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소군-141화 (14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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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백한 얼굴을 한 청요가 남궁악을 향해 포권을 하였다.

“갑작스레 끼어든 점 용서 바랍니다.”

사람들은 순식간에 일어나고 정리된 상황에 청홍쌍요를 바라보기만 하였다.

홍요도 남궁악에게 고개를 숙였다.

“힘이 부족하여 사부님의 원수를 직접 갚지 못했습니다. 이렇게라도 사부님의 원혼을 달래드리고자 한 점을 양해하여 주세요.”

“환사의 제자 청홍쌍요가 남궁세가에 폐를 끼쳤습니다. 앞으로 세 번 남궁세가의 명을 받겠습니다.”

이어 두 사람은 붉고 푸른 운무로 바뀌더니 사라졌다.

강호의 제일 신비로 꼽혔던 환사의 제자다웠다.

“엇!”

그들이 사라지자 봉황수의 시신도 없어졌다. 청홍쌍요가 가지고 간 게 분명했다.

“악아!”

남궁천이 남궁악에게 다가왔다. 목이 멘 남궁천은 평소 큰아들을 부르던 소가주라는 호칭 대신 아명을 불렀다.

남궁천은 뜯겨 나간 남궁악의 왼팔을 보자 가슴이 쓰라렸다.

남궁악이 담담하게 웃었다.

“팔 하나가 대수입니까. 대적이 오고 있습니다. 목숨을 내놓고 싸워야 할 무인들 앞에서 이깟 팔 한 짝을 아쉬워하면 남궁가의 소가주라고 할 수 없지요.”

남궁악의 말을 들은 무인들은 피가 끓었다.

“소가주 만세!”

“적을 물리치자!”

엄청난 비무에서 소가주가 승리하자 무인들이 연호하였다.

생사결을 지켜보고자 모였던 군중들도 덩달아 흥분하여 외쳤다.

“남궁세가 소가주가 십대고수 서열 삼 위다!”

군중들의 환호에 남궁악이 씁쓸하게 웃었다.

서열 삼 위 환사를 꺾은 봉황수를 이겼으니 맞는 말이기는 하다.

하지만 남궁악은 십대고수 서열 따위는 애초에 관심이 없었다.

남궁천이 남궁악의 어깨를 두드렸다.

“들어가자꾸나.”

남궁세가의 무인들이 대문으로 들어가려는데 말발굽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남궁세가의 전령이 급하게 달려오고 있었다.

남궁천과 남궁가 무인들의 안색이 침중하게 굳었다.

적이 오고 있다는 소식일 것이다.

전령은 미친 듯이 달려오는 말 위에서 돌연 뛰어올라 허공에서 공중제비를 돌고는 남궁천의 앞에 착지하였다.

“오!”

멀리서 보던 군중들 사이에서 감탄성이 터졌다.

일개 전령이 보여 준 무위조차 가볍지 않아 보인 것이다.

“가주께 고합니다.”

전령이 부복한 채 말했다.

“강소군 대협이 단기필마로 몰려오는 적들을 치고 적장을 베었습니다!”

“뭐라고?”

남궁천의 입이 떡 벌어졌다.

남궁악은 먼 하늘을 바라보았다. 푸른 하늘 아래 피로 물든 길을 달리는 강소군이 보이는 듯했다.

‘소군, 고맙네.’

남궁악은 아버지가 떠나라고 했을 때 묵묵히 받아들이던 강소군에게 서운한 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

심지어 강소군은 자신의 생사결조차 보러오지 않았다.

알고 보니 그 사이 홀로 대적을 감당하러 간 것이다.

남궁악은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걸 느끼고 돌아섰다.

남궁우가 다가와 부축하였다.

“형님, 어서 들어가시죠. 부상이 작지 않습니다.”

남궁우도 거의 울먹이다시피 하며 남궁악을 끌고 들어갔다.

***

강호가 요동쳤다.

십대고수 서열 삼 위 환사가 봉황수에게 패하여 시신이 저잣거리에 걸렸다.

며칠 뒤 서열 사 위 봉황수의 조각난 육신이 고깃덩어리처럼 그 자리에 걸렸다.

남궁악은 봉황수와 겨뤄 이겼으나 팔을 잃었다.

그로 인해 다가오는 천하비무대회에 불참할 것이라는 소식이 퍼졌다.

그러자 오히려 천하비무대회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무림맹 결성을 강력하게 주장했던 남궁세가는 남궁악을 내세워 무림맹주를 차지하려 한다는 의심을 받고 있었다.

그런데 남궁악이 천하비무대회 불참을 하게 되니, 대파와 세가는 물론 중소 문파까지 나서서 무림맹 창설과 천하비무대회 개최에 적극 나섰다.

무림맹 창설이 본격화되자 위협을 느낀 흑도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았다.

흑도의 거파 흑선문을 주축으로 온갖 흑도인들이 운집하였다.

흑백 양도에서 거대한 세력이 태동하려는 조짐이 보이자 각 문파가 준동하였다.

도처에서 영역과 이권을 두고 다툼이 벌어졌고 은거했던 기인까지 쏟아져 나왔다.

대파와 세가는 합종연횡을 하였으며 새로운 강자도 고개를 쳐들었다.

그중에 세인의 관심을 모은 세 문파가 있었다.

화룡문

천황성

번천맹

화룡문의 젊은 문주 조운룡은 유력한 무림맹주 후보로 꼽혔다.

봉황수의 정체가 밝혀지며 천황성은 신비한 세력으로 회자되었다.

존재는 하나 실체를 보이지 않는 번천맹 또한 가장 은밀한 세력으로 꼽혔다.

저잣거리와 객잔을 돌며 이야기를 파는 매화자.

그들은 신나게 이야기를 팔며 외쳤다.

“영웅호걸의 시대가 열렸다! 무림 사상 최초의 맹주! 누가 될 것인가? 알고 싶은 자는 귀를 기울여라!”

소걸아 역시 열심히 이야기를 팔았다.

“혈마 강소군! 일당천의 이야기를 듣고 싶은 자!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무조건 한 냥씩!”

***

공손 노야는 말없이 홍의발을 내려다보았다.

눈앞에 있는 홍의발이 아니라 조개량의 얼굴이 머릿속을 맴돈다.

‘진작 죽였어야 했는데.’

언젠가 큰코다칠 놈이라 보긴 하였으나 이번일 줄은 미처 짐작하지 못했다. 가진 바 재주보다 품은 야망이 큰 놈이었다.

욕심은 파멸을 부른다.

제 한 놈만 파멸하면 괜찮은데 주위 사람들까지 끌고 가는 게 문제다.

공손 노야는 조개량의 그런 성향을 알고 있었으나 십이지대가 탐이 나 불렀다.

천주 휘하 일백여 고수들이 있으나 그들은 하늘의 구름 같은 존재들이다.

대사를 이루려면 손발에 피를 묻혀야 할 놈들도 필요하다.

그래서 조개량과 십이지대를 부른 것인데 결과가 좋지 않다.

천황성은 무림에 노출되고 봉황수는 죽었다. 그나마 십이지대가 온전하게 돌아온 게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공손 노야가 말이 없자 홍의발은 전전긍긍하였다.

‘차라리 이런 놈이 낫지.’

홍의발은 평범한 얼굴에 그다지 재주는 없어 보인다. 아주 우둔하지는 않아 시키는 것은 그럭저럭할 놈이다.

아직 이십 대 초반의 젊은 나이임에도 야망 같은 게 보이지 않는다. 주어진 자리에 만족하고 사는 놈이다.

공손 노야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조개량은 돌아와도 죽었을 것이다.”

공손 노야의 차가운 음성이 떨어지자 홍의발이 부르르 떨었다.

“그놈의 머릿속에 무슨 생각이 있었는지 내가 모를 줄 알았더냐?”

“저는 아는 바가 없습니다. 살려 주십시오.”

홍의발이 털썩 엎드려 고개를 조아렸다.

“머리를 쓰지 마라. 머리 쓰는 게 보이면 피곤해진다.”

“저는 그저 심부름이나 하는 자입니다. 그럴 일 없습니다.”

공손 노야가 고개를 끄덕였다.

“당분간 십이지대는 네가 맡아라. 거처를 내줄 테니 부족한 인원을 채우고 조련에 박차를 가해야 할 것이다.”

“그들은 하나같이 저보다 고수들입니다. 제자가 재주가 부족하여 제대로 지휘하기가 어렵습니다.”

“한심한 놈!”

공손 노야가 중얼거리더니 옆에 있는 줄을 당겼다.

건장한 무인 한 명이 들어왔다.

“이 녀석에게 천호위 둘을 붙여 주어라.”

“천호위를요?”

무인이 놀라 되물었다.

천호위는 공손 노야의 호위로 열 명밖에 되지 않는다.

공손 노야가 고개를 끄덕이자 무인이 더 이상 말하지 않고 물러났다.

공손 노야가 홍의발에게 말했다.

“홍의발, 천호위는 초절정에 이른 고수들이다. 그들이 네 옆을 지킬 것이다. 이제부터 너는 내 휘하의 책사이니 만일 말을 듣지 않는 자가 있다면 바로 죽여라.”

공손 노야의 말에 홍의발이 부르르 떨었다.

그러고는 고개를 조아렸다.

“명을 받들겠습니다.”

잠시 후 대청을 나온 홍의발이 생각에 잠겼다.

일을 실패하고도 목숨을 부지한 건 다행이다.

‘나를 시험하는 것일 게다.’

천호휘를 붙인다는 건 자신을 감시하겠다는 뜻이다.

홍의발은 속으로 피식, 웃었다. 공손 노야 역시 조개량이나 다를 바가 없다.

홍의발의 평범하기만 한 얼굴에 알 수 없는 미소가 스쳤다.

‘머리가 뛰어나다는 놈들이 오히려 어수룩하다니까.’

조개량 역시 자신을 처음 거둘 때 제자로 삼겠다면서도 암중에 감시를 붙였다.

홍의발이 공손 노야가 있는 대청을 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생각 잘해야 할 거야. 뒤통수 맞고 싶지 않으면.’

공손 노야는 홍의발을 보낸 후 회랑을 따라 걸었다.

장원 깊숙한 비처.

삼태상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의 얼굴에는 불쾌한 기색이 역력했다.

“노야께서 바쁘신 줄은 알고 있지만 우리도 한가한 사람들은 아니라오.”

위 태사는 보자마자 뼈가 담긴 인사를 건넸다.

“한가하지가 않아서 일을 이렇게 만들었소?”

공손 노야가 바로 반박하였다.

“일이 어때서? 지금 수습이 안 되는 건 노야가 맡은 무림인 것 같은데?”

위 태사도 물러서지 않았다.

“당신들이 잘했으면 굳이 노부가 나서지 않아도 됐을 것 아니오? 일을 어지럽혀 놓고 수습을 떠넘긴 것은 당신들이오.”

공손 노야가 쏘아붙였다.

분위기가 냉랭해지자 등 노사가 중재를 하였다.

“자자. 모두 오랜만에 보는 것 아니오? 만나자마자 이렇게 책임 공방을 하면 무슨 면목으로 천주를 뵙는다는 말이오? 작금의 상황부터 수습합시다.”

등 노사의 말에 위 태사가 코웃음을 쳤다.

“흥! 조정과 상계는 아무런 일이 없소. 잘 돌아가고 있으니 등 노사와 노야께서 무림의 일이나 잘 대처하시오.”

공손 노야는 내심 분노가 일었으나 참아야 했다.

천주는 공손 노야와 삼태상을 나란히 중용하였다. 어쩌면 그가 의도한 바가 이렇듯 서로 견제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등 노사가 한숨을 쉬었다.

“맞소. 내 잘못이 크오. 봉황수가 그렇게 허무하게 당할 줄은 몰랐소. 게다가 무림맹 결성이 코앞이니 발등에 불이 떨어진 셈이오.”

“….”

등 노사가 자기 과실을 인정하는 듯 말했으나 기실 공손 노야를 타박하는 말이었다.

공손 노야는 천주의 책사일 따름이다. 무림의 일은 등 노사 관할인데 이번 일은 공손 노야가 직접 나서 주관하였다.

‘이놈들이?’

공손 노야가 미간을 찌푸렸다.

등 노사와 위 태사 사이도 그다지 좋지 않다. 하지만 자신을 상대할 때는 교묘하게 손을 잡는다.

공손 노야는 속에서 불이 났으나 꾹 참으며 말했다.

“조왕부의 어린놈이 재주가 있다기에 맡겨 봤는데 일을 이렇게까지 망칠 줄은 몰랐소.”

대사를 그르칠 수는 없었다.

공손 노야는 속으로 삼태상을 바꿔야 할 시기가 됐다고 생각하면서도 입으로는 딴말을 하였다.

“삼태상 여러분이 굳건하니 걱정은 하지 않소. 무림맹 결성은 초유의 일이나 하기에 따라 큰 득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오.”

공손 노야가 자기 과실을 인정하고 추켜세우자 삼태상도 더 이상 공박하지 않았다.

오히려 등 노사가 공손 노야의 말에 힘을 실었다.

“그 말씀은 맞소. 조정이나 상계와 달리 무림은 통제하기가 참으로 힘드오. 무림맹 결성을 기회로 무림을 통제할 수단을 가진다면 전화위복의 계기가 될 것이오.”

상계를 대표한 종 선생도 한마디 거들었다.

“무림에 질서가 잡힌다면 상계로서도 큰 도움이 될 것이오.”

“말이야 그럴듯하지만… 방법이 있소?”

위 태사가 여전히 삐딱한 어조로 물었다.

공손 노야가 말했다.

“무림맹주는 우리 차지가 될 것이오. 흑선맹 역시 우리 휘하에 두게 될 것이고.”

“….”

삼태상은 말없이 머리를 굴렸다.

흑백 양도의 맹을 실질적으로 관리한다면 천하의 주인이나 마찬가지다.

등 노사가 물었다.

“무림맹주 후보로 누가 나서는 것이오? 설마 천주께서 직접?”

공손 노야가 고개를 저었다.

“그분이 세인의 눈을 꺼리는 걸 아시지 않소. 무림맹주는 철권호가 될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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