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소군-156화 (156/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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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장추는 천무방의 세 대주와 격전을 벌이고도 지친 기색이 없었다.

놀라운 무위였다. 천무방 세 대주는 절정고수들이다.

구양수는 이를 알면서도 고장추 앞에 섰다.

“내 칼에 죽겠다는 거냐?”

고장추가 대도를 겨눴다.

“죽는 건 네놈이다!”

구양수가 가죽 주머니에서 뭔가를 한 움큼 집어 뿌렸다.

-쏴아아!

미세한 쇠가루 같은 모래가 확, 퍼져 고장추를 덮었다.

“사형!”

흑희가 놀라 소리쳤다.

“흥! 고작 이까짓 암수를 믿었단 말이냐?”

고장추가 호신강기를 끌어 올리며 대도를 휘저어 날아드는 모래를 흐트러뜨렸다.

모래를 단숨에 날려 버릴 듯 거센 도풍이 일었다.

“엇!”

고장추의 눈썹이 꿈틀하였다.

가볍게 날아갈 것이라 생각했던 모래는 도풍을 뚫고 날아왔다. 그제야 보통 모래가 아닌 걸 깨달은 고장추가 호신강기를 극성으로 끌어 올리며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동시에 벼락같이 도를 휘둘러 도강을 뿜어 냈다.

거대한 도강이 철벽처럼 드리워졌으나 모래는 이마저도 뚫었다.

고장추가 다급한 김에 왼손으로 일장을 휘둘렀다. 공력을 극한까지 담은 장에서 거센 장력이 터졌다.

-펑!

엄청난 장세가 펼쳐졌다. 허공에서 고장추의 내력이 터지며 모래가 비산하였다.

“크윽!”

주위에 있던 무인들이 모래 폭풍에 휩쓸려 쓰러졌다.

“아악!”

무인들은 살을 파고드는 모래로 인한 고통을 느끼며 데굴데굴 굴렀다.

그도 잠시 몸부림치던 무인들이 잠잠해졌다.

“으윽!”

고장추도 뒤로 물러나며 자신의 왼손을 보았다. 전신 내공을 터뜨렸건만 모래를 다 막지 못했다.

손바닥에 까만 모래가 박혀 있다.

“흐흐흐. 염왕사라고 들어 봤나? 네 팔을 빨리 자르지 않으면 죽을 거야.”

고장추의 안색이 흠칫, 굳었다.

염왕사.

탈혼백침과 더불어 당문의 삼대 비기 중의 하나다.

“사형!”

흑희가 날아오더니 고장추의 왼쪽 어깨 혈도 몇 군데를 찍었다.

그리고 재빨리 해약을 먹였다.

“그까짓 해약으로 감당할 수 있을 것 같나?”

“두고 보자! 사형이 잘못되면 천무방부터 쓸어버리고 말 것이다!”

흑희가 독랄한 눈빛으로 구양수를 노려보았다.

“그거야 나중 일이고. 우선 네 사형 팔부터 자르라니까.”

구양수의 말에 흑희가 고장추를 쳐다보았다.

대도를 쓰는 고장추에게 한 팔이 없다는 건 치명적이다.

“나는 괜찮다!”

고장추가 내공을 끌어올려 왼팔에 주입하였다.

“내공을 쓰면 독이 더 빨리 퍼질 텐데… 엇!”

고장추가 독을 몰아내려는 걸 비웃던 구양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고장추의 손바닥에 박혀 있던 염왕사가 서서히 밀려나는 게 아닌가?

고선은 자신의 아들이 흑도를 일통한 대종사가 되기를 원했다.

어려서부터 가혹한 훈련을 시키고 온갖 영약을 구해 먹였다.

고장추는 가히 절대고수라고 해도 좋을 경지다.

한 가지 더 변수가 있다면 구양수의 염왕사는 당문의 비기이나 극상품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염왕사는 강기도 뚫는 쇠모래에 극독이 함유되어 있다.

당문은 염왕사의 치명적인 결과를 알기에 외부로 유출하는 경우 독의 등급을 제한한다.

당가의 직계가 쓰는 염왕사는 신체에 박히는 순간 극독이 순식간에 퍼져 절대고수도 목숨이 경각에 달한다.

하지만 외부로 유출하는 염왕사는 일반 사람들에게는 치명적이나 독에 내성이 있는 고수라면 약간의 여유를 가질 수 있는 수준이다.

그랬기에 고장추가 아직 서 있을 수 있었던 것이다.

고장추는 내력을 이용해 염왕사를 밀어냈으나 독기마저 제압할 여유는 없었다.

“가자!”

고장추가 흑희에게 말했다.

싸움도 중요했지만 독기를 배출하는 게 우선이었다.

“크흐흐. 그러게 진작 가라고 할 때 가지. 똥인지 된장인지 꼭 찍어 먹어 보는 놈이 있단 말이야.”

구양수가 비웃었으나 고장추는 묵묵히 돌아섰다.

“퇴각한다!”

고장추의 외침에 십이지대 무인들이 일제히 물러났다.

“쫓지 마라!”

구양수가 천무방 무인들을 물렸다. 명을 내리지 않아도 천무방 무인은 쫓을 기력이 없었다.

수적 열세인지라 이 대 일로 싸웠기에 대다수가 피범벅이다.

그리 길지 않은 싸움이었지만 양쪽 사상자는 이백여 명이나 되었다.

고수들의 격전이었기에 일초 일초가 살수였고 치명적이었던 것이다.

“제기랄!”

구양수가 시신으로 나뒹구는 백여 명의 천무방 무인을 보고 분노하였다.

대충 봐도 천무방 쪽이 좀 더 희생자가 많았다.

구양수에게는 한 사람 한 사람이 천무방의 자산이다.

구양수가 주태 등에게 화풀이를 하였다.

“이게 뭐 하자는 짓이야. 한 사람 복수를 하겠다고 이 많은 무인을 희생시키다니!”

조배극의 복수를 하자고 주장한 걸 탓하는 것이다.

“이공자도 무림인 아닙니까? 형제가 당하며 그만큼 되갚아 주는 건 당연한 일이오.”

“일에 선후가 있어야지. 무작정 싸우겠다고 들면 목숨이 열 개라도 남아나겠냐고!”

구양수가 워낙 기세등등하게 화를 내니 주태 등도 말문이 막혔다.

“어찌 됐든 이대로 못 돌아가. 저놈들 다 죽여 버리고 말겠다.”

구양수는 방금 자기가 한 말과 배치되는 줄도 모르고 펄펄 뛰었다.

“퇴각하여 적당한 곳에서 야영을 한다.”

천무방이 동료의 시신을 거두어 퇴각했다.

그에 반해 십이지대는 동료들을 놔두고 떠나 버렸다. 삼도문 앞에 수십 구의 시신이 널렸다.

“흑도 놈들은 동료의 시신도 돌보지 않는군. 그러니 흑도지.”

초지항이 투덜거렸다.

그러나 적들이 양패구상하여 물러나니 안도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화천대원과 삼도문도들도 긴장했던 얼굴을 풀었다.

“적들은 다시 올 거예요. 경계를 늦추지 말아요.”

연화심이 초지항에게 명했다.

초지항이 문도들을 데리고 나가서 십이지대의 시신을 거두어 화장하였다.

***

다음 날.

한 무리의 사람들이 삼도문 쪽으로 몰려왔다.

“무림인들이 오고 있습니다.”

수문 무사의 보고를 들은 유상화의 눈빛이 빛났다.

총총 달려가더니 대문 앞까지 나가 무리 앞에 오는 이에게 가서 포권을 하였다.

“삼도문 총관 유상화라고 합니다. 무슨 일로 삼도문을 찾으셨는지요.”

단정한 수염을 기른 중년 문사가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나는 제갈선이라 하네. 삼도문이 흑도의 무리에게 공격을 받는다는 소식을 듣고 여러 동도와 함께 왔다네.”

“아, 그러시군요. 문주님께 아뢰고 오겠습니다. 우선 객청으로 드시지요.”

유상화는 나는 듯이 대청으로 달려갔다.

대청에는 연화심과 강소군, 중랑, 노이칠이 모여 다음 대책을 논의하고 있었다.

유상화가 정파 사람들이 왔다고 하니 연화심이 의외라는 얼굴로 좌중을 돌아봤다.

“일단 만나서 무슨 뜻으로 왔는지 들어 봐야 하지 않겠나.”

노이칠이 말했다.

“그럼 손님들을 대청으로 모시겠습니다.”

유상화가 대청을 나가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일단 끌어들이는 데는 성공했구나. 다음 수순도 생각대로 되어야 할 텐데.’

유상화는 삼도문을 찾아온 무한 일대의 상인과 농민들에게 한 가지 부탁을 하였다.

삼도문과 관련하여 소문을 퍼뜨려 달라는 것이었다.

부탁을 받은 상인과 농민들은 객잔 반점마다 찾아다니며 큰 소리로 떠들었다.

“삼도문이 귀환하였는데 흑도의 무리가 노리고 왔다지 뭔가?”

“무한에 무림맹이 들어선다고 하여 기대를 했는데 흑도가 먼저 차지하다니. 정파무림은 뭐 하는 거야?”

“홀로 남궁세가를 구한 혈마 대협이 삼도문을 위해 왔다고 하더군. 흑도가 제아무리 날뛰어도 일천 무인을 물리친 혈마 대협을 감당하겠어?”

“무림맹이 무한에 있어야 할 필요가 있을까? 제 안방에 흑도가 판치는데도 아무것도 하지 않잖아.”

무한 일대에 삼도문과 흑천맹의 싸움 소식이 퍼졌고 강 건너 불구경하는 정파무림에 대한 비난이 쏟아졌다.

자연 천하비무대회를 위해 무한에 와 있는 정파무림인들이 삼삼오오 삼도문과 흑천맹의 싸움을 거론하였다.

남궁세가와 함께 무림맹 추진에 앞장서고 있는 제갈세가 제갈선이 그런 정파무림인들을 규합하여 삼도문으로 온 것이다.

정파무림인들은 서른 명가량 되었는데 제갈선이 대표 역할을 하였다.

연화심과 중랑이 삼도문을 대표하여 제갈선을 맞았다.

제갈선이 연화심에게 포권을 하였다. 어린 여자지만 일문의 문주이니 먼저 예를 취한 것이다.

“제갈세가의 제갈선이오.”

“삼도문 연화심입니다.”

인사가 끝나고 제갈선이 말했다.

“삼도문이 흑천맹의 위협을 받는다는 소식을 듣고 왔소. 서두른다고 서둘렀는데 이미 한차례 격전이 있었다고요?”

“우리와 싸운 건 아니고 천무방과 격전한 후 퇴각한 상황입니다.”

연화심이 떨떠름해하며 말했다.

정파무림이지만 이렇듯 인연도 없는데 도움을 주겠다고 몰려온 경우는 들어 본 적이 없다.

“무림맹을 만드는 취지가 무엇이겠소. 사마외도 흑도의 무리로부터 정파의 안위를 지키고자 하는 것 아니겠소. 아직 무림맹이 정식 출범을 하지는 않았지만 삼도문이 흑도에게 위협을 받는 걸 좌시하지 않을 것이오.”

제갈선도 나름 노리는 바가 있었다. 삼도문과 흑천맹의 대치를 정파무림이 결속하는 계기로 삼고자 하는 것이다.

“개방을 통해 정파무림에 통지를 하였소. 아마 수일 내로 많은 정파의 협사들이 모일 것이오.”

연화심으로서는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흑천맹이나 천무방 모두 물러간 상황이 아니다.

“아직 적이 잠잠하니 일단 객사에 머무르시지요.”

연화심이 유상화에게 정파무림인들의 거처를 마련하고 지시하였다.

제갈선의 말대로 그날 오후부터 정파무림인들이 삼삼오오 몰려들었다.

다음 날 오후에는 왼팔을 잃은 남궁악과 남궁우, 그리고 남궁령 삼남매가 이십여 명의 남궁세가 무인들과 함께 찾아왔다.

“강 오라버니가 여기 계시다면서요?”

남궁령은 들어서자마자 강소군부터 찾았다.

강소군을 만난 남궁령은 스스럼없이 팔짱을 끼며 수다를 떨었다.

“그렇게 가는 법이 어딨어요. 나는 정말 오라버니가 도망치는 줄 알았다고요.”

남궁악이 봉황수와 결전을 치를 때 옆문으로 빠져나간 강소군을 배웅했던 남궁령이다.

상황은 이해했지만 못내 서운했었는데 강소군이 실은 십이지대를 홀로 해치우기 위해 갔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고는 감격하여 펑펑, 울었다.

그런 남궁령을 보는 연화심은 자신의 가슴에 이는 미묘한 파장에 당황하였다.

자기도 모르게 뭔가 허전하면서 서글픈 감정이 스쳐 갔다.

“저는 일이 있어 이만 가 봐야겠군요.”

연화심은 그 자리를 총총 나왔다.

강소군이 말없이 허전한 남궁악의 왼팔을 쳐다보았다.

남궁악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검을 휘두르는 데 한 팔만 있어도 되겠더군.”

“잠시 따로 뵈었으면 합니다.”

강소군이 남궁악을 자신의 거처로 데려갔다.

“이걸 전해 달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강소군이 창천검을 내밀었다.

남궁악이 화들짝 놀랐다.

“이건 창천!”

남궁악이 한 팔로 받아 검집을 왼쪽 겨드랑이에 끼고 검을 뽑았다.

새하얀 검신.

강소군은 절벽 위에서 몸을 던지던 불취가 떠올랐다.

“대체 누가 이 검을 주었다는 말인가?”

강소군이 불취에 대해 이야기하였다.

남궁악의 안색이 침중하게 굳었다.

강소군은 불취와 남궁가 사이에 무슨 사연이 있음을 알았으나 굳이 묻지 않았다.

“그가 확실히 죽었다고 보나?”

“절벽에서 떨어질 때 누군가 그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워낙 중상을 입어 장담할 수가 없군요.”

남궁악이 안타까운 얼굴로 말을 이었다.

“아마 그는 내 사형이었을 것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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