다해서 적을 막으라고 했으니 아마 대부분이 죽음을 피하지 못할 터였다.

하지만 고장추는 살려야 한다.

홍의발은 자신의 마지막 패를 살리기 위해 전력 질주를 하였다.

-쿨럭!

마차 안에서 누군가 토하는 소리가 들려 왔다.

조비추가 자신도 연신 핏덩이를 토하면서도 고장추에게 환약을 먹였다.

“다행이야.”

조비추의 목소리가 떨렸다. 하얀 손으로 고장추의 입가에 묻은 피를 닦아내려 했다.

그때, 고장추가 눈을 떴다.

고장추는 의식을 잃지는 않았다. 아니, 죽는 순간까지도 의식을 놓을 수 없었다.

조비추가 자신을 구했음을 알고 있었다.

고장추의 커다란 손이 조비추의 가느다란 손을 잡았다.

“…!”

고장추가 사력을 다해 일어났다.

“비추야!”

조비추가 허물어지듯 그의 품에 안겼다.

고장추가 재빨리 조비추의 명문혈에 손바닥을 댔다.

그런데, 기운이 이어지지 않았다.

“나는 이미 틀린 것 같아.”

권황의 마지막 일격을 등에 맞은 조비추다.

고장추는 묵영강기가 보호하여 간신히 버텼지만 조비추는 그러지 못했다.

막강한 권기에 장기가 파열되고 말았다.

“안 돼! 비추야! 정신 차려라!”

고장추는 피를 토할 것만 같았다. 아니 실제로 울컥, 핏물이 솟구쳤다.

권황의 권기에 진동한 내장이 다시 격탕된 것이다.

“사형, 됐어. 그러지 마. 몸을 아껴. 그래야….”

조비추의 목소리는 끝내 말을 맺지 못하고 잦아들었다. 더는 말할 힘도 없어 보였다.

“아아악!”

고장추는 발악하듯 묵영신공을 있는 대로 끌어 올렸다. 진원진기까지 모두 뽑아 올린 것이다.

묵영강기가 흘러들어 가자 조비추는 정신 차렸다.

하지만 이미 저승에 한 발 걸친 상태였다.

회광반조.

조비추의 눈이 반짝였다.

“미안해. 흑도일통하는 그 자리에 함께 있어야 했는데.”

고장추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말을 하고 싶지만 지금 자신의 내력도 바닥이라 입을 열 힘까지는 없었다.

고장추는 연신 조비추의 명문혈에 기운을 불어넣어 부서진 장기를 감쌌다.

그의 기력이 다하는 순간 조비추는 죽을 것이다.

“사부님하고 내가 보고 있을 거야.”

조비추가 부스스 머리를 들어 고장추를 바라봤다. 하얀 손이 고장추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사형, 이제 됐어. 진기를 아껴야 돼. 반드시 살아서… 흑도일통하는 날 나를 불러줘.”

조비추가 말을 마치더니 고장추를 밀치며 몸을 뒹굴었다.

고장추가 자신에게 진력을 불어넣다가 내공이 고갈되는 걸 막으려 한 것이다.

-쿨럭!

묵영강기의 힘으로 겨우 보호되던 장부가 허물어지며 다시금 피를 토했다.

조비추가 희미하게 웃었다.

“사형이… 있어서… 좋았어.”

조비추가 비스듬히 누운 채 눈을 감았다.

고장추가 조비추를 그러안으며 통곡을 하였다.

“으허헝!”

흑천맹을 결성하려다 아버지 고선에 이어 조비추까지 잃었다.

“이랴!”

홍의발은 조비추가 죽었음을 알고 화풀이라도 하듯 채찍을 연신 휘둘렀다.

네 마리의 말이 미친 듯이 달렸다.

***

-쾅! 콰콰쾅!

계곡이 무너질 것 같은 굉음이 울렸다.

사방으로 회오리바람이 퍼지며 흙먼지와 풀잎이 날렸다.

이후 정적이 찾아왔다.

강소군과 도황은 마주하고 있었다.

도황의 넓은 어깨가 쉼 없이 떨렸다. 그도 그럴 것이 오른팔이 잘려 나갔다.

강소군의 상태도 좋지 않았다.

낯빛이 창백하다 못해 퍼렇다. 입에서는 연신 핏물이 흘러내렸다.

도황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떨어진 자신의 오른팔을 보았다.

짧은 도를 쥔 팔이 땅바닥에서 부들거리고 있었다.

“왜, 이렇게까지….”

도황의 목소리가 이어지지 않았다.

분명 자신의 아래라고 여겼다. 그런데 결과는 동귀어진이다.

자신은 팔을 잃었지만 저놈은 내장이 박살 났을 것이다.

도황은 그 자리에 주저앉더니 떨어진 자신의 팔을 들어 잘린 부위에 붙였다.

-파악!

도황의 전신에 기운이 어렸다. 희뿌연 안개 같은 것이 잘린 부위에 어렸다.

놀라운 일이었다. 잘린 팔을 내공으로 이어 붙이려 하다니.

그러면서 도황은 말까지 할 수 있었다.

“왜 죽음을 택한 것이지? 살길이 있었는데.”

강소군이 희미하게 웃었다.

“여전히 착각하고 있군.”

“….”

“당신 역시 천주의 대법을 통해 속성으로 벽을 넘은 다른 자들과 다를 바가 없소.”

“뭐라?”

도황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졌다. 군웅각의 고수들과 자신을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모욕이었다.

“도황이라… 당신이 정말 황제라도 되는 것처럼 행동하더군. 그런데 황제가 무엇이오?”

“….”

“수많은 왕들의 머리에 있는 자, 세상의 주인? 그래서 모든 이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자?”

“대체 무슨 헛소리를 하는 것이냐?”

도황은 강소군이 왜 이런 말을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당신은 저기 백정과 목수를 죽였소. 언제든 남의 목숨을 취할 수 있다고 생각하겠지.”

도황이 쓰러진 백정의 시신을 보았다.

그게 뭐 어쨌다는 눈빛이다.

“게다가 나를 살려 줄 테니 검황인가 뭔가 하는 사람과 겨루라고 하지 않았소? 내가 당연히 그 말을 따라야 한다는 듯 말하더군.”

“나를 인정하기 싫었다는 건가? 고작 자존심 때문에 목숨을 걸었다니 보기보다 어리석군.”

도황이 코웃음 쳤다.

강소군이 실소를 흘렸다.

“황제가 아닌데 황제처럼 굴다니. 진정한 황제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무부 따위가 말이오. 이거야말로 어릿광대가 아니오? 그러니 당신이 다른 자들과 다를 바 없다는 뜻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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