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소군-147화 (147/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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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헛소리냐?”

답을 바란 말이 아니었으나 나지막한 소리가 들려 왔다.

팽일소가 화들짝 놀랐다. 누워 있던 팽일호가 부리부리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형님, 깨어나셨어요? 그놈들이 쫓아왔습니다.”

팽일소가 다급하게 상황을 일렀다.

팽일호가 천천히 일어나 자리에 앉았다.

그는 완전히 의식을 잃은 게 아니었다. 누워서 내상을 다스리던 중이었다.

강가에 서서 이쪽을 보는 나무꾼들을 보는 팽일호의 눈빛은 담담하였다.

“일소야. 팽가의 무인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강호에 나왔으면 언제 어디서든 죽을 각오를 해야 하는 것이고 마침 오늘이 그날인 것뿐이다.”

팽일호가 팽일소를 돌아보며 말했다.

“하지만 너는 살아야 한다. 저놈들의 정체를 밝히고 반드시 죽어 간 무인들의 복수를 해야 할 것이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나는 살고 그럼 형님은 죽겠다는 겁니까?”

“저놈들의 목표는 나다. 너까지 죽을 이유는 없다.”

팽일호가 세 명의 나무꾼 중 한 놈이 지키고 있는 쪽을 가리켰다.

“저쪽에 배를 대라. 그리고 뒤도 돌아보지 말고 달려야 한다.”

강에서 숲이 그다지 떨어지지 않은 곳이다.

자신이 적을 막겠다는 뜻이다.

“그럴 수는 없습니다. 형님은 팽가의 미래입니다. 저만 돌아가면 집안 어른들이 저를 쳐 죽일 겁니다.”

“고집부리지 마라. 자칫 둘 다 죽으면 그야말로 헛된 죽음이 될 것이다.”

팽일호가 일어서더니 강바닥에 장대를 꽂고 밀쳤다.

나룻배가 빠르게 강가에 닿았다.

“달려라!”

팽일호의 말에 팽일소가 잠시 망설였다.

“어서!”

팽일호가 등을 떠밀자 팽일소가 엉겁결에 숲으로 몸을 날렸다.

하지만 몇 발짝 가다 말고 멈췄다.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팽일호는 장차 팽가의 기둥이 될 인재다. 그가 있어 팽가의 앞날을 기대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허무하게 죽는다면?

‘형님을 버리고 이대로 간다면 무슨 낯으로 하늘을 보고 산단 말이냐. 차라리 같이 죽자.’

팽일소가 몸을 돌렸다.

숲을 빠져나오자마자 팽일호와 나무꾼이 격돌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쾅!

나무꾼이 내리찍은 도끼를 팽일호가 도를 들어 막았다.

내상을 입은 팽일호가 두어 걸음 밀렸다.

‘아!’

팽일소의 마음이 급해졌다.

강 건너편에 있던 나무꾼들이 어느새 배를 구해 타고 건너오는 중이다.

그들은 이미 끝을 짐작하기라도 한 듯 여유를 부렸다.

팽일소는 팽일호를 도와 나무꾼을 처지할 생각으로 달려갔다.

-쾅!

다시 도끼와 팽일호의 도가 부딪쳤다.

팽일호의 도가 박살났다.

내상 때문에 내력이 실리지 않았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도끼의 그림자가 허공에 난무하였다. 그림자 하나하나에 피를 부르는 살기가 흘렀다.

나무꾼의 도가 팽일호의 머리를 찍으려는 순간.

-쉭!

팽일소가 다급한 김에 자신의 도를 날렸다.

도는 풍차처럼 돌며 나무꾼을 향했다. 무공수련을 게을리했다지만 팽가의 직계가 전력을 다해 던진 도다.

나무꾼도 방비할 수밖에 없었다.

-텅!

나무꾼이 도를 튕겨냈다.

공교롭게도 튕겨 나간 도가 팽일호의 옆으로 떨어졌다.

팽일호가 옆으로 굴러 도를 받아 들고 몸을 숙인 채로 크게 반원을 그렸다.

“헉!”

나무꾼이 놀라 뒤로 몸을 날렸다. 팽일호는 팽가제일의 기재라는 소리에 어울리지 않게 땅바닥을 구르며 연달아 도를 휘둘렀다.

세간에는 알려지지 않은 지당도법이었다. 땅바닥을 구르며 적을 공격하는 방식이기에 팽가에서도 사용하는 예가 드물었다.

정말 목숨이 풍전등화에 처했을 때 발휘하는 구명절초와 같은 도법이었다.

팽일호가 구르고 돌며 도를 휘두르니 땅바닥 곳곳에서 도기가 솟는 듯했다.

팽일호는 동생이 도망치는 대신 다시 오자 사력을 다했다. 눈앞의 나무꾼을 쓰러뜨려야 동생이라도 살길이 열린다.

자신을 돌보지 않은 공세는 거칠었다.

기어이 나무꾼을 따라잡았다.

-파악!

“크윽!”

나무꾼이 도끼를 내밀어 쳐냈으나 도는 밀리지 않고 나무꾼의 허벅지를 베었다.

“이 새끼가!”

나무꾼이 급히 허벅지를 보니 뼈가 보일 정도로 상처가 깊었다. 자칫했으면 다리가 잘릴 뻔했다.

“으윽.”

팽일호도 신음성을 터뜨리며 쓰러졌다. 진원지기까지 끌어 쏟아부은 일격이었다.

팽가 제일의 신력을 자랑하는 팽일호였지만 내상을 입고 진원지기까지 쏟아냈으니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었다.

“형님!”

팽일소는 자신의 두 배는 됨직한 팽일호를 업고 몸을 날렸다.

“어디를 도망치려고!”

나무꾼이 격노하여 도끼를 던졌다.

-휘리리릭!

도끼가 빙글빙글 돌며 팽일소의 등에 업힌 팽일호를 노렸다.

팽일소가 그대로 바닥을 굴렀다. 지당도법을 흉내낸 것이다. 도끼가 아슬아슬하게 두 사람을 스쳤다.

나무꾼이 부상만 입지 않았다면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팽일소는 그대로 숲으로 들어가 사라졌다.

그 사이 나머지 두 나무꾼이 건너와 다가왔다.

키가 좀 작은 나무꾼이 다가오며 혀를 찼다.

“아이고. 셋째야. 범은 부상당해도 범이라고 했지 않느냐? 조심했어야지.”

“형님은 보기만 했으니 모를 거요. 저놈의 도법이 저렇게 신묘할 줄 누가 알았단 말이오.”

가장 나이가 많아 보이는 나무꾼이 말했다.

“팽가의 도법이 제법인 모양이로군. 둘째 말대로 부상당한 범은 급하게 쫓는 법이 아니다. 적당히 몰다가 한 번에 숨통을 끊어야 하는 법이지.”

“저놈들은 내 손으로 목을 칠 것이오.”

셋째라 불린 나무꾼이 이를 으드득 갈며 땅바닥에 떨어진 자신의 도끼를 주워들었다.

“너는 부상을 치료하고 따라와라. 우리가 쫓겠다.”

첫째와 둘째가 팽씨 형제를 쫓아 숲으로 들어갔다.

***

강소군은 천천히 말을 몰았다.

아무래도 느낌이 이상했다.

‘은신술의 고수?’

기운을 풀어 살펴도 적을 감지할 수가 없었다.

그저 본능이 경고할 따름이다.

무총에서 길러진 본능은 무공에 우선한다.

어딘가에서 자신을 지켜보는 시선.

아마도 감지했다고 해도 쫓을 수 있는 거리가 아닐 것이다.

“…!”

강소군은 말을 멈췄다.

그를 쫓는 그림자 때문이 아니다.

거친 호흡 그리고.

-펑!

경력이 터지는 소리.

“크윽!”

숲에서 두 사내가 튕겨 나와 관도를 굴렀다.

“형님!”

체구가 작은 사내가 발딱 일어나더니 덩치 큰 사내를 황급히 부축하였다.

뒤이어.

“크크크. 정말 놀랐지 뭐냐. 그 와중에 내 도끼를 피하다니.”

커다란 도끼를 든 나무꾼 둘이 나타났다.

강소군은 그들이 천황성의 고수임을 대번 알아보았다.

이상하리만치 고강한 무공.

그럼에도 어울리지 않는 성정은 천황성 고수들의 특징이다.

강소군은 사파의 절대고수 요천루주나 정사지간이랄 수 있는 천무방주 구연강과 겨뤄 봤다.

그들이 사도의 인물이건 야망의 화신이건 무공의 성취만큼 성정 또한 일정한 경지에 이르렀기에 최소한 경박하지는 않았다.

정사를 떠나 무공이 초절정에 달한 무인은 심적인 측면에서도 범인을 뛰어넘는 일정한 경지에 이르기 마련이다.

절대지경의 고수는 더욱 그렇다. 확고한 자신의 세계가 구축되지 않는 한 심신의 부조화로 마도에 빠져들 위험이 크다.

천황성의 고수들은 그런 면에서 마도와 비슷했다.

갑자기 천하를 오시할 수 있는 막강한 힘을 얻어 그 힘을 과시하고 싶은, 또는 그 힘을 감당하지 못하고 성정이 비틀어진 그런 인상을 주었다.

눈앞의 두 나무꾼도 마찬가지였다.

“넌 뭐냐?”

나무꾼 하나가 도끼를 든 채 건들거리며 강소군을 노려봤다.

강소군의 기도가 범상치 않으니 물어보기라도 한 것이다. 평범하다고 여겼으면 벌써 도끼로 두 쪽을 냈을 게 분명했다.

“강 대협!”

팽일소가 강소군을 알아보고 소리쳤다.

마치 살길이 열렸다는 희망이 목소리에 담겨 있었다.

“뭐야? 아는 사이야?”

나무꾼이 강소군과 팽일소를 번갈아 보며 물었다.

팽일소가 자신의 형을 부축하며 강소군 옆으로 다가갔다.

숲속에서 나무꾼들이 던진 도끼를 쳐내느라 마지막 진원지기까지 쏟아낸 팽일호는 완전히 의식을 잃었다.

팽일소가 이를 갈며 소리쳤다.

“너희는 다 죽었다. 이 형님이 바로 혈마 어르신이시다.”

“혈마?”

나무꾼들이 서로 시선을 교환했다.

“혈마가 누구지?”

나무꾼들은 강호 사정에는 어두운 듯했다.

“저런 애송이가 혈마라고? 크흐흐. 하여튼 강호의 허풍은 대단해.”

“혈마든 뭐든 그냥, 다 죽여 버리자고.”

나무꾼들이 번갈아 묻고 대답했다.

팽일소가 강소군을 보며 고개를 꾸벅하였다.

“강 대협, 죄송합니다. 사정이 급해서….”

팽일소가 말을 이을 새가 없었다.

나무꾼 하나가 달려오며 쌍도끼를 휘둘렀다.

언행은 경박했지만 도끼에 실린 경력은 무시할 수가 없었다. 가히 바위를 쪼개고도 남을 만한 기운이 담겨 있다.

도끼의 그림자가 하늘을 덮었다. 그 가운데 어린 기운은 분명 강기였다.

도끼와 같은 기병으로 강기를 쏟아낸다는 건 극히 드문 일이다. 그런 점이 천황성의 무서움이기도 했다.

강소군은 마상에서 그대로 허공으로 솟구쳐 올랐다. 그의 손에는 어느새 뽑아 들었는지 한 자루 붉은 창이 들려 있었다.

“엇?”

나무꾼은 도끼를 앞세워 짓쳐오다 강소군이 허공으로 솟아오르자 재빨리 몸을 뒤집었다. 기이할 정도로 빠른 동작이었다.

동시에 다른 나무꾼이 허공에 뜬 강소군을 향하여 도끼를 날렸다.

-휘리릭!

도끼가 거센 경기를 뿜으며 강소군을 덮쳤다.

강소군이 허공에서 옆으로 회전하더니 그대로 창을 내리꽂았다.

-콰악!

아래 있던 나무꾼은 가까스로 몸을 굴려 강소군의 창을 피했다.

그 사이 강소군을 향해 날아오던 도끼는 아슬아슬하게 강소군의 등을 지나쳤다.

놀라운 건 도끼가 빙글빙글 돌더니 다시 주인에게 돌아간 것이다.

그 사이 강소군은 땅에 내려섰다.

나무꾼들도 나란히 섰다.

“어린놈이 한 수가 있군.”

나이가 많은 나무꾼이 강소군을 보더니 귀찮게 됐다는 듯 내뱉었다.

강소군이 나무꾼들을 보다 한마디 하였다.

“천황성은 서로 맡은 임무를 모르나 보군.”

천황성이라는 말이 나오자 나무꾼들이 미간을 찌푸렸다.

“네놈은 뭐지? 어떻게 본성을 아는 거냐!”

강소군은 나무꾼의 표정에서 천황성이 점조직으로 명이 하달된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렇지 않고서는 자신을 모를 리 없다.

동시에, 일전 팽일소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천하비무대회에 참가하는 고수들을 암습하는 무리가 있다고 들었을 때 천황성을 의심했는데 확신으로 굳어졌다.

“천하비무대회에 참가하는 고수들을 습격하는 이유가 뭐지?”

“천하비무대회? 크크. 하찮은 것들이 우스운 짓을 한다고 들었지. 지금 이 자리에서 그딴 광대짓 이야기를 왜 하는 건데?”

“귀찮게 대거리할 게 뭐 있소. 그냥 후딱 해치우고 갑시다.”

나무꾼들이 도끼를 양손에 들고 다가왔다.

“…!”

순간, 강소군의 본능이 다시 경고하였다.

은밀하게 그를 따르던 그림자가 움직였다. 기회를 잡았다는 뜻이다.

강소군은 다가오는 나무꾼들을 보았다.

나무꾼들은 불취보다 떨어지나 쌍렵보다는 한 수 위로 보였다.

무엇보다 강소군은 내상을 완벽하게 다스리지 못했다.

하지만 피할 수 없는 싸움이었다.

그때, 숲에서 다시 나무꾼 하나가 나왔다.

“여기까지밖에 못 왔소?”

절뚝거리며 나오는 나무꾼이 강소군을 보더니 물었다.

“저놈은 또 뭐요?”

“죽여야 할 놈이 하나 더 늘어난 거지.”

나무꾼들은 자신들이 강소군을 비롯해 팽씨 형제를 죽일 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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