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소군-160화 (160/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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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천황성 고수 아닌가요?”

남궁령이 재차 물었다.

“자세한 건 말해 주지 않았어요. 다만….”

연화심이 남궁령에게 아침에 일어났던 일을 말해 주었다.

남궁령은 다시 팽씨 형제를 찾아갔다.

“오늘은 자주 뵙소? 어쩐 일이요?”

남궁령에게 관심 있는 팽일소가 활짝 웃으며 반겨 주었다.

남궁령은 그러거나 말거나 용건부터 물었다.

“혹시 강 오라버니가 당신들을 구할 때 만났던 고수들이 천황성에서 온 자들 아닌가요?”

“천황성? 그렇게 듣긴 했는데….”

팽일소가 고개를 끄덕였다. 팽일소는 도피하면서 강소군에게서 그들의 정체에 대해 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천황성이라는 문파가 있다는 걸 이제까지 들어 보지 못해서 반신반의하고 있던 차였다.

“헉! 그렇게 위험한 자들을 만났으면 진작 말했어야죠! 지금 강 오라버니가 홀로 싸우러 갔다고요.”

팽일소는 천황성의 고수가 여기까지 왔다는 말에 놀라 벌떡 일어났다.

남궁령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밖으로 튀어 나갔다.

“무슨 일이냐? 누가 왔다 간 것이냐?”

소란을 듣고 팽일호가 방에서 나왔다.

“남궁 낭자가 왔었습니다. 그놈들이 여기까지 왔나 봅니다. 아직 본가에서 무사들이 오지 않았는데.”

팽일소는 나무꾼에게 당한 두려움이 있었다.

그들은 넘을 수 없는 벽과 같았다. 오죽하면 그가 천하제일이라고 믿는 친형 팽일호가 당할 뻔하지 않았는가.

팽일호가 두 눈을 부릅떴다.

“그놈들이?”

팽일호의 전신에서 기운이 강맹한 기운이 터져 나왔다.

팽일호는 두 명의 나무꾼을 상대하여 부상을 입긴 했으나 승복할 수 없었다.

나머지 한 나무꾼에 의해 팽가의 무사들이 연달아 죽고 동생의 목숨이 위험한 상황이 이어지자 제대로 싸워 보지도 못한 것이다.

팽일호는 아직 절정의 문턱을 넘지 못했으나 천하제일도라 불리는 오호단문도법을 대성하였다.

도법의 신묘함으로 한두 수 위의 고수를 감당할 자신이 있었다.

무엇보다 가문의 무사를 잃고 쫓겨 다닌 치욕을 잊을 수가 없었다. 정신을 차린 후 차라리 그때 싸우다 죽는 게 맞았다는 자책을 하고 있는 중이다.

팽가의 후예들이 적을 피해 쫓겨 다니다 삼도문에 은신하였다는 사실이 부끄러워 정파의 무인들이 모인 자리에도 나가지 않았던 팽일호다.

적이 왔다는 말을 듣자 두 눈에서 광망이 번뜩였다.

“그놈들이 어디 있다는 거냐?”

“강 대협이 홀로 싸우러 갔답니다.”

팽일호가 자신의 거처로 가더니 대도를 들고 나왔다.

“가자, 어디냐?”

***

남궁악은 창천검을 뽑아 살펴보고 있었다.

“창천이 돌아왔으니 창룡은 다시 무룡이라 불러야겠구나.”

남궁악이 중얼거렸다.

-지잉.

창천검이 당연하다는 듯 검명을 흘렸다.

“…!”

남궁악은 창천검이 오랫동안 손에 익은 듯 익숙했다.

창천과 무룡, 무애는 모두 보검이나 느낌이 달랐다.

창천은 말 그대로 푸른 하늘처럼 무궁한 기운을 담고 있다. 무룡은 강맹한 느낌이고 무애는 거침이 없었다.

창궁무애검법과 가장 잘 어울리는 검이 창천검이라는 말을 들었다.

‘사형은 죽었을까?’

확실하지는 않지만 자신에게 무척 잘해 주었던 소년에 대한 기억이 있다.

‘아버지는 왜 사형에 대해서 한 마디도 하지 않았을까?’

남궁악은 창천검에게 그 사연을 묻기라도 하듯 천천히 검신을 쓸었다.

그때 남궁령이 허겁지겁 뛰어 들어와 소리쳤다.

“강 오라버니가 강적을 찾아갔는데 천황성 고수래요!”

남궁악이 벌떡 일어났다.

“혼자 갔단 말이냐?”

“그렇대요!”

남궁령이 울상을 지었다. 쌍렵이나 봉황수를 겪어 봤기에 천황성의 고수들이 얼마나 강하고 잔인한지 너무나 잘 알았다.

“우아를 오라고 해라.”

마침 남궁우가 들어섰다.

“삼도문 분위기가 어딘가….”

남궁악이 창천검을 남궁우에게 건네며 말했다.

“잘 보관하고 있거라.”

“어디 가시게요?”

남궁령은 남궁악이 천황성 고수를 상대하러 가겠다고 하자 화들짝, 놀랐다.

강소군을 걱정하는 마음에 아무 생각 없이 고했는데 남궁악이 대뜸 나설 줄은 몰랐다.

“오라버니, 그런 고수가 세 사람이라고 했어요. 여기 정파의 무인들이 모였는데 규합하여 모두 같이 가는 게 어떻겠어요?”

남궁악이 고개를 저었다.

“천황성의 고수라면 괜한 희생만 생길 것이다. 강 아우도 그걸 아니까 혼자 간 게지. 삼도문이 흑천맹하고 대치하고 있으니 정파 무인들은 여기 있어야 한다. 너희도 여기 있어라.”

“싫어요! 나도 갈래요.”

남궁령이 극구 따라 나섰다.

“위험하다니까.”

“죽음이 두려워서 피한다면 남궁가를 뭘로 보겠어요.”

남궁령이 고집을 부리자 남궁악도 더 이상 말릴 재간이 없었다. 다만 남궁우에게 다시 한 번 당부했다.

“이 검은 반드시 집으로 가야 한다. 너는 남아 있어라.”

남궁우는 가슴이 먹먹해졌다. 남궁악은 혹시 모를 경우를 대비한 것이다.

“무사들을 데려가세요.”

“령아에게 두 사람만 붙여 줘.”

잠시 후 남궁악과 남궁령, 그리고 무사 둘이 삼도문 대문을 나섰다.

팽씨 형제는 그보다 앞서 나갔다.

***

“팽씨 형제에 이어 남궁악도 나갔다는 말이지?”

제갈선이 수하의 보고를 받고 고개를 끄덕였다.

제갈선은 삼도문에 들어온 뒤 주요 고수의 동정을 살피고 있었다.

그런 그가 상황을 파악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천황성, 드디어 모습을 드러내는 것인가?’

제갈선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수하에게 말했다.

“본가의 무사 중 발 빠른 자들 몇을 골라 초화평으로 가라. 가서 잠복하여 무슨 일이 있는지 파악해야 할 것이다. 절대 모습은 드러내지 마라.”

제갈선은 무사 몇을 보내고 철권호를 찾아갔다.

“맹주, 삼도문에 강적이 나타난 모양입니다.”

“강적? 흑천맹 외에 또 다른 자들이 있소?”

철권호가 눈살을 찌푸렸다.

“혹 천황성이라는 말을 들어 보셨습니까?”

철권호가 흠칫, 놀랐다.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봉황수가 천황성 사람이라는 소문을 듣기는 했소.”

“역시 알고 계셨군요. 그자들이 나타난 것 같습니다.”

철권호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가 천황성을 모를 리 없다. 절대지경의 문턱에 걸려 있던 그를 이끌어 준 자가 천황성 천주이니까.

하지만 천황성이 어떤 의도를 지닌 곳인지 그 역시 확실히 모른다.

그가 보기에 강호와는 동떨어진 별세계에서 무공만을 추구하며 사는 집단 같았다.

그랬기에 공손 노야란 자가 무림맹주의 자리를 청했을 때 의외라고 생각했었다.

천황성의 의도는 몰랐지만 그는 거절할 수 없었다.

아픈 아내가 조왕의 장원에 머물고 있다.

그는 아내를 치료하는 대가로 조왕의 청을 세 가지 들어주기로 했다.

마지막 청이 천황성의 명을 한 번 들어 달라는 것이었다.

제갈선이 상황을 설명했다.

철권호는 잠시 망설였다. 하지만 그 역시 천황성의 의도가 궁금했다.

천황성은 그에게 절대 존재를 드러내지 말라고 했다. 그런데 스스로 모습을 드러내다니.

“천하비무대회에 참가하는 자를 노리다니. 확실히 수상한 곳이긴 하오.”

철권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심 짐작하기로는 자신을 무림맹주 자리에 앉히기 위해 경쟁자를 제거하려는 듯 보였다.

그로서는 무척 불쾌했다. 절대지경의 문을 넘어선 그는 누구와 붙어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다.

만일 천황성이 그런 의도라면 직접 나서서 물리라고 할 참이다.

그는 정정당당한 승부를 원했다.

“천황성이 어떤 곳인지 확실치 않은데 여러 사람 갈 것 없소. 내가 직접 가겠소.”

“함께 가겠습니다.”

제갈선이 동행을 청했다.

철권호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

-쾅!

벼락이 떨어지기라도 한 듯 초화평이 요동쳤다.

붉고 노란 꽃과 연약한 풀들이 사방으로 비산하였다.

농부의 낫은 두 자루였건만 끊임없이 강소군의 목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하나를 막아내면 곧바로 다시 하나가 날아들었다.

농부의 신법은 놀라워서 그가 어디로 피하든 지척거리로 따라붙어 낫으로 찍으려 들었다.

어찌 된 일인지 농부의 신형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강소군의 좌측, 시선의 사각 지역에서 낫을 휘둘렀다.

-쉬쉬식!

단순하고 정직한 낫질이었다.

목을 벨 때까지 백 번 천 번이라도 치겠다는 의도가 실려 있었다. 단조롭지만 가장 효과적인 공격이었다.

강소군이 가까스로 낫을 피할 때마다 실려 있던 경기가 땅바닥을 후려쳤다.

-콰콰쾅!

빗나간 낫의 경기가 땅을 칠 때마다 벼락 치듯 폭음이 연달아 일어났다.

그때마다 연약한 꽃잎과 풀들이 사방으로 비산하여 시야를 가렸다.

그 사이로 다시 강소군의 목을 노리고 낫이 날아들었다.

집요한 공격이었다.

강소군이 보기에 농부 역시 실전경험은 많지 않았다. 그럼에도 무척 영리한 자였다.

-쾅!

중랑과 야장이 싸우는 곳에서도 거대한 폭음이 일었으나 돌아볼 새가 없었다.

강소군이 몸을 회전하며 중랑이 있는 쪽을 보았다.

야장의 망치에 중랑의 검이 깨졌다.

강소군은 자신의 청옥비도를 던져 주려 했으나 농부는 틈을 주지 않았다.

승기를 잡았다는 듯 더욱 거세게 낫을 찍어댔다.

-파파파팍!

쉴 사이 없이 날아드는 낫의 그림자.

강기가 실려 있는 낫이라 경시할 수가 없었다.

연달아 날아드는 낫을 피하거나 쳐내며 강소군은 문득 완성된 초식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완성된 초식.’

지금 농부의 낫질은 단순하지만 완성된 초식이라고 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현치자가 그랬다. 초식의 끝을 보았느냐고.

강소군은 지금 초식의 끝을 보고 있었다. 그 위력은 결코 심검에 못지않았다.

농부의 무공 수위는 쌍렵보다 조금 나았지만 초식의 완성도는 강소군이 만난 그 누구보다 높았다.

심지어 상관무영보다 초식으로는 한 수 위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사선으로 내리찍는 낫.

그 단순한 동작이 궁극의 초식이라니.

“…!”

강소군은 퍼뜩 깨치는 바가 있었다.

천성육십사식.

최초 육식에 계속하여 중첩이 되는 검법. 남은 사식이 매화검의 원리가 들어간 변초라는 건 강소군도 알고 있었다.

봄날 매화가 만개하듯 별무리를 잉태하는 사식.

‘그 많은 초식이 한 번의 낫질이나 다를 바 없다니.’

스치는 생각이었지만 이미 예정되었던 것처럼 강소군의 손발이 움직였다.

천성육십사식의 검로를 따르던 검이 돌연 멈췄다.

날아드는 낫을 향해 검을 세웠다.

-쾅!

낫과 검이 기어이 부딪쳤다.

순간 허공에서 폭음이 터졌다. 낫과 검을 중심으로 연달아 기파가 터져 나갔다.

-서걱!

낫과 얽혀 있던 강소군의 검이 사선으로 미끄러지며 농부의 상반신을 베었다.

가슴이 길게 베였건만 농부는 눈썹만 꿈틀거렸을 뿐 신음성조차 없었다.

허공에 멈춘 자신의 낫을 보더니 천천히 뇌까렸다.

“싸우면서 깨닫는 자가 있다더니 그게 바로 너였군.”

얼핏 보기에는 강소군의 검이 가볍게 스친 듯했으나 이미 농부의 장부는 박살이 났다.

“당신의 낫질은 절대지경 이상이었소.”

강소군이 진심을 담아 말했다.

불취와 싸우며 완성된 초식에 대한 깨달음을 얻었다. 그때가 깨달았을 뿐이라면, 오늘은 깨달음을 발현한 것이다.

깨달음은 깨달음일 뿐 이를 적용하는 건 또 다른 과정이다.

강소군은 농부의 단순 정직한 낫질을 겪으며 완성된 초식이 무엇인지 보았고 천성육십사식의 완성을 이루었다.

“크흐흐. 천주가 네놈을 보았다면 정말 탐을 냈겠군.”

농부가 서서히 쓰러졌다.

-쾅!

동시에 중랑이 있는 쪽에서 다시 폭음이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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