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소군-175화 (175/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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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을 탐하는 것으로 보이나?”

“….”

“그렇게 본다 해도 받아들이겠네. 하지만 나는 그 권력으로 모두에게 평등한 정의를 세우고 싶네.”

철권호의 목소리에는 확고한 의지가 실려 있었다.

“모두가 정도를 표방하지만 실제로 강호를 지배하는 건 힘의 논리이지. 그걸 부인할 사람은 없을 걸세.”

“….”

“무림맹은 이런 힘의 논리를 떠나 정의를 지키는 곳이 되어야 하네.”

그렇기에 자신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강소군이 철권호의 맞은편 바위에 앉았다.

“나를 믿지 못하겠나?”

“한 번만 봐도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는 이도 있지요.”

철권호의 신념을 믿었다.

강소군은 이 나라 최고의 권력자들을 보아왔다.

그들 모두가 하나같이 백성을 위한다고 하지만 바뀌는 건 거의 없었다.

그럼에도 그런 의지를 지닌 자가 제위에 오르면 조금이라도 달라진다.

철권호는 그럴 수 있는 자였다.

그러나 그를 지지할 수 없는 이유는 따로 있다.

“당신의 뜻은 알겠소. 하지만 과연 천황성에서 당신이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놔둘지 의문이오.”

철권호의 눈빛이 흔들렸다.

“내가 천황성과 관계가 있다는 걸 어찌 알았나?”

“지난번 겨룰 때 당신은 절대지경의 문턱에 있었소. 그런데 지금은 이를 훌쩍 뛰어넘은 것 같소.”

“그런 이유로 나를 천황성과 결부시킨 것인가?”

강소군이 고개를 저었다.

“천황성의 고수들은 한 가지 특징이 있소.”

철권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특징이라니? 그게 뭔가?”

“무공에 비해 심력이 떨어진다는 것이오.”

“….”

“천주라는 이가 무공의 성취는 끌어올릴 수는 있지만 심득까지 전수할 수는 없는 것 아니오?”

“그 말은 나의 심득이 무공에 비해 떨어진다는 뜻인가?”

철권호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평생 자신의 무공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온 이로써 당연한 반응일 것이다.

강소군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 스스로 돌아보면 알 일이다.

철권호는 깊이 생각에 잠겼다가 다시 물었다.

“천황성에서 나를 가만두지 않을 것이란 말은 무슨 뜻인가?”

“그들이 추구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고 있소?”

“….”

“그들이 원하는 바는 몇몇 세력들에 의한 강호 지배라고 들었소. 이는 당신의 뜻과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 아니오?”

“자네가 뭔가 오해를 하고 있군. 천주는 무의 극의를 추구하는 무인일 뿐이네. 강호 지배라니 대체 누가 그러던가?”

철권호가 일축하였다. 하지만 그의 눈빛은 흔들리고 있었다.

강소군은 굳이 더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가 부인을 한다는 건 믿고 싶지 않다는 뜻이다. 더는 말할 필요도 없음이다.

강소군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당신이 무엇을 보고 나를 불렀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 어느 누구도 지지하지 않소. 애초에 무림은 나의 세상이 아니오.”

“과연 그렇게 될까? 지금 당장도 천황성과 시비가 얽혀 있지 않은가.”

“그건 무림의 일이 아니라 사적인 일이오.”

“그 사적인 일이 뭔지는 모르지만 천황성과의 오해를 풀어주고 싶군.”

“서로 뜻이 분명한데 오해라고 할 건 없을 거요.”

철권호가 탄식을 하였다.

“아쉽군.”

철권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전신에서 기운이 피어올랐다.

“내가 심득도 없이 그저 벽만 넘었다고 보나?”

강소군은 아직 중상에서 회복되지 못한 상태다. 철권호가 손을 쓴다면 당하는 수밖에 없다.

“자네가 회복되지 않은 걸 알고 있네. 하지만 안목까지 잃은 건 아니겠지?”

철권호가 천천히 권을 내밀었다.

“…!”

철권호의 신형이 점차 사라졌다.

오로지 거대한 권의 그림자만 보일 뿐이다.

상관무영이 하나의 검으로 승화된 것과 비슷하였다.

편제의 채찍이 형성한 공간과도 비슷했다.

사람이 사라지고 오로지 의지만 남아 있는 상태.

그게 권이든 검이든 채찍이든 매한가지였다.

철권호의 권은 강소군을 압박하지 않았다. 그저 공간을 점하고 있을 뿐이다.

잠시 후 권세가 사라지고 철권호의 신형이 나타났다.

“….”

철권호가 그대로 몸을 돌려 뚜벅뚜벅 산을 내려갔다.

대답을 들을 필요도 없다는 자신감이었다.

강소군의 시선은 천하를 비추는 달을 향했다.

방금 본 철권호의 권이나 상관무영의 검은 분명 완성된 것이었다.

‘더할 것이 없는 경지를 완성이라 할 수 있는가?’

주위를 가득 메운 완성의 경지. 과연 그 권이나 검을 피할 수 있는 자가 있을까?

그럼에도 강소군은 끝이 아니라는 걸 느끼고 있다.

강소군의 시선은 달빛 가득한 밤하늘에 고정되었다.

‘초식을 완성해 봤나?’

밤하늘에 한 사람의 모습이 그려진다.

양손을 사용하여 부단히 초식을 그리는 현치자의 움직임은 끊임이 없었다.

현치자의 신형이 갈수록 빨라지더니 무수한 움직임의 끝이 하나의 구체로 수렴하였다.

물샐틈없는 빛의 구체가 완성되는 순간.

‘완성되면 존재가 되고 그로 인해 안팎이 나뉘고 음양이 갈라진다. 갈라지면 다시 합일을 하려 들고 또다시 완성의 길로 접어드니 이는 곧, 다함이 없는 무극의 길이다.’

무심히 밤하늘을 보던 강소군의 손이 천천히 궤적을 그려 나갔다.

***

비무대회가 열리는 날.

구름떼같은 인파가 삼도문 장원으로 모여들었다.

“흥! 여기서도 대파와 세가가 득세할 줄이야.”

누군가 불평을 터뜨렸다.

중소문파 출신이나 일반 무인은 간단한 시험을 통과한 후 입맹서약을 해야만 비무대회에 참가할 수 있었다.

그에 반해 대파나 세가는 곧바로 비무대회에 참가한다.

몇몇 사람이 불평을 터뜨렸으나 첫날은 순조롭게 흘러갔다.

그러나 갈수록 경쟁이 치열해지고 과열되더니 셋째 날에 사고가 터졌다.

그렇게 주의를 주었건만 비무대에서 사람이 죽는 일이 벌어졌다.

형양파와 열화문의 제자가 겨룬 비무에서 형양파 제자가 내지른 검을 회수하지 못하는 바람에 상대가 심장이 꿰뚫려 즉사하고 만 것이다.

눈앞에서 문파의 제자가 죽자 열화문 문도들이 득달같이 달려들어 형양파의 제자를 죽이려 하였다.

형양파 역시 우르르 비무대로 올라가 일대 격전이 벌어질 뻔했다.

제갈선을 비롯한 세가의 무사들이 일제히 나서서 양쪽을 말리고, 형양파 제자 역시 실격처리를 하여 간신히 수습을 할 수 있었다.

비무대에 피가 뿌려지자 그렇지 않아도 과열되던 분위기는 더욱 달아올랐다.

넷째 날부터는 비무대에 살기가 감돌았다.

연화심과 장무강, 심마백은 주최측이 마련한 삼도문의 자리에서 비무를 지켜보았다.

공식적으로 아직 삼도문의 장원이니 제갈선이 배려한 것이다.

비무대는 총 네 곳이었는데 한곳에서 신음성이 터졌다.

“으윽!”

장무강이 보니 한 사람이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나는데 왼쪽 어깨가 뼈가 드러나도록 베였다.

회복한다 해도 불구를 면치 못할 상세였다.

장무강이 개탄하였다.

“이래서야 무림맹이 결성되더라도 후유증이 크겠군.”

“문파의 흥망이 걸려 있다고 생각하는 거죠.”

일문의 문주로서 연화심은 이해가 되었다.

비무의 성적에 따라 무림맹에서 맡을 직책이 달라진다.

사람들은 문파의 명예만이 아니라 앞으로 흥하느냐 쇠락하느냐 하는 기로라고 여기고 있다.

그걸 누가 탓할 수 있을까.

대파나 세가도 마찬가지다. 자신들의 속가문파를 모두 참여시켜 무림맹 내에서 영향력을 키우기 위해 혈안이다.

“삼도문은 정말 참가하지 않을 생각인가?”

장무강이 연화심에게 물었다.

“복건으로 이주하면 자리 잡기까지 꽤 시간이 걸릴 거예요. 무림맹에서 자리를 내준다고 해도 감당하지 못할 상황이죠.”

연화심이 말을 하며 몇 자리 건너에 앉아 있는 제갈선을 보았다.

아닌 게 아니라 제갈선이 연화심에게 무림맹 재정과 물자를 다뤄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제의를 해왔다.

제갈선은 연화심에게 무척 호의적으로 대하고 있다.

연화심이 구양수에게 돌려받은 권리증서를 제갈선에게 건네자 막대한 금액을 지불하였다.

연화심이 거절했으나 무림맹이 삼도문의 장원을 빼앗았다는 구설수에 오를 수 없다고 손에 쥐여 주다시피 하였다.

게다가 연화심이 지금 앉아 있는 단상도 내주었다.

배석자도 앉을 수 있는 단상은 대파나 세가와 나란히 하고 있다.

삼도문의 세력에 비해 파격적인 대우를 한 것이다.

연화심은 그 이유 또한 알고 있다.

제갈선이 철권호를 지지하며 세가연합과 갈라섰다.

대파의 지지를 받는 화산파의 자청신검이나 세가연합의 지지를 받는 모용백과 달리 철권호는 뚜렷한 지지세력이 없다.

의천맹을 결성함으로써 중소문파나 재야 무림인들 사이에서 지지한다지만 아직 뚜렷한 세를 이룬 것은 아니다.

제갈선이 연화심에게 공을 들이는 이유는 주위에 강소군이나 중랑, 노이칠과 산동삼호 심지어 당종 등의 고수가 있기 때문이다.

삼도문을 구심점으로 중소문파를 규합한다면 철권호로서는 든든한 지지세력을 만들 수 있는 셈이다.

연화심이 단상을 둘러보았다. 동상이몽이라는 말이 있다지만 이렇듯 열이면 열 모두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기도 무척 드문 일이다.

연화심은 과연 무림맹이 제대로 들어설지도 의문이었다.

연화심이 생각에 잠겨 있는데 누군가 다가왔다.

“연 낭자, 아니 연 문주!”

고개를 들어보니 화룡도 조운룡이다.

조운룡은 강소군이 별원에 머물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벌써 여러 차례 찾아왔다.

그런데 강소군이 며칠 전 저녁에 나가 아직까지 소식이 없다.

“그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소?”

연화심이 고개를 끄덕이자 조운룡이 투덜거렸다.

“대체 어디를 그렇게 쏘다니는 게요? 연 문주가 꽉 붙어두지 않으면 앞으로 늘 그럴게요.”

느닷없는 말에 연화심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마치 아내가 남편 단속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는 말투처럼 들렸던 것이다.

장무강이 이를 보고 속으로 웃었다.

조운룡이 장무강 옆에 털썩, 앉았다.

“고만고만한 싸움을 보려니 정말 지루하군요.”

칼빛이 난무하는 비무대였건만 조운룡이 따분하다는 듯 말했다.

비무대를 에워싼 일반 무사들이 보기에 흥미로울지 모르나 조운룡 같은 고수들에게는 닭싸움에 불과했다.

장무강이 조운룡이 옆에 찬 화룡도를 보며 말했다.

“자신 있는가? 철권호는 절대지경에 든 걸로 보이는데.”

“크흐흐. 원하던 바였소.”

조운룡의 눈빛이 번뜩였다.

“맹주가 누가 되든 상관없소. 시원하게 한번 붙어 볼 사람만 있으면 되오.”

맹주의 위를 놓고 겨루는 비무 대진표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공식적으로 비무대회 전날까지 누구나 참가할 수 있기에 확정되지 않은 것이다.

조운룡이 지루하다는 듯 주위를 돌아보다 흠칫, 놀랐다.

“어?”

연화심과 장무강이 돌아보니 강소군이 걸어오고 있었다.

깨끗한 백의를 걸친 채 단정하게 머리를 묶은 강소군은 헌앙해 보였다.

내상을 입어 창백했던 낯빛도 평소의 혈색을 되찾았다.

제갈선이 일어나 아는 척했다.

“강 공자, 어서 오시오. 그렇지 않아도 강 공자의 자리를 마련해 두고 기다리고 있었소.”

제갈선이 마련해 둔 자리는 철권호의 자리 옆이었다.

제갈선이 강소군을 극진하게 맞이하자 그를 모르는 대파의 사람들은 이상하게 여겼다.

그러나 무당과 남궁세가, 팽가가 나서서 맞이하며 그가 혈마 강소군이라는 사실이 퍼져 갔다. 곧 곳곳에서 감탄성이 일었다.

“강호를 진동시켰던 혈마가 저리 젊었다니.”

“명문가 귀공자로만 보이는군.”

강소군은 사람들의 수군거림을 무시하고 천천히 단상에 올랐다.

“후의는 감사합니다만 삼도문의 식객으로 제가 앉을 자리는 아닌 것 같군요.”

강소군이 연화심이 있는 자리로 왔다.

조운룡이 재빨리 일어나 아는 척했다.

“형님, 이리 앉으시지요.”

강소군이 의아한 눈빛으로 조운룡을 보았다.

언제부터 자신이 조운룡의 형님이 되었는지 알 수가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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