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소군-152화 (152/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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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화심은 손님을 모두 돌려보냈다.

장원을 되찾자마자 흑천맹이 쳐들어온다니, 모두 긴장을 할 수밖에 없었다.

연화심은 문도들을 모두 불러 모았다.

어느새 어둠이 내려 사위가 컴컴하게 가라앉았다.

삼도문 대청에 모두 모였다.

연화심은 모인 이들 면면을 돌아보았다.

함께 왔던 초지항과 화천대원 여섯 명. 그리고 지난날 부상을 당하여 장원을 떠났던 화천대원 여섯 명.

전부 회천십이도를 익힌 자들이다. 일류 이상이랄 수 있는 이가 모두 열세 명인 것.

나머지 삼도문도가 스물여섯.

도합 서른아홉 명이었다.

화천대원과 삼도문도들은 긴장감을 감추지 못한 채 묵묵히 연화심의 말만 기다리고 있었다.

연화심은 담담한 표정을 잃지 않았으나 내심 마음이 무거웠다.

지난날 아버지 연성결의 심정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연화심은 이미 마음속에 결론을 내렸다. 장원을 포기하고 일단 피할 생각이었다.

연화심에게 중요한 건 사람이지 장원이 아니었다. 더 이상 자신으로 인해 누군가 죽는 걸 원치 않았다.

그런데 초지항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는 연화심의 속마음을 짐작하고 있었다.

“문주님, 드리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해 보세요.”

초지항이 모두를 둘러보고 난 후 말했다.

“지난날 장원을 버리고 천하를 떠돌며 생각했습니다. 차라리 천무방과 싸우다 죽는 게 나았다는 것이었지요.”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흑천맹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몰라도 저는 목숨을 걸고 싸우고자 합니다.”

초지항의 결연한 목소리가 대청을 울렸다.

“맞습니다!”

무한에 남아 있었던 화천대원이 맞장구쳤다.

“천무방이 들어와 토호와 결탁하는 바람에 많은 이들이 상권을 빼앗기고 삶의 터전을 잃었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비장하였다.

“오늘 그 많은 사람들이 온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과거, 선대 문주님께서 계셨을 때 토호들은 함부로 날뛰지 못했습니다. 그들이 바라는 건 그때 협의가 넘쳤던 삼도문입니다.”

모두가 숙연한 얼굴로 그의 말을 들었다.

무한에 남았던 이들은 알게 모르게 천무방으로부터 갖은 압박을 받았다.

천무방은 그나마 정파를 자처했기에 압박으로 끝났지만 흑천맹은 다르다.

“한 달 후 무한에서 천하비무대회가 열립니다. 장원을 요새 삼아 버티면 수많은 정파의 고수들이 모여들 겁니다. 그러면 흑천맹 또한 활개칠 수가 없을 겁니다.”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연화심이 말하는 이를 주시하다 그의 이름이 유상화라는 걸 기억해냈다.

초지항이 기다렸다는 듯이 맞장구쳤다.

“맞습니다. 흑도의 무리에게 장원을 넘겨줄 수는 없습니다.”

모두가 결연한 목소리로 너도나도 외쳤다.

“싸우다 죽겠습니다!”

“감히 흑도의 무리가 무한을 넘보다니!”

모두 죽을 각오를 다짐하는데 초지항이 갑자기 일어나더니 대청 밖을 향해 소리쳤다.

“누구냐?”

-저벅 저벅.

한 사람이 차분한 걸음걸이로 대청으로 올라왔다.

연화심과 초지항이 동시에 외쳤다.

“오라버니!”

“중랑!”

***

널따란 대청.

주안상이 줄지어 깔린 자리에 수십여 명이 앉아 있다.

“맹주께서 나오십니다.”

흑의장포를 입은 고선이 대청으로 들어왔다. 키가 보통 사람보다 머리 하나는 더 컸다.

자리에 앉은 이들이 일제히 일어났다.

고선이 대청 상석에 서더니 예를 취했다.

“여러 영웅들이 본 맹과 함께하신다니 그야말로 흑도의 앞날이 창창하리라 믿소.”

오늘 이 자리는 흑천맹에 새로이 가입한 흑도문파의 수장들과 상견례를 하는 자리다.

육십에 가까운 고선이었으나 장대한 체구에서 나오는 목소리에는 힘이 가득 실려 대청이 진동할 정도였다.

“천지에 낮과 밤이 있소. 소위 정파라는 놈들이 우리를 흑도라고 몰아붙인다면 좋소! 흑천맹은 밤을 지배하는 흑도로 위선을 일삼는 정파 놈들과 맞설 것이오!”

고선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좌중에 환호가 일었다.

흑도가 이렇듯 맹을 이룬 적은 무림 사상 초유의 일이다.

흑도가 따로 있는 게 아니다. 도박장이나 기루, 전당포나 떳떳하지 못한 상점 등 이권과 힘이 어우러진 어두운 세상에 속한 자를 정파인들이 흑도라고 규정하고 배척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서너 명이 모여 이룬 방파도 있고 삼류무사보다 못한 건달도 흑도를 자처하기도 한다.

이렇듯 어지러운 흑도를 규합한다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고 여겨 왔다.

고선의 인사가 끝나자 한 사람씩 자신을 소개하였다.

“강서 구류방 방주 위경주라고 하오.”

“사천 도패문의….”

대개 고만고만한 흑도 방파의 수장들이다.

한 사람씩 소개를 하는 걸 듣던 고선이 갑자기 손을 들었다.

막 자신의 소개를 끝낸 귀염문 문주가 고선을 보았다.

“귀염문이라고 하셨소?”

귀염문주라는 자가 거만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흑천맹주가 자신을 알아주니 으쓱했던 것이다.

그러나 고선의 목소리는 냉랭했다.

“귀문이 인신매매를 한다는데 사실이오?”

귀염문주가 인상을 썼다. 여러 사람 앞에서 떳떳치 못한 일을 밝히니 기분이 상한 것이다.

“흑천맹이 남의 사업까지 간여할지는 몰랐소.”

“우리가 비록 흑도의 길을 걷지만 인신매매와 같은 인륜을 저버리는 자와 함께할 수는 없소. 귀염문은 받지 않겠소.”

고선이 말하자 귀염문주가 코웃음을 쳤다.

“흥! 기가 막히군. 흑도에서 벌어지는 일이 온갖 불법과 탈법인데 고작 그런 이유로 우리를 배척하다니.”

귀염문주가 동조를 구하듯 좌중을 돌아보며 말했다.

“험! 험!”

자리가 자리이니만큼 모두 귀염문주의 시선을 피했다.

흑천맹의 기세가 날로 커지는 이 때 굳이 귀염문주의 편을 들어 고선과 척을 질 이유가 없다.

귀염문주는 더욱 격분하였다.

고선을 노려보며 이를 갈았다.

“고선! 맹주로 떠받들어 주니 세상이 모두 네 것 같으냐? 감히 우리를 무시해?”

고선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흑천맹은 흑도의 정의를 세우는 곳이다. 인면수심의 짐승들은 흑천맹의 이름으로 제거할 것이다.”

고선의 신형이 갑자기 사라졌다.

동시에 대청에 뼈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비명이 일었다.

-우두둑!

“크악!”

대청 안의 사람들이 기겁하여 자리를 박차고 분분히 일어났다.

고선이 귀염문주의 목을 꺾어 버린 것이다.

-풀썩!

고선이 대청 밖의 무사들에게 일렀다.

“이 짐승을 치우고 귀염문에서 온 놈들을 모두 죽여라!”

무사들이 황급히 올라 귀염문주의 시신을 가져갔다.

대청 안은 쥐죽은 듯 조용했다. 과거 흑선문주였던 고선. 그가 이리 고강한 무공의 소유자였단 말인가.

눈앞에서 보고도 믿을 수가 없었다.

“좌호법!”

“예!”

대청 한쪽에 서 있던 좌호법이 나섰다.

“흑령대를 주겠다. 가서 귀염문을 지워라!”

“존명!”

좌호법이 바로 대청을 나갔다.

“….”

고선이 천천히 자신의 자리로 올라가며 말했다.

“다시 말하지. 흑천맹은 흑도의 기강을 바로 세울 것이다. 인륜을 저버리는 짓으로 흑도의 이름을 어지럽히는 자는 세상에서 지워 버릴 것이다.”

고선이 자리에 앉자 다시 한 사람씩 자기소개가 이어졌다. 이전과는 달리 모두가 조심스럽게 자신을 밝혔다.

여러 방파의 수장들이 자기소개를 마치자 고선이 말했다.

“짐승 한 마리 때문에 분위기가 좀 가라앉은 것 같소. 잊어버리고 오늘 밤은 마음껏 먹고 마십시다!”

술이 몇 순배 돌자 대청 안의 분위기는 다시 풀어졌다.

눈앞에서 생사람의 목이 꺾어지는 걸 봤으나 역시 흑도는 흑도다.

“맹주님 덕분에 흑도가 바로 섰습니다.”

“흑천맹의 명이라면 분골쇄신! 목숨을 걸 것입니다.”

모두가 고선의 눈에 들고자 좋은 말을 하기 바빴다.

연회는 밤늦게까지 이어졌다.

해시가 넘어가자 고선이 일어났다.

“오늘밤 마음껏 드시오. 그리고 세상에 알리시오. 흑천맹은 흑도의 영웅호걸을 기다리고 있다고.”

대청 안의 사람들이 환호하였다.

고선은 대청을 나와 자신의 거처로 왔다.

한 말의 술을 마셨으나 전혀 취한 기색이 없었다.

고선의 거처에서 한 사람이 기다리고 있었다.

“오래 기다리셨소?”

고선이 기다리는 이에게 예를 취했다.

“아니오. 방금 왔소.”

등 노사가 희미하게 웃으며 말했다.

등 노사는 대청에서 벌어진 일을 알고 있었다.

고선에 대해 자신이 가졌던 판단이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어 내심 당황해하는 중이다.

과거 요천루가 호남에서 득세할 때 흑선문은 이름 없는 흑도 무리에 불과했다.

한두 번 고선을 마주칠 때가 있었으나 안중에 두지 않았다.

그런데 고선은 가진 바 야망이 있었던 것이다. 흑선문에서 비밀리에 양성한 무인이 오백여 명.

등 노사가 십이지대 일천여 무인을 데리고 왔다지만 그러지 않아도 고선은 흑도의 수장 자리를 꿰찼을 것이다.

게다가 고선의 무위나 지략이 생각했던 것 이상이다.

무슨 생각인지 고선은 자신의 아들에게 십이지대 오백 무인을 주고 천무방 무한지부를 점령하라 일렀다.

“태상장로께서 이 늦은 밤에 무슨 일로 찾으신 게요?”

등 노사는 흑천맹의 태상장로라는 직을 맡았다. 물론 자신이 천황성의 인물이라는 건 숨겼다.

천황성 삼태상의 일원으로 무림을 관장하는 등 노사는 여러 가지 신분을 가지고 있다.

그중 하나인 귀선이라는 신분을 가지고 흑천맹의 태상장로 직을 맡은 것이다.

“고장추가 천무방 무한지부를 치러 갔다고 들었소.”

등 노사는 일부러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다. 자신과 상의도 없이 십이지대 무인을 운용한 것을 탓하려는 것이다.

“아, 그렇지 않아도 상의를 드릴 생각이었소.”

“무한은 무림맹 창설을 앞두고 정파 무인들이 구름떼같이 모여들고 있는데 하필 그곳을 치는 이유가 무엇이오?”

“그렇기에 친 것이오. 정파라는 이들에게 흑천맹의 힘을 보여 주면 경거망동하지 못할 게 아니오.”

고선이 나름의 이유를 밝혔다. 등 노사는 이를 곧이곧대로 믿을 만큼 순진하지 않다.

‘이놈이 노리는 게 뭐지?’

십이지대 무인의 절반이나 투입하였다. 천무방 무한지부라면 이백 명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고선은 등 노사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담담히 받아 넘겼다.

‘흥! 늙은 귀신. 네 뜻대로 되지는 않을 것이다. 감히 흑천맹을 날로 삼키려고 해?’

고선은 등 노사의 진정한 신분은 모른다.

하지만 흑도에서 유명한 귀선이라는 이가 일천 명의 무인을 데리고 나타난 것을 좋게만 받아들일 만큼 순진하지 않다.

등 노사에게 태상장로의 직을 내주었지만 내전 외딴 전각을 두고 찾지 않았다.

십이지대는 절반씩 나누어 오백여 명은 호남과 강서 일대의 흑도방파를 병탄하러 보냈다.

나머지 오백을 아들 고장추에게 주어 천무방 무한지부를 치게 한 것이다.

고선은 오백여 무인이 천무방과 격돌하여 양패구상하기를 바랐다.

흑도 여러 방파가 속속 맹에 가입하고 있으니 무인의 수는 염려할 게 없다.

오히려 일천 명의 정예 무인을 거느린 등 노사가 부담스러울 따름이다.

게다가 등 노사는 아무리 봐도 무공이 자신보다 한두 수 위로 짐작된다. 여러모로 꺼림칙한 인물이다.

“그렇구려. 노부 역시 평생 흑도라고 괄시를 받았으니 맹주의 마음을 이해는 하오. 하지만 실리가 없소. 아직 맹이 자리 잡지 못했는데….”

“아니, 실리가 있습니다.”

고선이 등 노사의 말을 잘랐다.

‘이 자식이?’

등 노사는 기분이 상했으나 좋은 얼굴로 물었다.

“대체 무슨 실리가 있다는 말이오?”

“그곳에 흑천맹 무한지부를 세우고 합법적인 사업을 할 것이오. 그러면 관이나 정파 놈들도 함부로 제거할 수 없소. 무림맹의 머리꼭대기에 우리 지부가 있는데 이보다 나은 이득이 어딨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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