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소군-179화 (179/250)

179

쌍둥이 아우는 당황했다.

그가 화경에 든 지 이십 년이 다되어 간다. 초식을 버린 지는 십 년도 더 됐다.

이제는 마음이 가는 대로 강편이 움직였다.

사실 이제 강편도 필요 없는 경지라고 생각했다. 다만 두 자루 강편은 그의 수족과 같아 지니고 다닐 뿐이다.

“사술?”

강편의 움직임은 그가 생각하기에 완벽했다. 바람 한 줌 새어 나가지 못할 것이라 여겼다.

그런데 강소군의 옷깃조차 스치지 못하고 있다.

‘헉!’

강편을 흘려보내던 강소군의 검이 어느 순간 자신을 향해 찔러 들어왔다.

빠르지도 않았다.

쌍둥이 아우는 왼손의 강편으로 검을 후려치고 오른손의 강편으로 강소군의 팔을 찍었다.

-쉭!

강소군의 검이 잠깐 흔들리나 싶었다. 그러나 잠깐의 시간이 지나자 강편은 허공을 치고, 검은 쌍둥이 아우의 가슴에 박혔다.

“허억!”

무애검은 날카로웠다.

쌍둥이 아우가 펼친 호신강기도 소용이 없었다. 가슴이 찔리자 입에서 절로 바람 빠지는 소리가 났다.

“아우야!”

쌍둥이 형이 남은 강편을 던졌다.

-텅!

하지만 그것은 정말로 시도에 그치고 말았다. 강소군이 강편을 쳐낸 것이다.

쌍둥이 아우는 숨이 가빠져 와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쌍둥이 형이 아우에게 다가가 가슴을 치자 기도가 열리며 숨을 쉴 수 있었다.

형도 복부의 상처가 깊어 더 이상 싸울 형편이 되지 않았다.

두 사람은 자신들이 왜 이 지경이 되었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쌍둥이 형이 가만 서서 자신들을 보는 강소군에게 말했다.

“우리가 졌네. 살려 주게.”

패배를 자인하면 살려 주리라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강소군은 말없이 검을 그었다.

-툭! 투툭!

두 사람의 머리가 땅에 떨어졌다.

방금 전까지 여인을 보고 음침하게 웃던 놈들이다. 살려 둘 필요가 없었다.

강소군의 시선은 먼 곳을 향해 있었다.

본능적으로 다가오는 기운을 느낀 것이다.

-쾅!

철권호와 장수 차림의 남자가 싸우던 쪽에서 폭음이 들렸다.

철권호의 발이 장수차림의 남자 투구를 걷어찼다. 투구 안의 머리가 박살이 나며 남자가 쓰러졌다.

언월도는 철권호의 옆구리에 박혀 있었다.

살을 내주고 뼈를 취하는 수법이었으나 대가가 컸다.

철권호가 비틀거리며 여인에게 다가갔다.

“연청! 정신차려 보게.”

철권호가 여인을 흔들어 깨웠다.

“으으음.”

여인은 낯익은 목소리를 듣고 정신이 돌아온 듯 눈을 떴다.

“대가. 내가 죽은 걸까요? 이렇게 보다니 꿈만 같아요.”

공손 노야는 쌍둥이 등을 조왕부로 보내 철권호의 부인 봉연청을 천황성으로 데려가던 중이었다.

철권호는 공손 노야의 안가를 나온 뒤 밤새워 조왕부로 달려갔고, 조왕이 부인을 내주었다는 말에 뒤를 밟아 쫓아온 것이다.

“이제 괜찮네. 다행이야. 이제 안심해도 돼.”

봉연청을 품에 안고 등을 두드려주었다.

“어엇! 당신, 다쳤어요? 피가?”

봉연청이 피가 질펀한 철권호의 옆구리를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이어 주위를 보다 시신이 널브러진 걸 보고 하얗게 질렸다.

“이게 어찌된 일이에요.”

“지금은 자세히 설명할 시간이 없소. 일단 여기를 빠져나가야겠소.”

철권호가 봉연청을 안아 들었다.

강소군의 시선은 여전히 먼 계곡을 바라보고 있었다.

“고맙네.”

철권호가 짤막하게 한마디 하고 몸을 날렸다.

강소군은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초식의 완성을 눈앞에 두고 있다.

방금 쌍둥이 형제와 싸우면서, 강소군은 자신의 기운을 삼 할도 쓰지 않았다.

내상이 완전히 회복되지도 않았건만 화경의 고수 둘을 상대하면서도 어려움이 없었다.

쌍둥이 형제들이 방심한 탓도 있었다.

강소군의 전신에 어린 기운이 미미한 걸 느끼고 제대로 경계를 하지 않은 것이다.

그래도 결과는 놀라웠다.

흔히 화경에 들면 어느 순간 초식도 병기도 버린다고 한다.

강소군은 그 단계야말로 초식과 병기를 완성해야 하는 시기임을 깨달았다.

청무진인으로부터 무극해를 받은 뒤 그 의미를 파고들다가 철권호를 만나며 단초를 깨달은 바 있다.

그 즉시 초식의 완성에 들어갔는데 자신의 경지가 어느 정도인지 확인하기는 어려웠다.

다만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경지로 들어갔다는 걸 느끼고 있었을 뿐인데 방금 일전을 겨루며 확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강소군은 화경이니 현경이니 하는 단계의 구분이 무의미함을 느꼈다.

사람이 하루를 열두 시진으로 나누고 한 해를 삼백육십일로 정했으나 자연은 그에 구애받지 않고 쉼 없이 흘러간다.

그처럼 사람이 절정이니 화경이니 생사경이니 나누는 것일 뿐이다.

봄과 여름의 경계가 어디인지는 모르나 어느 순간 여름이듯 강소군은 자신이 어떤 경계를 넘었음을 깨달았다.

-휘이이익!

기나긴 소성이 울려 퍼졌다.

아래쪽에서 몇몇 신형이 보이더니 곧바로 날아왔다.

모두 다섯 사람이었다.

가장 앞에 선 이는 짧은 도를 허리에 찬 중년 사내였다. 딱 벌어진 어깨가 보통 사람의 두 배는 되어 보였다.

뒤따라온 이 중에는 안면이 있는 자도 있었다.

기다란 톱을 든 목수와 돼지 잡는 칼을 쥔 백정이 강소군을 알아보았다.

“네놈이었구나!”

나머지 두 사람은 검을 쓰는 자였는데 한 사람은 기다란 장검을 쥐고 있었고 다른 한 사람은 보통 검보다 조금 짧아 보이는 검을 등에 매고 있었다.

“이놈이 본성 살생부 제일 윗줄에 있는 강소군이라는 놈이오.”

백정이 일행에게 말했다.

“제법 무공이 강해서 편제의 손에서도 살아난 놈이오. 합공하지 않으면 피해가 늘 것이오.”

과거 초화평에서 백정은 강소군이 중상을 입었을 때 직접 나섰으나 오늘은 몸을 사렸다.

팔뚝이 어린애 허벅지만 한 자가 아쉬운 소리를 하니 어울리지 않았다.

“흐흐. 과연 그럴까?”

장검을 든 이가 앞으로 나섰다.

짧은 도를 찬 중년 사내가 우두머리인 듯했다.

나머지 사람들이 알아서 처리할 것이라 여겼는지 옆에 있는 바위에 올라앉았다.

지켜보겠다는 뜻이다.

장검을 든 이가 강소군에게 물었다.

“이봐. 젊은이, 혹시 여기서 몸집이 커다란 산돼지 같은 놈을 보지 못했나? 강호에서는 철권호라 부른다던데.”

강소군은 무애검을 툭툭 떨었다. 맺혀 있던 핏방울 하나가 툭, 떨어졌다.

강소군은 물음에 답하지 않고 오히려 되물었다.

“천황성이 여기서 머지않은 것 같은데 길이나 일러주겠소?”

검을 든 자가 어이없다는 듯 피식, 웃었다.

“네놈이 제법 손이 맵다고 들었는데 그만한 배짱이 있군.”

그가 장검 손잡이를 툭툭, 치며 말했다.

“상관없다. 네놈을 죽이고 쫓으면 그만이니까.”

“광검, 혼자서는 무리라니까.”

백정이 눈살을 찌푸렸다. 목수는 슬그머니 뒤로 처졌다.

화경에 들었으면서도 심약한 기질을 버리지 못해 은연중 뒤로 물러난 것이다.

중랑과 싸우며 호된 경험을 했던 목수다. 그는 강소군은 중랑보다 한 수 위라고 알고 있다.

먼저 나서서 강소군을 칠 생각이 없었다.

광검이라 불린 사내가 천천히 검을 뽑았다.

검집에 있었을 때는 몰랐으나 뽑혀 나온 걸 보니 기병이었다. 기다란 검은 한쪽이 톱날로 되어 있었다.

“한심한 것들.”

광검이 백정과 목수를 경멸하듯 쏘아보고 앞으로 발을 내디뎠다.

강소군은 불취로부터 천황성 고수들이 크게 둘로 나뉜다는 사실을 들어 알고 있었다.

하나는 무공을 익히던 자들로 천주의 대법을 받은 자들이다. 이들은 원래 무림인이었기에 자신의 성취에 대한 자부심이 높고 호전적이라고 했다.

반면 평범한 사람 중에서 천주의 대법을 받고 곧바로 무공이 경지에 이른 이들이 있다고 했다.

이전에 싸웠던 석공이나 눈앞의 백정 등이 그들과 같은 부류였다.

불취는 천주가 대법을 통해 무공을 끌어올려 주는 데 모종의 이유가 있다고 보았다.

‘천주는 미증유의 경지에 있는데 여전히 육신의 껍데기를 버리지 못하고 있지. 대법 시술을 통해 그가 원하는 최종의 경지로 나아가는 방법을 찾는 것 같아.’

광검은 천천히 강소군에게 다가오더니 말했다.

“내가 무림을 떠난 지 꽤 됐지. 아마 이름을 일러주어도 알 수 없을 것이다. 염왕을 만나거든 이런 검을 쓴 자가 보냈다고 하거라.”

광검은 말을 마치자마자 검을 찔러 왔다.

-시이이익.

톱날 같은 검날 쪽에서 기이한 음이 울렸다. 목수의 톱과 비슷하였으나 보다 둔중하였다.

강소군이 늘어뜨린 검을 당기며 광검의 검을 끌어당겼다.

검과 검이 붙고 강소군은 미끄러지듯 일 장을 물러났다.

“어?”

검이 끌려나가자 순간 놀란 광검이 경력을 쏟아냈다.

-파팟!

검끝에서 기파가 터지고 새파란 강기가 번뜩였다.

광검은 적어도 화경은 넘은 경지였다.

“기이한 수법을 쓰는구나!”

광검이 호통을 치더니 검을 그대로 밀었다.

놀랍게도 검이 광검의 손을 떠나 쑤욱 다가왔다. 손으로 잡고 찌르는 기세 그대로였다.

“잔재주는 통하지 않는다!”

광검의 양손이 가슴 앞에서 원을 그리며 회전하였다. 그러자 검이 팽이처럼 돌았다.

동시에 검 주위로 하얀 실 같은 기운이 퍼졌다. 살기를 유형화한 것이다.

실타래 같은 살기가 퍼지며 강소군의 전신을 감싸려 들었다.

강소군이 고개를 저으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검을 검답게 쓰지 못하는 자, 검을 쥘 자격이 없다!”

누구에게 하는 말이 아니었다. 스스로 깨달은 바를 되뇐 것이다.

초식의 완성에는 병기의 완성도 있다.

강소군의 말에 화답하기라도 하듯 무애검이 지잉, 울었다.

강소군이 손목을 휘감자 그에 따라 무애검이 한 바퀴 원을 그리며 광검을 향해 사선으로 그어졌다.

검끝에서 하얀빛이 번뜩였다. 정직한 검기였다.

“어림없다!”

검기 정도에 놀랄 광검이 아니었다. 그가 회전하던 양 손바닥을 부딪치더니 그대로 장을 내밀 듯 쑥 밀었다.

-쉬이이익!

광검의 검이 활을 벗어난 화살처럼 강소군을 향해 튀어나갔다.

검이 세차게 회전하니 흘러나온 살기가 미친 듯이 퍼져 나갔다.

어지간한 사람은 그 살기에 사로잡혀 꼼짝도 못 할 정도로 지독한 기운이었다.

-서걱!

뼈가 갈리는 기음이 터졌다.

“헉!”

지켜보던 백정과 목수가 놀라 크게 눈을 떴다.

분명 광검의 검이 강소군에게 닿았다.

강소군의 검은 광검에게 닿지도 않았다.

검기가 쏟아져 나왔으나 광검이 양손의 호신강기로 쳐내는 걸 봤다.

백정은 강소군이 끝장났다고 여겼다. 그런데 쓰러지는 건 광검이었다.

광검은 어깨부터 옆구리까지 길게 베여 피를 흩뿌렸다.

바위에 앉아 있던 이가 눈살을 찌푸렸다.

“심검?”

다른 이들은 강소군의 수법을 몰랐으나 그는 알아봤다.

강소군의 일검은 정직했고 그 안에는 태산이라도 벨 마음이 담겨 있었다.

광검이 몇 초식도 안 되어 쓰러지자 목수는 다리가 후들거렸다.

“저놈은 대체 어떻게 된 놈이지? 그 사이 무공이 몇 단계는 높아졌잖아.”

“거보라고. 모두 합공해야 된다고! 도황, 당신도 함께합시다.”

백정이 바위에 앉아 있는 이를 향해 말했다.

도황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강소군을 볼 뿐이다.

강소군도 도황을 바라보았다.

‘삼황?’

불취는 검황과 도황, 권황을 삼황이라고 했다.

먼 곳에서부터 느꼈던 기운은 도황의 것이었다.

백정이 버럭, 고함을 질렀다.

“너희는 미친놈들이야. 무공을 통해 장생불사를 하겠다는 놈들이 목숨을 이렇게 쉽게 내놓다니. 돼지도 이러지는 않을 것이다.”

강소군이 고함을 지르는 백정을 보았다.

묘하게도 백정의 기질이 그대로 읽혔다.

백정은 이기적이고 잔인한 자였다. 약자에게는 한없이 난폭하게 굴지만 강적 앞에서는 어떻게든 수를 써서 살고자 하는 부류였다.

천주의 대법으로 무공이 높아지며 숨었던 본인의 기질이 그대로 드러난 결과였다.

“죽음이 두려운가?”

강소군이 뜬금없이 백정을 향해 물었다.

“뭐라고?”

백정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럼에도 경거망동하지 못했다.

“너희를 보니 천주의 대법이 확실히 불완전하다는 걸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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