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소군-181화 (181/250)

181

도황의 짧은 도가 허공을 갈랐다.

-파팟!

도의 형태를 한 강기가 튀어 나갔다.

“크억!”

목수의 등판이 갈라지고 백정의 목이 떨어졌다.

오 장이 넘는 거리였음에도 두 사람은 도강을 막지 못했다.

강소군이 눈살을 찌푸렸다. 동료를 거침없이 베다니.

도황은 멀리 사라지는 절검을 보았다. 그에게까지 손을 쓸 생각은 없어 보였다.

“저놈이 끝내 얻어 가는 게 있군.”

도황이 중얼거렸다.

그러더니 강소군을 향해 돌아서며 말했다.

“이제 일을 마무리해야지?”

강소군은 백정과 목수의 시신을 보고 있었다.

“왜? 죽였냐고?”

도황이 강소군의 마음을 들여다보기라도 한 듯 말했다.

“저놈들이 세상에 나가면 곤란하지. 어린애에게 칼을 쥐여 준 것이나 마찬가지거든.”

강소군은 백정이나 목수 등이 살아서는 천황성을 떠날 수 없는 운명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동시에 천황성이 불취를 죽이려고 한 이유도 알았다.

불취의 마음이 당우화에게 기울어 천황성을 떠날 조짐을 보이자 처리를 하려 한 것이다.

천주는 대법을 펼쳐 무공을 끌어준 대신 그들의 목숨줄을 쥐고 있었다.

“당신들이 저들을 그리 만든 게 아닌가?”

“당신들? 그렇게 말하면 곤란하지.”

“천주가 한 짓이라는 건가?”

“….”

“당신들 관계가 궁금하군.”

“굳이 알려고 하지 말아라. 답해 줄 것도 없으니까.”

강소군이 고개를 갸웃거리다 절검이 사라진 쪽을 보았다.

“그는 왜 놔준 것이오?”

“….”

“천주가 알면 곤란할 텐데?”

“하하하.”

도황이 크게 웃었다.

“뭔가 잘못 알고 있군.”

하지만 무엇을 잘못 알고 있는지는 말하지 않았다.

도황이 강소군 쪽으로 돌아섰다.

짧은 도는 폭이 넓어 작은 판자 비슷했다.

“놀라웠다. 그 나이에 그 경지라니. 하지만 피냄새가 너무 강해.”

“….”

“피에 집착하는 순간 마로 빠져들고 말지.”

도황이 한 발을 앞으로 내밀며 짧은 칼을 쑥, 내밀었다.

자연스러운 동작이었다. 뻗어 나오던 칼의 움직임이 멈춘 순간.

-팟!

무형의 기파가 사라졌다.

“…!”

도도 도황도 사라졌다.

아니, 실제 사라졌을 리는 만무다. 다만 강소군에게 그리 느껴졌을 뿐이다.

강소군의 시선은 여전히 도황에게 향해 있었다. 다른 사람이 봤다면 도황과 강소군은 대치하고 있는 상황이다.

허나 강소군의 눈에는 도황이 존재하지 않는 듯 보이지 않았다.

‘도도 사라졌다?’

상관무영과 겨룰 때 검이 홀로 있는 걸 보았는데 도황은 도까지 사라졌다.

-파파팟!

그러나 그도 잠시, 사방에서 도가 번뜩이며 강소군을 내리쳐 왔다.

“…!”

강소군의 천성육십사식이 동시에 중첩되며 일 장 반경의 검막을 형성하였다.

-콰쾅!

도황의 짧은 도가 강소군이 그린 검로의 기운을 난타하였다.

도끼로 나무를 패듯 무지막지하게 내리치는 광경은 난도질이라는 말로밖에 표현할 수 없었다.

-팍!

강소군의 검로가 깨어져 나갔다. 기운이 끊기며 검로 한 가닥 한 가닥이 사라져 가는 것이다.

강소군은 천황성을 왜 하늘 밖의 하늘이라고 하는지 실감하였다.

“….”

강소군이 눈을 감았다.

머릿속에 천성육십사식의 궤적이 그려진다. 검로를 따라 금룡기가 실처럼 전신에서 풀려나갔다.

-쾅, 콰쾅!

도황이 짧은 도를 내리칠 때마다 금룡기가 충격을 받아 끊어졌다. 동시에 강소군의 내기도 흔들렸다.

강소군은 지난번 편제에게 당한 이후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상태였다.

그러나 초식이 완성의 경지에 이르며 내공이 없이도 쌍둥이를 해치울 수 있었다.

장검을 든 사내나 절검 역시 검로를 펼친 기운으로 걸림 없이 벨 수 있었다.

하지만 도황한테만은 그리할 수가 없었다.

그는 완성된 강소군의 검로를 무지막지하게 두들겨 깨는 방식으로 나왔다.

무형의 기운을 감지하고 벤다는 걸 상상조차 하지 못했는데 실제로 보고 있는 셈이다.

-팟!

강소군의 기운이 사라졌다. 동시에 무애검을 펼쳤다.

찌르고 쳐내고 베고 휘감고.

마치 검무를 추듯 무애검이 허공을 휘저었다.

-까강!

기파가 터지는 음 대신 검과 도가 부딪치는 날카로운 소리가 터졌다.

그러자 도황이 나타났다.

“흐흐. 그래야지.”

그는 알 수 없는 중얼거림을 흘리더니 도를 고쳐 잡았다.

-파파팟!

좌우로 도의 그림자가 번뜩였으나 허초였다. 도는 강소군의 정수리를 노렸다.

강소군이 옆으로 미끄러지듯 움직이며 검을 붙여 도를 밀어내는가 싶더니 곧바로 원으로 그리며 아래서 위로 베어 갔다.

-카강!

도황의 도는 사방에 있는 듯했다. 도광이 번뜩이는가 싶었는데 어느새 강소군의 검을 막았다.

두 사람의 신형이 검과 도를 맞댄 채 그대로 멈췄다.

강소군은 내공의 삼 할을 운용하고 있었는데 도황의 도에는 아무런 공력이 실려 있지 않은 듯 허허로웠다.

그럼에도 밀리지 않았다.

-휙!

도황이 일 장을 물러났다.

“괜찮군. 다시 해보자.”

강소군이 대답도 하기 전에 도황의 짧은 도가 허리를 베어 왔다.

정말 우직한 도법이었다.

강소군 역시 실초로 맞대응하였다.

-까강! 깡! 채채채챙!

검과 도가 연달아 부딪쳤다. 무애검이 보기 드문 보검이었기에 망정이지 아니었다면 벌써 부러졌을 것이다.

두 사람의 신형이 점점 빠르게 움직이며 검과 도 역시 눈에 잡히지 않았다.

나중에는 검과 도가 부딪치는 일도 없었다.

이쪽이 공세를 취하면 저쪽이 허점을 노리고 그러면 다시 이쪽이 빈 곳을 찾아 검을 찔러 넣기 바빴다.

강소군의 검로는 완성의 경지에 이르렀다. 도황의 도법 역시 그러했다.

그러다 보니 둘 중 누구도 우위를 점하지 못했다.

두 사람이 공력을 싣지 않았기에 싸움은 한없이 이어질 것만 같았다.

-팟!

어느 순간 도황이 도기를 터뜨리더니 몸을 뒤로 뺐다.

“좋군. 이런 게 싸움이지.”

강소군은 겨루면서 그가 자신보다 한 수 위의 고수라는 걸 절감했다. 그럼에도 그는 끝을 볼 생각이 없는 듯했다.

도황이 도를 거둬 도집에 넣었다.

“천황성은 폐쇄되었다. 절진이 작동하고 있어 그 누구도 들어갈 수 없다.”

“….”

도황을 보니 거짓말이 아닌 듯했다.

“의심하나 본데 사실이다. 나는 거짓말하지 않는다. 안에서 열어 주기 전에는 절대 들어갈 수가 없다.”

“내게 왜 그런 사실을 일러주는 것이오?”

“그야, 헛걸음할 필요가 없다고 보니까. 그보다 네가 겨뤄야 할 상대가 있다.”

도황은 정말 엉뚱했다.

“무한에서 벌어지는 비무대회에 검황이 참가할 것이다. 아마 그가 무림맹주가 되겠지.”

“…?”

“그와 겨뤄 봐라.”

강소군이 피식, 웃었다.

“내가 왜 당신 말을 들어야 하는지 모르겠군.”

도황의 전신에서 거대한 기운이 일었다.

“내가 정말 너를 죽이지 못해서 그만둔 줄 아나?”

“쉽게 죽어 줄 생각은 없는데?”

강소군이 담담하게 맞받았다.

도황의 기운이 씻은 듯 사라졌다.

“좋다. 네놈이 줏대가 있는 놈이니 약속을 하면 지키겠지. 그와 싸우면 대신 네가 원하는 걸 하나 들어주겠다.”

강소군이 잠시 생각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천주의 대법에 대해 알려 주시오.”

불취는 천황성에 대해 여러 가지를 알려 주었다.

삼황궁과 제왕전, 군웅각이나 공손노야 등에 대해 일러주었으나 천주와 대법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천황성의 힘은 평범한 사람도 순식간에 고수로 만드는 천주의 대법에서 나온다.

천주를 죽이거나 대법을 펼칠 수 없게 만든다면 자연 천황성도 사라질 것이다.

도황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건 나도 모른다.”

“당신도 대법을 받았지 않소?”

“대법을 펼치기 전 약을 주지. 그걸 마시면 제아무리 고수라도 잠들고 만다. 백 일 후에 깨어나면 대법은 끝나 있지. 그러니 시술을 받는 이도 모른다.”

도황은 너무나 솔직하게 대답했다.

“다른 걸 말해라. 누구 죽이고 싶은 자가 있나?”

강소군이 실소를 흘렸다.

“그럴 거라면 내가 죽이지 왜 당신에게 부탁하겠소.”

강소군이 곰곰 생각하다 물었다.

“이번에 천황성이 세상에 나온 이유가 무엇이오?”

“공손 노야가 무림을 장악하기로 했다.”

역시 무림을 장악하려는 목적이었다.

“마치 당신은 뜻이 다른 듯 말하는구려.”

“천황성에 있다고 해서 모두 뜻이 같은 건 아니다. 군웅각에 있는 쓰레기들이야 천주나 공손 노야의 명을 따를 뿐이지.”

자신은 그렇지 않다는 뜻이다.

“당신도 천황성을 나왔잖소?”

“나는 상대를 찾아 나온 것뿐이다.”

강소군은 도황이 어떤 자인지 알 것 같았다.

“검황도 그렇소?”

“그는 생각이 다른 것 같다. 하지만 그 속을 누가 알겠나?”

삼황은 서로 간에 교류가 없어 보였다.

강소군이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왜 그렇게 웃는 것이냐?”

“당신은 무척 호쾌해 보이는데 실상은 겁이 많은 자 같소.”

도황이 인상을 찌푸렸다.

“내가 살려 준다는 말을 듣고 함부로 떠드는군. 마음이 바뀔 수도 있다는 걸 잊지 말아라.”

“당신이 직접 검황과 겨루면 될 것을 왜 굳이 나를 통해 알아보려 하는 것이오?”

강소군은 도황의 협박에 개의치 않고 말을 이었다.

“혹시나 질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것 아니오? 그러니 내 무공을 알아본 다음 검황과 겨루게 하여 그의 무공을 측량해 볼 생각 아니오?”

도황의 너른 어깨가 꿈틀하였다. 하지만 잠시 후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그러니 꼭 그와 겨뤄야 할 것이다.”

도황이 얼굴을 굳히더니 말했다.

“내 말을 어긴다면 땅끝까지 쫓아서라도 너를 죽이고 말 것이다.”

“한 가지 의문이 있소.”

“또 뭔가? 보기보다 말이 많은 놈이군.”

도황이 귀찮다는 표정을 지었다.

“검황이 비무대회에 참가하면 누군가와 겨룰 것 아니오. 그걸 지켜보면 되잖소?”

“하하하!”

도황이 크게 웃었다.

“그럴 자가 있다면 내가 굳이 너를 살려서 보내지 않겠지.”

“….”

“철권호라면 모를까. 나머지 놈들은 검황의 십초지적도 되지 않을걸?”

도황이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었다.

“그래도 너는 백초지적은 되지 않을까 싶은데?”

강소군이 다시 한 번 실소를 흘렸다.

“그 말은 내가 반드시 지고 죽을 것이란 뜻이오?”

“내가 보기에 그렇다는 거지.”

강소군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내가 당신과 생사결을 하겠다면 몇 초를 버틸 것 같아 보이오?”

도황이 미간을 찌푸리며 생각하더니 말했다.

“팔십 초가 한계일 것 같은데?”

“당신이 검황보다 실력이 낫다는 것이오?”

“당연하지. 하지만 의외라는 게 있으니까.”

강소군은 도황의 말을 사실대로 믿을 수가 없었다.

스스로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했으나 논리적으로 맞지 않았다.

강소군이 검을 다시 들었다.

“나는 당신과 끝을 보고 싶소.”

***

후기지수쟁패지연이 끝났다.

당초 예정대로 백 명을 선발하였다. 예상대로 대파와 세가를 비롯한 명문 출신이 대부분 합격권에 들었다.

남은 것은 천하비무대회.

비무대회 전날 참가자 명단이 공개되었다.

자청신검 추일엽

뇌운검 모용백

천무공자 구양조

화룡도 조운룡

태악진권 양우종

해남일검 이정과

의천맹주 철권호의 이름이 없자 사람들은 크게 술렁거렸다.

게다가 구양조나 조운룡과 같이 후기지수쟁패지연에 이름을 올릴 법한 젊은 고수들이 있다는 점 또한 사람들로부터 빈축을 샀다.

“볼 것도 없군. 추일엽과 모용백의 싸움이야.”

“해남일검도 만만치 않을걸?”

“태악진권이 나온 게 의외인데?”

“철권호 대협이 빠지니 이놈 저놈 다 나오는군.”

사람들은 내일 있을 비무대회를 앞두고 설왕설래하며 밤늦도록 술잔을 기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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