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소군-173화 (173/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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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동삼호는 항주에서 객잔을 열었다.

그런데 한번 강호를 주유하고 나니 다시 객잔 생활에 적응하기 어려웠다.

그때 연화심이 삼도문을 되찾았으나 흑천맹과 천무방으로부터 공격을 받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길로 항주를 떠나 달려온 것이다.

연화심은 그들을 후원에 마련된 자신의 객청으로 들였다.

“괜한 걸음을 했군. 이리 많은 무림인들이 있을 줄이야.”

장무강이 멋쩍어하며 말했다. 천하비무대회를 앞두고 수많은 무림인들이 삼도문을 오갔다.

흑천맹이 쳐들어온다기에 부랴부랴 왔는데 정파인들만 우글거렸다.

“연 문주, 삼도문에서 천하비무대회를 연다는 건 기막힌 한 수인 것 같아.”

심마백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초지항이 와서 연화심에게 보고하였다.

“짐을 모두 정리하였습니다.”

“함께 갈 분들은?”

“이십여 호 칠십여 명이 함께 이전을 하기로 했습니다.”

“먼 길이니 호송에 각별히 신경 써 주세요.”

“염려 마십시오. 무한표국이 호위하고 경계까지 복건표국이 마중 나오기로 했습니다. 오히려 문주님 안위가 걱정입니다.”

초지항과 총관 유상화가 이사를 지휘하기 위해 떠난다.

연화심의 호위로 네 명의 화천대만 남았다.

“염려 마세요. 어찌 됐든 여기는 제 안방이나 마찬가지잖아요.”

초지항이 자리를 떠나자 장무강이 물었다.

“이사를 하는 겐가?”

심마백과 위응환도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연화심을 보았다.

애써 삼도문을 찾았는데 복건으로 이전을 한다니 그 연유가 궁금했던 것이다.

연화심이 웃으며 말했다.

“그렇게 됐어요.”

“뭐지? 무림맹에서 삼도문 장원을 내놓으라고 한 건가?”

심마백이 인상을 썼다.

“그럴 리가요?”

연화심이 손을 젓는데 중랑이 들어섰다.

“중랑! 오랜만이네.”

심마백이 중랑을 껴안았다.

중상을 입고 청련지에서 요양을 할 때 지극 정성으로 돌봐준 이가 중랑이다.

“윽!”

격하게 껴안는 바람에 부상을 입은 곳이 비틀리자 중랑이 자기도 모르게 신음을 내뱉었다.

“엇? 부상을 입었나? 대체 어떤 놈이?”

심마백이 인상을 팍, 썼다.

“그럴 일이 있었습니다. 차차 말씀드리죠.”

심마백은 몸이 근질근질하였다.

“역시 다시 나오기를 잘했어. 감히 내 아우를 건드리다니. 내가 꼭 손봐주겠네.”

“하이고. 마백 형도 이제 마흔이 다 되어 가는데 아직도 쌈박질에 미련을 못 버리셨소?”

“뭐?”

느닷없는 위응환의 말에 심마백이 어이없어하였다.

그 모습에 왁자지껄 웃음이 터졌다.

연화심은 한밤중에 쪽배를 타고 장강의 물결을 따라 도주하던 지난날이 생각났다.

그때는 이런 날이 있을 줄 몰랐다.

“이 자리에 한 사람이 빠졌군.”

장무강이 말했다. 연화심이 배시시 웃었다. 누구를 말하는지 안 것이다.

“강 공자님도 여기에 계세요.”

“엇! 그게 정말인가?”

산동삼호는 장강 뱃길로 급히 오느라 강호의 소식을 듣지 못했다.

더욱이 강소군과 천황성 고수 간의 격돌은 이쪽에서 참가했던 고수들도 입을 꾹 닫고 있어 세간에 퍼지지 않았다.

그러니 장무강 등은 강소군이 있다는 사실을 당연히 몰랐던 것이다.

“그래? 그런데 왜 나와 보지도 않는 거지?”

심마백이 퉁명스레 말했다. 중랑이 대신 대답했다.

“중상에서 회복된 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그자야말로 맨날 쌈박질을 하니 부상이 끊이지를 않지. 상세가 심한가?”

“고비는 넘겼어요. 그렇지 않아도 소식을 보냈으니 오실 겁니다.”

“하하. 그럼 지난날 함께 싸웠던 전우들이 다 모이는 건가?”

장무강이 호쾌하게 웃었다.

그러자 한 사람이 불쑥 들어서며 퉁명스럽게 쏘아붙였다.

“흥! 나는 왜 빼놓는 건가? 이 사람들 이제 보니 아주 정이 없구만!”

노이칠이다.

“아, 노 대협도 계셨지?”

“어? 이칠 형님?”

장무강이 놀라 눈을 크게 떴다. 노이칠까지 있을 줄은 미처 몰랐던 것이다.

노이칠이 샐쭉하여 연화심에게 말했다.

“연 문주, 섭섭하네. 이제는 뒷방 늙은이 취급하는 겐가?”

“이칠 형님은 여기 또 무슨 일이시오?”

장무강이 반가워하며 물었다.

“왜, 내가 못 올 데라도 왔다는 건가?”

“점점 더 심사가 비틀어지는 걸 보니 늙어 가는 게 맞구려.”

아닌 게 아니라 노이칠은 이전보다 많이 나이 들어 보였다.

일각주 백정무가 죽은 뒤 울적한 노이칠은 술을 달고 살았다.

“뭐라고? 너희는 세월을 이길 수 있을 것 같아?”

노이칠이 눈을 부릅떴는데 모두의 시선은 뒤를 향해 있었다.

노이칠이 뒤를 돌아 보니 강소군이 서 있었다.

“흥! 주인공께서 나타나셨군.”

노이칠이 투덜대며 자신의 자리를 찾아 앉았다.

강소군이 나타나자 분위기가 미묘했다.

지난날 강소군은 워낙 말이 없어 상대하기가 어려웠다. 그러다 보니 서로 간의 호칭도 제각각이었다.

“강 공자가 강부의 주인이었을 줄은 몰랐소.”

장무강이 말했다.

산동삼호는 장홍 대장군 휘하의 장수들이었기에 대장군가와 강부의 관계도 알고 있었다.

게다가 황제의 외사촌 동생이기도 했다. 그러니 함부로 대할 수가 없었다.

“지금은 그저 한 사람의 강호인일 따름입니다.”

산동삼호는 강소군의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음을 깨달았다.

“자, 오랜만에 모두 모였으니 오늘은 거나하게 취해 봅시다!”

“그렇지 않아도 자리를 준비했답니다. 후원 정자로 가시지요.”

“오!”

후원은 연화심이 홀로 쓰고 있어 북적대는 외장과 달리 한적하였다.

연못과 가산, 꽃과 정자가 어울려 운치가 있었다.

마침 화창한 봄날이었다.

연화심이 일일이 술을 따르고 주인 자리에 서더니 자신의 술잔을 들고 깊숙이 허리를 굽혔다.

“삼도문 문주 연화심이 여러 대협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여러분이 아니었으면 오늘 이 자리에 있지 못했을 겁니다.”

연화심의 진심 어린 감사에 모두가 숙연해졌다.

“삼도문의 문주가 아니라 연화심이라는 인간으로서 여러 대협께 이 술을 올립니다.”

연화심이 술을 마시자 모두가 함께 건배하였다.

장무강이 마주 일어나 답례를 하더니 술잔을 들어 말했다.

“여기 모인 이들은 출신도 다르고 각자 하고자 하는 바도 다르오. 하지만 한때 생사를 같이하며 피로 맺어진 정이 있소. 이 자리가 끝나면 또 각자의 길로 가겠지만 서로에 대한 신의만큼은 결코 변치 않으리라 믿소.”

그러더니 술잔을 훌쩍 비웠다. 그러더니 연거푸 술을 따라 연달아 두 잔을 마셨다.

마지막 잔을 비웠음을 보이며 장무강이 말했다.

“여기 누군가 부르면 나는 언제나 그 자리에 있을 것이오.”

산동삼호의 맏형 장무강의 말에 모두가 호쾌하게 화답하였다.

“대형만 멋있으면 안 되지.”

“나도 석 잔을 마실 것이다!”

모두가 석 잔의 술을 마시고 결연한 의지를 보였다.

강소군도 천천히 술을 따라 석 잔을 마셨다.

산동삼호가 그를 지켜봤다. 강소군이 동참할 줄은 예상치 못했던 것이다.

그들이 기억하는 강소군은 말도 없고 정도 없는 냉혈한이었다.

“뒤는 내가 지키겠습니다.”

강소군의 말은 짤막했으나 울림이 깊었다.

산동삼호의 눈빛에 이채가 스쳤다.

장무강이 석 잔의 술로 맹세를 한 것은 밑바닥 군졸들 사이에서 오가는 의식 같은 것이었다.

강소군은 장무강의 삼배를 보자 동북변방 전장의 기억이 떠올랐다.

“형님의 뒤는 내가 지킬 겁니다.”

마운산이 석 잔의 술을 연거푸 마시고 빈 잔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자신은 술은 마실 만큼 마셨으니 죽어도 좋다는 뜻으로, 죽음을 각오하고 뒤를 지킬 테니 안심하고 싸우라는 말이었다.

장무강이 보인 빈 잔은 그런 뜻이었고 강소군은 그에 대해 화답을 한 것이다.

“아하하. 오늘은 참 좋은 날이구나.”

노이칠이 크게 웃음을 터뜨리고 자신의 잔에 술을 따라 연거푸 마셨다.

이를 본 장무강이 눈살을 찌푸렸다.

“이칠 형님은 우리 모두를 다 책임지셔야겠군요.”

“크하하. 그러지 뭐.”

“아이고, 천천히 드세요. 그러다 술에 빠져 죽겠어요.”

잠시 숙연했던 분위기에서 다시금 왁자지껄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

무림맹 결성을 위한 비무대회가 이틀 앞으로 다가왔다.

철권호를 내세운 제갈세가와 달리 팽가와 남궁가는 모용세가의 모용백을 지지하였다.

대파에서는 화산파의 속가고수 자청신검 추일엽을 내세우는 걸로 의견을 모았다.

천하비무대회는 철권호와 모용백, 그리고 추일엽 삼파전으로 굳어 갔다.

물론 천하비무대회는 정파인이라면 누구나 도전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세가와 대파가 지지하는 세 사람의 고수들과 대적할 만한 이는 보이지 않았다.

무림 사상 처음으로 정파가 단합하는 무림맹이 결성되는 것이다.

맹주 선출 외에도 처리해야 할 일이 많았다.

무림맹의 무력을 편성하고 조직을 구성하기 위해 세가와 대파의 수뇌, 그리고 무림 명숙들이 며칠째 대청에 모여 갑론을박을 이어갔다.

지리한 이야기가 이어지는데 바깥에서 지키던 제갈세가의 무사가 들어와 보고하였다.

“천무방 소방주가 왔습니다.”

삼도문의 문주로 참여하고 있던 연화심이 흠칫, 놀랐다.

천무방이라면 아무래도 경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잠시 후 키가 훤칠한 구양조가 들어섰다. 그 뒤를 구양수가 따랐다.

대청에 모인 명숙들의 표정은 그리 좋지 않았다.

천하사패의 일원으로 무림을 병탄하려 들었던 천무방에 대한 인식이 뇌리에 남아 있는 것이다.

구양조가 한가운데 앉아 있는 철권호를 향해 인사를 하고 여러 명숙들에게도 예를 취했다.

예를 마친 구양조가 뒤에 선 동생 구양수를 돌아보았다.

구양수가 앞으로 나와 품에서 삼도문 장원의 권리증서를 꺼냈다.

“제 동생이 삼도문에게 실례를 범했더군요.”

구양조가 말을 마치자 구양수가 권리증서를 연화심에게 건넸다.

좌중의 분위기가 한결 누그러졌다.

무림맹이 들어설 최적지가 삼도문 장원이라는 건 누구나 다 인정하는 바였다.

그러나 연화심이 권리증서를 천무방에 넘겼으니 난감해하던 중이었다.

천무방에게 고개를 숙이느니 차라리 다른 지역을 물색하자는 주장까지 나오던 차였다.

제갈선이 나서서 연화심에게 물었다.

“천무방에서 이리 호쾌하게 나오니 반갑긴 합니다만 조건이 있을 터인데 그것부터 들어 봐야 하지 않겠소?”

말이 끝나기 무섭게 구양조가 말했다.

“조건이 있을 리가 있겠습니까? 제 동생이 짓궂은 데가 있어 장난을 좀 친 것뿐입니다. 사람의 목숨을 가지고 장원을 얻어낸다면 누가 천무방을 정파라고 하겠습니까?”

구양조의 목소리는 진중하여 나이에 비해 신뢰감을 주기 충분하였다.

“아, 천무방의 소방주가 군자라더니 과연 그렇군.”

“구 방주와 너무나 다르지 않은가?”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구양조가 여러 사람을 향해 읍을 하였다.

“천무방은 무림맹 결성에 일조를 할 것입니다. 저 또한 천하비무대회에 나가 정파의 단합에 흥을 보태고자 합니다.”

구양조는 당당하게 천하비무대회 참가를 선포하였다.

좌중이 술렁거렸다.

과거 천하사패는 배제한다는 암묵적인 묵계 같은 게 있었다.

하지만 천무방이 천하비무대회에 참가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구양조가 대놓고 참가하겠다니 막을 수도 없었다.

“…?”

그때 대청 밖에 여러 사람이 몰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제갈세가의 무사가 황급히 뛰어들어와 보고하려는데 뒤따르던 무리의 수장으로 보이는 자가 뚜벅뚜벅 대청계단을 올라왔다.

“화룡문 조운룡이라고 하오. 본인도 천하비무대회에 참가하고자 왔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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