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소군-164화 (164/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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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화심은 초조하였다.

강소군이 들어간 숲에 있는 자야말로 고수 중의 고수일 것이다.

연화심이 숲으로 들어가려 하자 칠현금을 든 기녀가 막았다.

“죽고 싶으냐?”

“비켜라.”

“호호. 네 주제를 알아야지. 가 봐야 소용없거든? 너도 죽고 싶지 않으면 잠자코 있어라.”

그때.

숲에서 벼락같은 소리가 터져 나왔다.

-콰앙!

동시에 숲의 나무들이 뿌리째 뽑혀 비산하는 게 눈에 들어왔다.

“강 대협!”

연화심을 비롯해 모두가 화들짝 놀라 숲으로 달려가려 하였다.

그러자 천황성의 고수들이 일제히 막아섰다.

-까강!

-쾅!

일대 격전이 벌어졌다.

강소군의 예상대로 접전이 벌어지자마자 남궁악과 팽일호를 제외한 대부분이 곧바로 수세에 몰렸다.

천황성의 고수들은 굳이 살수를 쓸 생각이 없었는지 수비 위주로 막아섰기에 그나마 사상자가 나오지 않았다.

여섯 고수가 틀어막고 있으니 거대한 성벽과도 같이 느껴졌다.

엄청난 폭음이 들려온 뒤 숲은 잠잠해졌다.

그러니 연화심 등은 더욱 초조했다.

그때.

-휘이이익!

기다란 소성과 함께 한 사람이 날아왔다.

한 번 도약에 무려 십여 장씩 가까워졌다. 날아온 이는 순식간에 장내에 도착하며 진각을 밟았다.

-쿠웅!

거대한 기파가 사방으로 퍼지며 싸움이 멈췄다.

새로 나타난 이는 의천맹주 철권호였다. 뒤이어 제갈선이 당도했다.

철권호가 싸늘한 얼굴로 천황성의 고수들을 보며 말했다.

“천황성이 무슨 의도로 이런 짓을 벌이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당장 멈추라고 하시오.”

“흥!”

화공이 철권호를 보더니 고깝다는 듯 말했다.

“철권호였군. 너는 빠져라. 이건….”

그때 점쟁이 노인이 끼어들었다.

“환쟁이 놈아. 할 말 못 할 말 다 하고도 목이 무사할 것 같으냐?”

점쟁이 노인의 말에 화공이 입을 닫았다.

점쟁이 노인은 눈치가 빨랐다. 철권호가 자신들과는 다른 임무를 띠고 있다는 걸 안다.

천황성 군웅각의 고수들은 서로 거의 교류를 하지 않는다.

천황성 고수들의 목표는 오로지 생사경 너머 천주가 도달했다는 미증유의 경지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랬기에 철권호가 천주의 대법을 통해 단숨에 현경의 경지로 올랐다는 소식 퍼지자 시기하는 이가 적지 않았다.

화공은 못마땅한 듯 시선을 돌렸다.

뒤이어 나타난 제갈선이 쓰러진 시신들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천황성은 무림의 일에 간여하지 않는 걸로 아는데 어찌 된 영문인지 말씀해 주시겠소?”

놀랍게도 제갈선은 천황성에 대해 꽤 아는 듯했다.

점쟁이 노인이 코웃음을 쳤다.

“굳이 알려고 들지 마라.”

그러더니 화공 등에게 눈짓을 하였다.

숲이 조용한 걸 보니 이미 상황이 끝났다는 뜻이었다.

-휙!

천황성의 고수들이 일제히 숲으로 들어가 자취를 감췄다.

“강 대협!”

“오라버니!”

연화심과 남궁령이 재빨리 숲으로 들어갔다.

“령아야!”

남궁악은 동생이 고수가 숨어 있는 숲으로 무턱대고 들어가자 화들짝 놀라 쫓아 들어갔다.

뒤이어 노이칠 등도 따랐다.

계곡은 온통 뒤집어져 있었다.

바위들이 여기저기 흩어지고 물길이 바뀌었다.

편제는 바위 하나에 기대어 있었는데 가슴에 홍옥비도가 박혀 있었다.

홍옥비도가 관통하다시피 하였는데 그는 살아 있었다.

그의 시선은 강소군을 노려보고 있었다.

강소군은 삼 장 거리에 한쪽 무릎을 짚고 고개를 떨군 채 미동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옷은 갈기갈기 찢어져 있고 비도를 날렸던 오른쪽 팔은 너덜너덜하다.

“크으으… 지독한 놈!”

편제가 비틀거리며 일어나더니 비도를 뽑아 들었다.

놀랍게도 비도를 뽑았으나 피가 나오지 않았다. 내력으로 지혈을 한 것이다.

편제는 방금 일어난 격돌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강소군은 그의 채찍이 형성한 강기의 벽을 뚫고 비도를 날렸다. 그건 다른 삼황오제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창제라고 해도 직접 창을 쥔 상태에서 밀고 들어와야 했을 것이다.

그런데 비도 한 자루로 뚫어내다니.

편제가 홍옥비도를 살폈다. 홍옥이 박힌 귀한 물건이었으나 신병이기라고 할 보도는 아니다.

“칫!”

편제가 비도를 던져 버리고 자신의 채찍을 들었다.

강소군은 숨이 끊어진 듯했다. 편제가 기운을 펼쳐 살펴보려 했으나 가슴이 통증 때문에 여의치 않았다.

“강 대협!”

사람들이 몰려오는 소리가 났다.

흘깃 강소군을 쳐다본 편제가 그대로 사라졌다.

***

삼도문 별원.

화천대의 경계가 삼엄했다.

강소군은 침상에 누워 있었다. 미약한 숨이 당장이라도 끊길 듯했다.

노이칠과 연화심, 남궁령 등이 초조한 얼굴로 의원을 쳐다보았다.

“오늘을 넘기지 못할 것 같습니다.”

의원이 고개를 저었다.

“며칠만 버틸 수 있게 할 수 없겠나?”

노이칠이 의원에게 말했다. 의원도 한숨을 쉬었다.

“제가 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 오장육부가 제 기능을 하지 않습니다. 사실 아직 살아 있는 게 용합니다.”

노이칠이 한숨을 쉬었다. 동약사에게 긴급히 와 달라고 전서구를 보냈다. 그런데 오늘을 버티지 못할 것 같다는 말에 낙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연화심이 푹, 주저앉았다.

남궁령이 울상을 짓더니 뛰쳐나갔다.

바깥에서 기다리던 남궁악 등은 그렁그렁한 남궁령의 눈을 보고 말을 잃었다.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상황을 알 것 같았다.

별원 문으로 유상화가 황급히 들어섰다.

“무슨 일인가?”

초지항이 물었다.

“천무방 이공자가 문주님을 뵙겠다고 찾아왔습니다.”

***

삼도문 객청.

연화심이 낯빛을 가다듬고 들어오자 구양수가 양팔까지 벌리며 호들갑을 떨었다.

“연 낭자, 아니 문주님인가? 아무튼 다시 뵈니 참으로 반갑소.”

연화심이 싸늘한 시선으로 구양수를 노려봤다.

“무슨 일인지 용건부터 말하죠?”

강소군이 생사지경에 처해 있는 상황이라 연화심은 구양수와 말을 섞을 여유가 없었다.

“나도 들었소. 혈마가 당했다지?”

역시 천무방은 삼도문의 동정을 살피고 있었던 것이다.

강소군이 중상을 입은 사실이 퍼져 나가지 않도록 입단속을 했으나 피할 수가 없었나 보다.

“….”

“내가 살려 줄 수 있는데?”

구양수의 말에 연화심이 퍼뜩 놀라 쳐다봤다.

그만큼 구양수의 말이 느닷없던 것이다.

강소군은 천무방 최대의 적이라고 할 수 있다.

‘강 대협의 상세를 떠보려는 수작이구나.’

연화심이 분노에 차서 구양수를 노려보며 말했다.

“역시 비열하구나. 어려움을 틈타서 기회를 노리려 하다니.”

“에헤이. 그렇게 오해하면 곤란하지.”

“강 대협과 천무방의 사이를 아는 내가 그 말을 믿을 것 같아?”

연화심이 흥분하여 쏘아붙였다.

“어? 둘 사이야 철천지원수지간이지. 하지만 나는 아니라고. 나는 오히려 그놈에게 고마워하고 있거든?”

“뭐라고?”

“본방의 반도를 그가 해치워 줬잖아? 그 쥐새끼 같은 놈을 찾지 못해서 얼마나 골치 아팠다고.”

“그 말을 믿으라고?”

“믿거나 말거나.”

구양수가 건들건들 웃으며 품에서 뭔가를 꺼냈다.

철로 된 작은 갑이었는데 단단히 봉해져 있다.

“그게 뭔가요?”

“이거? 크크. 독약이지.”

“독약?”

“그놈을 살리고 싶다면 이걸 먹여보는 게 어때?”

연화심이 양손에 기운이 어렸다.

당장이라도 구양수를 칠 기세다.

구양수가 펄쩍, 한 걸음 물러나며 말했다.

“그동안 엄청 무공이 늘었군. 오해하지 말고 끝까지 들어 보라고. 이건 독약이긴 하지만 사람을 살릴 수 있는 독약이라고.”

연화심이 구양소의 손에 든 철갑을 보았다.

구양수가 진지하게 말하니 일말의 희망이 인 것이다.

“그게 무슨 독인데 그를 살릴 수 있다는 거죠?”

“이걸 복용하면 그 즉시 온몸이 마비되지.”

“마비산으로 사람을 어떻게 살린다는 말이죠?”

“이건 보통 마비산이 아니라니까? 복용하면 전신이 돌처럼 굳어 버린다고.”

“….”

연화심이 눈살을 찌푸렸다.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상태가 되는 거지. 다시 말해서 지금 숨넘어가기 직전의 사람도 죽지 못하는 신세가 되는 거지.”

“…?”

“이걸로 시간을 버는 거야. 그리고 명의를 찾아 고치면 되잖아?”

일리가 있었다.

“그리고 그 명의가 이 근처에 있다고.”

“명의가요?”

“혹 서의동약이라고 들어 봤어?”

서의동약.

서신의 당종과 동약사 중유선을 말한다.

“서신의가 이 근처에 있거든.”

연화심의 귀가 번쩍 틔였다.

노이칠이 동약사 중유선에게 연락을 했으나 그가 오려면 반달은 걸릴 것이다.

그런데 서신의가 마침 이 근처에 있다면?

방법이 있지 않을까? 연화심의 가슴이 뛰었다.

구양소의 철갑을 보고 말했다.

“그 마비산의 효과가 얼마나 가죠?”

“칠 일! 그 안에 서신의를 찾아오면 돼.”

“그가 어디 있는지도 아나요?”

구양소가 실실 웃었다.

“이거 참. 모른다고 할 수도 없고….”

“아!”

연화심은 구양수가 노리는 게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강소군을 살릴 수 있다는 조급한 마음에 구양수가 이유도 없이 이렇게 찾아오지 않았을 거란 사실을 미처 생각지 못한 것이다.

“원하는 게 뭐죠?”

“당연히….”

구양소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삼도문을 원하는 건가요?”

연화심의 안색이 굳었다. 구양수가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삼도문 장원을 되찾으려 하는 것이라 여겼다.

구양수가 피식, 웃었다.

“그렇다면 내줄 건가?”

“….”

연화심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처했다.

삼도문 장원을 되찾기까지 얼마나 여러 사람이 목숨을 걸고 싸웠는지 그 누구보다 잘 안다.

이를 내줘야 한다니 섣불리 결정할 수가 없었다.

“언제까지 결정해야 하죠?”

“나야 급할 건 없지만 그가 얼마나 버틸지 모르겠군. 내가 듣기에 거진 시신이 되어 돌아왔다던데.”

“잠시만 기다리세요.”

연화심이 객청을 나와 초지항과 유상화를 중랑의 거처로 오라고 했다.

중랑 역시 중상을 입고 자신의 거처에서 치료 중이다.

상세가 작지 않아 그도 거동을 하기 힘든 지경이다.

잠시 후 초지항과 유상화가 들어왔다.

연화심이 입술을 깨물다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

“구양수가 강 대협이 목숨과 이 장원을 바꾸자고 제안해 왔습니다.”

“네?”

“그에게 강 대협을 살릴 방책이 있어요. 그 방책을 쓰려면 필요한 것도 가지고 있고요. 그걸 내주는 대신 장원을 요구하고 있어요.”

모두의 안색이 굳었다.

-쿨럭.

중랑이 상체를 일으키려다 말고 기침을 했다.

“오라버니, 무리하지 마세요.”

중랑은 기어이 일어나 앉았다.

“나는 화심의 결정에 맡기겠다. 다만 삼도문의 정신이 뭔지 잊지 않았으면 한다. 돌아가신 문주님이라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연화심은 중랑의 말에 곰곰 생각했다.

오래 생각할 것도 없었다. 사실 마음은 이미 결론을 내린 상태였다.

‘강 대협은 내 목숨을 구해 줬어. 만일 그가 아니었다면 내가 지금 이 장원을 되찾지도 못했다. 뭘 망설이는 거지?’

연화심이 결심을 굳히고 말했다.

“초 대주, 유 총관. 정말 미안하게 됐어요. 삼도문은 어디 가서 다시 세워도 됩니다. 하지만 목숨은 되돌릴 수가 없잖아요? 그가 제 목숨을 구했는데 장원에 연연해할 수 없어요.”

초지항과 유상화도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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