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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소군-176화 (176/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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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님이 아니었으면 대사형의 시신조차 수습 못 할 뻔했지 않습니까? 앞으로 형님으로 모실 겁니다.”

조운룡이 말했다.

조운룡의 넉살은 강소군도 잘 안다.

강소군이 별 대꾸 없이 자리에 앉자 조운룡이 의자를 하나 가져와 옆에 앉았다.

“여기 계시다는 소식에 진작 찾았는데 대체 어디 가 계셨던 겁니까? 천황성 놈들에게 당하셨다면서요? 지금은 괜찮습니까?”

조운룡이 연달아 질문을 쏟아냈다.

강소군은 조운룡이 무척 수다스러웠다는 기억을 떠올렸다.

피식, 웃으며 말했다.

“차차 이야기하기로 하지.”

동시에 강소군의 전신에서 기운이 퍼져 나왔다.

“…?”

연화심과 장무강, 심마백과 조운룡이 자신들을 둘러싼 기운에 놀랐다.

“소리가 새어 나가지 않게 기를 두른 겁니다. 너무 놀라지 마시고 조용히 듣기만 하시지요.”

강소군이 장무강 등에게 말했다.

“노 각주께서 소식을 전해 왔습니다. 천황성의 고수들이 쏟아져 나왔는데 무한으로 오고 있다고 합니다.”

“…!”

***

노이칠은 되도록 대파나 세가 등의 무림인들에게 노출되는 걸 피해왔다.

대신 무한은 물론 삼도문 곳곳에 이목을 심어 두었다.

강소군과 철권호가 뒤편 산으로 들어가는 것도 이미 알고 있었다.

다만 두 사람이 경지를 뛰어넘은 고수라 가까이 가지 못하고 멀리서 따를 뿐이었다.

철권호가 내려가고 강소군이 그 자리에서 연공을 하자 사람을 시켜 지키게 하였다.

강소군의 연공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아무에게도 사실을 알리지 않았는데 오늘 급보를 받았다.

노이칠은 강소군으로부터 천황성이 있는 위치를 듣고 은밀하게 감시를 보낸 바 있다.

천황성 고수로 보이는 자들이 나와 무한 쪽으로 향하고 있다는 급보를 받는 순간, 심상치 않음을 깨닫고 강소군부터 찾았다.

“그들이 또 온다는 말인가?”

장무강은 강소군이 천황성 고수들에게 죽을 뻔한 사실을 들은 바 있다.

“그런데 단순히 저만 노리는 것 같지 않군요.”

“…?”

“그 수가 수십 명에 이른답니다. 저 하나 잡자고 하면 열 명이면 충분하지요.”

사실 지난번 살아난 것은 요행에 가까웠다.

중랑과 남궁악 등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초화평에 뼈를 묻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무슨 다른 목적이 있다는 겐가?”

“확실치는 않지만 천하비무대회를 노리는 것 같습니다.”

“그들은 강호에 간여하지 않는다고 하지 않았나?”

“표면적으로 나서지 않았을 뿐 암중에서 영향력을 행사해 왔던 그들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모습을 드러낸 것을 보면 분명 작은 일은 아닐 겁니다.”

“무림맹을 장악하려는 것일까요?”

조운룡이 끼어들었다.

“….”

강소군은 대답하지 않았다.

철권호를 내세워 무림맹을 장악하리라고 보았는데 굳이 또 수십 명의 고수를 보내다니.

강소군은 천황성 내부에 뭔가 복잡한 일이 벌어진 게 아닐까 생각하였다.

“연 문주, 나와 함께 당 낭자를 찾아갑시다.”

강소군은 불취를 만날 생각이었다.

당우화와 불취는 삼도문 뒤편 모옥에서 거처하고 있었다.

연화심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도 따라가겠소.”

조운룡은 무슨 상황인지 모르지만 오랜만에 만난 강소군과 헤어지고 싶지 않았다.

“그건 곤란해요. 당 낭자가 외부 사람을 꺼리거든요.”

연화심이 완곡하게 거절하자 조운룡이 서운해하였다.

“하하, 조 문주는 우리와 여기서 비무나 보자고.”

장무강이 조운룡을 잡아 앉혔다.

“무슨 일일까요?”

연화심이 강소군과 나란히 걸으며 불안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물었다.

“노 각주께서 총력을 기울이고 있으니 곧 목적을 알아낼 수 있을 거요.”

두 사람은 삼도문 뒷문으로 나갔다.

문을 나서자마자 양 옆으로 죽림이 이어졌는데 한가운데 모옥이 있었다.

과거 황의채가 홀로 있고자 할 때 쓰던 모옥이었다.

두 사람이 다가가자 모옥의 문이 열렸다.

당우화가 연화심을 보고 반겼다.

“그분은 많이 회복됐지요?”

당우화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낯빛은 좋지 않았다.

“무슨 걱정이라도 있나요?”

당우화가 한숨을 쉬었다.

“거동을 할 수 있게 되자마자 떠나겠다지 뭐야. 간신히 붙들어 두고 있어. 환생단이라도 있으면 먹이고 싶을 지경이야.”

당우화가 하소연하였다.

당우화와 연화심은 많이 친해져서 서로 언니 동생 하는 사이가 됐다.

강소군이 모옥으로 들어섰다. 모옥이라지만 제법 규모가 있어서 거실은 물론 방도 둘이나 되었다.

불취는 거실 의자에 앉아 있었다. 탁자에는 술병이 놓여 있었다.

마침 술을 들이켜던 불취가 강소군을 보더니 씨익, 웃었다.

“죽어서야 만날 줄 알았는데 다시 보네?”

강소군이 맞은편에 털썩 앉았다.

불취가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자네도 죽었다가 살았다고 들었지. 둘 다 환생한 처지인데 같이 한잔하자고.”

불취가 주방으로 가서 새로운 술과 잔을 가져왔다.

당우화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냥 죽게 놔둘 걸 그랬어. 온종일 술만 마셔.”

연화심은 불취의 모습을 보다 퍼뜩 든 생각이 있었다.

“당 언니. 같이 갈 곳이 있어요.”

연화심이 당우화를 잡아끌었다.

불취가 두 사람이 나가는 모습을 보다가 술을 따랐다.

“크크. 무슨 일인가?”

“검은 남궁가에 돌려주었소.”

남궁우가 창천검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갔으니 지금쯤 도착했을 것이다.

“….”

불취는 말없이 술을 들이켰다.

“천황성에서 고수들이 쏟아져 나왔소.”

강소군은 바로 본론을 꺼냈다.

불취의 낯빛이 잠시 흔들렸다.

“이리로 오고 있는 중이오.”

“큭큭, 공손 노괴가 드디어 야심을 드러냈군.”

불취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언제고 이런 날이 올 줄 알았어.”

“그게 무슨 뜻이오?”

“천황성의 천주는 군림하지만 있는 듯 없는 듯 고고하게 지내지. 실제로 많은 일을 처리하는 건 공손승이라는 늙은 괴물이야.”

강소군은 공손 노야의 장원이 떠올랐다.

그가 삼태상을 대하는 걸 보면 어떤 존재인지 알 수 있었다.

“그는 늘 천황성을 벗어나서 자기가 직접 세상을 주무르고 싶어 했거든.”

“그럼 그가 독단적으로 일을 벌이고 있다는 거요?”

불취가 가만 생각하다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럴 수 없지. 천주가 무심하기는 하지만 그의 눈을 피해 뭔가를 할 수는 없어.”

“공손 노야가 천황성의 실권을 장악했을 수도 있지 않소?”

“크크크.”

불취가 가당치도 않다는 듯 웃었다.

“자네가 천주를 모르니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거겠지.”

“천주가 그리 대단하오?”

“….”

불취는 속이 타는지 연거푸 두 잔을 마셨다.

“사람으로서 신의 경지에 이른 존재가 있다는 걸 생각해 봤나?”

“신의 경지?”

불취는 입을 닫았다.

“천황성 고수가 모두 달려든다 해도 그의 옷깃조차 건드리지 못할 거야.”

“…!”

믿을 수 없는 이야기였다.

세상에 그런 존재가 있을 수 있을까?

“그렇다면 지금 천황성의 행보는 천주의 뜻이라고 봐야겠군요.”

“공손 노괴가 무슨 말로 충동질을 했는지 모르지만 천주가 허락을 했겠지. 그러니 출성을 한 거고.”

“천주의 뜻이 뭐겠소?”

불취가 큭큭, 웃었다.

“천주는 그 속을 알 수 없는 존재야. 그가 진정 무얼 원하는지 아는 이는 천황성에도 없을걸.”

“그가 신이 아니라 당신이 그를 신으로 여기는 건지도 모르겠소.”

강소군이 말했다.

불취가 흠칫, 했다고 키득키득 웃었다.

“그럴지도. 하지만 자네도 천주의 능력을 보면 그렇게 될 거야.”

불취가 술을 벌컥, 들이켜더니 입가의 술을 손으로 씻으며 말했다.

아직 회복이 되지 않았는데 술이 과하니 그의 손이 떨렸다.

“천주의 뜻은 모르지만 공손 노괴가 무얼 원하는지는 알지.”

“….”

“그는 오래전부터 무림을 직접 통치하고자 했어. 가장 말을 듣지 않는 게 무림이라며, 직접 지배를 하지 않으면 천황성의 영향력을 잃을 것이라 했지.”

강소군은 불취가 천황성에 대해 생각보다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느꼈다.

쌍렵이나 나무꾼 등과는 확실히 달랐다.

“당신은 천황성과 어울리지 않는 것 같소.”

“어울리지 않는다고?”

불취가 중얼거리듯 되뇌였다.

“애초에 남궁가의 사람이었잖소?”

술병을 잡아가던 불취의 손이 흠칫 멈췄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불취가 천천히 술을 따르며 화제를 돌렸다.

“아무튼 여러모로 이상하군. 공손 노괴의 야욕은 오래된 것이지. 그런데 이렇게 갑자기 쏟아져 나오다니. 뭔가 문제가 생긴 게 틀림없어.”

“어떤 문제가 있을 수 있소?”

“무림은 삼태상 중 등 노사가 관할해 왔지. 그런데 천황성 본성에서 고수가 나왔다?”

“….”

“등 노사 죽거나 실각했을 수도 있다는 뜻이지.”

“등 노사란 인물이 그리 중요하오?”

“천황성은 점조직으로 이뤄져 있거든. 대파나 세가, 그리고 적잖은 문파에 천황성의 영향을 받는 인물들이 있지. 이를 관리하는 게 등 노사네.”

강소군의 미간을 찌푸렸다. 짐작은 했지만 무림 여기저기에 천황성의 입김이 작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등 노사가 건재하다면 굳이 천황성의 고수들이 나올 필요도 없지. 자신들이 포섭해 놓은 자들만 동원해도 무림을 장악할 수 있거든.”

강소군이 고개를 끄덕였다.

불취의 추론에 일리가 있었다.

“포섭한 자들은 천황성의 존재를 모르오?”

“대부분 자기가 누구의 말을 듣는지도 모를걸? 아주 신분이 높은 몇몇은 천황성에 대해 알고 있을 수도 있긴 하겠지.”

“결국 무림을 관리할 힘을 잃었고 그래서 고수를 보내 직접 장악하려 한다는 뜻이로군요.”

강소군은 이해가 갔다. 아버지가 운용하던 대정비각을 잃은 것도 점조직의 한계 때문이었다.

은밀하면 할수록 이런 경우 취약한 게 점조직이다.

“여럿 죽어 나가겠군. 내가 자네라면 한시바삐 여기서 벗어날 거야.”

“당신은?”

강소군이 물끄러미 불취를 바라봤다.

“천황성은 배신자를 그냥 두지 않아. 쫓기다 죽느니 여기서 한바탕 시원하게 싸우고 죽는 게 나아.”

“나 역시 그들의 살생부에 이름을 올려 놓은 것 같소. 그들의 이목이 천하에 있다하니 갈 곳도 없는 것 같군요.”

“하하. 눈치는 빠르군.”

불취가 술을 따라 건배를 청했다.

“그럼 이번에는 같이 죽어 볼까?”

둘이 술잔을 비웠다.

“공손 노야가 이쪽으로 온다는 건 천하비무대회를 노리고 있다는 뜻인데… 그가 어떻게 나올 것 같소?”

“그 늙은 괴물의 머릿속을 내가 어찌 아나.”

불취가 일축하면서도 곰곰 생각을 하였다.

“그놈은 명분을 중요시 여기지. 대놓고 사람을 죽이려 들지는 않을 거야.”

“….”

“우선은 천하비무대회에 참가하지 않을까?”

강소군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미 철권호를 보낸 천황성이다. 그런데 또 다른 인물을 참가시킨다? 그럴 거라면 수십 명이 쏟아져 나올 이유도 없다.

“그런데 말이야….”

불취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그 늙은 괴물이 좋아하는 게 바둑이거든? 고상한 척 홀로 바둑을 두곤 하지.”

불취가 큭큭, 웃었다.

“어느 날 우연히 봤는데 자기 혼자 두다가 마음대로 되지 않으니 그냥 판을 쓸어버리더군.”

“….”

“그 늙은 괴물은 스스로를 천재라고 자부하는데 내가 보기에는 그저 약간 잔머리를 굴릴 줄 아는 자에 불과해. 아마도 자기 뜻대로 굴러가지 않으면 피바람을 일으킬 걸세.”

강소군이 눈살을 찌푸렸다.

비로소 천황성의 고수가 쏟아져 나온 이유를 확실히 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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