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소군-149화 (149/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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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도문 대문 앞 널따란 광장.

여덟 명의 무인이 나타났다. 그들의 머리 위로 하얀 꽃잎이 흩날렸다.

하얀 꽃잎을 뿌리는 벚나무를 바라보는 연화심의 눈에 아득한 빛이 스쳤다.

이제는 거목이 된 그 벚나무와 함께 그녀는 자랐다.

그도 잠시, 바로 삼도문 대문을 바라보는 연화심의 눈빛은 싸늘하기만 했다.

대문은 굳게 닫혀 있다.

“문주님, 제가 선봉에 서겠습니다.”

초지항이 앞으로 나서려 하자 연화심이 막았다.

“그들에게 정오까지 시간을 주기로 해요.”

연화심은 삼도문… 아니, 이제는 천무방 무한지부에 오늘 정오까지 장원을 비우라고 통보했다.

정오가 되려면 아직 시간이 남았다.

연화심이 초지항을 비롯한 일곱 명의 화천대원을 돌아봤다.

불과 여덟 명의 인원으로 천무방 무한지부를 친다는 게 어불성설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연화심은 물론 초지항과 여섯 화천대원의 눈빛에는 자신감이 흘렀다.

연화심은 반년간 아낌없는 투자를 하였다. 가진 돈을 풀어 영약을 샀고 삼도문의 가전비급을 풀어 화천대원 개개인의 성취를 끌어올렸다.

화천대원들 또한 스스로 지옥과도 같은 수련을 기꺼이 감당하였다.

초지항과 화천대원의 눈에는 가로막는 건 모두 베어 버릴 듯한 결기가 흘러나왔다.

“…?”

초지항이 뒤를 보았다.

어느새 사람들이 하나둘 나타나 지켜보고 있었다.

정오가 가까워지자 모여든 사람은 수백 명에 이르렀다.

삼도문의 딸이 장원을 되찾으러 왔다는 말이 무한에 빠르게 퍼졌다.

과거 연성결의 후덕한 인품을 기억하는 이들은 마음속으로 연화심을 지지했다.

천무방이 진출한 이래 무한의 인심은 각박해지고 삶은 팍팍해졌다.

그도 그럴 것이 천무방은 무한 상권을 장악하고 최대한의 수익을 내고자 쥐어짰다.

호족과 결탁한 천무방 무한지부의 횡포에 많은 이들이 가게를 잃고 농토를 팔아야 했다.

그러니 심정적으로 연화심을 지원하는 건 당연했다.

“아가씨!”

뒤를 살피던 초지항이 선두에서 대문을 지켜보던 연화심을 불렀다.

연화심이 돌아봤다.

낯익은 얼굴들이다.

부상당하여 무한에 남았던 화천대원들과 삼도문의 무인들이 몰려오고 있었다.

그들의 손에도 도가 들려 있었다.

“대주!”

“아가씨!”

모여든 삼도문 무인들이 삼십여 명.

그들은 무한을 떠나지 않고 숨죽이며 기다리고 있던 것이다.

낡은 삼도문의 무복을 입고 다가오는 문도들을 바라보던 연화심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시선을 돌려 다시 대문을 주시했다.

문주가 눈물을 보일 수는 없었다.

***

천무방 무한지부.

널따란 연무장에 백여 명의 무인이 도열하였다.

무한지부장 오종이 대전에서 걸어 나왔다.

오종의 두툼하게 나온 배 옆에 커다란 도가 걸려 있다. 그는 한때 대력도라 불리는 고수였으나 일찌감치 무인의 길을 접었다.

상재에 뛰어난 그가 무한지부장을 맡은 건 그다지 이상할 게 없었다.

“삼도문의 잔당이 찾아왔다. 천무방의 힘을 확실히 보여 줘야 할 것이다!”

오종이 외치자 백여 명의 무인들이 함성을 질렀다.

오종은 결기를 보였으나 마음은 착잡했다.

삼도문의 잔당 때문이 아니다.

천무방의 돌아가는 상황이 어지럽다. 내우외환이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다.

조개량의 배신에 이어 마씨 부인의 세력과 대공자 구양조의 세력이 맞서다 결국 무력 충돌을 빚었다.

구양조를 지지하는 세력이 그를 방주로 옹립하려 하자 마씨 부인 세력이 반발하다 끝내 내분을 일으켰던 것이다.

다행히 구양조 세력이 반발 세력을 숙청하였으나 천무방의 대외활동은 더욱 위축된 상황이다.

그런 상황에서 장강 이남 과거 요천루 세력이었다가 천무방에 복속된 문파들이 속속 반기를 들고 있다.

더욱 암울한 것은 장강 이남에 흑천맹이라는 새로운 흑도 세력이 나타나 급격히 팽창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무한지부에 배치되었던 무력대도 장강 이남의 천무방 예하 지부를 지원하러 갔다.

오종은 무인들을 둘러보았다.

대부분이 무한지부를 설립하며 끌어모은 낭인들이다.

이십여 명 정도가 그나마 쓸만하고 일류라고 할 수 있는 이는 서너 명에 불과하다.

그래도 이 정도 인원이면 삼도문 잔당을 쓸어버릴 수 있을 것이다.

절정 고수의 싸움이 아닌 이상 열 자루의 칼을 한 자루가 당해낼 수 없으니까.

오종이 별원 쪽을 돌아봤다.

장로 조배극이 거처로 사용하고 있는데 잠잠하다.

무공이 초절정 경지에 이르렀다는 장로 조배극이 나선다면 쉽게 싸움이 끝날 것인데 나설 생각이 없는 모양이다.

“대문을 열어라!”

오종이 외치자 거대한 삼도문의 대문이 열렸다.

-끼이익.

오종이 선두에 서서 대문을 나섰다.

“…?”

탐문을 나섰던 이목이 분명 여덟 명이라고 했는데 눈앞에는 마흔 명 가까운 무인들이 서 있다.

그 뒤로 수백 명의 사람들이 싸늘한 눈빛으로 자신들을 주시하고 있었다.

‘이 새끼들이?’

불과 반년 전까지만 해도, 천무방 무인들만 보면 숨죽이던 놈들이 몰려온 상황이었다. 그 모습을 보고 오종은 내심 분노하였다.

오종이 선두에 선 젊은 여인을 보았다.

이제 스물이나 됐을까.

냉랭한 표정으로 자신을 주시하는 앳된 여인을 보는 오종은 속으로 안도하였다.

삼도문의 후예라고 해서 긴장을 했으나 막상 보니 아직 이마에 피도 마르지 않은 어린 여자다.

“가상하구나. 제집을 찾겠다고 오다니.”

오종이 입을 열었다.

“하지만 이미 여기는 천무방이 접수하여 무한지부로 사용하고 있다. 강짜를 부리려면….”

-쉬익!

오종은 허공을 날아오는 도를 보고 말을 잇지 못했다.

-퍽!

도 한 자루가 양쪽 진영 한가운데 꽂혔다.

연화심이 들고 있던 도를 던진 것이다.

“여기는 내 아버지의 피와 땀이 배인 삼도문의 땅이다. 굳이 너희의 피로 더럽히고 싶지 않으니 기회를 줄 때 조용히 물러가라!”

오종은 기가 막혔다.

“감히 천무방에 대적하다니….”

뒤에선 무인들에게 외쳤다.

“싹 쓸어버려라!”

-와아!

천무방의 무인들이 함성을 지르며 일제히 달려나갔다.

백여 명의 무인이 달려오니 뒤에서 보던 이들이 주춤 한두 걸음씩 물러났다.

연화심이 마주 달려갔다.

일 장, 이 장… 보폭이 점차 넓어지더니 갑자기 하늘로 도약하였다.

-파라라락!

천녀처럼 하늘로 솟구친 연화심의 검이 비산하였다. 순식간에 하늘은 눈부신 검영으로 덮였다.

천성육십사식.

중랑과는 또 다른 화려한 검이 피어났다.

연화심의 천성육십사식은 화산 매화검의 진수가 담겨 있다.

천성육십사식에서 피어난 무수한 별들이 허공에서 무리를 지었다.

검세에 휩쓸린 벚나무의 하얀 꽃잎이 사정없이 흩날렸다.

-슈슈슉!

검기와 꽃잎이 뒤섞이며 천무방 무인들의 선두를 휩쓸었다.

“크악!”

“컥!”

대여섯 명이 쓰러지며 선두가 삽시간에 무너졌다. 그러나 검기는 멈추지 않고 땅바닥을 후려쳤다.

-콰콰쾅!

바닥에 떨어졌던 꽃잎들이 일제히 날리며 눈앞을 분간할 수가 없는 꽃천지가 되었다.

하얀 꽃잎에 붉은 피가 뿌려졌다.

“…!”

놀라운 광경에 모두가 멈췄다. 침묵이 흘렀다.

꽃잎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릴 정도였다.

‘헉!’

오종은 숨을 들이켰다.

어린 여자아이라고 무시했는데 알고 보니 초절정 경지의 고수다.

“쳐라!”

오종이 정신을 수습하기도 전 초지항이 외쳤다.

-파파팍!

초지항과 여섯 명의 화천대원이 질주하였다. 마치 일곱 마리의 호랑이처럼 천무방 무인들을 덮쳤다.

-사사삭!

-스걱!

초지항과 화천대원의 도는 거침이 없었다.

뒤따라 서른 명가량의 삼도문도들이 일제히 도를 앞세워 달려왔다.

배가 넘는 인원임에도 초반 기세에서 눌린 천무방 무인들은 감히 반격할 생각을 하지 못하고 막거나 피하기 급급했다.

화천대와 삼도문도들은 대부분 무한 출신이었다. 상인의 자식이거나 근처 농민의 아들이었다.

천무방이 삼도문을 짓밟을 때 그들은 형제를 잃고 삶의 터전도 빼앗겼다.

그랬기에 휘두르는 칼 한 수 한 수에 원한이 깃들어 있었다. 기필코 다시 자신의 삶을 찾아야 한다는 집념이 실린 칼이었다.

“크아악!”

선두에 선 연화심의 검에서 화려한 별무리가 피어날 때마다 천무방 무인들은 속절없이 쓰러져갔다.

초지항과 여섯 화천대원들의 칼은 더욱 무자비하였다. 검으로 막으면 검을 부러뜨리고 칼로 막으면 칼을 튕겨냈다.

“큭!”

“으윽!”

천무방 무인들이 연달아 쓰러졌다.

“막아라! 앞으로 나가란 말이다!”

오종이 연신 악을 썼으나 천무방 무인들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어느덧 적진 한복판까지 들어간 연화심이 갑자기 몸을 날렸다.

-쉬이이익!

허공으로 솟은 연화심의 검기가 뒤에서 싸움을 독려하던 오종에게 향했다.

적장을 잡아 싸움을 끝내려는 것이다.

-챙!

-파악!

“크악!”

좌우 호위가 막았으나 검이 부러지고 일 장이나 튕겨 나갔다.

‘이, 이게 어찌 된 일이냐?’

오종은 자신이 잘못 판단했음을 깨달았으나 이미 늦었다.

삼도문의 잔당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게 패착이었다.

하지만 그도 한때 고수였다.

어느새 자신의 앞에 선 연화심을 노려보며 이를 갈았다.

“건방진 계집년이!”

오종이 고함을 지르며 자신의 도를 뽑아 연화심을 후려쳤다.

-쉬이익!

거센 도풍이 연화심을 노리고 나아갔다.

연화심의 검세가 바뀌었다.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빨라졌다.

무수한 변초가 허공에 잔영을 그리며 물결치듯 오종을 향해 몰려갔다.

천성육십사식에 숨은 회천십이도의 묘리.

중랑은 자신이 깨친 천육십사식의 오의를 연화심에게 전했고 어려서부터 회천십이도를 보고 자란 연화심은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파파팟!

무수한 검영이 오종의 비대한 몸을 휩쓸고 지나갔다.

“크윽!”

피투성이가 된 오종이 비틀거리며 물러났다.

“제기랄! 이런 개….”

오종은 자신의 패배를 믿을 수가 없었다.

한 자루 도를 들고 천무방에 들어온 지 이십여 년.

몇 년 전부터 실전에서 물러났다지만 어린 여자아이에게, 그것도 단 일수에 패배할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

연화심이 검을 거두었다.

따지고 보면 오종과 직접적인 원한은 없다.

“멈춰라!”

연화심이 뒤를 보고 외쳤다.

그러자 화천대와 삼도문도들이 적을 물리고 물러났다.

방어에 급급했던 천무방 무인들이 황급히 진형을 갖추며 자신들의 수장을 보았다.

피투성이가 된 오종이 간신히 도를 짚고 서 있는 게 보였다.

오종은 모든 게 끝났음을 느꼈다.

연화심과 화천대는 적어도 정예로 편성된 일백 무력대가 맞서야 할 상대였다.

평범한 무인들로는 희생만 늘릴 뿐이다.

고수란 그런 것이다. 그렇기에 수많은 무인들이 고수가 되기를 그렇게 염원하는 것이 아닌가.

오종이 도를 던졌다.

“졌다….”

싸움이 시작된 지 일각이 조금 지났을 뿐이다.

오종은 연화심이 복수를 하기 위해 무차별 살행을 저지를 것 같지 않자 싸울 생각을 접었다.

그는 언제부턴가 무인이 아니라 상인이었던 것이다. 손익계산이 맞지 않는 싸움은 그에게 무의미했다.

그러자 천무방 무인들이 검과 도를 던졌다.

-쨍강!

-챙강!

배가 넘는 무인들이 항복을 하는 기현상이 빚어졌다.

그때.

“크흐흐. 역시 너희는 천무방의 이름만 걸쳤을 뿐! 천무방의 혼이 없구나!”

한 사람이 대문을 지나 걸어 나왔다.

희끗희끗한 반백의 머리를 한 이는 잿빛 장포를 입고 있었다.

“장로님!”

오종이 구세주라도 만난 듯 외쳤다.

무한지부의 호법 장로 조배극이다.

조배극은 냉랭한 시선으로 오종을 쳐다봤다.

“그러기에 내가 뭐랬나? 무인이 칼을 버리면 돼지나 다를 바 없다고 하지 않았나?”

피투성이가 된 오종의 얼굴이 더욱 붉게 물들었다.

천무방이 승승장구할 때 오종은 조배극을 뒷방 늙은이 취급하였다.

막대한 자금이 필요했던 천무방 수뇌부는 상재가 뛰어난 오종을 더욱 귀히 여겼다. 이를 믿고 오종은 조배극을 무시하곤 했다.

그러나 막상 결전의 때가 되자 처지가 뒤바뀌고 말았다.

조배극이 무심한 시선을 돌리고 연화심을 보며 말했다.

“아비의 복수를 하러 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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