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소군-143화 (143/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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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 오시죠.”

팽일소가 강소군을 이끌고 거구의 장한을 향해 다가갔다.

“형님, 어때요? 제 짐작이 맞았지요.”

의기양양한 얼굴로 팽일소가 말했다.

거구의 장한이 일어나 크게 웃으며 다가왔다.

“하하하. 네 눈썰미가 보기보다 좋구나.”

장한이 강소군에게 말했다.

“생각보다 젊으시군.”

장한은 남궁악 또래로 보였다.

“팽일호라고 하네.”

팽일호는 하북 팽가 제일의 도객으로 꼽힌다.

언제부터인가 화룡도 조운룡과 함께 화룡복호 쌍도라는 별호가 회자되고 있다.

그 역시 남궁악처럼 강호에 나서는 일이 없어 진정한 무위는 알려지지 않았다.

“강소군이오.”

강소군이 짤막하게 대답하니 팽가의 도객들이 불쾌한 기색을 띠었다.

그들이 팽일호를 얼마나 존중하는지 알 수 있었다.

“저녁을 아직 드시지 못했지요? 마을까지 가려면 적어도 두 시진은 가야 합니다. 함께 식사를 하시죠.”

팽일소는 일행의 반응에도 개의치 않고 강소군을 앉혔다.

모닥불에는 돼지 한 마리가 익어 가고 있었다.

“남궁세가에서의 일은 들었습니다. 일천 명의 고수를 향해 단기필마로 뛰어들어 적장을 베었다면서요?”

강소군은 남자 남궁령을 만난 느낌이 들었다.

팽일소는 수다스럽고 호기심이 많았다.

팽일호가 커다란 잔에 술을 가득 따라 강소군에게 건넸다.

“당금 무림을 진동시키는 영웅을 만나니 반갑군. 한잔하게.”

팽일호는 건배를 청하더니 자신의 사발에 담긴 술을 벌컥 단숨에 들이켰다. 하는 행동거지가 시원시원하였다.

강소군은 술을 쭉 들이켰다. 뱃속까지 찌르르 술기운이 흘러들었다.

팽일소가 눈빛을 반짝이며 물었다.

“무한으로 가시는 길이죠? 천하비무대회에 참가하시는 거로군요?”

무한으로 이어지는 관도이니만큼 팽일소가 추측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무한으로 가는 길은 맞지만 참가하지는 않네.”

강소군이 고개를 저었다.

“강 대협은 충분히 자격이 될 듯한데 왜 참가하지 않나요?”

팽일소가 연달아 묻자 팽일호가 손을 들었다.

“그만해라. 사내가 왜 그리 말이 많은 것이냐?”

“에이 참, 형님도 궁금하시잖아요? 강 대협이 참가하면 형님도 긴장하셔야 할걸요?”

“하하하. 그래야 하는 거냐?”

팽일호가 크게 웃었다. 자신의 무공에 자신 있는 자만이 보일 수 있는 패기였다.

팽일소가 잠시 입을 닫는가 했더니 잠시를 못 참고 강소군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어쨌든 무한으로 가는 길이면 조심하셔야 합니다.”

“…?”

“천하비무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각지에서 난다긴다하는 고수들이 무한으로 향하고 있지요. 그런데 몇몇 고수가 피습을 받아 죽거나 중상을 입었다는 소문이 파다해요.”

강소군의 미간이 절로 좁아들었다. 천황성의 농간이라는 생각이 퍼뜩 스친 것이다.

“누가 당했다는 거지?”

“점창이 낳은 절대고수 아시죠?”

“사일신창 겸일극!”

“그분이 오다가 정체 모를 고수의 습격을 받아 중상을 입었다는 소문이에요.”

“….”

“흑도 놈들이 손을 쓰고 있는 거죠. 무림맹이 출범하면 정도천하가 될 게 분명하니까.”

팽일소가 확신에 차서 말했다.

“흑도에 누가 있어 겸 대협을 쓰러뜨린다는 말이냐? 와전된 것이 분명하다.”

“에이 참. 형님도 같이 들어 놓고 무슨 소리예요. 그럼 개방이 헛소문을 전했다는 말이에요?”

“강호에 얼마나 많은 헛소문 도는지 아느냐? 개방이라고 일일이 다 확인할 수는 없단 말이다. 그렇지 않소?”

팽일호의 마지막 말은 강소군에게 향했다. 혹시 아는 게 있느냐는 시선이다.

강소군은 묵묵히 생각에 잠겼다.

천황성이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무당에서 만난 사냥꾼들이나 봉황수는 놀랍게도 십대고수 반열의 고수들이다.

마치 절대라는 경지를 비웃듯 천황성에는 고수들이 수두룩하다.

강소군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벌써 가시게요?”

팽일소가 아쉬워하였다. 하지만 함께 야영을 하자고 할 수는 없었다.

아무리 사해가 동도라지만 처음 만난 사이에 밤을 지낼 수는 없었다.

남이 건네주는 술도 일일이 독을 확인하고 마셔야 하는 강호다.

팽일소도 그런 사실을 아니 잡을 수가 없었다.

강소군이 팽일호를 향해 포권을 하였다.

“술은 잘 마셨소.”

“하하. 무한에서 보세.”

팽일호가 답례를 하였다.

강소군이 세워둔 말에 올라타고 관도로 내려갔다.

강소군이 어둠 속으로 사라진 뒤 팽일소가 말했다.

“도무지 믿을 수가 없군요. 엄청난 고수라고 들었는데 마치 무공을 익히지 않은 것 같네요. 저 나이에 반박귀진의 경지가 가능한가요?”

“강호에 고수가 쏟아져 나오는구나.”

팽일호가 담담하게 말했다.

강소군이 가고 난 뒤 팽가 일행은 야영 준비에 들어갔다.

“누구냐?!”

팽가의 무인들이 잠자리에 들려는데 갑자기 팽일호의 우렁찬 음성이 터졌다.

모두 놀라 벌떡 일어나 도를 뽑았다.

“형님, 무슨 일입니까?”

“적이다.”

팽일호가 나직이 흘리고 자신의 대도를 집었다.

팽일소가 팽일호의 시선을 따라 어둠이 싸인 숲을 보았다.

잠시 싸늘한 한기가 감돌더니 세 사람이 나타났다.

“덩치는 커다란 놈이 눈치는 빠르군.”

서른 중반에서 마흔 사이로 보이는 세 사람은 모두 도끼를 든 나무꾼들이었다. 아니, 영락없이 나무꾼들로 보였으나 기세만큼은 심상치 않았다.

팽일호만큼은 아니지만 제법 커다란 체구들이었는데 양손에 커다란 도끼를 들고 있었다.

“네놈들을 쫓느라 여간 고생했다. 어지간하면 객잔에서 쉬지 왜 여기까지 와서 노숙을 하는 거냐.”

제일 어려 보이는 나무꾼이 투덜거렸다.

“빨리 치워 버리고 가자.”

중간 정도 되어 보이는 나무꾼이 도끼를 쳐들었다.

***

‘아!’

널따란 연무장.

한가운데 좌정하고 있던 중랑은 갑자기 눈을 떴다.

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검을 뽑았다. 방금 머릿속을 스치고 간 생각을 좇기라도 하듯 검을 휘둘렀다.

중랑은 대정무각 각주들과 논검을 하며 무공이 일취월장하였다.

가족의 원수를 갚기 위해 어려서는 밤낮으로 수련을 하였다. 명문가의 자제들처럼 영약의 도움은 받지 못했지만 대신 두 배 세 배로 몸을 단련하였다.

강인한 체력을 지녔기에 연성결이 건넨 천성육십사식도 쉽게 익힐 수 있었다.

천성육십사식은 현치자가 무당의 소청검법과 화산의 매화검, 그리고 회천십이도를 배합한 희대의 절학이다.

익히는 자의 오성과 수련 정도에 따라 그 성취가 확연히 다른 특성을 지니고 있다.

그 사실을 강소군은 알고 있었고 이제 중랑도 깨닫고 있다.

중랑은 육신의 강인함으로 천성육십사식을 극성까지 펼칠 수 있을 때 한계에 부딪혔다.

그때 강소군의 몇 마디를 듣고 검법의 극의에 접한 뒤 성취가 부쩍 올랐다.

뒤이어 대연의결을 익히며 검법의 깊이를 체득하였고 세세한 움직임 하나하나가 지닌 의미를 새길 수 있었다.

상승 무공이란 나아간 듯했다가도 어느 순간 다시 제자리를 맴도는 지난한 공부다.

강소군은 무총에서 살아남기 위해 끊임없이 싸우는 과정에서 수많은 벽을 깨뜨려 범인의 경지를 넘어섰지만 중랑에게는 그럴 기회가 없었다.

중랑은 대정무각 각주들과 논검을 하면서 여러 깨달음을 얻는 순간, 자신의 검법이 제자리걸음을 되풀이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동시에 초조해졌다. 중랑이 초절정 단계 어느 즈음에서 나아가지 못하고 있을 때 칠각주 유문광이 찾아왔다.

유문광은 처음 만났을 때부터 중랑의 천성육십사식에 관심이 많았다.

천성지에서는 타인의 무공을 모두 보여 달라고 할 수는 없는 일이었기에 조언을 하는 데서 그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달라졌다. 중랑이 대정무각 각주들의 공동전인이 된 상황이다.

유문광은 중랑과 머리를 맞대고 천성육십사식을 파고들었다.

앞서간 선배는 확실히 달랐다. 유문광 역시 검으로 절정의 경지에 한 발을 내디딘 인물이다.

“놀랍구나. 이 검법은 여섯 식의 검로에 초식을 계속 중첩하여 궁극의 경지에 이르는 검법이다.”

유문광은 천성육십사식의 비밀을 간파하였다.

유문광의 해석은 놀라웠다. 천성육십사식은 개개의 초식이 일식을 완전하게 이루면서도 앞의 초식과 중첩하여 펼칠 수 있도록 되어 있다는 것이다.

“일식에서 여섯 식까지가 기본이고 뒤이은 칠식을 일식에, 팔식을 이식에 더하는 방식이구나. 각 초식을 중첩하여 펼치면 전혀 새로운 검식이 나타나게 된다. 이건 정말 놀라운 발상이로구나.”

유문광은 중랑을 위해 천성육십사식을 연구하다 오히려 자신이 무리(武理)의 세계에 빠져버렸다.

중랑은 유문광의 해석을 듣는 순간 연성결의 회천십이도를 떠올렸다.

삼도문에서 지내던 당시 연성결이 회천십이도를 펼치는 걸 본 적이 있다.

‘회천십이도가 그랬다!’

처음 삼도는 정직하면서도 진중한 초식이었으나 다음 삼도는 비슷하면서도 변화가 더해졌다.

마지막에는 사방에서 도광이 번뜩였기에 당시에도 무척 놀랐던 기억이 남아 있다.

중랑이 천성육십사식의 원리를 깨닫고 수련하며 자신도 모르게 절정의 경지에 한 걸음 다가갔다.

그런데 어느 순간 벽에 부딪혔다.

여섯 식의 검로에 계속 중첩하면 열 번을 더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남은 마지막 사식.

마치 따로 가져다 붙여놓은 듯한 사식의 비밀에 부딪혔다.

처음 천성육십사식을 익힐 때도 마지막 사식이 유난히 변화가 심해 익히는 데 두세 배의 시간이 걸렸다.

여섯 번씩 열 번을 중첩하면 육십식이 되어야 하는데 왜 사식이 덧붙여져 있는 걸까.

그러다 문득 연화심의 검이 떠올랐다. 같은 천성육십사식이지만 연화심의 검은 유난히 변화가 많아 다른 검법처럼 보였다.

“아!”

중랑은 순간 깨닫는 바가 있었다. 남은 사식의 비밀을 깨닫자 곧바로 일어나 검을 휘둘렀다.

-쉬쉬쉭!

방금 깨달음 때문일까? 중랑의 검은 완전히 바뀌었다. 마치 연화심의 그것처럼 수많은 변화를 만들어냈다.

‘그랬구나!’

나머지 사식은 현치자가 화산의 매화검의 원리를 새겨 넣은 것이다.

앞의 검식에 사식의 원리를 새겨 넣으면 마치 매화검이 매화를 피워내듯 천성검은 수많은 별을 탄생시킨다.

중랑의 검끝에서 은하수와 같은 별무리가 피어나 허공으로 뻗어 나갔다.

-콰쾅!

내력을 넣지도 않았건만 별무리가 연무장의 벽에 부딪히며 무수한 흔적을 새겼다.

중랑이 검을 멈췄다.

진정한 성취를 이뤘다는 희열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화심은 어려서부터 아버지의 회천십이결을 봐 왔기에 무의식적으로 중첩의 묘리를 깨달았던 것이다!’

중랑은 천성육십사식의 비밀을 완전히 풀면서 절정의 경지에 발을 확실히 내디뎠다.

온 세상을 얻은 것 같은 자신감과 함께 미증유의 세계에 발을 디딘듯한 막막함이 동시에 다가왔다.

이제야 비로소 진정 홀로 선다는 느낌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화심의 성취는 어찌 되었을까?’

중랑은 절대지경의 문턱을 넘자 연화심이 떠오르고 뒤이어 걱정하는 마음이 일었다.

그의 마음을 알기라도 했다는 듯 저녁 무렵 노이칠이 찾아왔다.

노이칠은 약속대로 연화심의 동정을 꾸준히 보내 왔다. 그런데 직접 찾아온 적은 없었다.

별 탈 없다면 이전처럼 소식만 보내 왔을 텐데…. 중랑은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절대지경에 문턱에 들었건만 중랑은 연화심의 일만은 초연할 수 없다.

“화심에게 무슨 일이라도?”

“연 낭자가 복건을 떠났네.”

“떠나다니요?”

“무한으로 향하고 있네. 삼도문으로 가는 모양이야.”

노이칠이 연화심의 서신을 건네주었다.

서신에는 아버지의 유해를 찾아 삼도문으로 간다는 내용과 함께 염려하지 말라는 당부가 적혀 있었다.

중랑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도 가 봐야겠습니다. 연 문주님은 제게 두 번째 삶을 주신 아버지 같은 분입니다. 어찌하여 이제까지 유해를 방치하였는지 부끄럽군요.”

결연한 중랑의 말에 노이칠은 말릴 수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무한에서 천하비무대회가 열린다네. 천황성이 강호에 모습을 드러냈으니 분명 천하비무대회에서 수작을 부릴 것이네.”

노이칠은 이미 대정무각의 무인들을 무한 곳곳에 배치하는 중이었다.

“함께 가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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