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소군-165화 (165/250)

165

초지항이 자신의 가슴을 쳤다.

“삼도문은 여기 가슴속에 있습니다. 문주님의 뜻에 따르겠습니다.”

가장 고생을 했던 초지항이 흔쾌히 말하니 연화심은 감격했다.

“다만 구양수 그자를 믿을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

“그가 만일 허튼수작을 부리는 거라면 반드시 대가를 치를 겁니다.”

연화심이 말하고는 곧바로 구양수가 기다리는 객청으로 향했다.

구양수는 느긋하게 앉아서 차를 즐기고 있었다.

“벌써 결정을 내리셨냐?”

“서신의가 이 근처에 있다는 걸 어떻게 믿을 수 있죠?”

연화심이 자신의 제안에 거의 넘어왔다는 것을 눈치챈 구양수가 씨익, 웃었다.

“서신의의 유일한 약점이 하나 있지.”

“약점?”

“고집불통 손녀에게만은 꼼짝을 못하거든.”

“서신의의 손녀라면….”

“당우화.”

서신의 당종은 당가의 원로다.

강호에 여러 세가가 있지만 그중에서 몇몇 가문을 추려 사대세가 또는 오대세가라고 칭한다.

보통 남궁세가와 하북팽가, 제갈세가와 모용세가를 사대세가로 꼽고 거기에 당가를 포함시키면 오대세가라고 부른다.

당가를 나중에 넣는 이유가 가문의 영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당가는 무척이나 폐쇄적이라 강호에 나오는 일이 거의 없다. 다른 세가들은 서로 간에 교류가 활발한데 당가만은 뒤로 물러나 있는 편이다.

그래서 당가 사람들은 괴팍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당우화가 무한에 있거든. 그녀를 찾으면 서신의를 만날 수 있지.”

“당우화가 무한 어디에 있다는 거죠?”

“같이 가 볼까?”

구양수가 음흉하게 웃었다.

연화심은 구양수의 속을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없었다.

“어서 그 마비환을 줘요.”

구양수가 손을 내밀었다.

“장원 땅문서를 먼저 줘야지.”

연화심은 지체 없이 장원에 대한 권리증서를 넘겼다.

구양수가 확인하고는 철갑을 건넸다.

“조심하라고. 만지기만 해도 마비가 되니까 가죽 장갑을 끼고 먹여야 할걸?”

연화심은 대답하지 않고 황급히 강소군이 있는 별원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강소군의 옆을 지키고 있는 노이칠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마비환을 먹였다.

“세상일이라는 게 정말 알 수가 없군. 구양수에게 도움을 받을 날이 있을 줄이야.”

노이칠이 탄식했다.

마비환을 먹은 강소군은 마치 귀식대법을 펼치기라도 한 듯 전신이 굳었다.

“칠 일이라고 했나? 삼각주에게 최대한 서둘러 오라고 하겠네.”

노이칠이 다시 전서구를 보내러 갔다.

***

“저기야.”

구양수가 산속 초막을 가리켰다.

사냥꾼들이 임시로 하루 묵기 위해 만든 듯 초막이다. 얼기설기 엮은 것이 과연 사람이 살 수나 있을지, 무척이나 부실해 보였다.

구양수가 연화심과 초지항을 보며 말했다.

“나는 뒤로 빠져 있지.”

다 와서 빠지려 하자 초지항이 의심의 눈빛으로 구양수를 노려보았다.

구양수가 난처하다는 듯 양팔을 벌리며 말했다.

“나를 별로 좋아하지 않거든. 어쨌든 데려다줬잖아?”

구양수가 말을 마치기 무섭게 초막에서 노란 옷을 입은 여인이 나왔다.

스물 조금 넘었을까. 눈꼬리가 약간 올라간 게 성깔이 있어 보이는 미인이었다.

“이크. 늦었네. 들켜 버렸어.”

연화심은 묻지 않아도 그녀가 당우화란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손에 가죽 주머니를 들고 가죽 장갑을 끼고 있다. 당가에서 독을 바른 암기를 쓸 때 볼 수 있는 것들이다.

구양수를 본 당우화가 가죽 주머니를 열었다. 암기를 쓰려는 것이다.

“잠깐만!”

초지항이 연화심의 앞을 가로막으며 말했다.

“당 여협이시오? 우리는 적이 아니오.”

초지항은 잔뜩 긴장하였다.

당가의 암기술은 천하에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런데 상대는 독까지 바른 암기를 쓸 작정을 한 듯 가죽 주머니를 들고 나온 것이다.

독암기는 치명적이기에 당가에서도 강적이나 원수가 아니면 사용을 금하고 있다. 그런데 대뜸 독암기를 쓰려 하니 경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당우화는 초지항의 말에는 대답하지 않고 구양수를 노려봤다.

“이 사기꾼 같은 놈. 안 그래도 다시 보면 가만두지 않으려 했는데 제 발로 오다니.”

“에헤이. 우리가 무슨 철천지원수라고 그리 심한 말을 하고 그래. 그동안 잘 지내셨나?”

당우화가 손이 가죽 주머니로 쑥, 들어갔다.

구양수가 화들짝 놀라 뒤로 일 장이나 물러났다.

“오늘 찾아온 건 내가 아니라고. 저들이 부탁해서 길 안내만 해 줬을 뿐이라고.”

“내가 여기 있는 건 어떻게 알았지?”

“우연히 알게 됐지 뭐야.”

구양수가 능글맞게 웃었다.

“내 뒤를 밟았지?”

“나 그렇게 한가한 사람 아니라고.”

구양수가 손을 내젓고 한 발 물러나 연화심의 뒤에 섰다.

“또 무슨 수작을 부리려고 온 거지? 사실대로 말하는 게 좋을걸?”

당우화가 의심에 찬 눈을 거두지 않았다.

“왜 그래. 우리 좋은 거래를 한 사이잖아. 어려울 때 도와줬는데 이제 와서 그런 눈으로 보면 곤란하지.”

구양수가 당우화를 만난 건 수년 전 일이다.

당가의 금지옥엽으로 자란 당우화는 당시 세상 물정을 너무 몰랐다.

무작정 당가를 뛰쳐나왔는데 독과 암기만 잔뜩 챙기고 정작 중요한 돈은 가지고 나오지 않았다.

당가에 있을 때는 직접 돈을 쓸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고수보다 무서운 게 돈이었다.

미인이라고 해서 아무도 공짜 밥을 주지 않는다. 게다가 자존심이 강한 그녀는 남에게 아쉬운 소리도 할 수 없었다.

우연히 구양수를 만난 당우화는 수중의 물건을 털렸다. 털렸다고밖에 할 수 없는 것이, 강호의 삼대암기라는 탈혼백침과 염왕사, 그리고 마비약까지 고작 천 냥의 은자를 받고 넘겼다.

나중에야 그 물건들이 무림인들이라면 천금을 주고라도 살 귀물이라는 걸 알고 이를 갈았다.

하지만 자신이 물정을 모르고 거래한 것이라 참고 있었다. 그런데 구양수가 또 나타난 것이다.

“당 낭자가 곤란한 지경인 것 같아서 도와주려고 온 건데. 이렇게 박대를 당하니 섭섭하네.”

당우화의 눈꼬리가 흠칫, 올라갔다.

‘이놈이 어떻게 알았지?’

초막 안에는 한 사내가 누워 있다. 사경을 넘나들고 있는데 당우화가 갖가지 약으로 일단 목숨을 이어 가고 있는 중이다.

연화심은 구양수에게 오기 전에 들은 말이 있다.

“나는 삼도문 연화심이라고 해요.”

“그런데요?”

당우화가 무슨 일이냐는 표정으로 연화심을 보았다.

“사천당가의 금지옥엽이 계시다는 말을 듣고 모시러 왔어요.”

“나를?”

당우화가 인상을 썼다. 가죽 주머니에 넣은 손으로 뭔가를 움켜쥐는 게 보였다.

자신의 정체를 알고 찾아온 게 아무래도 좋은 뜻이 아니라고 생각한 것이다.

연화심이 자신의 손을 벌려 아무것도 없음을 보였다.

“사람을 살리자는 좋은 뜻으로 왔어요. 중상을 입은 분이 계시다면서요?”

당우화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잔뜩 긴장한 것이다. 상대가 자신의 처지를 알고 있다니 더더욱 의심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분을 이런 산중에서 치료하는 것보다 삼도문 장원으로 모시는 게 어때요?”

“대체 무슨 속셈으로 이러는 거지?”

당가를 뛰쳐나올 때는 세상 물정 모르는 아가씨였지만 그 사이 공짜는 없다는 걸 철저히 몸으로 깨달은 당우화다.

생면부지의 남이 찾아와 도움을 주겠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실은 당 낭자가 가진 마비환이 약간 필요해서 그래요. 이쪽에도 중상을 입은 사람이 있거든요.”

당우화가 그러면 그렇지 하는 눈으로 연화심을 노려보았다.

“흥! 그건 내가 쓰기에도 부족해요. 돌아가요.”

당우화의 초막에 누워 있는 이는 불취였다.

당우화는 자신이 가진 마비환을 불취에게 먹이고 있는데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우리는 한 알만 있으면 돼요. 칠 일의 시간만 벌면 치료할 수 있는 분이 오거든요.”

“기가 막히네. 그건 그쪽 사정이고 내가 줄 이유가 없잖아요? 어서 돌아가요.”

당우화가 딱 잘라 거절하였다.

연화심이 말을 이었다.

“치료할 수 있는 분이 누군지 알아요?”

“….”

당우화는 들은 척 만 척 대꾸도 않고 구양수 등을 노려보며 버티고 있었다.

“동약사예요. 낭자의 조부와 함께 신의로 불리는 분이죠. 그분께 당 낭자께서 돌보는 분도 부탁해 볼게요.”

연화심의 말에 당우화의 눈빛이 흔들렸다.

불취의 상세는 무척이나 중했다. 그녀가 가진 약을 다 쓰고 마비환으로 멈춰 놓은 상태이나 치료할 길이 막막했다.

“그게 정말인가요?”

당우화가 연화심에게 물었다.

그 모습을 보고 구양수가 내심 웃었다.

‘여전히 호구야.’

일단 마음이 흔들린 이상, 구양수가 당우화를 설득하는 건 일도 아니다.

“정말이야. 내가 하나 남은 마비환을 먹였는데 동약사가 오려면 칠 일의 시간이 더 필요하거든. 환약 하나만 더 주면 돼.”

구양수가 품에서 전표를 꺼내 흔들었다.

“돈도 줄게.”

당우화의 눈에 갈등의 빛이 어렸다.

“내가 어떻게 당신을 믿죠?”

당우화는 구양수는 상대하기 싫었다.

“당가에는 여러 가지 독이 있다면서요. 그중에 백 일 후에 발독하는 독도 있다고 들었어요. 제게 하독하세요.”

“문주님!”

연화심의 말에 초지항이 더 놀라 만류하였다.

“백일독을 먹겠다고요?”

당우화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연화심이 처연한 얼굴로 말했다.

“당 낭자는 안에 계신 분을 어떻게든 살릴 생각이죠? 저도 그래요. 당 낭자가 입장을 바꿔 생각하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당우화가 생각해 보니 정말 그랬다. 불취를 살릴 수 있다면 백일독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이내 결심한 듯 당우화가 품에서 약 주머니를 꺼내더니 환 하나를 던졌다.

“정말이라면 눈앞에서 먹어요.”

연화심이 받아 드니 붉은색 환약이다.

연화심은 망설이지 않고 약을 먹었다.

“문주님!”

초지항이 당황하여 막으려 했으나 이미 늦었다.

구양수가 당우화를 보며 싱글싱글 웃었다.

‘완전 호구는 아니었군. 그동안 고생 좀 했나 봐.’

***

삼도문 대청.

연화심이 철권호와 제갈선에게 포권을 하였다.

“죄송합니다. 사정이 있어 삼도문 장원을 천무방에게 양도했습니다. 이제 흑천맹과 싸울 이유도 없군요.”

장원을 넘겼으니 의천맹으로 모인 사람들도 나가 줘야 한다.

제갈선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말없이 철권호를 보았다.

철권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정은 들었소. 남의 위기를 틈타 그런 조건을 내건 천무방이 고약한 것이지 문주의 잘못이 아니오.”

그때 바깥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에헤이. 대협씩이나 되신 분이 뒤에서 사람 욕하고 그러면 되나요. 저 같은 놈이나 남의 흉을 보는 거지.”

구양수가 불쑥 대청으로 들어섰다.

당우화와 불취를 데려오고 나서도 웬일인지 구양수는 계속 삼도문 장원에 머물렀다.

사실 이제 주인이나 마찬가지이니 가라고 할 수도 없었다.

철권호가 구양수를 보는데 눈빛이 그리 호의적이지 않았다.

철권호가 가장 싫어하는 유형이 구양수 같은 자들이다.

“흠.”

철권호는 말도 섞기 싫다는 듯 헛기침을 하고 고개를 돌렸다.

“으흐흐. 역시 대협이시군요. 저 같은 소인배와는 말도 섞기 싫으시다?”

구양수의 말에 제갈선이 나섰다.

“나는 제갈선이라 하네. 삼도문 장원이 넘어갔다는 건 연 문주에게 들었네. 내일이라도 비워 줄 테니 그만 가 보겠나?”

제갈선은 구양수가 장원을 비우라는 통보를 하러 온 것으로 여겼다.

“왜들 이러시나? 좋은 일 좀 해 보려고 했는데 이러면 자꾸 마음이 흔들리잖아.”

구양수가 능글능글 웃으며 말했다.

“본 공자가 좋은 제안을 하나 하죠. 일단 들어 보고 결정하시죠?”

“….”

“삼도문 장원을 무림맹 본단으로 기증하지요. 천무방 이름으로.”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