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소군-137화 (137/250)

137

공손 노야는 부복한 조개랑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조개량을 믿지 않을뿐더러 자신의 상대로도 생각지 않았다.

그는 바둑판의 돌과 같은 존재로 언제고 사석으로 버릴 수 있는 자였다.

“무림맹이건 그놈이건 네가 할 건 없다. 이미 다 조치를 취해 놓았으니 너는 뒷수습만 하면 된다.”

“예?”

“네게 무력대가 있다고 들었다.”

조개량이 고개를 쳐들었다.

“나는 그들이 필요하다. 내줄 수 있나?”

공손 노야가 조개량을 시험하는 듯 주시하며 말했다.

“당연히 내드려야지요.”

조개량이 망설이지 않고 바로 답했다.

조개량은 공손 노야가 자신을 부른 이유를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 그가 필요한 건 조개량이 아니라 십이지대였다.

“다만 그들은 제가 키운 무인들입니다. 무슨 임무인지는 모르지만 직접 지휘할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공손 노야가 자신의 수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노부는 실패한 자를 살려두지 않는다. 행여 임무를 그르치면 죽을 것인데 그래도 괜찮은가?”

“당연히 목을 내어드리겠습니다. 허나 절대 실망시켜드리지 않을 겁니다.”

공손 노야가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지금 당장 그들을 데리고 남궁세가로 가라. 남궁세가를 무림에서 지운다.”

***

남궁세가는 하루하루 긴장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

남궁천을 비롯한 수뇌부가 쉬쉬했으나 강호에는 이미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다.

갑작스레 등장하여 십대고수 서열 사 위에 오른 신비의 고수 봉황수.

사람들은 그가 십대고수에 올랐을 때 아무도 인정하지 않았다. 누군가의 장난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대정무각 일각주 백정무를 꺾으며 봉황수는 자신의 무공을 확실히 입증하였다.

그러니 낙천적인 남궁령조차 걱정이 태산이었다. 천황성 고수의 잔인함을 직접 목도했었으니 그럴 만했다.

십대고수 서열 사 위 봉황수와 서열 십 위 남궁악의 생사결.

두 사람의 대결을 보기 위해 중원 전역에서 남궁세가로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남궁세가 인근 마을은 그런 무림인들로 때아닌 호황을 누리고 있었다.

남궁우가 강소군을 찾아왔다.

안색이 좋지 않았다.

“환사가 죽었습니다.”

환사.

십대고수 서열 삼 위.

환술을 이용한 괴이한 무공으로 이름 높았던 자다.

“봉황수가 그를 죽여 저잣거리에 매달았다고 합니다.”

놀라운 소식이었다.

“환사는 본래 정체를 아는 자가 거의 없는데 시신에 목패가 걸려 있어 알 수 있었답니다. 잔인한 자입니다. 죽은 상대를 욕보이다니.”

남궁우가 분개하였다.

“목패에는 자신의 위에는 하늘밖에 없다는 광오한 말도 적었다고 합니다.”

남궁우의 얼굴에 불안한 빛이 스쳤다.

그때 무사가 와서 고했다.

“개방에서 손님이 오셨습니다. 가주께서 이공자님을 찾으십니다.”

생사결 소식이 알려지며 남궁세가의 빈객도 부쩍 늘었다.

남궁우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만 가 봐야겠습니다.”

남궁우가 가고 난 뒤 남궁령이 교대하듯 강소군을 찾아왔다.

“오라버니와 봉황수가 겨루면 누가 이길까요?”

“….”

“오라버니가 이길 수 있겠지요? 오라버니는 일권삼각도 꺾으셨으니까.”

“자신할 수는 없어.”

강소군이 솔직하게 말했다.

백정무가 내상을 입었다 하나 봉황수가 그를 꺾었다는 건 의미하는 바가 크다.

애초에 누가 십대고수 서열을 정했는지 모르지만 강소군이 보기에 서열은 정확하지 않았다.

강소군은 십대고수 상당수를 직접 만났다. 서열 사 위 요천루주와는 겨루고 꺾은 바 있다.

그의 무공이 기이한 면이 있었으나 백정무나 우문극에 비하면 다소 떨어진다는 느낌이 들었다.

상관무영은 확실히 다른 이들보다 한 수 위였다. 고수들 간의 한 수 차이는 생사를 가르는 중요한 요소다.

강소군은 그에게 검을 겨누었을 때 발검을 하는 순간 죽을 것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오라버니가 그놈을 없애면 안 될까요?”

남궁령도 무리한 부탁이라는 건 안다.

아니, 설령 강소군이 나선다 해도 남궁악이 거절할 것이다.

가문의 명예가 달린 생사결이다. 죽더라도 남궁세가의 이름을 더럽힐 수는 없었다.

남궁령이나 강소군이나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다만 하도 답답해서 하는 말이다.

그때 남궁세가의 무사가 한 사람을 데리고 왔다.

“강 대협에게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찾아온 이는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노 각주께서 보내셨습니다. 급하게 전해드릴 게 있습니다.”

노이칠이 보낸 대정무각의 무사였다. 무사는 품에서 서신을 꺼내 전했다.

서신을 읽은 강소군이 미간을 찌푸렸다.

“무슨 내용인데 그래요?”

“령 매도 봐야 할 것 같아.”

강소군이 서신을 건네주었다.

남궁령이 읽다 말고 놀라 물었다.

“이거 믿을 수 있는 건가요?”

강소군이 고개를 끄덕였다.

남궁령이 발딱 일어났다.

“아버지께 알려드려야겠어요. 같이 가요.”

서신에는 대정무각을 습격했던 무리로 보이는 자들이 남궁세가로 향하고 있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남궁천의 집무실로 가니 남궁우가 나왔다.

“손님이 계시는데 무슨 일이냐?”

남궁우의 안색은 조금 전보다 더욱 나빠져 있었다.

“아버지께 급히 전해야 할 게 있어. 누군가 남궁세가를 노리고 오고 있다고.”

남궁우는 크게 놀라지 않았다.

“일단 들어와라.”

“손님이 계신 모양이니 나는 나중에 뵙는 게 낫겠군.”

강소군이 돌아서 나오려 하자 남궁우가 잡았다.

“형님이 계셔도 될 자리입니다. 아니, 차라리 잘되었군요. 소개해드릴 분이 있습니다.”

남궁우를 따라 들어가니 남궁천이 늙은 거지와 나란히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어린 거지 하나가 늙은 거지 옆에 앉아 눈빛을 반짝이며 듣고 있다 강소군을 보고 놀랐다.

“아! 강 대협을 여기서 뵙는군요!”

손님은 개방의 태상장로 오개와 제자 소걸아였다.

남궁우가 서신을 남궁천에게 보여 주었다.

남궁천이 오개에게 말했다.

“오 선배의 말씀이 맞군요. 더 확인할 필요도 없겠습니다.”

개방 역시 무림맹 결성을 앞두고 강호의 동정을 파악하고 있었다.

그러다 수상한 무력대의 이동을 감지하고 남궁세가에 경고를 하러 온 것이다.

남궁천이 강소군을 오개에게 소개했다.

오개가 강소군을 주시하며 말했다.

“남경 사람이 강 공자를 모를 수가 없지. 강 공자는 나를 몰라도 나는 잘 알고 있다네.”

소걸아가 불쑥 끼어들었다.

“저는 이미 안면이 있는걸요.”

강소군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소걸아 덕분에 진연을 무사히 구출할 수 있어 고마운 마음이 남아 있었다.

그때, 남궁천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남궁가는 남을 먼저 공격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우리를 공격하는 적은 용서치 않을 것이오.”

남궁천이 남궁우에게 일렀다.

“네 숙부와 무력대주를 모두 불러라!”

이미 남궁세가에는 남궁악의 생사결을 앞두고 외부에 나갔던 무력대가 소환되어 돌아오는 중이다.

남궁우가 나간 뒤 강소군이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남궁세가만으로는 힘들 겁니다. 그들은 하나같이 일류 고수로 대정무각을 습격하여 큰 피해를 입힌 자들입니다.”

오개가 강소군을 쳐다보았다.

‘문가의 후예라더니 무인들의 자존심을 모르는가 보구나.’

강소군의 말은 남궁세가를 무시하는 말로 들릴 수도 있었다. 설령 사실이 그렇더라도 남궁세가의 가주에게 이렇게 대놓고 말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과연 남궁천의 안색은 좋지 않았다.

“염려 말게. 남궁가가 대단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맥없이 당하지만은 않을 걸세.”

남궁천이 오개에게 말했다.

“먼 길을 오셨으니 오늘은 쉬시고 내일 다시 뵙지요. 적이 온다니 준비를 해야겠습니다.”

***

남궁세가의 수뇌부들이 모였다.

가주 남궁천과 이공자 남궁우를 비롯해 직계와 방계의 고수들이 이십여 명에 달했다.

“긴급소집령을 내렸으니 사흘 안으로 방계의 무인들까지 모두 집결할 것입니다.”

남궁휴가 남궁천에게 보고하였다.

가주의 친동생으로 무력대를 통솔하는 호가장로(護家長老)를 맡고 있다.

“모두 육백 명 정도가 모일 것입니다.”

남궁가는 창천대와 무룡대가 주축으로 각기 백 명씩 이백 명의 무인을 두고 있다.

하급 무사와 방계까지 모두 모았는데도 육백여 명에 불과했다.

적은 일천 명이 넘는다고 했다.

수는 부족하지만 이쪽은 안방에서 싸운다. 매복과 함정을 적절히 이용하면 지키는 자들에게 유리하다.

“장원 주위 사방으로 백 명씩 배치하고 외원에 이백 명을 대기시켰습니다.”

남궁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무인 하나가 황급히 달려와 무릎을 꿇고 보고하였다.

“적이 백 리 밖에서 멈췄습니다.”

“멈췄다고?”

남궁천이 미간을 찌푸렸다.

“아마도 우리가 대비하고 있는 걸 눈치챈 모양이군요.”

남궁휴가 말했다.

“제가 일백 무인을 데리고 가서 적의 전력을 탐색해 보겠습니다.”

그러자 남궁우가 말했다.

“아닙니다. 그들은 대정무각을 기습했던 자들입니다. 개개인의 무위가 일류라는 건 이미 알고 있지 않습니까? 굳이 피해를 자초할 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적이 오기만을 기다리자는 말이냐?”

“그보다 왜 멈췄는지, 그리고 무엇을 노리는지를 파악하는 게 중요할 듯합니다.”

남궁우가 조리 있게 설명했다.

“그걸 알려면 몇 놈 잡아 와야 할 게 아니냐?”

남궁휴는 초절정의 무인으로 자신감이 넘쳤다.

남궁세가를 불패의 위대한 가문으로 굳게 믿고 있는 남궁휴다. 웅크리고 앉아 적을 기다리는 것 자체가 그에게는 수치다.

“봉황수와의 비무가 사흘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적들은 아마도 비무가 끝난 직후를 노리는 것 같습니다.”

“으흠.”

남궁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리 있는 말이다.

“하지만 대비를 하지 않을 수는 없지. 오늘부터 매복과 함정을 가동한다.”

불안감이 감도는 수뇌부 회의가 끝났다.

모두 돌아가는데 남궁천이 남궁우를 불렀다.

“세가에 와 있는 손님들을 모두 내보내라.”

남궁우가 주저하다 말했다.

“몇몇 분들은 본가와 함께 싸우겠다고 하십니다.”

“그들이 상황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그런 말을 하는 게 아니지 않느냐?”

남궁세가는 지금 무림맹을 추진하는 주축이다.

남궁악이 무림맹주가 될 것이라는 예상이 나돌고 있다.

그러니 남궁세가에 잘 보이고자 하는 식객들이 꽤 있다.

“그들에게 우리가 명령할 수는 없지 않느냐? 하나로 통제할 수 없다면 오히려 대규모 싸움에서 혼란만 가중될 가능성이 크다.”

남궁우가 잠시 생각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

강소군은 높은 나뭇가지에 올라 십이지대의 본진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천황성에 고수들이 있다는 건 들었다. 그런데 이렇듯 많은 무인까지 거느리고 있을 줄은 몰랐다.

무인들은 하나같이 잘 벼린 검처럼 예기가 넘쳐흘렀다.

강소군은 본진 지휘소를 주시하였다. 숱한 전령이 오가고 무력대의 대주로 보이는 자들이 드나들었다.

강소군이 나뭇가지에서 뛰어내려 앞으로 걸어갔다.

“누구냐?”

경계를 서던 무인이 외치자 순식간에 십여 명이 모였다.

무인은 강소군을 훑어보았는데 무기를 들고 있지 않은 데다 명문가의 귀공자처럼 보였다.

무인은 상대가 길을 잘못 들어온 것으로 착각했다.

“여기는 봉쇄됐으니까 어서 떠나라.”

무인이 검으로 까닥거리며 길 쪽을 가리켰다.

강소군이 지휘소 쪽을 보며 말했다.

“너희 대장을 만나러 왔다.”

“뭐?”

무인이 눈살을 찌푸렸다.

“네가 누군데 감히 군사님을 거론하는 것이냐?”

“강소군.”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