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소군-157화 (157/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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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궁세가의 인물이 천황성에 의탁하다니.

“사형이라면 남궁 가주의 제자였단 말이로군요.”

남궁악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렸을 때라 기억이 정확하지는 않지만 내가 사형이라 불렀던 건 기억하지.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창천검과 함께 사라졌다네.”

“….”

“당시 나는 어려서 자세한 건 몰랐지만 아무튼 사형이 사라진 뒤 아무도 거론하지 않아 이상하게 여겼다네. 그 뒤로 잊고 있었는데 오늘 창천검을 보다니.”

남궁악도 자세한 내막은 모르는 듯했다.

남궁악이 창천검을 보며 감개무량한 듯 말했다.

“이 검은 본가의 상징과도 같았지. 자네가 창천검을 찾아준 걸 보면 아무래도 우리 가문과 인연이 깊은 모양이네.”

“부탁받았기에 한 일입니다.”

“다른 사람이라도 그랬을까? 손에 들어온 보검을 선뜻 내줄 자가 몇이나 되겠나.”

그때 남궁우가 들어왔다.

“형님들, 와 보세요. 철권호 대협이 오셨어요.”

***

소문이 퍼지며 삼도문으로 속속 정파의 무인들이 모여들었다.

무림맹 창설을 코앞에 두고 여러 문파에서 모이자 은근한 경쟁 심리가 일었다.

그러나 철권호가 나타나자 문파를 가리지 않고 수많은 무인들이 모였다.

철권호는 정파인들이 모두가 존경하는 협객이다.

대청으로 가니 연화심이 철권호와 상석에 앉아 있고 여러 무림인들이 양쪽으로 줄지어 앉아서 환담을 나누고 있었다.

제갈선은 물론 내원에서 요상중이었던 팽씨 형제도 나왔다. 노이칠은 보이지 않았다.

강소군과 남궁 형제가 대청으로 들어서자 철권호의 시선이 향했다.

남궁악이 한 팔로 예를 취했다.

“명성은 익히 들었으나 이제야 뵙는군요.”

철권호가 자리에서 일어나 정중히 포권을 하였다.

“십대고수를 만나게 되다니 나야말로 영광이오.”

“허명에 불과한 걸 거론하시니 부끄럽군요.”

“하하하. 그럴 리가 있겠소. 남궁세가의 창궁무애검법이 강호에서 짝을 찾아보기 어려운 절학이고 이를 대성한 천재가 허명이라고 하면 나는 뭐가 되겠소.”

철권호는 위풍당당했다.

강소군의 눈에 이채가 흘렀다.

남경 주고후의 사례회에서 만난 철권호와 약간 분위기가 달랐다.

‘그사이 화후가 한층 높아졌구나.’

강소군은 철권호가 절대지경에 들었음을 깨달았다.

과거 절대지경의 문턱에 서 있었다면 지금은 확실히 넘었음을 느낄 수 있다.

철권호가 강소군을 보았다.

두 사람은 남경 밖 사례회장에서 한 번 겨룬 적이 있었다.

“오랜만이오. 강 공자.”

강소군도 가볍게 포권을 하였다.

철권호가 마주 예를 취하고는 몸을 돌려 다시 상석에 앉았다.

제갈선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흑천맹을 상대하고자 여러 동도께서 모이셨으니 제안을 하나 하고자 하오.”

제갈선이 좌중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이 자리에 오대세가 가운데 세 집안이 있군요. 게다가 여러 명숙과 철권호 대협까지 함께하고 있소.”

“여러 사람이 모이면 생각도 많아지오. 생각이 많아지면 자칫 혼란을 일으킬 수도 있소. 그러니 구심점이 필요하지 않겠소?”

제갈선이 철권호를 바라보며 말했다.

“나는 철권호 대협께서 잠시 그 역할을 맡아 주셨으면 하오. 모두 어찌 생각하시오?”

“….”

모두가 철권호를 바라보았다.

철권호가 자리에서 일어나 예를 취하며 말했다.

“나는 한낱 무부에 지나지 않소. 무리를 이끄는 자는 지혜가 있어야 하오. 지혜와 덕을 갖춘 분께서 맡아야 할 것이오.”

철권호가 정중히 사양을 하였다.

한 사람이 벌떡 일어나 말했다.

“오행문주 음하군이오. 나 역시 제갈 선생의 말씀처럼 철권호 대협이 가장 적임자라고 생각합니다.”

음하군의 말에 여기저기서 동조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철권호가 몇 차례 사양을 하였으나 여러 사람이 한목소리로 추대하자 결국은 수락하였다.

철권호가 여러 사람에게 예를 취한 후 말했다.

“부족한 본인을 앞으로 내세운 뜻이 흑천맹과의 일전에서 선봉에 서라는 걸로 알겠소.”

제갈선이 다시 일어났다.

“여러 사람과 문파가 모였으니 명칭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여기 모인 분들의 의기를 받들어 당분간 의천맹(義天盟)이라 이름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좋소!”

“무림맹을 따로 만들 게 아니라 그냥 의천맹으로 정파의 구심점을 삼읍시다!”

모두가 동조하였다.

철권호의 등장과 함께 빠르게 의천맹이 결성되었다.

***

“철권호라면 부족함이 없는 자이지. 제갈선이 머리를 잘 썼군그래.”

노이칠이 말했다.

강소군이 무슨 뜻이냐는 눈빛으로 노이칠을 바라봤다.

삼도문 별원.

연화심이 강소군에게 일전에 쓰던 거처를 내주었다.

별원 연못가 정자에 노이칠과 강소군이 앉아 차를 나누고 있었다.

“조만간 대파에서도 이곳으로 사람을 보낼 것이네. 세가 연합에서는 남궁악을 내세우려고 했는데 한 팔을 잃고 말았으니 세가 없는 철권호를 무림맹주로 추대할 생각인 듯하네.”

소림이나 무당, 화산 등 대파에서 무림맹주를 맡으면 아무래도 세가는 위축될 수밖에 없다.

“정치적인 뜻이 담겨 있다는 거로군요.”

“무림맹이라는 게 과거 천하사패와 같이 한 문파가 패권을 차지하는 걸 막기 위함이 아닌가. 태생이 정치적이라고 볼 수 있지.”

“세가와 대파가 서로 견제를 하는 사이인가 보군요.”

“아무래도 그렇지 않겠는가? 무림맹이 결성되면 이권도 상당할 것일세. 세가는 그걸 놓고 싶지 않은 게지.”

“대파가 보고만 있겠습니까?”

“철권호라면 대파에서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네. 그는 무공도 무공이지만 협의지사로 모두가 존경하니까.”

“….”

“무슨 생각을 그리 하는가?”

강소군이 말없이 생각에 잠겨 있자 노이칠이 물었다.

“천황성이 어떤 식으로든 무림맹 결성에 개입하리라 봤는데 뜻밖에도 의천맹이 먼저 결성됐지요. 이대로라면 의천맹이 무림맹을 대신할 가능성도 높을 것 같군요.”

“그럴 가능성이 크지. 아니, 그런 의도로 제갈선이 철권호를 추대한 것일 게야. 천하비무대회를 열어도 철권호와 같은 고수를 찾기 어려울 것이네.”

“거꾸로 생각해 보면 의천맹 결성에 천황성의 의도가 개입되었을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

강소군의 말에 노이칠이 흠칫, 놀랐다.

노이칠이 곰곰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도 있겠군. 본시 무림인들이 화합을 하기가 쉽지 않은데 의천맹은 이상스레 일사천리로 결성된 감이 있지.”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데 별원 문 쪽에서 한 사람이 걸어왔다.

철권호였다.

건장한 체구가 뚜벅뚜벅 걸어오는데 장중한 기도가 절로 흘렀다.

“자네를 찾아온 게로군. 나는 이만 가 보겠네.”

노이칠이 슬그머니 정자를 내려가 사라졌다.

철권호가 정자로 곧장 다가왔다. 노이칠이 사라진 쪽을 잠시 보고는 말했다.

“자네가 대정무각과 관계가 깊다는 게 뜻밖이군.”

“의천맹주의 자리에 오르신 걸 축하드립니다.”

강소군이 동문서답하였다.

철권호의 안색은 그리 좋지 않았다. 대청에서 볼 때와는 사뭇 분위기가 달랐다.

철권호가 가볍게 탄식을 하였다.

“사람이란 때로 원치 않는 일도 하게 된다네.”

“….”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니라 진심이 담겨 있는 말투에 강소군이 철권호를 주시했다.

철권호가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지난 일로 아직 감정이 남았다면 잊어 주게. 나는 다 잊었네.”

철권호는 확실히 호한이었다.

“자네가 남궁세가의 위기를 구한 사실을 듣고 과거 오해를 풀었지.”

철권호는 강소군이 남경 명문가 공자들을 상해하는 걸 보고 그를 탐탁지 않게 여겨 그와 겨뤘던 것이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네. 의천맹과 함께해 줄 수 있겠나?”

“…?”

“자네가 삼도문주가 위기에 빠졌을 때 구해 주었다고 들었네. 지금 다시 삼도문이 흑천맹으로부터 위협을 받고 있지 않는가. 기왕에 나선다면 함께하자는 뜻이네.”

“의천맹과 함께하자는 게 무슨 뜻입니까?”

강소군이 잠시 생각하고는 되물었다.

철권호의 눈에 이채가 흘렀다.

정중한 어투와 진중함이 남경 밖 사례회에서 볼 때와 다른 사람처럼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때 강소군은 혈마라는 별호답게 패도적인 기세와 살기가 넘쳐흘렀다.

“말 그대로네. 사람들이 덜렁 나를 맹주로 뽑았네만 의천맹은 아무런 조직도 힘도 없지. 그러니 자네가 의천맹 주요 직책을 맡아 함께해 주기를 바라네.”

강소군이 잠시 생각하다 물었다.

“의천맹이 무림맹으로 이어질 것 같더군요. 그러면 무림맹주의 자리에 오르시는 셈이 되겠군요.”

“그건 알 수 없는 일이지.”

“만일 다수의 의견이 그렇게 흐른다면 받아들이실 겁니까?”

“그게 순리라면.”

강소군이 철권호를 주시했다.

철권호는 대청에서 의천맹주의 자리를 거듭 사양했다. 그런데 지금은 무림맹주의 자리에 오를 의지를 확실히 보여 주었다.

강소군이 고개를 숙이고 잠시 생각하다 가볍게 탄식하고 말했다.

“나는 무림인이 아닙니다. 무림맹에 있을 이유도 없지요.”

철권호가 의외라는 시선으로 강소군을 보다 갑자기 크게 웃었다.

“하하하. 자네가 무림인이 아니라니. 이거야말로 황당하군. 무림인이 따로 있나?”

“몇 가지 일을 처리하기 위해 잠시 강호를 돌아다니고 있을 뿐입니다.”

“아무튼 지금 삼도문에 있다는 건 흑천맹을 대적하기 위함이 아닌가?”

철권호도 지난날 강소군이 삼도문을 위해 천무방과 싸웠던 걸 알고 있다.

“삼도문에 인연이 있어 와 있는 것뿐입니다.”

“아쉽군.”

철권호는 강소군의 의지가 확실함을 알고는 더 이상 권하지 않았다.

***

“헉!”

아침 일찍 대문을 열던 수문 무사가 놀라서 숨을 들이켰다.

대문 앞에 두 개의 관이 놓여 있었다.

소식을 듣고 연화심과 유상화 등이 나왔다.

“관에 뭔가 적혀 있는데요?”

유상화가 가까이 가서 살펴보았다.

‘강소군의 관’이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

“뭐? 강 대협 이름이 적혀 있다고?”

연화심이 놀라 되물었다.

유상화가 관을 열어 봤는데 시신이 없는 빈관이다.

유상화가 옆에 있는 관을 봤다. 거기에는 아무 글귀도 적혀 있지 않았다.

“헉!”

유상화가 그 관도 열어 보다 말고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시신이 한 구 놓여 있었다. 죽은 지 며칠 되었는지 부패가 진행되고 있어 시신 썩는 냄새가 진동하였다.

“이게 무슨 일입니까?”

유상화가 코를 움켜쥐며 말했다.

연화심이 옆에 있는 무사에게 일렀다.

“강 대협을 모셔 와라.”

잠시 후 강소군이 왔다.

‘그 나무꾼이로군.’

팽가 형제를 구하고자 싸우다 죽인 천황성의 고수다.

남은 나무꾼들이 기어이 쫓아온 모양이다.

“흑천맹이 이상한 수를 쓰는군요. 강 대협을 딱 집어서 이런 해괴한 짓을 벌이다니 도무지 이유를 알 수가 없군요.”

연화심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중얼거렸다.

흑천맹이 한 짓으로 오해한 것이다.

“아니, 흑천맹 짓이 아니오. 나를 쫓는 자객이 있는데 그들이 찾아온 것 같소.”

“자객이라니요?”

“….”

“지금 본문에 정파의 여러 고수들이 모여 있어요. 그런데 이런 대담한 짓을 하다니. 무사들을 풀어 잡아 올게요.”

연화심의 말에 강소군이 고개를 저었다.

“절대지경의 고수들이오. 함부로 나서선 안 되오.”

“그런 고수가 이런 짓을?”

“문주 말대로 여기에 정파 고수들이 모여 있잖소. 아무리 절대고수라도 버겁겠지.”

강소군이 주위를 살폈다.

“나를 따로 부르는 게 분명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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