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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소군-172화 (172/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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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갈선은 마음속에 품은 의문을 떨치지 못하고 있었다.

강소군 등을 돕기 위해 갔을 때 철권호가 보인 태도가 미심쩍었던 것이다.

아무래도 천황성 고수와 아는 사이인 듯했다.

강소군은 제갈선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천황성에 대해 듣고 싶다며 왔으나 이미 적잖은 걸 아는 눈치였다.

“천황성에 대해 알고 있는 바부터 말씀해 보시지요.”

오히려 강소군이 되물었다.

제갈선이 강소군을 봤다. 무림에서 그의 배분은 극히 높다.

자신이 질문을 했는데 강소군이 대답을 하기는커녕 오히려 아는 바를 먼저 내놓으라 대꾸하니 내심 불쾌했다.

‘권문세가의 후손이라더니 과연 안하무인이군.’

제갈선은 강소군이 남경 강부의 후손이라는 말을 들었기에 꾹, 참았다.

아쉬운 건 자기 쪽이다.

제갈선이 잠시 생각을 다듬고는 입을 열었다.

“무림 밖의 무림이라는 말을 들어봤는가?”

“….”

“각 대파나 세가 수뇌부들이라면 알고 있는 이야기네. 강호에 알려지지 않은 무림. 마교나 혈교, 천황성을 흔히 무림 밖의 무림이라 부르네. 보이지는 않으나 존재하는 세력이지.”

강소군은 물끄러미 제갈선을 쳐다보았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기 어려웠다.

“봉황수가 천황성의 고수라는 말을 들었을 때 사실 긴가민가했네. 그들이 강호에 모습을 드러냈다는 이야기를 들어 본 적이 없었거든. 그런데 이번에 천하비무대회에 참가하려던 사일신창이 의문의 고수에게 당해 중상을 입었네. 팽일호 역시 기습을 받았다고 들었지.”

“….”

“그로 인해 자네가 천황성의 고수와 시비가 붙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무척 놀랐네.”

이전 사정을 잘 모르는 제갈선은 강소군이 천황성과 부딪힌 것이 팽일호를 구하다 벌어진 일로 여겼다.

강소군은 가타부타 말을 하지 않고 듣기만 하였다.

제갈선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간 무림의 일에 간여하지 않았던 천황성이 갑자기 모습을 드러낸 것. 그 이유가 무림맹 때문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네.”

“그리고 철권호가 천황성 사람이 아닌가 의심하는 것이겠지요?”

강소군의 말에 제갈선이 잠시 당황했다. 왠지 자신의 속을 들여다보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은 것이다.

제갈선은 잠시 망설이다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렇네.”

“이미 답을 알고 계시면서 내게 무얼 더 듣고 싶다는 것인지요?”

“그들과 싸우면서 의도를 들었을 게 아닌가?”

“왔던 이들은 하수인들에 불과합니다. 그들 역시 상부의 의도에 대해 아는 바가 없었습니다.”

“…!”

“그런 자들이 하수인에 불과하다고?”

제갈선은 충격을 받았다.

그날 초화평에 갔을 때 주위가 초토화된 것을 보았다.

특히 강소군이 싸웠던 계곡이 엉망진창 된 것을 눈으로 봤다.

“으음.”

제갈선이 침음성을 흘렸다.

강소군이나 천황성에서 온 자들이나 그가 이제까지 보지 못한 고수들이다.

그런데 그런 이들이 하수인에 불과하다니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대체 노가주께서는 무슨 심산으로 천황성을 끌어들이신 걸까.’

제갈선은 아버지 제갈후가 철권호를 내세우라고 한 의도를 알 수가 없었다.

제갈후는 가주직을 물려주고 뒷전으로 물러난 지 벌써 십여 년도 넘었다.

‘설마 아버님이 천황성과 연계되어 있는 걸까?’

제갈선은 노가주의 명이 아무래도 찜찜했다. 하지만 강소군 앞에서 그런 내색을 보일 수는 없었다.

제갈선이 낯빛을 가다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불쑥 찾아와 실례가 많았네.”

강소군이 일어나 마주 예를 취했다.

제갈선이 돌아간 뒤 강소군은 다시 자리에 앉아 생각에 잠겼다.

강소군은 숲으로 들어간 뒤의 상황은 몰랐다.

나중에 듣기는 했지만 철권호가 천황성과 연계되었을 것이라고 추정할 만한 이야기는 못 들었다.

그런데 제갈선이 와서 한 이야기를 들어 보니 대충 짐작이 가는 바가 있었다.

강소군이 처음 철권호를 본 것은 남경 밖에서 있었던 사례회에서였다.

당시 철권호는 조왕이 초빙한 고수의 신분으로 자신과 겨뤘다.

‘천황성이 당금 황제를 압박하며 말을 듣지 않으면 폐위를 시킬 것이라 했다. 그렇다면 대안도 있었겠지.’

강소군은 천황성의 대안이 조왕이라고 생각해 왔다. 의심이 확신으로 굳었다.

철권호가 천황성과 관계가 있다면 조왕 역시 그럴 것이다.

동시에 천황성의 행보에 변화가 있음을 느꼈다.

‘천황성이 철권호를 시켜 무림맹을 장악하겠다는 건 전면에 나서겠다는 뜻인가?’

불취는 물론이고 십여 명의 고수들을 보내 공공연하게 자신을 죽이려 했다.

이제까지 암중에서 조정과 무림, 상계를 조종해 왔다는 천황성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천황성이 은둔을 깨고 나온다는 뜻인가?’

***

공손 노야가 전서지를 다시 읽어 보았다.

「등 노사 사(死).」

불과 며칠 전 흑천맹을 접수하겠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런데 오히려 등 노사가 당했다.

“이런 한심한 작자들을 봤나.”

공손 노야는 오히려 등 노사를 욕했다.

천황성의 힘에 기대어 그동안 너무나 안이하게 지내 온 자들이다. 죽어도 아까울 게 없었다.

등 노사를 대신할 사람은 차고 넘친다. 하지만 벌써 삼태상 중 둘을 잃었다.

‘역시 무림이 골치를 썩이는군.’

조정이나 상계는 나름 일정한 질서가 있다.

반면 무림은 변수가 너무 많다.

“제갈후에게 연락해서 입성하라 일러라.”

공손 노야가 수하에게 이르고는 조천각을 나섰다.

천주전은 내성 가장 높은 곳에 있다.

지키는 자는 단 두 사람뿐이다.

“천주께 뵙고자 한다고 전해 주게.”

지키던 이가 안으로 들어갔다.

공손 노야는 한 시진이나 기다린 후에야 천주전에 들 수 있었다.

천주는 갑작스런 공손 노야의 방문이 그리 달갑지 않은 듯했다.

태사의에 앉아 물끄러미 공손 노야를 바라보았다. 무슨 일이냐는 눈빛이다.

공손 노야는 때를 잘못 맞춰 왔음을 알았다. 하지만 등 노사의 죽음은 작은 일이 아니다.

공손 노야가 고개를 조아리며 말했다.

“등 노사가 죽었습니다.”

천주는 별다른 표정 변화가 없었다.

“전각 문을 열어라.”

그러자 전각의 모든 문이 열렸다.

사방이 눈에 들어왔다.

천주전 대청 전면 여러 짝 문이 모두 열리니 천황성이 모두 내려다보였다.

“자세히 말해 봐라.”

“흑천맹 고선을 제거한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이후 곧바로 죽었다는 소식이 온 걸로 봐서 오히려 당한 듯싶습니다.”

“….”

“제갈후를 불렀습니다. 그라면 뒤를 잇기 부족함이 없을 겁니다.”

“….”

천주가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자 공손 노야는 서서히 긴장이 되었다.

천주가 자리에서 일어나 열린 창문으로 갔다.

멀리 천황성 아래 운해가 보였다.

“위 태사에 이어 등 노사가 죽었다. 편제는 중상을 입고 창제는 소식도 없군. 군웅각에서 열 명이나 가서 다섯이나 죽었지.”

“….”

“불취도 실패하고. 흑사와 무흔도 죽었다.”

천주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는데 목소리가 점점 나직하게 가라앉았다.

그럴수록 공손 노야는 등골이 서늘해졌다.

천주가 분노하고 있었다.

세상 밖에서 유유자적하며 천상으로 오를 날을 기다리던 그였다.

공손 노야는 내심 당황했다.

‘내가 잘못 생각했나?’

천주가 세상일에는 완전히 관심을 버렸다고 생각했던 공손 노야다. 그런데 지금 반응을 보니 심상치가 않았다.

천주가 몸을 돌려 공손 노야를 바라보았다.

“자네도 이제 나이가 들었나 보군. 뭔가 잘못됐다는 보고가 벌써 몇 차례인가?”

공손 노야가 털썩 주저앉았다.

“죄송합니다. 제가 부족한 탓입니다.”

오랜 세월 보좌하며 천주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아는 공손 노야다.

이럴 때는 아무런 변명도 통하지 않는다.

하늘 앞에서 변명을 해 봐야 무슨 소용이 있을까.

“아니지. 나는 자네를 알지. 자네가 부족했다면 그 자리에 앉아 있지 못했을 거야.”

천주의 목소리는 더욱 가라앉았다.

“아무래도 자네에게 다른 생각이 있는 듯하군.”

엎드린 공손 노야는 이제 무릎을 덜덜 떨고 있었다.

“죽여 주십시오.”

“죽이기는 쉬우니까 우선 사실대로 말하게. 왜 이리 일을 끄는 것인가?”

공손 노야는 때가 왔음을 알았다. 비록 죽더라도 사실을 고해야 한다.

“오랑캐가 물러가고 반백 년이 지났습니다. 그 사이 중원무림은 나날이 흥하여 이제 제어하기가 버거울 정도입니다.”

“….”

“한번은 옥석을 가리고 잡초는 베어야 할 때가 되었다는 게 신의 생각입니다.”

“그랬군.”

천주가 몸을 돌려 창밖을 내다보았다.

멀리 운해 아래 세상을 보며 천주가 말했다.

“공손승, 자네가 세상에 관심이 생긴 거야. 그러니 일을 이 지경으로 만들었겠지?”

공손 노야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천주는 그의 속을 꿰뚫어 보고 있었다.

일인지하 만인지상.

하지만 이 고절한 천황성에서의 만인지상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무엇보다 그가 머리를 쓸 일이 없었다.

바깥일은 삼태상들이 알아서 하였다.

고작해야 천주의 대법을 위해 사람을 물색하거나 홀로 바둑이나 두며 지내야 했다.

“또 누가 작당을 했나?”

“삼황도 기회가 된다면 출성을 할 뜻을 밝혔습니다.”

공손 노야는 순순히 있는 대로 사실을 밝혔다.

한 치라도 속였다가 어긋나는 순간 그의 목은 떨어질 것이다.

천주가 인상을 찌푸렸다.

“그들이? 오제는?”

“오제에게는 물어보지 않았습니다.”

천주가 지그시 눈을 감았다.

“좋다. 삼황은 물론이고 오제를 비롯해서 출성을 하겠다는 이는 모두 데리고 가라.”

“예?”

“다만 무림을 정리하기 전까지 다시 입성하지 못한다!”

공손 노야가 머리를 바닥에 찧었다.

“명을 받들어 천황성의 위명을 세상에 알리겠습니다.”

***

동약사 중유선이 왔다.

연화심과 노이칠이 반가이 맞았다.

“당 신의가 벌써 치료를 했다고?”

중유선이 떨떠름해하였다.

“대신 봐 주셔야 할 사람이 있습니다.”

연화심은 당우화에게 불취의 치료를 약속한 바 있다.

중유선이 불취를 찾아 상세를 살폈다.

“놀랍군. 신체의 기능을 거의 정지시킨 후 서서히 자연 회복을 하게 하는 약이라니.”

중유선이 환생단의 약효를 듣고 탄복하였다.

“제 할아버지께서 심혈을 기울여 만드신 약이랍니다.”

당우화가 뿌듯해하며 말했다.

“당 신의께서 연단에도 뛰어나셨을 줄은 미처 몰랐네. 약사는 별호도 내놔야겠군.”

“이 사람을 치료해 주실 수는 있으신 거지요?”

당우화가 누워 있는 불취를 보며 조바심을 냈다.

“최선을 다해 보겠네.”

동약사는 강소군과 중랑이 중상을 입었다는 소식에 가진 약재를 모두 싸 들고 왔다.

어렵지 않게 약재를 골라 당우화에게 건넸다.

“탕약을 하루 세 번, 칠 일간 복용하면 상세가 훨씬 나아질 걸세.”

당우화가 허리를 한껏 굽혀 감사 인사를 하였다.

중유선이 당우화를 잡아 일으키며 말했다.

“아쉽군. 당 신의를 한번 뵐 기회였는데.”

“할아버님은 여기 계신데요?”

당우화의 말에 중유선이 놀랐다.

“당 신의가 여기 계시다고?”

“네.”

당종은 중유선이 왔다는 소식을 듣고도 나와 보지 않았다. 자신이 반배분 높으니 인사를 하러 와야 한다는 뜻이었다.

중유선이 의혹이 가득한 눈길로 불취를 보았다.

“그럼 이 사람을 왜 고치지 않았지?”

“그건 따로 사정이 있어서….”

“그런가? 그럼 당 소저께서 내가 뵙고자 한다고 전해 줄 수 있겠나?”

“그렇게 전하겠습니다.”

당우화는 더없이 공손하게 굴었다.

할아버지 당종이 불취를 치료하지 않는 이상 중유선에게 잘 보여야 했다.

당종에게 말을 전하러 갔던 당우화가 곧바로 달려왔다.

“할아버지께서 어서 뵙자고 하시네요.”

당종이 정 원한다면 만나 주겠다고 거들먹거렸다는 사실을 당우화는 쏙 빼먹었다.

중유선이 크게 기뻐하며 당종이 머무는 전각으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당종과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온종일 나오지 않았다.

그 사이 뜻밖의 사람들이 왔다.

“장 대협!”

연화심이 멀찌감치 다가오는 산동삼호를 보고 화들짝 놀랐다.

“연 낭자, 아니 이제 연 문주라고 불러야겠지?”

장창을 어깨에 걸친 심마백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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