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소군-134화 (134/250)

134

소걸아는 대담한 거지였다.

강소군이 진연을 데리고 사라지자 재빨리 거지들을 불러 모아 천근 화약을 빼돌렸다.

그러고는 방일옥과 노산사흉이 서로 싸우다 동귀어진한 것처럼 꾸몄다.

강소군이 알고 그랬는지 우연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노산사흉은 모두 권각에 의해 죽었다.

방일옥이 검을 쓰지만 소림의 권각술을 이어받았기에 조작하기가 쉬웠다.

남경의 실권자 방 대학사의 아들이 죽었다.

남경이 발칵 뒤집어졌는데 식객으로 머물던 노산사흉과 동귀어진했다는 소문이 빠르게 퍼졌다.

노산사검이 정파의 인물로 위장한 사파의 악적 노산사흉이라는 사실도 만천하에 밝혀졌다.

모두 소걸아가 퍼뜨린 것이다.

방연소를 위로하는 조문객이 줄을 이었다.

‘강휘, 이놈! 반드시 내 손으로 직접 목을 벨 것이다!’

방연소는 전후 사정은 몰랐지만 아들의 협행을 칭송하는 이들의 말을 믿지 않았다. 당장이라도 강부를 탈탈 털고 싶었지만 함부로 운신할 수 없었다.

두 눈 멀쩡히 뜨고 당하는 수밖에 없었다.

뒤처리를 끝낸 소걸아가 당당하게 강부를 찾아갔다.

수금을 하러 간 것이다.

“네가 왜 공자님을 찾는 건데?”

문지기가 들여보내 주지 않았다.

“찾아오라고 하셨단 말이에요.”

“그럴 리가?”

문지기가 고개를 저었다.

“공자님은 안 계시는데? 대체 언제 그런 말씀을 하셨단 말이냐?”

“엥?”

“강부를 떠나셨단 말이다.”

“뭐라고요? 떠났다고요?”

소걸아가 황당하여 문지기를 노려보았다.

“정말이에요?”

“이 거지 놈이? 내가 뭣하러 거짓말을 해! 어서 가지 못해!”

문지기가 소걸아를 쫓아냈다.

“이이익!”

소걸아가 씩씩, 거리며 거지굴로 돌아왔다.

“아, 사부님!”

한동안 보이지 않았던 사부 오개가 와 있었다.

“이럴 수가 있습니까? 엄청난 일을 해 주고 돈을 떼이게 생겼어요!”

소걸아는 사부를 붙들고 하소연하였다.

“알았다. 알았어. 근데 네가 챙긴 화약은 어디 있는 거냐?”

오개는 소걸아가 천근이나 되는 화약을 챙겼다는 전갈을 받고 달려온 것이다.

조정에서 엄중히 관리하는 화약은 돈이나 마찬가지다. 천근이라면 개방에서도 결코 무시할 수 없다.

그러니 태상장로 오개가 부랴부랴 달려온 것이다.

“그건 왜요?”

“이놈아! 몰라서 물어? 그런 건 방에서 관리해야지.”

“안 돼요! 납치범 잡아 주고 보상도 못 받았는데 화약이라도 팔아 챙겨야죠.”

“이놈이 돈독이 올랐나? 내가 그렇게 가르쳤더냐?”

“네!”

-퍽!

오개의 타구봉이 소걸아의 뒤통수에 작렬하였다.

소걸아는 억울하고 분했다.

그때 바깥에서 낯선 목소리가 들렸다.

“여기가 개방 남경분타가 맞니?”

소걸아가 나가 보니 강하가 어린 거지에게 묻고 있었다.

“…!”

강하는 소걸아를 모르지만 강부를 주시해 왔던 소걸아는 강하를 안다.

“제가 남경분타주 소걸아인데요?”

-퍽!

오개가 나오며 다시 한 번 소걸아의 뒤통수를 쥐어박았다.

“네가 언제부터 남경분타주가 됐단 말이냐?”

오개가 강하를 보며 말했다.

“개방이 맞기는 한데 무슨 일이오?”

“분타주든 아니든 소걸아에게 전할 게 있어 왔습니다.”

강하가 품에서 봉투를 꺼냈다.

“뭔데요?”

강하가 꺼낸 게 전낭이 아니라는 걸 알자 소걸아가 퉁명스레 대꾸하며 받아 열었다.

“헉!”

소걸아가 홱 오개를 보더니 봉투를 닫았다.

“뭔데 그러느냐?”

오개가 물었는데 소걸아가 봉투를 품에 넣으며 손을 저었다.

“별거 아니에요.”

소걸아는 가슴이 뛰었다.

말로만 듣던 전표라는 걸 봤다. 그것도 한두 장이 아니라 한 뭉치였다.

“제자가 갑자기 어지럽네요. 잠시 걸어야 겠어요.”

소걸아가 비실비실 개천 아래로 걸어 내려갔다.

***

남궁세가.

강호에 여러 세가가 있는데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진 다섯 가문이 있다.

흔히 오대세가라고 부르는데 남궁세가는 검으로 이름이 높았다.

당대에는 젊은 나이에 절대지경에 이른 십대고수 남궁악 때문에 더욱더 명성이 높다.

남궁세가는 무림뿐만 아니라 상계에서도 무시할 수 없는 가문이었다.

방계에서 운영하는 사업만 해도 강남 상권의 반이라는 소문이 돌 정도다.

그러니 남궁세가를 찾는 이들은 끊이지 않았다.

세가가 있는 장원 앞에 커다란 마을이 형성된 것도 당연한 일이다.

강소군은 남궁세가의 정문에서 말에서 내렸다.

정문을 지키는 무사가 다가왔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강소군이 배첩을 건넸다.

“남궁우 공자님을 뵈러 오셨군요… 헉!”

무사가 배첩의 서명을 보다가 숨을 들이켰다.

강소군.

남궁세가의 무사가 혈마의 이름을 모를 리가 없었다.

게다가 남궁령이 강호에 다녀와서 혈마와 의남매를 맺었다고 하도 떠들어서 남궁세가의 무인들이라면 모두 알고 있다.

물론 그 말을 믿는 이는 없었다.

그런데 정말 강소군이 나타난 것이다.

무사의 시선이 강소군이 타고 온 말로 향했다. 말 옆구리에 창이 걸려 있다.

무사가 고개를 숙이며 예를 취했다.

“중문까지 직접 모시겠습니다.”

무사가 동료들에게 눈짓을 하니 전령이 안으로 들어갔다.

정문을 지키는 무사들이었지만 행동거지가 분명했다.

남궁세가의 장원은 무척 넓었다. 대문에서 중문까지 걸어가는데 이각이나 걸렸다.

중문에 당도하니 남궁우가 기다리고 있었다.

“강 대협께서 정말 오셨군요.”

남궁우를 따라 중문을 들어가니 사방에 전각이 즐비하였다.

남궁우는 그중 가장 큰 전각으로 강소군을 안내하였다.

남궁세가에서 극빈을 맞는 빈청이었다. 장식이며 기물이 무척이나 고아하였다.

시비들이 차를 내왔다.

“멀리까지 오셨습니다.”

남궁우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빈청 문이 벌컥 열리더니 남궁령이 들어왔다.

“으헤헤. 오라버니께서 드디어 오셨군요.”

남궁우가 눈살을 찌푸렸다.

저놈의 웃음소리.

남궁우는 어쩌면 저 기괴한 웃음소리를 평생 듣고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는 요즈음이다.

남궁령의 기괴한 웃음소리를 듣고 데려갈 놈이 누가 있을까.

“손님 앞에서 무슨 경거….”

“됐고. 오라비는 빠져 주지?”

“뭐?”

“내가 초대했으니 내 손님이거든?”

남궁우가 배첩을 흔들었다.

“봐라. 누구 이름이 쓰여 있는지.”

배첩에는 남궁우의 이름이 적혀 있다.

“그거야 대놓고 내 이름을 적기가 그러니까 그런 거지. 안 그래요. 오라버니?”

강소군은 난감했다.

남궁세가의 무남독녀는 확실히 감당하기가 어려웠다.

“이공자를 뵈러 왔소.”

강소군의 말에 남궁령이 잠시 머쓱해하더니 바로 예의 기괴한 웃음소리를 터뜨렸다.

“으헤헤. 그럼 이야기 나누시고 있다가 봬요.”

남궁령은 미련 없이 빈청을 나갔다.

“죄송합니다. 성격이 좀 활달해서….”

남궁우가 말하자 강소군은 웃기만 하였다.

“무슨 이유로 저를 찾으셨는지 궁금하군요.”

남궁우가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무림맹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자 합니다.”

남궁우가 흠칫, 놀랐다.

강소군이 무림맹에 관심이 있을 줄은 몰랐다.

“무림맹은 가주님께서 추진하는 일이니 저 역시 잘은 모릅니다.”

남궁우는 자신이 할 말과 할 수 없는 말을 알고 있다. 하지만 상대가 상대이니 만큼 아는 바 없다고 딱 잘라 상대를 물릴 수는 없었다.

남궁우가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

“천하사패가 흩어지고 무림이 무척 혼란스럽습니다. 은거했던 고수들이 나타나며 도처에서 시비가 끊이지 않고 있고 숨죽였던 문파들도 활개를 치고 있지요.”

강소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오면서 들은 바가 있다. 무림은 그야말로 춘추전국시대처럼 도처에서 싸움이 벌어지고 있었다.

강호에 시비가 끊일 날이 없지만 천하사패가 한 지역을 차지하고 패권다툼을 할 때와는 판이하게 다른 양상이었다.

“보다못해 몇몇 분들이 가주께 무림맹 창설을 건의하신 모양입니다. 여러 세가와 대파도 같은 뜻이라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는 것 정도만 알고 있습니다.”

오대세가와 강호 대파들은 오는 봄 무한에서 무림맹 창설을 위한 비무대회를 열기로 하였다.

무림 사상 처음 있는 일이니 맹주의 자리를 비무로 겨루겠다는 취지였다.

“세가와 대파에서 추진한 일이면 그 가운데서 맹주를 추대하면 되었을 것인데 비무대회로 결정한다니 의아하군요.”

강소군이 미심쩍은 부분을 지적했다.

“처음에는 그럴 생각이었지요. 그런데 중소문파와 무림인들의 반발이 거셌습니다. 공정하게 비무로 결정하지 않으면 무림맹을 인정할 수 없다는 문파들도 여럿이었지요.”

“무림맹 결성에 동조하는 중소 문파나 무림인이 꽤 많은 모양이군요.”

“글쎄요.”

남궁우가 고개를 저었다.

“천무방은 여전히 호북의 패자입니다. 게다가 대정무각도 해산하였다고 하나 진위 여부를 알 수 없습니다. 화룡문도 만만치 않은데 근자에는 번천맹이라는 곳 또한 급속히 세를 불리고 있다고 합니다. 무림맹이 제대로 결성될지도 의문입니다.”

남궁우가 여기까지 말하다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더욱이 정파에서 무림맹을 결성한다고 하니 흑도의 무리들도 모이고 있다는 소문입니다.”

그 또한 강소군도 들은 바 있다.

무림맹이 들어서면 힘을 과시하기 위해 흑도와 사파 무인들 척결에 나서리라는 소문이 돌았다.

그러면서 흑도 또한 단결해야 한다며 방파를 추진하고 있다는 말이 돌고 있다.

“어쩌면 괜한 일을 벌인 게 아닌가 싶습니다.”

남궁우가 조심스럽게 말을 마쳤다.

강소군이 남궁우를 주시하였다.

맑은 눈빛이다. 몇 번 만나지 않았지만 명문가의 자제치고는 무척이나 솔직담백한 성품임을 알 수 있었다.

사실 무림맹에 대한 우려는 이를 추진하는 남궁세가의 이공자로서는 하기 어려운 말이다.

돌려 말했지만 지금 추진되고 있는 무림맹의 난제들은 대충 알려 준 셈이다.

“솔직한 말씀 감사하오.”

강소군이 자리에서 일어나 예를 취했다.

남궁우에게서 그 이상의 이야기를 들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남궁세가의 가주에게 물을 수는 없는 일이다.

“아니, 벌써 가신다는 말입니까? 본가가 무당파만큼 대단하지는 않습니다만 그래도 며칠 머물 곳은 있습니다.”

남궁우가 황급히 강소군을 잡았다.

“아니오. 갑작스레 찾아와 폐를 끼쳤소.”

강소군이 빈청을 나오는데 마당에 한 사람이 서 있었다.

서른 조금 넘었을까? 단정히 빗어 넘긴 머리에 푸른 무복을 입고 역시 푸른 장포를 걸친 사내였다.

강소군의 발걸음이 절로 멈춰 섰다.

“…!”

마치 한 자루 푸른 검을 보는 듯했다.

강소군은 절로 비천신검 상관무영을 떠올렸다.

“형님!”

남궁우가 사내를 보고 반색을 하며 다가갔다.

사내는 남궁세가의 대공자이자 십대고수의 일인 남궁악이었다.

“귀한 손님이 오셨다고 해서 와 봤다.”

남궁우가 강소군을 향해 말했다.

“이분은 제 형님이십니다.”

손님으로 온 강소군이 먼저 예를 취했다.

“남궁가의 대공자를 뵙게 되는군요.”

남궁악도 마주 예를 취하며 말했다.

“말은 많이 들었네. 우리 령아와 의남매라고 했으니 내가 의형이 되는 건가?”

무척이나 편하게 강소군을 대하는 남궁악이다. 남궁우가 화들짝 놀라 손을 저었다.

무공에만 몰두하는 남궁악은 세상 경험은 남궁우보다 못했다.

“형님, 령아의 말을 다 믿으십니까? 의남매라니요.”

남궁우가 이해해 달라는 듯 강소군을 보았다.

강소군이 내심 실소를 금치 못했다. 하지만 남궁우가 울상을 짓고 남궁악은 진지한 얼굴로 어리둥절해하니 가만있을 수 없었다.

“그렇게 되는 거로군요.”

그때 남궁령이 툭, 튀어나왔다.

“술상 다 차렸어요. 도원결의, 아니지 아직 복숭아꽃이 피지 않았네? 매원결의하러 가요!”

0