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소군-167화 (167/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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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도 죽은 사람은 살린 적이 없잖아요? 그분을 기다릴 거예요.”

당우화는 당종이 고쳐 주지 않는다고 해도 그다지 아쉬워하는 기색이 없었다.

“외상도 외상이지만 내상이 깊으니 할아버지보다 확실히 고칠 수 있을 거예요.”

“뭐? 뭐라고?”

“지금 그 사람은 거의 죽은 것이나 진배없다고요. 아무나 보다가 정말 죽을 수도 있어요.”

“이, 이놈이…?”

서의동약.

동약사 중유선은 침과 탕약을 위주로 병을 치료하여 약사라는 별칭이 붙었다.

그에 반해 서의 당종은 칼로 몸을 베고 꿰매는 특이한 의술로 이름이 높았다.

그에게 생사신의라는 별호가 붙은 것도 이런 기괴한 의술 때문이다.

두 사람의 치료 방법 차이 때문에 사람들은 내상에는 동약사, 외상에는 서신의를 찾아야 한다곤 했다.

“흥! 네가 나를 충동질하여 그놈을 고치려는 것 같은데 어림없다!”

당종이 코웃음을 쳤으나 안색은 붉으락푸르락 수시로 변했다.

연화은 구양수가 놀랍기만 했다.

구양수는 당종 앞에서 동약사 중유선을 치켜세우라고 했다. 당종의 호승심을 자극하여 치료에 나서게 하라는 뜻이다.

그게 통할까 싶었는데 발끈하는 당종을 보니 희망이 보였다.

당종은 원래 외골수로 독과 의술만 파고드는 인물이었다. 가주의 직위를 일찌감치 아들에게 물려주고 독과 의술에 전념해 왔다.

당종은 자신의 독과 의술을 천하제일이라고 자부해 왔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사람들이 서의동약이라며 당종과 중유선을 묶어 불렀다.

자신보다 후배인 중유선과 묶여 취급당하는 걸 당종은 모욕이라 여기고 늘 불만스러워했다.

그런데 손녀가 자신에게 매달리는 대신 동약사를 기다린다니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당종이 멍청한 사람은 아니다. 손녀가 자신을 자극하여 손을 쓰게 하려는 속셈임을 안다.

문제는 알면서도 참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냥 고쳐줄까? 아니지, 다 죽어간다니. 정말 손 쓸 수 없는 지경이면 어쩌지?’

‘동약사 그놈을 기다려 볼까?’

만난 적은 없지만 의술에 있어서는 자신보다 못할 것이라고 확신하는 당종이다.

가장 좋은 상황은 동약사가 와서 치료를 못하겠다고 손을 들면 그때 자신이 나서서 고쳐 주는 것이다.

그러면 완승을 거두는 셈인데.

‘동약사 그놈이 고치면 어떡하지?’

그러면 곤란해진다. 환자를 내버려 둔 냉혹한 생사신의라는 악명만 높아질 뿐이다.

하도 머리를 쓰다 보니 엉뚱한 생각마저 들었다.

‘지금 그놈을 살렸다가 다시 죽여 버려?’

물론 곧바로 지워버렸다. 그랬다간 손녀가 평생 의절을 할 것이다.

“에잉.”

당종은 생각이 복잡해지자 버럭 화를 냈다.

그때 연화심이 다가가 말했다.

“어르신, 마비환으로 연명하는 환자가 한 사람 더 있답니다.”

“환자가 또 있다고?”

당종의 눈빛이 번뜩였다.

“사실 거의 죽은 것이나 다름없어서 동약사님만 기다리고 있는데….”

“어디 있느냐? 가 보자!”

당종이 벌떡 일어났다. 불취를 고쳐 주지 않아도 자신의 의술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였다.

“너도 따라와.”

당종은 손녀가 또 사라질까 두려워 눈앞에 두고자 했다.

연화심이 당종을 별원으로 안내하였다.

침상에 누워 있는 강소군은 안색이 창백하다 못해 푸른 기가 돌았다.

거의 시신이나 마찬가지다.

“이건 죽기 직전인데? 마비환이 참 대단하구나.”

당종이 자화자찬하였다. 마비환은 당종이 실전된 무영지독을 복원한다고 연단하다가 실패한 결과물이다.

그래서 이름도 붙이지 않고 효용을 생각지도 하지 않았다.

사람을 마비시키는 약효가 필요한 일이 뭐가 있을까 싶었다.

고수를 제압하는 용도의 독은 당가에 널리고 널렸다.

고작 마비시키는 약효는 눈에 차지도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이런 용도로 쓸 줄이야.

죽음을 붙잡다니. 자신이 대단한 환단을 만들어 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사실 이 효능을 가장 먼저 알아낸 사람은 구양수였다.

구양수는 아버지 구연강에게 마비환을 썼다. 시간이 가면 구연강이 자연스럽게 죽을 줄 알았는데 그렇지가 않았다.

그렇다고 아버지를 제 손으로 죽일 수는 없는 노릇이라 계속 마비환을 써야 했다.

그러면서 마비환이 신체활동을 극도로 둔화시켜 심지어 죽음마저 잡아 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당종은 강소군의 상태를 살폈다.

“아주 너덜너덜하군. 제 상태인 곳이 없어. 엇!”

당종이 강소군의 복부를 살피다 놀랐다.

“기운이 흐르잖아?”

강소군의 전신에 내기가 흐르고 있었다.

온몸이 마비되었는데 기운이 흐르다니 놀라운 일이었다.

“…!”

자세히 상세를 보던 당종은 더욱 놀랄 수밖에 없었다.

기운이 통할뿐만 아니라 훼손된 상세도 아주 미세하게 나아지고 있는 중이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수없이 상처를 치료했던 당종은 이런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이대로 계속 마비환을 먹인다면 언젠가는 완치가 된다는 뜻이잖아? 크하하하. 이건 무영지독보다 더 대단한 발견 아닌가?’

당종은 뿌듯했으나 겉으로 내비치지는 않았다.

“흠. 내 환생단을 복용했으니 당장 죽지는 않을 것이다. 환생단을 계속 먹여라.”

순식간에 실패작이 환생단이라는 어마어마한 이름의 약으로 격상됐다.

당우화가 놀라 말했다.

“그게 환생단이었요? 사람을 마비시키는 약이라고 했잖아요?”

제아무리 고수라도 이걸 먹으면 마비되어 움직이지 못한다는 당종의 말을 듣고 가출할 때 집어온 것이다. 그런데 그게 환생단이라니.

“커흠. 환생단이라는 게 알려지면 얼마나 귀찮겠느냐? 그래서 마비약이라고 둘러댄 건데. 앞으로 당가가 시끄러워지겠구나.”

당종이 거만한 얼굴로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당우화가 돌연 욕을 했다.

“이 나쁜 새끼!”

“이 녀석이? 감히 할애비에게….”

당종이 버럭 화를 냈다.

“그게 아니라….”

당우화는 뻔뻔한 구양수의 얼굴이 떠올라 욕을 한 것이다.

탈혼백침과 염왕사를 은자 천 냥에 후려쳐 가져간 것도 모자라 당가의 독을 덤으로 달라고 조른 자가 바로 구양수다.

하는 수 없이 가장 쓸모없다고 생각한 마비환, 아니 이제는 환생단이 된 약을 넘겼다.

“뭐라고? 탈혼백침하고 염왕사를 고작 은자 천 냥에 넘겼다고?”

당종이 펄쩍, 뛰었다.

“그놈 어디 있느냐?”

은자 천 냥이면 재료비도 안 된다.

당종은 구양수라는 놈이 순진한 손녀에게 사기를 쳤다는 걸 듣고는 당장이라도 쫓아갈 기세였다.

연화심은 불쑥 끼어들었다. 혹시나 하는 기대에 찬 얼굴로 당종에게 물었다.

“저, 어르신. 혹시 환생단이 더 있습니까?”

당종이 고개를 저었다.

실패작이라고 여겨 더 만들지 않았으니 있을 리가 없다.

“그럼 혹시 만드실 수가 있는지요. 약재는 얼마든지….”

“흔히 구할 수 있는 약재로 환생단을 만들 수 있다면 누구나 만들었겠지.”

당종이 딱 잘라 말했다. 그도 지금은 환생단의 정확한 약방을 모른다.

자신의 연단실로 가서 당시 약방을 뒤져 봐야 알 수 있다.

모른다고 할 수 없으니 약재가 없다고 하는 수밖에 없었다.

아니, 무영지독을 연단하기 위한 것이라 드문 독과 약재를 썼으니 사실이기도 했다.

“그럼 어떡해요?”

당우화도 울상을 지었다. 불취가 걱정이 된 것이다.

환생단은 하나 남았다.

동약사가 곧 온다고는 했는데 사실 언제 올지는 아무도 모른다.

연화심의 낯빛은 꺼멓게 타들어 갔다. 구양수는 마비환이 하나 남은 것이라고 했다.

“이제 없다고 했는데….”

연화심이 중얼거리다 털썩 당종 앞에 무릎을 꿇었다. 더 이상 조급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신의께서 손을 쓰셔서 이 사람을 살려 주십시오.”

사실 불취보다 강소군의 상세가 더 위중했다.

불취는 당우화가 환생단을 계속 먹이며 가지고 있는 약들을 복용시켜 동약사가 오기까지 버틸 수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강소군은 환생단이 없으면 바로 죽을 것이다.

“커흠.”

당종이 거만하게 헛기침을 하더니 강소군의 몸을 다시 살폈다.

옆구리가 장부가 드러나도록 뜯기고 어깨도 박살이 났다. 전신의 상처가 깊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 당장 죽을 중상이지만 사람의 배를 갈라 장부를 자르고 잇는 당종에게는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게다가 환생단이 뜻밖의 역할을 하는 걸 보고 나름 시험을 해 볼 생각이 들었다.

치료에 성공하면 이제 정말 죽지만 않으면 살릴 수 있는 신의가 될 것이다.

“먼 길을 왔더니 배고프다. 밥부터 먹고 치료해 주지.”

***

삼도문에서 꽤 떨어진 야산.

흑천맹이 야영을 하고 있는 곳이다.

밤이 깊어 곳곳에 피워둔 모닥불도 점차 사그라지고 있었다.

한가운데 거대한 막사.

안에서 길게 숨을 내쉬는 소리가 들렸다.

“후우….”

고장추가 눈을 떴다.

두 눈에 묵빛 기운이 번뜩였다가 이내 사라졌다.

“사형? 드디어 대성하신 건가요?”

옆에서 호법을 서던 흑희 조비추가 조급함을 이기지 못하고 물었다.

“대성이라… 묵영신공은 정말 놀랍구나. 이제부터 시작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겠다.”

고장추의 목소리는 담담하였다. 어딘가 모르게 사람이 바뀐 듯했다.

조비추는 고장추가 말은 그렇게 했지만 화경의 길에 들어섰음을 알 수 있었다.

조비추 역시 묵영신공을 익혔다. 다만 묵영신공이 여인의 몸에 맞지 않아 대성은 요원하다. 그래도 고장추의 경지를 대충 짐작은 할 수 있었다.

구양수가 뿌린 염왕사의 독이 오히려 전화위복이 되었다.

독기에 의해 자극을 받은 묵영신공이 폭주하며 고장추는 기연을 얻었다.

독기와 싸우며 고장추는 자신의 절학 묵영신공을 극성까지 깨치고 벽을 넘을 수 있었다.

고장추는 금강불괴를 이룬 듯 자신의 전신에 막대한 기운이 흐르고 있음을 느꼈다.

‘아버님, 흑천의 염원에 한발 다가갔습니다.’

흑선문주 고선은 지난날 우연한 기회에 묵영신공을 얻었다.

묵영신공이 희대의 절학이라는 걸 깨달은 고선은 흑도일통, 나아가 강호일통을 꿈꿨다.

그는 묵영신공을 익히는 데 전념했으나 대성을 이루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애석하게도 묵영신공은 정파의 무공처럼 어려서부터 차근차근 쌓아 가야 궁극에 이룰 수 있는 무공이었다.

그랬기에 그는 자신의 아들에게 모든 걸 쏟아부었다.

고장추는 하늘이 자신에게 기회를 주었음을 느꼈다.

그때.

어둠 속에서 한 무리의 인영이 나타났다.

“누구냐?”

경계를 하던 무인이 소리치자 앞에 섰던 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한때 조개량의 제자이자 심복이었던 홍의발이었다.

십이지대는 애초에 조개량이 키운 무력이다. 그들을 가장 잘 알고 다룰 줄 아는 이는 홍의발이다.

그는 공손 노야의 명을 받고 등 노사의 제라라는 신분으로 흑천맹으로 왔다.

“태상장로의 명을 받고 지원 왔다.”

뒤따라온 이들은 십이지대의 무력대였다.

“소맹주는 어디 계신가?”

“소맹주?”

경계를 서던 무인이 되물었다.

“아. 선봉대장이 이번에 소맹주로 추대되었다. 개파대전에서 공식발표를 할 것이다.”

무인이 홍의발을 고장추의 막사로 안내하였다.

고장추를 본 홍의발은 내심 크게 놀랐다.

이제 막 벽을 통과한지라 고장추는 묵영신공을 완전히 갈무리하지 않은 상태였다.

묵영신공의 둔중한 기운이 전신에 흘렀으니 홍의발이 놀란 것도 당연했다.

‘강하다!’

조개량의 뒤를 보좌하며 구연강 등 천하의 고수들을 직접 본 홍의발이다.

‘기도만으로는 구연강 못지않구나!’

순간 홍의발은 오면서 갈등했던 마음을 굳혔다.

일생일대의 기회를 놓고 도박을 할 생각이다.

‘사내가 한 번 죽지 두 번 죽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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