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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랑의 반토막 남은 검이 야장의 망치와 다시 한 번 격돌하였다. 검은 아예 박살이 나서 자루만 남았다.
동시에 남은 경력에 휩쓸려 중랑이 서너 장이나 미끄러지듯 물러났다.
“….”
중랑의 안색이 창백하였다. 검이 깨지며 내상을 입은 것이다.
중랑도 절대지경의 문턱을 넘어선 고수다. 그의 검이 보검은 아니었으나 절대고수의 경력이 실린 검은 그렇게 쉽게 깨져 나가지 않는다.
야장의 망치가 특별한 재질로 만들어진 게 분명했다.
“수천수만 번의 망치질을 해 왔다. 절대고수가 신이라 해도 나의 망치질을 감당할 수가 없다!”
이어 야장은 고함과 함께 몸을 날렸다. 서너 장 물러났던 중랑을 쫓아 날아간 야장이 허공에서 망치를 내리찍었다.
-부우웅!
경력이 가득 실린 망치가 허공을 부욱 그었다.
야장은 농부가 쓰러지는 걸 봤다. 갈급함이 일었다. 마음이 급하니 이번 한 번의 망치질로 끝장을 보려한 것이다.
그 역시 실전 경험이 부족했고 농부보다 신중함이 떨어졌다.
반면 중랑은 낭인 생활을 하며 겪은 풍부한 실전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야장이 전력을 다해 내리친 망치에는 거센 경력이 담겨 있었다. 게다가 어디로 피하든 그 자리에 떨어질 기세였다.
중랑은 피하는 대신 오히려 야장 쪽으로 달려가다 도약을 하였다.
그런데 자세가 특이했다.
상체는 뒤로 눕듯 땅으로 향하고 비스듬히 뻗은 발이 야장을 향했다.
“…?”
야장은 중랑이 피하는 대신 달려들자 흠칫 놀랐다. 급하게 내리치던 망치를 당겨 머리를 찍으려 하였다.
-파팍!
중랑은 자신의 양발을 가위처럼 교차하며 야장의 발을 엮으며 옆으로 몸을 틀었다.
-쉬이익!
중랑이 다리를 걸고 비트는 바람에 야장의 중심이 흔들렸다.
야장의 망치가 간발의 차로 중랑의 머리를 스쳐 허공을 내리찍었다.
-쾅!
망치가 땅에 부딪히며 거센 기파가 터졌다.
뒤이어 두 사람의 신형이 뒤바뀌었다. 중랑이 위로 올라가고 야장이 허공을 보며 누운 자세가 되었다.
야장은 전력을 다한 일수가 빗나가고 중랑이 교묘하게 중심을 흐트러뜨리자 일순 당황하였다.
망치를 되돌려 중랑을 치려 했으나 어느새 중랑의 얼굴이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제대로 가격하기에는 너무 가까웠다. 야장이 왼 주먹으로 중랑의 가슴을 가격하며 오른손에 쥔 망치를 짧게 고쳐 잡으려 했다.
-퍽!
그러나 공격은 허사로 돌아갔다. 중랑이 오른팔을 구부려 야장의 주먹을 막았다.
야장이 눈을 부릅떴다. 짧게 잡은 망치로 중랑을 치려는데 어느새 중랑의 왼팔이 그의 손목을 잡고 있었다.
거친 숨이 서로 섞였다.
두 사람은 땅바닥으로 떨어졌다.
-쿵! 퍽!
야장이 등으로 땅바닥에 떨어지는 순간 중랑이 팔꿈치로 야장의 명치를 가격하였다.
-우두둑!
체중과 경력을 담아 내리찍은 팔꿈치에 야장의 갈비뼈가 박살이 났다.
“허억!”
야장의 전신이 요동치고 입에서 바람이 빠지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부러진 갈비뼈가 폐를 찌른 것이다.
“허억, 허어어억!”
야장은 숨을 쉬지 못하고 헉헉, 거렸다.
중랑이 비칠거리며 일어나는 순간 야장이 마지막 숨을 내뱉었다. 몸은 아직도 잔경련으로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우욱!”
중랑이 참았던 핏덩이를 토했다.
내상을 입은 상태로 야장의 호신강기를 뚫느라 그의 장부 역시 충격을 받은 것이다.
“크흐흐. 이런 개싸움을 볼 줄이야.”
다시 숲에서 두 사람이 걸어 나왔다.
체격이 다부진 중년인은 기다란 톱을 들고 있었고, 그보다 약간 나이가 들어 보이는 사내는 짧은 망치와 쇠정을 양손에 나눠 들고 있었다.
강소군이 내심 탄식을 하였다. 대체 몇이나 저 숲에 은신해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연달은 격전으로 그의 기감은 이미 흐트러져 있어 숲 안의 정황을 감지하기 어려웠다.
다만 본능이 아직도 많은 적들이 웅크린 채 지켜보고 있음을 느끼고 있다.
-쉭!
강소군이 무애검을 중랑에게 던졌다.
중랑이 엉겁결에 날아오는 검을 받았다.
강소군이 양팔에 차고 있던 청홍비도를 뽑아 들었다.
중랑은 강소군이 홍옥비도 하나로 세 명의 초절정 고수를 해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문제는 그가 아니라 자신이었다. 중랑이 무애검으로 땅바닥을 짚고 대연의결을 운용하였다.
찰나의 짬이지만 조금이라도 내력을 더 회복해야 했다.
“크윽!”
뒤틀린 장부가 자리를 잡으며 다시 핏물이 솟구쳐 올랐다.
“퉤!”
핏물을 내뱉자 정신이 맑아졌다.
강소군은 청홍비도를 양손에 잡고 늘어뜨린 채 다가오는 두 사람을 주시하고 있었다.
“목수와 석공인가?”
강소군은 이제 그들의 병기만 봐도 대충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낭창낭창한 톱을 들고 있는 이는 목수가 분명했고 쇠정과 망치를 든 이는 석공으로 보였다.
두 사람은 강소군과 삼 장 거리에서 멈췄다.
“처참하네.”
톱을 든 사내가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반면 석공의 표정은 더없이 진중했다.
강소군이나 중랑은 무공 이전의 무언가를 보여 주었다.
죽이지 않으면 죽는다.
그렇기에 최후의 순간까지 적의 빈틈을 노리는 야수를 연상케 하였다.
“정말 놀라워. 이게 저 한 놈의 짓이라니.”
목수는 방금 전까지 날뛰던 농부와 야장이 차가운 주검으로 나뒹구는 걸 보고도 믿기지 않는다는 듯 뇌까렸다.
“자네도 목을 조심해야 할 것 같아.”
목수가 자신의 목을 쓰다듬으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들은 이미 강소군과 중랑이 내상을 입었음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잔뜩 경계를 하였다. 여러 동료들이 죽는 걸 봤으니 그럴 만했다.
농을 지껄이는 듯했으나 목수의 시선만큼은 강소군과 중랑을 유심히 살폈다.
석공은 나타나서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강소군을 뚫어져라 보기만 할 뿐이다.
강소군과 중랑은 내심 곤혹스러워 하는 중이었다.
백일도 천일창 만일검이라는 말이 있다.
도를 배우는 데 삼 개월이 걸리고 창은 삼 년, 그리고 검은 삼십 년이라는 속설이다.
이 말을 입증이라도 하듯 강호에서는 도를 쓰는 이가 가장 많았다. 창은 소지하기가 불편했고 검은 무의 극의를 추구하려는 문파들이나 썼다.
그 외에도 구나 겸, 도끼 등 다양한 병기들이 있으나 극히 소수에 불과했다.
기병은 익히기는 까다롭고 고수를 만나 운용법이 노출되면 쉽게 깨어질 수 있으니 다루는 이가 많지 않았던 것이다.
기병의 이점은 지금과 같은 경우에 있다.
숱한 격전을 치른 강소군이나 중랑도 두 사람이 어떤 식으로 공격을 해 올지 가늠할 수가 없었다.
목수의 양날톱은 낭창낭창 얇아서 도무지 무기로서의 효용이 없어 보였다.
석공의 쇠정과 짧은 망치는 더욱 그랬다.
석공은 방금 전까지 돌을 쪼다 온 사람 같았다. 허리에 묵직한 가죽주머니를 차고 있었다.
그럼에도 무시할 수는 없었다. 그들은 어찌 됐든 절대지경의 문턱을 넘은 자들이다.
“저놈은 내가 잡지.”
목수가 석공에게 이르고는 조금 떨어진 중랑을 향해 걸어갔다.
두 사람은 이미 상대를 정하고 나온 듯했다. 석공은 말없이 강소군을 노려볼 뿐이다.
중랑의 시선은 다가오는 목수를 보고 있었으나 머릿속은 방금 전 강소군이 농부를 쓰러뜨렸던 일검을 되새기고 있었다.
야장과 싸우는 그 절박한 순간에도 강소군의 일검을 흘깃 봤던 것이다.
‘그 일검에 육십사식이 모두 담겨 있었다.’
천성육십사식.
그 끝을 보았다고 여겼는데 강소군은 그 너머를 보여 주었다.
강소군도 이제 막 그 경지를 밟았다는 사실은 몰랐다. 아니, 알았다고 해도 별 차이는 없었을 것이다.
중랑은 무의 극의를 추구하는 검도의 길로 접어들은 자였다.
‘육십사식이 일검에 들어 있다?’
중랑에게는 놀라운 화두였다.
-지잉.
목수가 다가오자 무애검이 울었다.
강소군이 손에 쥐고 있을 때와는 또 다른 울림이었으나 중랑은 그것도 알 수 없었다.
무애검을 쥔 그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내상으로 기가 이어지지 않아 벌어지는 현상이었다. 그럼에도 무애검은 보채듯 계속하여 검명을 흘렸다.
“좋은 검이군!”
목수가 탐욕스러운 눈길로 무애검을 보았다.
“이 톱도 여러 가지 소리를 들려 주지. 들어 보겠나!”
목수가 자신의 톱을 흔들었다.
-파파팡!
얇고 긴 톱을 흔들자 허공에서 기파가 터지더니 맑고 청아한 기음이 울려 퍼졌다.
-채애애앵!
“초혼(招魂)이라고 하지.”
목수의 얼굴에 기묘한 웃음이 피어오르는 순간, 톱이 울리는 소리가 돌변하였다.
-끼이아아악.
마치 무간지옥 끝없는 어둠 속에서 악귀가 비명을 지르는 듯한 기음.
“크윽!”
중랑은 톱에서 터지는 예리한 기음에 내장이 찔리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
동시에 혼백이 흐트러지는 듯 정신이 아득해졌다.
-지잉!
무애검이 다시 울었다.
“…!”
순간적으로 정신을 차렸는데 어느새 톱이 자신의 목을 노리며 밀고 들어왔다.
톱이 파도치듯 낭창낭창 흔들리며 날아왔다.
중랑이 검을 세웠다.
목수의 톱이 검을 만나자 마치 썰어 버리겠다는 듯 척 달라붙었다.
톱날과 검이 엇갈리며 기음이 터졌다.
-끼아앙!
뇌리를 파고드는 기음에 중랑은 혼이 마비되고 몸이 움찔, 굳었다.
석공의 시선이 강소군을 훑었다. 마치 강소군의 상태가 어떤지 알아내려는 듯했다.
“…!”
강소군은 전신 신경이 곤두서는 걸 느꼈다. 본능이 위험하다는 경고를 연신 보내 왔다.
처음 나타났을 때부터 강소군은 목수보다 석공이 더 위험한 존재라는 걸 느끼고 있었다.
강소군이 석공의 짧은 망치와 뭉툭한 쇠정으로 시선을 주었다.
두 뼘 길이의 쇠정이다.
강소군이 자신의 쇠정을 보자 석공의 입가에 알 수 없는 미소가 걸렸다.
“궁금한가 보군.”
석공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돌에는 결이 있지. 아무리 단단한 암석도 그 결이 갈라지는 맥을 제대로 치면 두 쪽을 낼 수 있거든.”
“….”
“사람에도 그런 결이 있다는 걸 아나? 묘한 것이 사람마다 결이 다르다는 거야.”
석공이 왼손에 든 쇠정을 들어 올렸다.
“그 결이 갈라지는 맥에 쇠정을 박아 넣으면 단번에 끝낼 수 있지.”
이상한 말이었다. 맥이든 아니든 저 쇠정이 몸에 박히면 살아남을 자가 있을까?
그럼에도 강소군은 그의 말에 담긴 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고수들은 기로 자신의 몸을 보호한다. 절대고수의 경우에는 보통 사람이 찌르는 검이나 도에도 큰 부상을 입지 않는다.
다급한 순간 혈맥을 옮겨 치명상을 피하는 고수도 있다.
고수마다 자신 나름의 호신강기가 있는데 석공은 그 맥을 찾아내는 능력이 있는 듯했다.
다만 어떻게 쇠정을 사람의 몸에 박는다는 것인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궁금한가?”
석공이 강소군의 의문을 안다는 듯 다시 한 번 피식, 웃더니 쇠정을 들어 올렸다.
끝이 강소군을 가리켰다.
석공의 시선이 강소군한테 향하는 순간.
-쾅!
석공의 짧은 망치가 쇠정의 머리를 쳤다.
마치 앞에 돌이라도 있다는 듯 자연스러운 움직임이었다.
순간 쇠정이 사라졌다.
-파앗!
강소군은 순간적으로 몸을 비틀었으나 쇠정을 피할 수가 없었다.
“큭!”
강소군이 비틀거렸다.
이부에게 당하여 꿰맨 옆구리가 쇠정에 의해 움푹 뜯겨 나갔다.
석공이 번개같이 망치를 휘두르는 찰나의 순간, 본능에 따라 몸을 비틀었기에 망정이지 아니었다면 그대로 두 동강이 날 뻔했다.
“한 번은 피할 줄 알았다!”
석공의 무심한 말소리와 함께 다시 한 번 폭음이 일었다.
석공이 허리에 찬 가죽주머니에서 새로운 쇠정을 꺼내 들어 다시 친 것이다.
-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