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소군-166화 (166/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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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갈선과 연화심은 크게 놀랐으나 철권호는 묵묵부답이었다.

“철권호 대협은 못마땅하신 모양이군요.”

“상대의 어려움을 이용해 빼앗다시피 한 장원을 무림맹에 기증한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반대할 것이네.”

-짝짝짝!

구양수가 박수를 쳤다.

“역시 대협다우신 생각입니다. 그럴 줄 알았지요.”

구양수가 눈빛을 번뜩이더니 품에서 장원의 권리증서를 꺼냈다.

“그렇다면 이건 어떻습니까? 아직 천무방으로 명의를 이전하지 않았습니다. 삼도문에서 기증하는 것으로 하지요. 물론 정당한 대가를 치르셔야겠지요?”

구양수가 말을 하며 연화심을 향해 한쪽 눈을 찡긋 감아 보였다. 마치 챙겨 줬으니 고마워하라는 듯 보였다.

연화심이 구양수의 얼굴을 뚫어져라 보았다. 대체 무슨 속셈인지 알 수가 없었다.

“어험.”

제갈선이 헛기침을 하더니 끼어들었다.

“삼도문 장원을 무림맹에서 인수를 하라? 대체 왜 그래야 하는지 모르겠군.”

구양수가 나직하게 웃었다.

“왜 이러십니까? 무림에서 제일 머리가 뛰어나시다는 분께서 모르시는 척하면 곤란하지요. 의천맹을 여기서 결성한 이유가 뭡니까?”

“당연히 흑천맹을 상대하기 위함이 아닌가?”

구양수가 코웃음을 쳤다.

“나이도 지긋한 분이 솔직하지 못하시군요.”

구양수의 말은 거침없었다. 제갈선의 얼굴에 노기가 일었다.

제아무리 천무방 이공자라고 하지만 제갈세가의 인물에게 이렇게 방자하게 구는 건 묵과할 수 없는 일이다.

“여기 삼도문이 무한 일대에서 무림맹이 들어서기에 최적의 자리라는 걸 잘 알지 않으십니까?”

사실 그렇다. 삼도문 앞은 사통팔달로 길이 이어진다.

뒤로는 험한 산세가 있고 좌우로도 드넓은 평원이다. 조금만 가면 장강으로 갈 수 있는 물길도 있다.

“무림맹은 대의를 위한 곳일세. 필요하다고 타문파의 장원을 강제로 취할 것이라 보나?”

철권호가 생각할 가치도 없다는 듯 딱 잘라 말했다.

“아이고. 그럼 이를 어째야 하나.”

구양수가 연화심을 향해 말했다.

“삼도문, 이 장원을 지키다 선대 문주가 돌아가신 일은 참 안타까운 일이오. 하지만 천무방의 수많은 무력대도 수백이나 잃었소.”

“애초에 천무방에서 욕심을 내지 않았다면 그런 일이 벌어졌겠어요?”

연화심이 싸늘한 목소리로 대꾸하였다.

구양수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이번에 목숨을 잃은 조배극은 천무방의 원로이자 개파공신으로 모두가 존경하는 무인이었소. 그 또한 연 낭자의 손에 죽었지요.”

“….”

“그러니 천무방이 이대로 삼도문에게 장원을 넘긴다면 무림에서 뭐라고 보겠습니까?”

무림은 힘이 지배하는 세상이다. 정파 역시도 힘이 있어야 대접을 받는다.

천무방이 삼도문에게 다시 장원을 빼앗기고 그대로 있는다면 무림에서는 이빨 빠진 호랑이 취급을 할 것이다.

아직까지 천무방을 따르는 문파들이 적지 않은데 그들이 돌아설 가능성도 있다.

구양수의 말을 들어 보니 그것 또한 그럴듯한 말이었다. 무림 사정에 밝은 제갈선은 구양수의 입장도 이해가 갔다.

구양수가 연화심을 보고 말했다.

“물론 애초에 아버지가 삼도문에게 혼인동맹을 요청한 것이 발단이겠지요. 연 낭자가 거절하면 좀 시끄러웠겠지만 이 지경까지 오지는 않았을 겁니다. 그런데 제 아우가 죽는 불행한 일이 생기는 바람에 이렇게 커진 것도 사실이지요.”

“흥! 혼인동맹? 삼도문을 통째로 삼키려는 속셈이라는 걸 만천하가 다 아는데 이제 와서 그런 강변을 하다니.”

“아버지는 모두 강호를 위해 그런 것이오.”

구양수가 정색을 하고 말했다.

“그건 또 무슨 궤변이냐?”

철권호가 코웃음을 쳤다.

구양수가 몸을 바로 세우더니 낭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과거 천하사패를 생각해 보시죠. 요사했던 요천루는 물론이거니와 조정의 세력이 위장했던 대정무각, 도룡회를 진정한 무림방파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진심을 토로하는 듯, 구양수는 진중한 목소리로 이어 말했다.

“그래서 아버지는 사파와 조정의 세력을 몰아낸 후 진정 무림 문파들이 공존하는 세상을 만들고자 하셨습니다.”

구양수의 말솜씨는 제갈선도 혀를 내두를 만큼 능수능란하였다.

말을 잠시 멈춘 구양수가 돌연 침통한 얼굴을 하더니 처연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다 뜻하지 않은 변고로 주화입마에 드셨지요.”

구양수가 목소리를 높였다.

“아들 된 도리로 아버지의 뜻을 따르지 않을 수 없지요. 그런데 마침 무림맹이 들어선다지 않습니까? 그래서 삼도문 연 문주를 설득해 장원을 기증하자고 한 것입니다.”

“우환거리를 없애자는 뜻인가?”

제갈선이 끼어들었다. 구양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제갈 대협이시군요. 맞습니다. 천무방을 이끄는 입장에서 방도들의 뜻을 외면할 수는 없지요. 그렇다고 연 문주에게 삼도문 장원을 다시 달라는 것도 논란의 여지가 있습니다. 그러니 연 문주가 삼도문 장원을 무림맹에게 양도하는 걸로 하자는 거죠. 그러면 천무방도 포기하겠습니다.”

제갈선이 구양수를 지그시 보았다.

‘천무방 이공자의 심계가 참으로 깊군.’

제갈선은 재빨리 구양수의 속셈을 헤아려 봤다. 짐작 가는 것은 있으나 아직 확신하기는 어려웠다.

“그러면 천무방에서 얻는 게 뭔가? 조건이 있을 게 아닌가?”

구양수가 빙그레 웃었다.

“이제야 말이 통하시네. 형식은 연 문주가 무림맹에 장원을 넘기는 것이지만 천무방도 생기는 게 있어야 겠지요?”

“장원 매각대금을 나눠 달라는 건가?”

“천무방이 그럴 정도로 허덕이지는 않습니다. 그건 연 문주 드려야죠.”

“그럼 뭔가?”

“천무방도 무림맹의 한 축으로 껴 주시죠?”

구양수가 속셈을 드러냈다.

‘역시!’

제갈선은 어느 순간부터 구양수의 속셈을 알 것 같았다.

세가연합과 대파가 추진하는 무림맹은 기존의 천하사패를 배제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천하비무대회!”

구양수가 쐐기를 박겠다는 듯 말을 이었다.

“제 형님도 참가할 겁니다.”

“무림맹주의 자리를 노리겠다는 건가?”

“실력이 부족하면 못하는 거겠지요. 하지만 천무방이 무림맹의 일원으로 소임을 다하는 것까지야 막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

구양수가 권리증서를 챙기며 말했다.

“생각이 없으시다면 내일 중으로 장원에서 나가 주시죠.”

***

삼도문 대문.

의천맹 무인들이 오가기에 평소에도 열어놓고 있었다.

죽립을 쓴 비쩍 마른 노인이 다가왔다. 노인임에도 키가 보통 사람보다 머리 하나는 컸다.

대문 앞에 온 노인이 죽립을 들어 한 번 보고는 안으로 들어서려 했다.

수문위사가 다가가 물었다.

“어디서 누구를 찾아오신 분이신지요.”

의천맹이 결성되며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몰려오고 있기에 수문위사는 방문객을 함부로 대할 수가 없었다.

“여기 문주 나오라고 해라.”

“뉘신지요?”

“당가에서 왔다고 전하거라.”

수문위사가 달려가 유상화에게 보고하고 유상화는 바로 연화심에게 고했다.

연화심은 내심 놀랐다.

구양수가 며칠 안으로 서신의가 제 발로 올 것이라 했는데 정말 당가의 인물이 왔다.

연화심이 황급히 대문으로 나갔다.

“제가 삼도문주 연화심입니다. 서신의 어르신이신지요?”

노인이 죽립을 쳐들고 의아하다는 눈빛으로 연화심을 보았다.

“문주가 무척 어리군. 그런데 나를 어찌 알아보았지?”

그는 과연 서신의 당종이었다. 눈매가 무척이나 날카로워 마치 폐부를 들여다보는 듯했다.

“당 낭자를 찾아오신 것 아니십니까?”

당종의 눈빛이 번뜩였다.

“정말 여기 있다는 말인가?”

“후원에 머물고 있습니다.”

“안내해라!”

당종은 성격이 급한 듯했다.

연화심이 직접 당종을 후원으로 안내하였다.

당종은 당우화가 머무는 전각을 보자마자 몸을 날려 벌컥, 문을 열어젖혔다.

“누구냐? 어, 할아버지!”

“네 이년!”

당우화의 놀란 목소리와 당종의 호통이 연달아 터졌다.

“으허엉!”

그러더니 당우화가 울음을 터뜨리는 소리가 들린 후 곧 조용해졌다.

연화심이 슬며시 방으로 들어갔다.

당우화는 죽립 노인의 품에 안겨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됐다. 이제 됐다. 걱정 마라. 할애비가 왔잖니.”

당종이 손녀의 등을 토닥이고 있었다.

‘서신의가 무척 괴팍한 성격이라고 들었는데 손녀에게는 정말 잘해 주는구나.’

연화심은 구양수가 왜 서신의의 약점이 손녀라고 했는지 알 것 같았다.

“이 녀석아, 어찌 됐든 연락은 했어야지. 이 할애비가 너를 찾느라 얼마나 고생했는지 아느냐?”

“그런데 어떻게 여기 있는 줄 알고 오셨어요?”

당우화가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

당종은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표정이 싸늘해졌다.

당종은 염왕사가 무한에 나타났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왔다가 당우화가 삼도문 장원에 있다는 말을 듣고 찾아온 것이다.

“염왕사는 본가의 비기인데 그걸 함부로 남에게 주다니. 네가 정신이 있는 것이냐?”

당종은 손녀가 무사한 걸 보고 반갑기도 하고 염왕사를 외인에게 건넸다는 사실에 화가 나기도 했다.

“죄송해요. 대신 독은 약한 걸로 썼어요.”

당우화가 다시 울상을 짓자 당종은 또 사라질까 봐 걱정됐다.

“아무튼 어서 집으로 가자. 네 아비도 너를 백방으로 찾았다.”

“지금은 안 돼요.”

“뭐라?”

당종의 안색이 무섭게 굳었다.

“동약사를 기다리고 있어요.”

“뭐?”

“그 사람이 중상을 입었어요.”

“흥! 잘됐군.”

당종이 코웃음을 쳤다.

당우화가 발딱, 일어났다.

“아직도 그 사람은 안되는 거예요?”

“대체 말이 되냐? 그놈은 네 애비뻘이란 말이다.”

“그게 무슨 상관이에요. 그리고 아버지보다 십 년은 더 젊다고요.”

당우화는 우연히 불취를 만나 푹, 빠졌다.

열여덟 꽃다운 나이의 금지옥엽이 마흔이 다 되어 가는 중년 사내와 결혼하겠다고 하니 당우화의 아버지는 물론이고 당종까지도 결사반대하였다.

결국 당우화는 불취를 찾아서 당가를 몰래 빠져나왔다.

그런데 불취도 그런 그녀를 마다하였다. 오갈 데가 없어진 그녀는 몰래 불취를 따라다녔다.

당우화는 불취가 강소군과 겨룰 당시 맞은편 절벽에서 지켜보았다.

그러다 불취가 흑사에게 중상을 입고 절벽에서 뛰어내렸을 때 몸을 던져 그를 잡아챘다.

당우화는 목숨이 경각에 달린 불취에게 마비약을 먹이고 이제껏 이런저런 약을 써 왔다.

연화심이 찾아왔을 때는 집을 떠나올 때 가지고 나왔던 약이 바닥이 났고 불취는 여전히 의식을 찾지 못한 상태였다.

사실 당우화는 지푸라기라도 잡으려는 심정으로 연화심을 따라온 것이다.

“그 사람이 죽으면 나는 머리 깎고 중이 될 거예요.”

“그게 무슨 소리냐?”

당종이 화들짝 놀랐다.

고집이 센 당우화는 충분히 그럴 수 있으니 내심 걱정이 됐다.

당우화가 정색을 하고 말했다.

“그러니까 할아버지는 가만 계세요. 할아버지도 신의라고 불리잖아요. 사람은 일단 살리고 봐야죠.”

“나는 그놈 살려 줄 생각 없다.”

당종은 행여 자기에게 치료를 맡길까 봐 미리 선을 그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손녀딸을 꼬드긴 놈이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쳐 죽이고 싶다.

당우화가 안다는 듯 한숨을 쉬고 말했다.

“그러니까 동약사를 기다리는 거죠.”

“흥! 동약사? 그 돌팔이를 믿는다는 말이냐?”

연화심은 자신이 끼어들 때라는 걸 알고 한 발 앞으로 나갔다.

“중 약사님은 죽은 사람도 살릴 수 있는 명의입니다. 반드시 살려내실 것이니 당 낭자는 걱정 마세요.”

당종의 눈에서 흉흉한 빛이 쏟아져 나왔다.

“허! 개 풀 뜯는 소리를 다 들어 보는구나! 그놈이 죽은 사람을 살린다고?”

손녀에게는 한없이 자애롭지만 그 외 모든 사람에게는 털끝만치 자비심이 없는 인물이 당종이다.

오죽하면 생사신의라는 별호가 따로 있을까.

그가 살리고 싶으면 반드시 살고 죽이고 싶으면 죽기에 그런 별호가 붙은 것이다.

당종이 발끈하자 연화심은 내심 놀랐다.

‘구양수, 그놈은 어떻게 당종이 이리 나올 줄 알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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